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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42화 (42/227)

42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5)

촤아아악!

충격파에 휘말려 뒤로 날아간 에일은 허공에서 다시 균형을 잡았고, 바닥에 발을 끌며 주르륵 밀려났다.

그를 날려 보낸 건 잉골 숲의 보스 몬스터인 바토라의 패턴.

양팔을 힘껏 내려쳐 충격파를 일으키고 주변에 근접하던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공격이었다.

데미지 자체는 크게 위력적이지 않았지만 범위가 넓어 충격파를 피하기 마땅치 않았고, 무엇보다 기껏 구축해 두었던 포위망이나 포지션을 완전히 어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에 까다로운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물론 에일은 혼자였기 때문에 집중력이 크게 흐트러지지만 않게 유지하면 그만이었다.

‘나쁘진 않아.’

방금의 충격파를 마지막으로 바토라가 가진 모든 패턴을 본 에일이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녀석이 가진 패턴에 대해선 미리 모두 숙지해 뒀었는데, 체력에 따라 2페이즈로 넘어가거나 패턴의 변화가 따로 있지는 않은 녀석이었다.

즉, 지금 보게 된 패가 녀석의 전부라는 것.

잠깐의 탐색전이 이루어졌을 동안 에일은 보조 무기인 단검의 특수 효과로 녀석에게 둔화 디버프를 걸었고, 성화를 두른 일격을 통해 화상까지 입혀두었다.

물론 바토라가 가진 패턴의 수가 적고 단순한 편이라고는 해도 방심할 수 없는 위력인 데다가, 기본적으로 굉장히 튼튼한 스펙을 가진 녀석이었다.

무엇보다 최소 3인 권장의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상대해야 했으니 꽤나 애를 먹을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대강 녀석을 쓰러뜨릴 견적이 뽑히기 시작했다.

좋은 흐름을 끊기지 않고 상황의 주도권만 계속 유지한다면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다.

쿠구구구!

바토라가 다시 다음 행동을 보였다.

제일 처음에 보였던 패턴이자, 공략에 있어 가장 조심해야 할 패턴.

시커먼 몸을 한껏 웅크린 바토라는 사념의 덩어리라는 수식어에 맞는 흉측한 모습이 되었고, 마주보고 서 있는 에일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콰과과광!

돌진한 바토라가 잉골 숲 특유의 높고 커다란 나무 대여섯 개를 완전히 박살내며 부딪혔다.

정직하고 직선적인 공격이었지만 그만큼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한 번이라도 깔리면 전문 탱커가 아닌 이상 무조건 사망할 정도의 위력을 지녔고, 패턴의 변화를 한순간 읽지 못하고 방심했다간 언제든 게임 오버가 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기술이니만큼 놈에게도 페널티는 존재했다.

“키르르륵…….”

순간적으로 힘을 끌어올려 강한 충격을 낸 반동이 바토라에게 전해졌다.

몸을 추리지 못하는 바토라는 휘청이며 제자리에서 꼼짝 못했다.

그리고 미리 경로와 타이밍을 읽고서 돌진을 옆으로 피했던 에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장검을 치켜든 에일은 바토라와의 거리를 좁혔다.

놈이 무방비 상태가 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했다.

이때 최대한 많은 데미지를 욱여넣어야 높은 방어 스탯을 가진 바토라를 뚫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피융!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에일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뜬금없이 등장한 화살은 그대로 뻗어가 바토라의 몸에 꽂혔다.

방금 전까지 신나서 공략을 진행하던 모습과 다르게, 순식간에 인상을 찌푸린 에일은 냉큼 화살이 날아온 뒤를 돌아봤다.“저기요, 몬스터에 화상 입혀 둔 거 안 보이십니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짜증을 삼킨 에일이 따지듯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에일이 말하는 방향엔 같은 파티원들로 보이는 세 명의 유저가 서 있었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잉골 숲은 먼저 발견한 쪽이 보스를 처치할 권리를 가지는 게 기본적인 매너이자 암묵적인 질서였다.

단순히 멋모르는 길 잃은 유저도 아니고, 보스 사냥을 목적으로 파티까지 맺었을 정도면 그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끼어들었다는 것.

중요한 레이드를 방해받게 된 유저의 입장에서는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경우였다.

이미 트라이 중인 보스 레이드에 다른 파티가 말도 없이 끼어드는 건, 워로드 내에서 지역과 경우에 상관없이 굉장히 큰 무례였다.

그것도 보스 몬스터가 반동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처럼 굉장히 중요한 타이밍에 나타나, 흐름을 뚝 끊어 버리는 것은 단순히 실수했다 정도로 퉁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태도는 에일의 예상을 뛰어넘는 가관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희가 먼저 쳤는데. 바토라가 화살 맞고 이쪽으로 도망치던 거 못 보셨어요?”

“그쪽이야말로 괜히 남의 몹 건드리지 말고 순서 좀 기다리세요.”

“자자, 오해가 있던 것 같으니 다들 진정해. 저 분 입장에서는 모를 수도 있던 거잖아.”

한 마디씩 말을 내뱉으며 다가오는 파티원들.

“하, 참…….”

