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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30화 (30/227)

30화 퀘스트 인 (7)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하르가 기우뚱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요란한 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엎어졌다.

여기저기에 하얀 화염이 붙은 녀석의 거체는 이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단을 처단하였습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30]

[신앙심 스탯 +1]

[광기 스탯 +1]

[여신의 총애 +0.13% (현재 52.51%)]

[더욱 강한 여신의 가호가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전투 관련 능력치, 일부 상승.]

[레벨이 올랐습니다!]

[칭호 ‘한계를 극복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후아!”

시스템 창들이 주르륵 뜨자 에일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흥건히 젖은 이마엔 진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예상치 못한 물리 내성으로 인해 보스를 공략하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늘어나 버렸고, 그 긴 시간 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퀘스트가 날아가는 데다가 막대한 데스 페널티까지 받게 되었으니,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성과이기에 더 크게 와닿았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해답을 찾아내 극적으로 상황을 뒤집었고, 성취감과 진한 고양감을 느꼈다.

이러니 모두가 워로드에 빠져드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할 때, 갑자기 오른쪽 뺨에 정신이 번쩍 드는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고생하셨어요.”

고개를 돌리자 허리를 숙인 알리사가 밝게 웃으며 물병을 건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이마엔 땀이 맺혀 있는 모습이었는데, 힐러로서 후방에 있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전위에 선 에일이 중간중간 힘에 부칠 때마다 앞으로 나서 가하르의 시선을 끌어 줬고, 어그로를 대신 흡수해 주며 다시 흐름을 찾는 것을 도와줬다.

거기다 두 번째 패턴으로 소환되는 시체 몬스터들이 여러 차례 나타났을 때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그녀가 직접 놈들의 수를 줄여 나가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힐러에게 바라는 기대치를 가뿐히 넘고도 남은 활약.

에일은 감사를 표하며 시원한 물을 받아 마셨다.

바짝 말랐던 목을 축이자 달궈졌던 몸이 한결 가라앉았고, 차분하게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알리사 님.”

에일이 부르자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알리사가 고개를 돌렸다.

물을 마시고 있느라 병에 입을 댄 채, 동그랗게 눈을 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저희 방금 좀 엄청나지 않았어요?”

“네? 아하하!”

알리사는 한발 늦게 반응하더니 크게 웃었다.

어찌나 웃는지 농담을 던진 에일이 머쓱해질 정도였다.

“맞아요. 진짜 대단했죠.”

눈물까지 찔금 흘린 알리사가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단순히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날고 긴다는 랭커들도 이렇게 상황에 딱 맞춰 멋들어지게 잡아내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이렇게 기대 이상으로 레이드를 마무리 지은 만큼,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화를 나누며 마저 목을 축인 알리사는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은 아무래도 허탕 같죠?”

“네, 그러네요. 어쩐지 보상이 너무 좋더라니.”

에일은 혀를 차며 앞에 쓰러져있는 가하르를 쳐다봤다.

확실히 숨통이 끊겨 있었고, 은은한 빛을 띄고 있는 걸 보아 아이템 루팅도 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이 받았던 퀘스트를 마무리 짓는데 있어 정작 중요한 부분이 하나 빠져 있었다.

그들이 상대한 보스는 의뢰 목표인 ‘카사노’가 아니라 가하르였다는 것.

정작 잡아야 했던 카사노는 결국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이곳에서 어딘가로 더 향하는 통로나 입구 같은 건 없었다.

방 바깥은 이미 탐사가 모두 끝났다는 걸 생각하면 이곳이 바로 던전의 끝이라는 것이었다.

세베라가 의뢰를 넘겨줄 때, 정보는 확실하다며 큰 소리를 치더니 결국 빗나간 모양이었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이런 식으로 허탕을 치게 되는 경우는 잦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찾아보기 힘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워로드를 플레이하면서 한두 번쯤은 반드시 겪어볼 만큼, 은근히 자주 마주치는 패턴이었다.

워로드에서의 퀘스트는 시스템적으로 미리 하나하나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비롯해 모든 상호작용과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파생되는 만큼, 그들이 실수하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엔 보통 약속된 것에 비해 작은 보상만 주어지고 끝이 나거나, 다음 연계 퀘스트로 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마 다음 연계 퀘스트가 있는 거겠죠?”

“네, 아마도요. 상황을 봤을 때 그쪽이 더 가능성 있을 것 같네요.”

의뢰자의 성향도 그렇고 퀘스트의 건수도 건수이다 보니, 고작 여기서 흐지부지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아직 확신할 단계까지는 아니었고, 퀸즈 블론드로 돌아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가하르의 아이템들을 루팅했고, 본격적으로 분배하기에 앞서 목록을 주르륵 펼쳐보았다.

장비와 상당한 양의 잡템, 그리고 골드.

“아쉽게도 스킬북은 안 나왔네요.”

에일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고 난 뒤, 보통 보상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대 요소는 드랍된 스킬북에서 상위 등급의 스킬을 얻는 것이었다.

워로드의 육성에서 스킬 세팅의 중요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을 막 느끼려 할 찰나, 알리사가 아이템들을 가리켰다.

“잠깐만요. 이거…….”

“으음?”

