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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28화 (28/227)

28화 퀘스트 인 (5)

“이제 남은 건 여기뿐이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 한번 하죠.”

에일과 알리사가 커다란 석문 앞에 서서 말했다.

다른 곳에 비해 유독 큰 입구와 이 앞을 지키고 있던 몬스터들의 숫자.

던전의 구조상 아무리 봐도 보스 몬스터가 있을 만한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 1층과 2층의 몬스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켰는데, 이제 남은 곳은 여기 하나뿐이었다.

“읏차!”

에일은 먼저 자리에 털썩 앉아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충 바로 앉은 자리였지만, 입구 양옆에는 커다란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 왠지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던전에 있던 도적들이라면 싹 쓸어버렸으니 습격당할 걱정도 없었다.

물론 혹시나 석문 너머에 있는 보스 몬스터가 밖으로 나와 덤벼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입구를 지키던 도적들과 요란하게 전투를 벌였음에도 잠잠했던 걸 보아 바깥 소리는 안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휴, 간만에 강행군을 했더니 힘드네요. 아마 이번 보스만 잡으면 20레벨이 될 것 같은데… 에일 님은 어떠세요?”

“저도 14레벨 끝자락입니다. 아마 같이 레벨업할 것 같아요.”

던전 전체를 청소하자 에일은 경험치 바가 가득 채워져 다음 레벨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한 자릿수 대 레벨과는 다르게 이미 간단히 레벨업이 되는 구간은 지나버린 에일이었는데, 완료한 퀘스트나 레이드, PK도 없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치를 얻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거기다 세 번째로 배우게 될 기초 스킬, ‘성화’를 생각하고 있자니 어서 이번 보스전을 끝내고 15레벨을 달성하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아올랐다.

꼬르륵!

하지만 그들의 배에서 갑자기 민망한 소리가 났고, 마주보고 있던 둘은 동시에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사냥했더니 포만감이 바닥이네요.”

“저한테 고기가 좀 있으니 구워드릴게요.”

에일이 토끼 고기를 찾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들은 중간에 쉬지도 않고서 던전 전체를 클리어했기 때문에 포만감이 최하에 가깝게 떨어진 상태였고, 더 이상 식사를 미뤘다간 허기 디버프가 걸려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아뇨, 제가 요리할게요!”

갑자기 알리사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에일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알리사가 흥얼거리며 준비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나저나 요리라니…….’

분명 이 주변엔 제대로 된 도구나 재료도 없었다.

요리 랭크도 없을 저렙 유저들은 즉석에서 얻은 고기를 굽거나 빵을 뜯는 게 전부였고, 에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둘 꺼내지는 재료들, 그리고 생각보다 본격적인 요리 도구들의 등장에 에일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재료 손질과 조리까지 능숙한 손놀림으로 뚝딱 해치운 그녀는 식사를 담아 그릇째 건넸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수프.

냄새는 좋았지만 바닥을 치고 있는 둘의 포만감을 채워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메뉴 선정이었다.

“불평하는 건 아니지만… 겨우 이 정도로 양이 충분할까요?”

“걱정 마시고 드셔 보세요.”

알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에일은 의구심을 가지며 먼저 수프를 입에 가져다 댔고, 곧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퀸즈 블론드의 식당가에서 먹었던 음식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엄청난 맛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힘 스탯이 일시적으로 소폭 상승합니다!]

그의 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워로드 컨텐츠의 커다란 한 줄기인 요리 역시, 완성한 음식으로 도핑 포션과 비슷하게 일시적인 버프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요리 랭크를 올리기 위해서는 까다롭고 긴 과정을 필요로 했다.

들인 공에 비해 얻는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고, 도핑 포션을 사용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유저들에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부분만 감수한다면 당연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었다.

“혹시 요리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음, 얼마 전에 4랭크를 찍었죠.”

알리사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러자 에일은 경악했다.

