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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33화 (33/227)

33화 유적지 (2)

콰앙!

갑자기 들려 온 요란한 소리에 알리사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들어오자, 반파되어 있는 괴상한 석상이 그녀의 코앞에 서 있었다.

머리와 몸통이 반쯤 떨어져 나간 인간의 형상을 한 석상.

녀석은 한쪽뿐인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카아앙!

곧장 반응한 알리사는 지팡이를 치켜들었고, 석상의 묵직한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지팡이와 부딪쳤다.

“분명 내부에 몬스터는 없다고 했었는데……!”

미리 조사했던 정보로는 위험한 몬스터는커녕 흔한 중립 NPC 하나 없던 곳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눈앞의 석상은 아무리 봐도 명백한 선공형 몬스터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알리사는 재빨리 눈을 돌려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그녀가 시선을 옮기자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간 에일이 바닥에서 포션을 삼키고 있었다.

갑자기 깨어난 석상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한 탓이었다.

키기기긱!

석상이 더욱 힘을 줘 검을 내려찍자 알리사의 팔이 덜덜 떨렸다.

힐러인 그녀로서는 쉽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힘이 상당했다.

‘24레벨, 망가진 고대 석상… 들어본 적 없는 몬스터야.’

에일과 알리사의 평균 레벨은 18.

정예나 보스가 아닌 일반 몬스터긴 했지만 24레벨이라면 상당히 높았다.

방심할 수 없는 상대라는 뜻.

눈앞에 있는 몬스터의 레벨과 정보를 확인한 알리사는 지팡이를 살짝 비틀어 검을 비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내던지며 거리를 벌렸다.

카앙!

그대로 흘러진 석상의 검이 바닥을 내려쳤다.

그리고 그사이, 어느새 녀석의 뒤에서 나타난 에일이 하얀 불꽃이 붙은 장검을 휘둘렀다.

장검이 석상의 등을 크게 베었다.

보다시피 온몸이 돌로 되어 있는 적에게 속성 추가 피해까지는 입히지 못했지만, 공격에 덧붙여 스킬 자체의 데미지만큼은 확실히 들어갔다.

후웅!

에일이 살짝 고개를 젖히며 뒤로 물러나, 석상의 반격을 피했고 그 틈에 체력 상태를 가늠했다.

방금처럼 제대로 들어간 공격 두 번 정도면 충분히 쓰러뜨릴 만한 견적이 나왔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쉽게 끝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양옆에 깔려 있던 석상들이 앞에서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있던 석상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고, 그 뒤에 늘어져 있는 석상들 역시 조금씩 꿈틀거리는 걸 보아, 앞에 선 녀석들부터 차례대로 깨어나는 듯했다.

“서둘러야 해요!”

“일단 이 녀석부터 마무리 짓겠습니다!”

콰직! 콰악!

에일이 외치자 잠시 흐트러졌던 둘의 포커싱이 다시 맞춰졌고, 양방향에서 집중 공격을 당한 석상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쏠쏠하게 경험치가 오르면서 루팅 아이템이 반짝였지만,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었다.

움직이기 시작한 통로의 석상들이 모두 삐거덕거리며 이쪽으로 몰려와 그들을 공격해 왔다.

순식간에 많은 숫자를 상대로 전투를 치르게 된 일행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떻게 움직이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겉모습과는 달리 레벨도 높고 스펙 자체도 굉장히 강력했다.

‘젠장, 이래서는 오래 못 버텨……!’

에일은 무려 세 갈래에서 뻗어져 오는 창날을 받아치며 이를 빠득 갈았다.

적당히 물러나며 공격을 피하는 것마저도 이젠 완전히 한곳에 몰려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엘리사도 어떻게 겨우 버티고는 있었지만, 힘든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퀘스트 보상을 포기하더라도 일단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첫 석상과의 싸움으로 인해 입구 쪽으로 달아나기엔 위치가 적절하지 못했고, 이미 시기상 너무 늦어 버린 탓이었다.