그녀의 반응에 드랍된 아이템들을 자세히 살펴본 에일은 순간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세 개의 장비 아이템이 모두 같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검은 수정의 반지(희귀)]

[검은 수정의 귀고리(희귀)]

[검은 수정의 목걸이(희귀)]

“세트 아이템……?”

에일은 검은 수정이 하나씩 박혀 있는 장신구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같은 구성의 아이템을 일정 개수 이상 착용하면 특수한 능력이나 효과를 주는 세트 아이템들.

당연히 평범한 일반 아이템을 여럿 착용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효율적인 경우가 많았고, 값어치는 더 나갔다.

‘그것도 희귀 등급 세트라고?’

아이템의 자세한 스펙을 확인한 에일은 입을 떡 벌렸다.

지금 나타난 세 개의 아이템들은 모두 희귀 등급의 레어 아이템이었고, 높은 등급에 걸맞게 힘 스탯을 상당히 증가시켜 주는 옵션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세트 아이템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 효과.

[3세트 효과, 모든 종류의 공격을 1회 무시하는 방어막을 생성한다.]

“이건 아무래도…….”

“나누는 것보단 몰아주는 게 좋겠네요.”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세트 효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았고, 이걸 둘이 나눠 가지게 되면 얻을 수 있는 효용을 반 토막 내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제 여기서 당면하게 된 문제는 이걸 누가 갖느냐인데…….

고작 20도 안 된 레벨에 조우한 세 개의 희귀 등급 아이템이다.

누구라도 욕심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마음이 착착 맞던 파티라고 해도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

에일은 혹시나 알리사가 배신을 하려는 건 아닌지 낌새를 살폈다.

비록 그녀가 힐러라고는 해도 파티를 이루면서 보여 준 실력이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든 방심은 금물이었다.

하지만 막상 알리사가 보인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에일 님이 가지시면 되겠네요.”

“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

에일은 멍한 표정으로 되묻자 알리사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이런 건 보통 필요한 사람이 가지는 게 맞잖아요? 세 개 모두 힘 스탯이 붙어 있어서 제가 가지면 낭비인 걸요.”

“하지만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경매장에 내다 팔기만 해도 액수가 상당할 텐데…….”

“그쪽엔 딱히 관심이 없어서… 아, 대신 다른 아이템들은 제가 가질게요. 괜찮죠? 특히 이번 몬스터는 해체하면 연금술에 쓸 만한 게 나올 것 같거든요.”

에일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초연한 모습에 의심하던 자신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저번에 PK로 얻은 장비들도 그렇고, 이번에도 배분 문제에서 양보하는 걸 보자 왜?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에게는 감사한 일이었지만, 별다른 조건도 달지 않고 이렇게 연달아 양보를 하는 건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쩌면 불교를 믿는 걸지도…….’

에일이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새 알리사가 장신구 세 개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루팅된 다른 장비와 잡템, 골드는 모두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보스의 난이도가 높았던 데다가 고작 두 명이서 레이드를 진행했던 탓에 남은 아이템들만 하더라도 값어치가 상당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중 최고는 에일의 손에 들어온 장신구들이었다.

적지 않은 쿨타임이 존재하긴 했지만 물리든 마법 계열이든 상관없이 공격을 1회 방어해 준다는 건, 희귀 등급 세트의 효과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봐도 좋았다.

차마 유혹을 버티지 못한 에일은 냉큼 장신구들을 장비했고, 곧 효과가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장 방어막이 펼쳐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전투 중 원할 때 방어막을 펼치는 방식인 듯했다.

카가각!

그리고 가하르의 몸을 가르며 해체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딱딱한 갑옷과 뼈로 되어 있는 데다가, 체구까지 커다래서 에일과 알리사 둘이 동시에 달라붙어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연금술에 쓰이는 뼛가루와 금속을 추출할 수 있어 보이는 갑옷 파편이 쏟아져 나왔고, 그것들을 인벤토리에 챙긴 알리사는 꽤나 마음에 든 표정이었다.

고비가 될 줄만 알았던 분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 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던전을 빠져나가기 전에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확인해 보는 게 좋겠죠?”

“네, 조사해 보죠.”

둘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방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검은 돌.

검은 기운이 새어나오자 시체가 벌떡 일어났던 것도 그렇고, 던전 중앙에서 가하르가 지키고 있던 걸 보아 딱 봐도 심상찮은 물건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에일이 살짝 손을 대자 검은 돌은 쩌저적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몇 조각의 파편이 튀어나왔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사령석 파편(퀘스트)×4]

“이건…….”

에일은 사령석에서 나온 파편 중 절반을 알리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아이템을 살펴봤지만 아무런 세부 설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뭘까요?”

“아마… 이번 연계 퀘스트에 쓰일 물건이 아닐까요?”

겉보기엔 돌조각이나 다름없는 파편 조각에 설명도 없었으니, 뭐하는 아이템인 건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단서를 찾기 위해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바로 그때.

콰드드드득!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 어라? 설마 트리거를 잘못 건드린 건 아니겠죠?”

“하하… 설마요. 그런 걸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았을 리가요.”

“그… 그렇겠죠?”

동시에 얼굴이 창백해진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어쩌면 건드려서는 안 될 물건을 건드려 버린 것일 지도 몰랐다.

쩌저저적!

바닥이 갈라지면서 방 안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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