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퀘스트 인 (3)
푸욱!
“커헉!”
멋모르고 걸어오던 도적 단원의 옆구리에 에일의 장검이 박혔다.
그리고 단순히 찌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곧장 어깨를 사용해 놈을 벽면으로 밀어붙여 다음 행동을 막았다.
물론 옆에 함께 서 있던 다른 도적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자식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은 도적은 에일에게 곧장 검을 휘둘렀다.
이미 다른 단원을 벽으로 몰아붙이고 있던 에일은 꼼짝할 수 없었고, 무방비하게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대편에 숨어 있던 알리사가 도적에게 달려들었고, 쥐고 있던 스태프로 그의 머리를 힘껏 내려쳤다.
빠악!
도적이 충격에 잠시 비틀거리며 휘청였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알리사는 뒤에서 그의 목을 스태프로 힘껏 끌어당겼다.
목을 졸린 도적은 켁켁대며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고, 그 틈에 밀어붙였던 도적을 정리한 에일이 다가와 버둥거리는 도적의 배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크허억……!”
도적이 스르륵 미끄러지며 쓰러졌다.
그다지 애먹지 않고 끝난 인스턴스 던전의 첫 전투에 에일과 알리사는 서로를 바라봤다.
“아직 첫 상대긴 해도 예상보다 훨씬 쉬운데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간단…….”
하지만 그들이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때, 쓰러졌던 도적이 꿈틀거렸다.
푸욱!
분명 죽었던 도적의 시체가 움직이더니, 쥐고 있던 단검을 에일의 발목에 꽂아 넣었다.
순간 아무 걱정 없이 무방비 상태였던 에일은 당연히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황 파악이 미처 되기도 전에 곧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 체력이 일정 시간마다 서서히 감소합니다.
“이런 미친……!”
급하게 물러선 에일이 검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뒤에 쓰러져 있던 다른 도적도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건 마찬가지였다.
도적은 독이 묻어 있는 단검을 크게 휘둘렀다.
까앙!
에일의 뒤를 막아선 알리사의 스태프와 단검이 부딪혔다.
창백한 안색과 충혈된 눈동자,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도적들은 금지된 폐허에서 상대했던 좀비나 다름없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선은 전투가 먼저였다.
휘릭! 파악!
일어난 도적의 공격에 순식간에 몸을 돌린 에일은 놈의 팔을 잘라냈다.
잘려나간 부위에서 거뭇한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이제 도적은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인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자신이 공격당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놈을 에일은 간신히 떼어냈고, 마지막 일격을 먹여 머리를 분리시켰다.
이번엔 확실히 숨통이 끊어졌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에일은 알리사가 붙잡고 있던 녀석까지 양단하며 해치웠고, 상황이 모두 정리되자 그녀는 시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건 처음 봐요…….”
어쩐지 여러모로 파격적인 퀘스트임에도 등장 몬스터가 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 죽었던 녀석들이 한 번 더 살아나 덤벼들었고, 목숨도 전보다 질겨져 난이도가 까다롭게 상승했다.
이렇게 부활하는 방식의 패턴은 워로드 내에서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저레벨 인던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보상받는 수준만큼 제대로 하라는 건가…….’
파스스.
쓰러졌던 도적들의 시체는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수북이 쌓인 가루 속에는 하얀빛이 반짝거렸는데, 아이템 루팅이 가능하다는 표시였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검은 마력의 가루(상급)]
[36크론]
본능적으로 몬스터의 시체를 루팅한 에일은 아이템을 획득했다.
반면 다른 쪽의 도적 시체는 알리사가 가져갔는데, 굳이 전투 후 전리품을 한데 합쳐서 나누지 않고, 빠른 진행을 위해 시체를 하나씩 나눠서 루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분배는 저번처럼 계속 반씩 나눠가지기로 미리 합의가 되었으니 자세한 부분을 고민할 것도 없었다.
보통 파티에 들어간 힐러라면 욕심을 내서 더 높은 분배 비율을 주장하거나, 하다못해 지속적인 힐링에 필요한 마나 포션 값을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알리사는 그런 데에 큰 욕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 별다른 아이템 나온 것 없죠?”
“네, 없네요.”
에일이 묻자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공략에 무조건 필요한 아이템들이 던전 내 몬스터들에게서 루팅이 되는 경우도 있어서 한번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힐 해 드릴까요?”
“아니요, 지금은 아직 단검에 묻어 있던 독 때문에 회복시켜 주셔도 다시 떨어질 겁니다.”
“아직도 독 효과가 안 사라졌나요?”
“화면에 나타난 표시로 봐서는 아마 30초 정도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중첩도 가능한 것처럼 보이고요.”
“흐음… 골치 아픈 무기를 가지고 있네요.”
“확실히, 신중하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천천히 가죠.”
대화를 끝낸 그들은 동굴의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도적단은 없는지 주위를 계속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부활까지 하는 방금 같은 녀석들이 여럿이서 덤벼들면,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고전을 면할 수 없을 것이었다.