황당함에 에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마주한 몬스터에 대한 스캔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지만 화살 자국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애초에 바토라는 공격을 당했으면 도망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몬스터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에일은 바토라가 스폰 장소에서 리젠되자마자 마주친 것이었는데, 그들의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심지어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들은 초면도 아니었다.

잉골 숲에서 보스를 기다리며 사냥하던 중에 한 번 마주치기까지 했던 이들이었다.

서로 고개만 까닥이고 지나갔을 뿐,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이건 거의 얼굴에 철판을 깐 수준의 뻔뻔함이었다.

“지금 그렇게 나오시겠다는 겁니까?”

“아니, 저희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애초에 혼자서 뭘 잡겠다고… 그냥 포기하고 뒤로 빠지세요. 괜히 성공도 못할 거 질질 시간 끌면 다른 사람한테 민폐니까.”

“…….”

화가 나 펄펄 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말투였지만, 에일은 담담한 표정으로 주변 상황을 살폈다.

처음에 가했던 공격들로 인해 보스 몬스터의 어그로는 한껏 자신을 향해 끌려 있었다.

여기서 세 명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간 목숨 걸고 도박을 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았다.

주르륵.

화살이 스쳐 지나간 뺨에서 붉은 핏줄기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따뜻한 온도의 핏방울, 하지만 반대로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에일은 자신의 앞에 선 세 명의 남녀를 재빠르게 스캔했다.

그들 모두 장비나 레벨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져 있었고, 장비 스펙은 평균 이상쯤은 되었다.

에일은 먼저 가장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정보창을 열었다.

<유저 정보>

이름: 베켄

세력: 화이트 팽

레벨: 21

직업: 검사

전체 공개가 아닌 일부 공개. 하지만 지금 당장 에일에게 필요한 정보는 모두 다 들어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에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단연 소속란에 적혀 있는 ‘화이트 팽’이라는 이름의 길드였다.

화이트 팽이라면 이 근방에 터를 잡고서 어느 정도 확고한 위치를 쥐고 있는 중견 길드다.

아직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에스마이어 지역의 주인인 나이트메어 길드의 산하도 아니면서 지역 내 발언권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을 정도였다.

에일도 처음엔 눈앞의 남자가 화이트 팽 소속이라는 것을 보고 설마 했지만, 갑옷 한쪽에 찍혀 있는 백색 늑대 문양의 길드 마크를 보아 그가 알고 있는 화이트 팽이 확실했다.

그러나 화이트 팽은 이런 저레벨 유저까지 데리고 있을 만한 규모의 길드가 아니었고, 일반적인 케이스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미래를 보고 영입한 루키? 아니, 낙하산이겠군.’

이런 경우야 불 보듯 뻔했다.

눈앞의 베켄이라는 녀석이 화이트 팽 길드의 수뇌부 중 한 명과 운 좋게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덕에 길드 명단에 이름을 올려 둔 것이다.

‘이거 복잡하게 됐는데.’

그를 제외하면 같이 다니는 다른 동료 둘은 따로 소속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여기서 저 녀석을 건드렸다간 화이트 팽 길드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정식으로 인정받은 길드원은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길드명을 달고 있는 구성원이 공격을 당한 것은 해당 길드 입장에서 가만히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아마 당당히 얼굴을 치켜든 채 에일과 마주하고 있는 베켄의 자신감도 그런 곳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였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에일을 노린다면, 이제 겨우 18레벨에 들어선 에일이 말단조차도 120레벨은 거뜬히 넘길 중견급 길드를 감당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저기요, 뭐하세요?”

한창 생각에 빠져있던 에일에게 그들이 재촉해 왔다.“계속 주변에서 방해하실 거예요? 조금 있으면 바토라한테 걸려 있는 반동도 풀리는데 레이드에 지장가면 책임질 겁니까?”

“잘 선택하세요. 소속도 없으신데 이런 데서 비매너 짓하면 감당 안 될걸요? 워로드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충고해 드리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다음 기회를 봐야겠군요.”

에일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리고는 굳이 미련을 가지지 않고 순순히 등을 돌려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활을 든 여자는 방긋 웃으며 팔을 흔들었다.

“예, 들어가세요~.”

“진작 그럴 것이지…….”

베켄이 에일에게 들리도록 대놓고 혀를 차며 말했다.

거기에도 별 반응을 안 한 에일이 묵묵히 자리에서 사라지자, 베켄의 왼편에 있던 중갑을 입은 남자는 의외라는 듯 입을 열었다.

“음? 조금이라도 뭐라 할 줄 알았는데 그냥 얌전히 비켜주네?”

“푸하하, 이쪽 쪽수가 세 명인데 지가 어쩔 거야? 그리고 내 왼팔에 박혀 있는 이거 안 보이냐?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화이트 팽의 문장이야. 아까 그놈 여기로 눈알 돌아가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던데, 진짜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베켄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긴, 이 주변에서 화이트 팽이라는 이름 듣고도 개길 놈이 어디 있겠어. 암만 높아봤자 20레벨 근처일 텐데.”

“길드도 없는 놈이라 뒤탈도 없고, 자리나 맡아 놓을 호구 하나 잘 잡은 거지. 이게 다 친구 잘 둔 덕이다. 알겠냐?”

“히힛, 이번엔 좋은 아이템 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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