예고도 없이 등장한 몬스터들로 인해 빼도 박도 못 하고 죽을 위기였다.

하지만 이대로 죽었다간 막대한 페널티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48시간 접속 불가에 레벨다운, 아이템 드랍이라니.

아마 인적이 없는 곳이라 드랍한 아이템은 다시 회수가 가능하겠지만, 그 앞의 두 페널티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지고도 남았다.

특히 안 그래도 늦게 시작한 후발 주자라, 바쁘게 쫓아가야 할 에일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앞둔 그에게 한 줄기 구원이 내려왔다.

“에일 님, 받아요!”

알리사가 외치며 아이템 하나를 던졌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하얀색 액체가 찰랑이고 있는 모습.

붕 떠오른 포션은 석상들의 팔을 피해 곡선을 그리며 날아왔고, 에일은 재빨리 팔을 뻗어 그를 잡아냈다.

“이건……?”

에일이 받아든 물건은 그녀가 전에 던전 앞에서 만들고 있던 정체불명의 하얀색 포션이었다.

어떤 물건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을 던져준 알리사는 이미 그와 똑같은 포션을 들이키고 있는 중이었고,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게 뻔했기에 에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힘겹게 석상들의 공격을 쳐내며 포션을 삼켰고, 조그만 병을 완전히 비우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스르륵.

미심쩍은 것도 잠시, 약효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철퇴를 겨우 비껴낸 에일의 팔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했으나 에일은 포션의 효력에 대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일시적으로 몸을 보이지 않게 감춰주는 투명화 포션.

그것이 확실했다.

‘이걸 만들고 있었단 말이야?’

투명화 포션의 효력에 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몸을 감추고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만큼, 온갖 상황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다만 그와 동시에 한계가 명확했다.

우선 누군가를 공격하는 순간 효력이 풀린다는 것과 단순히 몸을 투명하게 만들 뿐, 기척이나 소리까지 숨겨주는 게 아니기에 감각이 뛰어난 상대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도 있었다.

거기다 낮은 가성비, 탐지형 스킬에 대한 면역 없음 등 수많은 단점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렇게 꼽아지는 대부분의 단점들은 돈 문제를 제외하고는 저레벨 단계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드드득!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이 사라진 두 침입자의 행방에 석상들은 멍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레벨의 몬스터가 투명화된 적의 위치를 알아차릴 정도로 감각이 뛰어날 리도 없었고, 탐지형 스킬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었다.

무엇보다 돌로 되어 있는 석상들은 눈으로 보이는 시야를 제외하고는 소리를 듣지도, 냄새를 맡지도 못했다.

그렇게 석상들 사이에서 둘은 입을 틀어막고는 실수로 녀석들과 닿지 않게 조심조심 통로 안쪽으로 빠져나갔다.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석상의 팔 사이로 슬쩍 몸을 빼낸 에일이 속으로 생각했다.

투명화 포션은 비교적 낮은 연금술 랭크에서부터 제작할 수 있었지만, 하나같이 쉽게 얻기 힘든 희귀 재료들로 이루어져 실제로는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에일은 석상들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첫 번째 통로의 끝엔 커다란 문이 놓여 있었다.

굳게 닫혀 있었지만 엉망으로 부서져 있어 안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비틀려진 문 사이로 빠져나온 에일은 두 번째 통로와 마주했다.

앞으로 쭉 길이 나있던 방금의 통로와는 다르게 정면이 막혀 있었고, 갈림길처럼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최초로 발견했던 유저가 한탄 글을 올렸던 당시 첨부했던 몇몇 사진들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유적지 내부에 들어가기 전에는 총 세 개의 통로가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첫 번째가 일자형 통로였다면, 두 번째는 미로, 세 번째는 원형 홀이 나있는 구조였다.

한탄하듯이 작성한 글에 자세한 내부 구조가 담긴 지도까지는 당연히 업로드하지 않았고, 그 부분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이크!”