때문에 지형이나 엄폐물 뒤에 적절히 몸을 숨겨 가며 이동했고, 곧 도적들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에일은 놈들이 만들어 놓은 조잡한 구조물 뒤에 숨어 그들을 바라봤다.
대충 짜인 어설픈 파티라면 제대로 숨지도 못하고 들키는 일이 태반이었지만, 사냥을 통해 합을 맞춰본 결과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단 걸 서로가 잘 알았다.
‘이번엔 넷인가…….’
눈동자를 굴리면서도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넷이나 되는 숫자.
동굴의 고블린들과 달리 도적들은 그들과 비슷한 레벨 대의 몬스터였고, 사냥의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인 워로드에서는 만만히 볼 수 없는 수였다.
자신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저들을 모두 해치우고 갈 것인지, 아니면 몰래 잠입해서 지나칠 것인지.
이 역시 이미 합의가 된 사항이니 만큼 고민할 건 없었다.
“갑니다.”
거리를 재고 있던 에일은 틈을 봐 단숨에 뛰쳐나갔다.
한 손으로 크게 휘두른 장검이 가장 앞서 있던 도적을 베어 갈랐다.
그러자 기습을 당한 녀석들은 당황해 무기를 허겁지겁 꺼내 들었고, 검에 베인 도적은 비명을 질렀다.
스릉!
공격과 거의 동시에 에일이 허리 뒤춤에 꽂혀 있던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가 쥐고 있던 장검은 어느새 사라졌고, 순식간에 무기를 바꿔 든 에일은 공격에 당한 도적의 목덜미에 단검을 깊숙이 꽂아 넣으며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장비 스왑(Swap).
아이템별로 붙어 있는 다양한 부가옵션 혹은 효과들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 전투 중에 무기나 방어구 등을 바꿔 끼는 행위였다.
게임마다 제각각 가능한 범위나 형편이 다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게이머들 간에서는 기본 소양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다만 가상현실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장비 스왑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이었고, 크게 차이도 나지 않는 작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 정작 집중을 못 해 전투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모니터 너머가 아니라 실제로 무기를 휘두르며 전투를 하고 있는데, 한쪽으로는 인벤토리를 조작하거나 다른 무기를 꺼내 들 정신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건 워로드 역시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런 방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전투에 있어서는 기본 장비가 메인이고, 스왑을 해 봤자 아주 약간의 차이가 다라 랭커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딱히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겉멋만 들린 플레이일 뿐, 전투 흐름이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생각하면 실속은 전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일 정도였다.
하지만 에일은 그 일련의 과정을 아주 부드럽게 해냈다.
순식간에 시스템 화면을 조작하며 장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고, 한쪽으로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전투 흐름은 이어나갔다.
안쪽으로 파고든 에일은 단검을 휘둘렀고, 네 명의 도적들에게 모두 한 번씩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특수 효과 ‘저주’가 발동됩니다!]
- 피격당한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며, 상대가 받는 데미지를 5% 증가시킵니다.
에일이 얻은 희귀 무기 ‘통곡의 단검’의 효과.
이렇게 여럿을 상대할 때 미리 디버프를 걸어 두고 전투에 돌입하면 훨씬 상대하기가 수월해진다.
더군다나 상대하는 몬스터가 죽은 뒤 한 차례 부활까지 하는 녀석이라면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우으으……!”
아니나 다를까 죽었던 도적 하나가 되살아나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녀석에게 걸린 디버프는 부활한 뒤에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움직임이 어느 정도 저하된 게 눈에 보였다.
부활한 녀석은 후위에 있던 알리사가 나서 맡았고, 에일은 당장 달려드는 도적들을 마주했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고, 상대의 공격을 한 차례 흘린 단검은 도적의 심장에 꽂혔다.
그리고는 에일은 꽂힌 단검을 회수하지도 않고서 몸을 돌렸다.
순식간에 인벤토리를 조작한 그의 손엔 곧바로 장검이 파앗! 하고 생겨났는데, 크게 몸을 돌리며 휘두른 검격에 도적 하나가 더 나가떨어졌다.
앞서 쓰러진 도적들이 다시 부활하며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에일은 그동안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을 마무리했다.
이제 남은 건 죽음에서 되살아난 2페이즈의 몬스터뿐.
하지만 그들 모두가 멀쩡히 일어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푹! 푹! 푸욱!
에일이 방금 쓰러뜨린 도적의 시체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죽음으로 인해 의식이 끊긴 도적은 어떠한 저항도 없었고, 고통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데미지는 계속해서 누적되었고, 부활해 일어나기도 전에 형체를 잃고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정말 되네?’
혹시나 해서 시도해 본 일이었는데, 다시 일어서기 전에도 쓰러진 몸뚱이에 공격을 가하면 데미지가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조금 편해지겠는…….”
퍼억!
“우어억!”
알리사가 있던 쪽에서도 되살아났던 도적 하나가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쓰러진 녀석 역시 가루로 변해 바스러졌고, 이제 넷이었던 도적들의 수는 둘밖에 남지 않았다.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알리사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웃어 보인 에일은 검을 치켜들었다.
‘우선은 정리부터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