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퀸즈 블론드 (6)
“아, 여기예요!”
문을 열고 들어선 에일을 발견한 알리사가 외쳤다.
왁자지껄한 식당의 2층에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채 난간 쪽에 기대어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에일도 발견했고,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갔다.
“죄송합니다. 거래소에서 소매치기를 당해서요.”
“…정말요? 어떻게 되셨어요?”
“물론 금방 잡았죠. 덕분에 부수입도 있었고.”
알리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에일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식당의 종업원이 미리 알리사가 주문해 놓았던 음식들을 딱 맞춰 가져왔다.
에일이 소매치기범을 잡은 뒤, 메시지를 통해 언제까지 가겠다고 미리 말해 둔 덕이었다.
스튜와 해물 파스타, 안심 스테이크, 새고기찜, 버터스카치 시나몬 파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둘에게는 양이 조금 많아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포만도가 바닥을 치고 있던 데다가 워로드에서 설정해 둔 플레이어의 식사량은 굉장히 많은 편이라, 이 정도 양쯤이야 남녀 두 명이면 충분했다.
우선 비주얼은 말도 안 될 만큼 완벽했기에 에일은 조심스레 자신의 앞에 있던 스테이크를 잘라 한입 베어 물었다.
‘미친…….’
역시나 요리 랭크가 0에 불과한 자신이 구운 토끼 고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맛있었다.
단순히 포만감 수치를 올려주는 건 대충 구운 빵이든 근사한 요리든 비슷함에도, 괜히 대부분의 유저들이 돈을 주고 워로드의 식당가를 찾는 게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적당한 가격대의 이곳 음식이 이 정도라면, 고급 식당이나 요리 상위 랭크 유저가 완성한 음식은 어떨지 무서워질 정도였다.
현실에 있는 기본 식재들은 대부분 워로드에도 존재하는 데다가, 워로드에만 존재하는 온갖 재료와 향신료들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맛까지 구현이 가능했으니 더욱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맛을 음미하던 에일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퀘스트 아이템 ‘카사노의 밀봉된 편지’를 꺼내 들었다.
시스템 메시지엔 도시의 위치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만큼, 이 아이템을 단서로 뭔가를 찾아내야 했다.
편지를 테이블 한쪽에 내려놓은 에일은 함께 나온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퀸즈 블론드까지 오는 동안 혹시나 해서 이 녀석에 대해 더 찾아봤는데, 이런 아이템을 얻은 건 저희가 최초입니다. 어디에도 정보가 없었어요.”
거의 모든 정보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카사노의 밀봉된 편지’라는 아이템에 대해서는 코멘트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지금껏 얻었던 유저 몇 명이 입을 다물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그 역시 굉장히 희귀한 확률의 아이템이라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그냥 전자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워로드에선 굳이 플레이어들이 직접 개입을 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사건이 벌어졌고, 그에 따라 새로운 스토리와 아이템, 퀘스트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건 몬스터를 사냥해서 나오는 퀘스트 아이템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절대 나타나지 않던 아이템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똑같은 몬스터를 잡더라도 얼마든지 새롭게 나타날 수 있었다.
“카사노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확실히 유명한 녀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알리사의 질문에 에일은 고개를 저었다.
유료 정보 공유 사이트에서 가장 방대하다던 워로드 NPC 백과까지 뒤졌는데 카사노에 대해선 찾을 수 없었다.
여태 드러난 적 없는 NPC일 확률이 높았고, 설령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해도 존재감 없는 마을 주민 1 정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흐음… 그렇다면 아무래도 여기에 단서가 있는 거 같은데요.”
알리사가 손가락을 들어 편지 겉면에 찍힌 인장을 가리켰다.
다시 맥주를 들이켜고 있던 에일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에일 역시 이 편지에 들어가 있는 유일한 단서는 이 인장뿐이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편지 바깥엔 밀봉 처리를 위해 붉은색 인장이 찍혀 있었는데, 굉장히 독특한 문양이었다.
대부분의 상징이나 문양들을 알고 있는 에일도 모르는 모양새의 인장인 걸 보아, 흔한 녀석은 아니었다.
“확실히 이걸 위주로 알아봐야 할 것 같긴 하죠.”
에일은 요리 한 점을 입에 집어넣으며, 인장의 모양을 세밀하게 종이에 옮겨 그렸다.
이 인장과 카사노라는 이름을 이용해, 도시 내 NPC들에게서 수소문해 가며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이번 퀘스트 꽤나 기대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조금 시간은 잡아먹을 것 같긴 하지만 조짐은 나쁘지 않네요.”
“그렇죠?”
퀘스트 아이템과 NPC의 이름, 그리고 독특한 모양새의 인장까지.