“앗……!”

통로의 입구에서 서로 툭하고 부딪힌 에일과 알리사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투명화 포션으로 다른 몬스터의 눈을 속인 건 괜찮았지만, 서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워로드는 기본적으로 같은 파티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 해도 경험치 분배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만큼, 투명화 상태를 볼 수도 없었고 스킬을 잘못 조준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아군 오사가 되어 버려 팀킬까지 가능했다.

“뭔가 변수가 생긴 것 같아요. 원래 몬스터가 나타나는 곳이 아닌데…….”

에일이 먼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혹시 몰라 말하며 문 뒤를 살폈지만 석상들이 이쪽으로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지금 상황에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을 따져보자면, 첫 발견자가 사람들에게 사기를 쳤을 경우가 있었는데,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곧바로 기각하고서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까지 호기심 많은 몇몇 사람이 이미 유적지를 방문해 본 데다가, 애초에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이었다면 발견자가 그런 식으로 알릴 이유가 없다.

아무리 지금 시점에 크게 필요치 않은 저레벨 던전이라 해도, 모험가 길드에 발견 신고를 했다면 돈이라도 조금 받았을 텐데, 이름까지 인증된 아이디로 굳이 거짓말을 해서 얻을 게 없었다.

두 번째 경우는 그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블러디 핸즈의 세베라가 모종의 수를 썼다는 것.

의뢰에 대한 입막음이든 보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든 그녀가 함정에 빠트리려 몬스터들을 깨운 게 아닐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워로드의 NPC는 사실상 사람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에, 정형적인 상호작용 외에도 온갖 일들을 벌인다.

심지어 갖가지 의뢰를 맡기고서 보상금을 떼먹고 달아나거나 유저를 죽이는 경우도 흔치는 않지만 간혹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알파고에게 당한 휴먼이라며 인증 글을 올리곤 하는 커뮤니티 문화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제거하고 싶었다면 그저 세베라 본인이 나서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들 둘 모두 흔해빠진 저레벨 유저일 뿐,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어려운 인맥이 있거나 세력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 정도 되는 위치의 거물이 직접 나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이번 퀘스트와 관련된 일들이 진행되며 무언가 트리거가 당겨졌고, 잠들어 있던 유적지의 지역락이 풀렸다고 보는 편이 타당했다.

아무래도 블러디 핸즈에게 받은 이번 의뢰가 한두 곳이 얽힌 퀘스트가 아닌 듯 보였고, 상당한 규모의 대형 퀘스트 같았다.

“아무래도 이번 일에 저희만 관련된 건 아닌 것 같아요.”

에일이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알리사도 짚으며 말했다.

갑자기 세베라가 이런 곳으로 움직인 것도 그렇고, 도착했을 때에 맞춰 몬스터들이 깨어난 것도 그렇고, 그들이 진행 중이던 퀘스트와 전혀 관계없는 일들이 연달아 앞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한 사안이었다.

거기다 처음 의뢰를 받을 때, 한번 발을 들이면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 세베라의 말도 있었다.

누가 봐도 보통 일은 아니라는 암시.

단순히 그들만 엮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곳에선 이와 관련된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이 다른 세력의 NPC들만 해당될지, 혹은 다른 플레이어들까지 해당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확실히… 유적 안에 있을 세베라와 마주하면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이대로 깊숙이 들어가면 나올 땐 꽤 골치 아프겠는데요.”

“그건 걱정 마세요. 아직 두 병 더 있으니까요.”

알리사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액체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여분의 투명화 포션을 꺼내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크르르륵!

그때 갑자기 몬스터의 소리가 통로 저편에서 조그맣게 들려왔다.

앞쪽에서 들려오는 걸 보아 두 번째 통로의 미로 안에 존재하는 석상들이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숨을 죽인 에일과 알리사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투명화 포션의 지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둘은 서둘러 유적 내부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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