“네? 그건 도저히 하루 이틀 만에 가능한 레벨이 아닌데…….”

요리 랭크가 4를 넘었다니.

던전에 입장하기 전, 연금술이 2랭크인 것도 놀랐었는데 4랭크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레벨이 19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그만한 랭크를 지닌 건 전문 요리 유저들 사이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랭커 출신이었던 과거도 그렇고, 그녀의 비범한 전투 실력으로 보아 설마 초식 계열 유저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게… 원래는 이렇게 사냥을 하면서 레벨을 올리고 다닐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워로드를 시작하고 나서 이쪽 기술들을 올리는 데에만 몰두했었죠. 제가 조금 빠르게 올린 편이기도 하고.”

알리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해나갔다.

요리, 연금, 제봉, 낚시, 제련, 무역 등.

그녀의 생활 컨텐츠를 모두 합친 종합 랭크가 14를 넘어설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그 방면에 깊게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의외네요. 랭커 출신들은 당연히 전투 계열에 몰두할 줄만 알았거든요. 워로드에 바로 안 넘어오신 것도 그렇고, 다시 랭커가 되는 쪽은 관심이 없어 보이시는데,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으세요?”

“음, 그건… 여기서 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제가 괜한 걸 물어봤네요.”알리사가 고개를 숙여 사과해 오자, 에일은 급히 손을 저었다.

“흠, 흠…….”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둘은 한동안 말없이 수프를 삼켰다.

* * *

덜컹! 끼이이익!

커다란 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감춰져 있던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입장을 하기 전, 입구와 석문만 봤을 때는 내부가 기껏해야 조그만 방 수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높이도 상당했고 널따란 내부에는 횃불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지만, 일반 불꽃과는 다른 특수한 소재인지 뿜어내는 빛이 너무 옅었다.

그 정도로는 주변에 내려앉은 어둠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오히려 횃불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하드록 동굴보다도 더 어둡게 보일 지경이었다.

거기다 지금은 일반 사냥터도 아닌, 보스룸 안으로 발을 들인 시점.

이 어둠 속에서 어떤 존재가 나타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으음… 이거 너무 어두운데요?”

“포션을 미리 만들어 두길 잘했네요.”

엄숙히 방 안에 내려앉아 있는 어둠과 고요를 느끼자, 에일과 알리사는 재빠르게 인벤토리를 조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동시에 품속에서 꺼낸 건 마침 딱 알맞게 만들었던 ‘묘안의 비약’이었다.

유리병 속에서 찰랑거리는 비약을 삼키자, 온통 컴컴하던 주변의 어둠 속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뭐지…….”

방의 한가운데에는 정체 모를 검은 돌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수정처럼 보이기도 하는 물체는 그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고 있었다.

“저기……!”

무언가를 발견한 알리사가 앞을 가리켰다.

커다란 돌 옆에는 이미 죽은 시체 하나가 주저앉아 있었다.

그것도 백골이 되어 뼈밖에 안남은 남자의 시체였다.

‘저 녀석이 보스인가?’

바닥에 꽂혀 있는 거대한 대검.

사람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큰 덩치에 전신에 갑옷을 입고 있는 게 평범한 녀석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놈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일어났다.

“침입자……?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을 텐데…….”

절그럭! 카앙!

양팔과 양다리의 족쇄는 쇠사슬로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는데, 몬스터가 힘껏 잡아당기기를 반복하자 하나하나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압감을 뿜어내며 완전히 일어선 녀석의 정보가 에일의 시야 아래에 조그맣게 떠올랐다.

놈의 정체는 18레벨의 보스 몬스터, 도적단 간부 가하르였다.

‘카사노가 아니야……?’

정보를 확인한 에일이 미간을 좁혔다.

시스템 창에 떠오른 것으로 보아, 원래 퀘스트의 목표인 카사노는 확실히 아니었다.

