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56화 (56/227)

56화 아마란스 (3)

콰앙!

하수도 뚜껑을 발로 찬 에일이 데구르르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힘껏 부여잡고 있던 발목을 놓자 핏물이 질질 흘러나왔다.

“하… 어째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다.”

에일이 자신의 발목에 꽂혀 있던 화살을 질끈 부러뜨렸다.

거리에 들어선 뒤부터 정체불명의 유저들에게 미행이 붙기 시작했고, 처음부터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챈 에일은 태연한 척 연기하며 도망갈 기회를 살폈다.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기회를 잡아 빠져나왔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꼼짝없이 죽을 뻔한 위기였다.

“젠장, 화살만 몇 번째야. 죽을 맛이네 진짜…….”

에일이 징징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회복 포션을 꺼내 마셨다.

일부러 사람들 틈 사이에 파고들었는데도 마지막 순간에 화살을 맞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거의 발목에 빗겨 맞다시피 했는데 남은 체력은 1.6퍼센트가량이었다.

다른 부위에 맞았더라면 어쩔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였다.

데미지로 보아 상대가 최소 세 자릿수 대 레벨의 유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평범한 유저였다면 이미 바닥에 쓰러져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할 수준이었지만, 에일은 쉽게 빈사 상태에 빠지지 않았다.

시스템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강제되는 대부분의 상태 이상과는 달리, 빈사 상태는 몬스터와 유저도 그 임계치가 각자 달랐다.

플레이어의 정신력을 따라 빈사 상태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이론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여태 그런 유저가 나온 적은 없었지만.

‘일단 목숨은 건졌다고 봐야겠네.’

체력을 모두 회복한 에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뛰어내려 도착한 곳은 도시 지하에 위치한 낡은 하수도.

무려 수백 년 전 과거에만 사용하던 고대의 하수도로 지금은 그 존재를 아는 이가 극히 적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NPC뿐만이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넓은 지형에 비해 아무런 몬스터도 없는 데다가, 도시 세부 지도에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은 히든 스트리트였다.

이를 최초로 발견한 유저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따로 알리지 않았고, 그런 탓에 일반 유저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쯤 경비병들에게 쫓기고 있을 청부업자들도 이 아래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그들이 아래로 내려와 자신을 찾는다고 해도, 유저가 따로 그려 둔 지도가 없으면 길을 헤맬 수밖에 없는 복잡한 구조였다.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는데.’

지하수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여태까지도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에일은 그중 한 명에 당당히 포함되어 있었다.

정보 공유 사이트의 최고 등급 이용자인 에일은 그와 같은 등급인 ‘LoTuS’라는 닉네임의 회원과 서로 간에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많은 정보들을 주고받았는데, 지하수로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와의 정보 교환으로 얻은 것이다.

파앗!

에일은 시야 한쪽에 하수도 내부 지도를 보여 주는 인터페이스를 켜 놓은 채 길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많이도 연결되어 있는 통로들 중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연결되어 있는 출구도 존재했다.

에일은 차분히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벌써부터 이런 상대하고 맞붙게 되다니…….’

당연히 그들의 습격은 이번이 끝이 아니었고, 여기서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한들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에일은 습격자들의 존재를 미리 눈치 채긴 했지만, 거리가 멀어 길드 마크까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보아 어느 정도 정체를 유추하는 게 가능했다.

우선 착용하고 있는 장비나 발목에 꽂힌 데미지로 보아 어중간한 레벨 대의 유저는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위를 둘러쌓았던 세 명의 고레벨 유저가 있었음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

대도시 안이라는 걸 감안해도 워로드의 청부 길드 중에서 저만한 인내심을 가진 곳은 거의 없었다.

‘아마란스… 역시 베켄이라는 녀석이 의뢰한 건가.’

아마란스 길드라는 건 확실해 보였고, 자신에 대한 의뢰를 할 사람은 그 녀석 정도밖에는 없었다.

에일의 손에 화형당한 데다가 상당한 가치의 퀘스트 아이템을 뺏어간 것까지 되었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고작 20레벨짜리 유저가 아마란스 길드에 의뢰하다니, 인맥이 폼이 아닌 듯 돈은 꽤 많은 녀석인 모양이었다.

‘이건 좀 많이 곤란한데…….’

베켄이 자신을 몇 번이나 죽여 달라고 요청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그 개차반이던 성격을 보아 한두 번은 아닐 듯하고, 그 이상의 횟수를 곧이곧대로 다 죽어 줬다간 지금껏 순조로웠던 계획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랭커는커녕 앞선 유저들의 수준을 따라가는 데만 한세월이 걸릴 게 뻔하고 기껏 루의 사도로서 기회를 잡은 의미도 없어졌다.

엘프들이 지키고 있는 하얀 숲이나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는 정령의 숲에 들어가 있으면 자신을 노리지 못하겠지만 언제까지고 그곳 안에서 숨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퀘스트 아이템 ‘비상의 깃털’을 가지고 있던 베켄이 의뢰한 거라면 하얀 숲에 대해서도 말했을 테고, 도망가지 못하게 그쪽 주변에서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랐다.

‘아마란스가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니까. 아마 이곳에서 놓쳤을 경우도 미리 계산을 해 뒀겠지. 초장부터 너무 부담스러운 상대를 만나 버렸어.’

