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24화 (24/227)

24화 퀘스트 인 (1)

퀸즈 블론드는 분명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그 이면에는 반대되는 면도 있었다.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만큼, 질 나쁜 세력들도 다수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이 모여 활동하는 그림자의 거리가 바로 ‘뒷골목’이라 불리는 커다란 구역이 되어 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일은 바로 그 구역 안에 들어섰다.

평범한 식당 주인인 줄만 알았던 정체 모를 NPC의 안내에 따라 칙칙한 거리로 들어간 그들은 곧 다리 밑 그늘에서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두건을 쓴 남자는 다가오는 이들을 살짝 흘겨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수신자들이 왔다.”

“아아… 따라와.”

식당 주인은 그대로 떠났고, 입구에 있던 남자가 인계받아 그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돌담벽에 달린 낡아빠진 문을 열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복도와 음침한 조명을 지나자, 여러 테이블과 술을 퍼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얼핏 보면 싸구려 주점처럼 보였다.

신기한 눈으로 주위를 훑던 에일과 알리사는 남자가 인도하는 대로 바텐더 뒤쪽의 통로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때 마침 통로에서 빠져나오는 누군가와 마주했는데, 에일은 그를 바로 알아봤다.

워낙 험상궂게 생겨 생생히 기억에 남는 인상.

가장 먼저 들렀던 잡화점의 아저씨가 근육질의 팔뚝이 훤히 드러나는 도적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뭐… 뭐야 도적이었어?’

에일이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상대는 그를 기억 못 하는 듯 휙하니 지나갔다.

‘설마… 내 아이템들을 거부한 것도 의심받는 상황을 피하려 한 건가? 이중생활을 하고 있어서?’

도적이라면 에일이 내놓았던 잡템들의 가치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다만 그런 혐오스러운 물건들의 처분을 자주 맡게 되면 의심스러운 눈길도 따라 붙기 마련이었으니, 일반적인 상인이라면 몰라도 이미 위장 신분으로 뒤에선 도적 길드의 일을 하고 있는 잡화점 주인으로선 쓸데없는 리스크를 없애려 거부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의도였다는 것밖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 참…….’

AI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간 에일이 헛웃음을 흘리는 동안, 일행은 복도와 방들을 지나 통로의 끝으로 다가섰다.

그들을 데려온 남자는 맨 끝에 위치한 문을 두드리고는 에일과 알리사에게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엔 붉은 머리의 여자가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서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독특하게 생긴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 착 달라붙는 가죽옷 위에 망토를 걸친 여자.

그녀는 시선을 돌려 방문자들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카사노의 편지를 얻었다지?”

에일은 대답 대신 편지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입꼬리를 말아 올린 여자는 말을 이었다.

“리스트에 너희 같은 녀석들은 없었으니 수신자일리는 없을 테고… 의뢰를 하나 하려하는데.”

“의뢰?”

“그래, 아주 간단한 암살 의뢰지.”

"…이런 건 원래 블러디 핸즈가 직접 처리하는 일 아닌가?"

에일이 그들의 조직명을 대놓고 말하며 물었다.

이곳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놈들의 정체쯤이야 다 파악했다.

퀸즈 블론드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양대 세력 중 하나인 블러디 핸즈.

물론 여러 도시에 뿌리를 내려 활동하는 그들의 세력은 단순히 이곳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고, 여긴 하나의 지부일 뿐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여자는 이곳의 지부장인 세베라 로기아였다.

에일이 정체를 곧바로 알아내자 세베라는 재밌다는 듯이 씨익 웃었고, 걸치고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좋아, 눈치가 빠른 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군. 흔치는 않지만 가끔은 외부인에게 맡길 때도 있어. 대행 의뢰지.”

“의뢰 내용은 어떤 거죠?”

알리사가 물었다.

“너희 같은 애송이 모험가들도 꺼릴 것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의뢰야. 암살 대상이 두말할 여지없는 쓰레기들이거든.”

후우.

그녀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하드록 동굴에 주둔 중인 도적 떼가 있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지.”

“그쪽에 도적 떼가 있다는 건 처음 듣는데.”

에일이 의문을 제기했다.

미도나 산 중턱에 있는 하드록 동굴이 여기서 가까운 저레벨 사냥터인 건 맞았지만, 도적은커녕 인간과 관련된 몬스터가 나타난 적도 전혀 없었다.

“놈들의 위치는 우리가 직접 확인했으니 확실해. 다만 녀석들이 숨은 곳은 투명한 결계가 가로막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일 뿐이지.”

휘익!

세베라가 품속에서 붉은 부적을 꺼내 에일과 알리사에게 각각 하나씩 던졌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동굴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결계를 볼 수 있을 거다. 물론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

‘인던……?’

놀란 에일과 알리사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인스턴스 던전.

한번 입장하면 바깥으로부터의 개입이 완전히 차단되는 던전이자, 각각의 파티가 입장할 때마다 서로 위치를 공유하지 않고, 그 파티만의 공간이 별개로 생성되는 던전을 뜻한다.