눈앞의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면 두 번째로 등장한다거나, 더 깊숙한 곳에서 등장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이보다 더 깊은 곳은 없었고, 다른 몬스터가 숨어 있을 만한 공간도 없었다.

쿠웅!

대검을 뽑아 든 가하르가 한 차례 무기를 내려찍었고, 방 전체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쪽을 노려보는 놈의 두 눈엔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머리 위에 떡하니 이단의 징표가 찍힌 걸 보니, 착하게 살지는 않은 듯했다.

“일단 처음 보는 녀석이니 패턴부터 보겠습니다.”

뒤로 훌쩍 물러나 몬스터와의 거리를 벌린 에일이 말했다.

파티의 인원수는 고작 둘.

실수를 했을 때 뒷수습을 책임져 줄 팀원도 없는 만큼, 무작정 돌진했다간 곧바로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있었다.

후웅! 키리리릭!

가하르가 대검을 휘둘렀고, 팔의 움직임에 따라 족쇄에 달린 쇠사슬들이 이차적으로 휘둘러졌다.

콰과과과!

몸을 날린 에일이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옆을 돌아보자 탄식이 새어나왔다.

사슬에 쓸린 동굴 바닥이 온통 헤집어졌고, 대검과 사슬 두 가지 모두 어마어마하게 위협적인 위력을 선보였다.

움직임이 매우 불규칙적인 데다가 저렇게 넓은 범위의 공격임에도, 한 방이라도 맞으면 뼈도 추리기 힘들어 보였다.

“죽어라……!”

에일을 바라보고 있는 가하르가 대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녀석의 어그로는 확실히 그에게 쏠린 것 같았고, 역으로 말하면 다행히 힐러인 알리사를 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하르가 육중한 대검을 내려찍는 바로 그 순간, 에일은 앞으로 힘껏 뛰쳐나갔다.

“위험해요!”

그 모습을 본 알리사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대형 몬스터가 큰 동작으로 공격할 때 오히려 앞으로 파고드는 방식은 실력에 자신 있는 유저들 사이에서 유효하게 사용되곤 했지만, 이번 경우만큼은 아니었다.

저런 예측 불가능한 범위형 공격에서는 위험성이 너무 높았다.

대검까지는 어떻게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보고 피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갈래로 나뉜 불규칙적인 사슬의 움직임까지 피하기는 무리였다.

저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에일이라도 무모한 만용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미 몸을 빼내기엔 늦었다.

대검이 코앞에서 날아오고 있었고, 경로로 보아 피할 수도 없는 위치였다.

‘이런…….’

알리사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참아 내며) 앞을 주시했다.

파티원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힐러라면 누구보다도 전투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어야 했고, 동료의 죽음조차 똑똑히 눈에 담아야 했다.

저렇게 정통으로 맞는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희박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다면 곧바로 체력을 회복시킬 준비를 한 것이다.

콰아앙!

바닥을 뒤집어엎은 대검이 땅에 박혔고, 먼지가 모락모락 일었다.

하지만 정작 녀석이 노리던 에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무슨……?”

희귀 스킬, 역극(逆丮).

몬스터의 뒤를 잡는 스킬을 사용한 에일은 어느새 가하르의 거체 바로 뒤에 부웅 떠 있었다.

공중에서 빙글 몸을 돌린 에일은 놈의 뒷목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특수 효과 ‘저주’가 발동됩니다!]

- 피격당한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며, 상대에게 받는 데미지를 5% 증가시킵니다.

희귀 등급의 무기 ‘통곡의 단검’이 꽂히자 가하르에게 저주가 발동되었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찰나, 그새 무기를 바꾼 에일은 기다란 장검을 치켜들었다.

역극 스킬의 두 번째 효과인 속도 버프를 받은 상황.

에일의 몸놀림에는 15%의 가속이 붙었다.

쩌엉!

힘껏 휘둘러진 장검이 가하르의 뒤통수에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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