자신과 비슷한 저레벨 유저가 모여 있는 길드도 아니고, 활동 영역이 워로드 전체일 만큼 인원도 많았다.

정면으로 싸움을 받아들이기는 어림도 없었다.

청부 길드가 적당한 대련 상대를 보내 레벨업을 도와주는 자선 단체 따위도 아니었으니, 정정당당하게 비슷한 레벨의 유저를 보낼 리가 없었다.

맡는 일의 특성상 소속원들의 레벨이 높은 편이기 어려운 청부 길드임에도 웬만한 중견 길드 이상의 수준을 자랑하는 아마란스의 청부사들인 만큼, 아무리 못해도 최소 130레벨은 가뿐히 넘는다고 봐야 했다.

‘워로드에서 중요한 건 실력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웬만큼 차이가 나야지.’

느껴지는 막막함에 에일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 레벨 차이라면 한 쪽이 암만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한다 한들, 결코 좁힐 수 없는 스펙 차이 탓에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26레벨에 불과한 에일에게는 당연히 감당이 불가능한 과제였다.

띠링!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에일에게 있어서는 대형 사건이 터진 만큼, 모든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여신의 쪽에서도 반응이 온 것이었다.

[‘빛의 심판자, 루’가 흥미진진하게 눈을 빛내며 지켜봅니다.]

[그녀는 당신이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

에일은 잠시 황당하게 메시지 창을 쳐다봤다.

워로드 내의 월드 이벤트를 관리하고 조율하는 입장이라더니 사실은 따분해 죽겠는 모양이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허구한 날 구경거리만 있으면 눈을 빛내며 팝콘을 튀기고 있었다.

‘지금 그렇게 여유만만한 상황은 아닌데 말이지…….’

아무래도 여태 보여 준 모습들로 인해, 이번 일도 문제없이 해결할 거라는 지나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편이 신격에게 더 많은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바람직한 일이긴 했지만, 지금의 에일은 도움을 청할 인맥도 없고 소속도 없었다.

이번 사건을 철저히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에일은 빛의 교단 소속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워로드의 교단들은 극단적으로 유연한 조직이었다.

특히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먼저 의뢰를 건네거나 어떠한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고, 반대로 교단의 도움 역시 기대할 수도 없었다.

미리 간단한 일부터 빛의 교단에 차근차근 공헌을 해 두었다면 모를까, 에일은 당장 스펙을 올리는 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처음을 제외하면 교단과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

‘사도라는 걸 밝히고 나서면 교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쪽의 리스크가 훨씬 크다.’

NPC에게 말한 사실은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유저들에게도 알려지기 마련.

다른 부분은 몰라도 최소한 사도에 대한 것만큼은 철저히 비밀로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교단을 움직일 방법은 하나뿐.’

지금 그와 소통하고 있는 여신, ‘루’가 교단에게 직접 언질을 준다면 얼마든지 움직이게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신격의 뜻이 내려와 그들에게 명을 내린다면, 그간의 공헌 따위는 관계없이 교단은 기꺼이 전력을 다해 그를 도울 것이었다.

특히 신앙심이 투철한 빛의 교단은 루의 말 한마디면 단체로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일까지 스스럼없이 행할 것이다.

“하지만 여신님이 도와주시진 않겠죠.”

에일이 초연하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빛의 심판자, 루’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신격의 뜻은 당연하게도 대륙 전체에 강력한 개입을 야기했고, 그에 따라 소모되는 영향력도 어마어마했다.

고작 암살자 몇을 처치하려, 그리고 신도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엔 루의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당장 연락하는 유저는 알리사 님밖에 없고, 그쪽에 뭔가 도움을 청하기는 무리야. 솔로 플레이의 문제점이 여기서 여실히 드러나는군.’

에일이 가장 걱정하던 상황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막강한 자유도가 보장되는 워로드이기 때문에, 오히려 유저의 길드 소속 여부가 더욱 중요했다.

자신을 지켜 줄 인맥과 소속이 필수적이었기에, 대부분의 유저들이 길드를 가지고 서로 뭉쳐 가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투에서 상당히 많은 메리트를 줌에도 빛의 교단이 다른 교단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피 대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평범한 길드에도 들어가기 힘들도록 사회성에 타격을 준다는 것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체감할 수 없는 큰 단점이었다.

‘내 목을 노리고 있는 게 웬만한 길드였으면 적당히 상대해주면 되는 건데… 하필이면 상대가 이래서야.’

청부업계에 몸담고 있는 길드들 대부분이 암살 대상이 본래 의뢰금에 돈을 조금 더 보태 주면 역의뢰를 받아 주기도 하는 개차반들이었지만, 하필 자신을 찾아온 아마란스만큼은 달랐다.

전 세대의 가상현실게임인 ‘네버퀘스트’에서부터 유명세를 이어와 그간의 노하우가 있는 데다가, 실력과 신뢰성의 확실함으로 청부 길드 중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영향력을 가진 거대 길드에 연줄이 있는 게 아니라면, 한번 아마란스의 표적이 된 이상 험한 꼴을 보지 않고 넘어가기는 힘들다고 봐야 했다.

‘레벨 차는 최소 100 이상에 수적으로도 열세. 쉽게 속여 넘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놈들을 떨쳐내고 살아남으려면 어떤 수를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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