보통 워로드에서 투명한 결계 안에 위치해 있는 던전이라면 십중팔구 ‘인던’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반복 퀘스트가 아님에도 입장하는 데 별도의 아이템이 필요한 걸 보니, 오직 이번 퀘스트를 위해 마련되어 관련자만 입장이 가능한 특수 인던이 확실했다.

실제로 다른 유저들에게 하드록 동굴 내에서 인던 같은 게 발견됐다는 소리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한번 클리어하면 영구히 사라지는 방식의 인스턴스 던전이었는데, 당연히 보상은 이쪽이 훨씬 더 좋았다.

‘대박이다……!’

에일과 알리사 둘 다 본능적으로 눈치 챘다.

지금 그들이 마주한 퀘스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보통의 건수가 아니었다.

괜찮은 퀘스트의 냄새가 난다고 이미 생각이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건 그들의 예상을 가뿐히 넘어섰다.

“결계 안에 도적단이 자리 잡고 있을 거다. 놈들의 두목이자 그 편지의 주인인 ‘카사노’라는 녀석을 죽이면 돼. 가는 길에 조직원들을 몰살시키던지, 잠입해서 암살하던지 하는 건 상관없으니 취향껏 처리하고. 어차피 목격자만 없으면 되니까.”

“잠깐, 블러디 핸즈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유는 아직 못 들었는데.”

에일이 나서 물었다.

아무리 대어처럼 보이는 퀘스트라 해도 무턱대고 수락할 수는 없었다.

혹시나 자신의 힘으로 감당 못 할 퀘스트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무리하다가 온갖 불이익과 손해를 떠안는 것보다는 나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적을 상대하는지, 이 일과 연관된 세력은 있는지, 보상은 어느 정도인지.

기본적인 정보는 알아야 했다.

하지만 세베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알 거 없고. 우리가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해내면 돼. 일단 가서 제거해. 우리 쪽에서 의뢰했다는 것에 대해선 절대 언급하지 말고.”

“터무니없는 소리야. 그러면 이게 무슨 일인 줄 알고…….”

“반대로, 네가 어떤 녀석인 줄 알고 말해 주겠어?”

세베라가 에일의 말을 날카롭게 끊으며 말했다.

“만약 네가 이번 일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뭔가를 듣는다면, 절대로 중간에 발을 뺄 수가 없거든. 하지만 우리 사이에 그 정도 신뢰는 없단 말이지…….”

그녀는 금화 여섯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탁 올려놓았다.

“이건…….”

“우선 이건 의뢰 선금. 보상은 당연히 더 크고.”

에일과 알리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금화 여섯 개라면 무려 6골드, 둘이서 나눈다고 해도 3골드였다.

의뢰를 마친 뒤 받는 보상이 1골드 대라도 지금 레벨 근처에서는 엄청 커다란 건수였는데, 단순히 선금이 3골드라면 더는 말이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더 이상의 흥정은 없어. 할 거야, 말거야?”

세베라가 재촉하듯 말했다.

당연하게도 워로드 전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블러디 핸즈를 상대로 먹튀를 감행한다면, 그들로서는 감당 못 할 후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즉, 이 금화들을 손바닥 위에 올리는 그 순간부터는 무조건 이 퀘스트를 완수해 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알리사는 에일의 뜻에 맡긴다는 듯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굳이 강요할 생각 같은 건 없어. 우리 대신 라트마를 처리해 줬길래 너희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 것뿐이야. 거절한다고 해도 다른 녀석한테 맡기면 그만이지. 물론 의뢰에 관해선 입단속을 제대로 해야겠지만 말이야.”

세베라가 입술을 할짝대며 허리춤에 꽂혀 있는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쓸데없이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

대부분 이런 유의 네임드 NPC들은 유저들의 평균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레벨이 함께 올라가는 레벨 스케일링 시스템이 적용된다.

그리고 거대 조직인 블러디 핸즈에서도 손꼽히는 지부장인 세베라의 레벨은 지금쯤 185를 넘어섰을 것이다.

어지간한 유저는 상대도 되지 않는 게 당연했고, 거의 준랭커급인 유저가 오더라도 확실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이 자리에서 단검을 뽑는다면 어떻게 해 볼 여지도 없이 사망이었다.

‘위험성은 분명히 있다.’

에일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퀘스트를 맡긴 자세한 이유도 모르고, 블러디 핸즈에게 이 일을 맡긴 진짜 의뢰자의 정체도 모른다.

거기다 세베라의 말 하나하나가 여러모로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깔끔하게 포기해 버리기에는, 이 정도 기회가 흔치 않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워로드에는 언제나 리스크에 걸맞은 리턴이 따른다.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을 택하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택하든.

천천히 가다 뒤쳐지든, 서두르다 엎어지든.

실패와 성공은 모두 본인의 선택과 역량에 달린 일이었다.

안전한 길과 위험한 길.

“…받도록 하지.”

에일의 선택은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