무엇 하나 다른 플레이어들에겐 발견된 적이 없는 최초의 단서들뿐이었기에, 최소한 이번 퀘스트가 흔해 빠진 종류의 것은 아니라는 걸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게 음식 그릇을 하나둘 비워가던 중, 무언가 생각난 듯 알리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 아이템을 얻은 출처가 트래구울이라 하셨죠?”
“예, 맞습니다.”
에일이 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 편지는 금지된 폐허에서 잡았던 트래구울이 떨어뜨린 퀘스트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트래구울은 네크로맨서 라트마가 죽고 난 뒤의 패턴으로 변한 녀석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쪽에서도 뭔가 힌트가 나올 텐데…….”
알리사가 면발을 씹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에일도 잠시 트래구울과 라트마에 대해서 떠올렸고, 놈에 대한 스토리가 떠올랐다.
“알리사 님, 혹시 라트마의 스토리에 대해서 아세요?”
“네, 알죠.”
워로드의 출시 후 계속해서 금지된 폐허 밑을 지키고 있는 보스, 라트마에 대한 스토리라면 주위 지역의 유저들에겐 유명한 편이었다.
한때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던 라트마는 어린 나이에 엘리트 집단인 왕정 마법사가 될 수 있었고, 수련과 연구, 업무에서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자만심에 빠진 라트마는 손을 대서는 안 될 곳에 손을 대었다.
바로 금지된 마법.
지하에 틀어박혀 금지된 마법을 익히고 있는 흑마법사 집단을 단신으로 토벌한 라트마는 그들이 애지중지하던 금서를 발견하였고,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책장을 펼쳐보았다.
지극히 마법사다운 호기심일 뿐이었다.
그러나 무언가에 홀린 듯 라트마는 금지된 마법서에 매료되어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버렸고, 책을 덮는 순간 자신의 행동에 겁을 먹고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이론과 실제 활용까지 완벽히 익혀 버린 라트마에게서 생겨난 검은 마력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알아챈 왕가에서는 엄격히 금지된 마법에 손을 댄 라트마의 모든 마력을 제거하고 추방시켰다.
그로 인해 기존에 쌓아 올렸던 마력을 전부 잃고, 다시 처음부터 쌓을 수도 없게 된 라트마는 마법사로서의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금서에 손을 댔을 때 생겨났던 미약한 검은 마력뿐.
한순간에 몰락한 후 후회와 증오에 사로잡힌 라트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든, 그러나 유일하게 남은 금지된 마법에 손을 댔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 탓에 단 한 번 읽었던 금지된 마법은 모두 습득한 뒤였다.
비록 마력량은 더 이상 늘리지 못했지만 미약하게 남아 있는 검은 마력으로 시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자신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금지된 마법을 통해 라트마는 외곽의 한 마을을 오염시켜 시체들을 양산했고, 그들을 시전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좀비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라트마는 만들어 낸 좀비들을 이용해 언젠가 자신을 내친 왕가를 향해 복수할 생각이었고, 자신의 마을에 발을 들이는 모험가들을 기꺼이 환영하며 새로운 꼭두각시로 만든다…….
라는 스토리가 라트마, 그리고 사냥터 금지된 폐허의 정체였다.
“…그렇다면 혹시 왕가와 관련이 있는 걸까요.”
“에이, 설마요.”
알리사의 말에 에일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만한 대형 건수가 이렇게 쉽게 손에 들어왔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언제나 관련 있는 아이템만을 드랍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에일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뒷골목 쪽에서부터 찾아봐야겠습니다.”
“확실히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이 편지의 발신자인 카사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네크로맨서 라트마에게 보낸 편지라면 최소한 떳떳하게 양지에서 언급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계획은 대강 정리되었고, 식사를 마친 에일과 알리사는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식당 주인은 가게의 입구 쪽에서 계산대 앞에 서 있었는데, 오늘 벌어들인 돈을 세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먼저 다가간 에일은 목재로 된 계산대 위에 팔을 올리고 주인에게 말을 걸었는데, 갑자기 에일의 소매에서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그건……?”
퀘스트 아이템이었던 카사노의 편지가 떨어진 것이었고, 에일이 다시 주워 담기도 전에 식당 주인이 편지를 보고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에일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꺼낸 적도 없는데…….’
분명 테이블에서 일어날 때, 에일은 편지를 다시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뭔가를 넣어 둔 적도 없는 소매에서 아이템이 저절로 흘러내렸고, 주인의 반응도 뭔가를 알고 있는 듯이 수상쩍었다.
‘설마…….’
그 틈에 재빨리 표정 관리를 한 식당 주인은 떨어진 편지를 다시 에일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둘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따라와라.”
무뚝뚝하게 말한 식당 주인은 그들이 뭔가를 물어볼 틈도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얼을 타고 있을 만한 상황.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거였군…….’
알리사가 옆에서 시선을 보내자 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 이벤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