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20화 (20/227)

20화 퀸즈 블론드 (3)

‘이런… 실수했다.’

주인의 반응을 본 에일이 난처하게 아이템들을 내려다봤다.

워로드의 잡화점들은 대개 아무 물건이나 돈이 되어 보이면 무엇이든 사들였지만, 거의 사람과 다를 게 없는 철저한 인공지능들이 NPC로서 운영을 하는 탓에, 주인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다.

특히 이런 유의 아이템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데다가 혐오하는 성향까지 가진 NPC에게 시체 조각과 썩어가는 살점을 보여 줬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아무리 에일이라도 상점 NPC들의 성향까지 하나하나 기억해 두는 건 무리였다.

“죄송합니다. 물건을 잘못 꺼냈네요.”

재빨리 사과한 에일은 흉물스러운 아이템들을 다시 인벤토리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는 필요 없는 장비와 평범한 축에 속하는 잡템들을 모두 꺼내 그에게 넘겼고, 적당한 값을 받아 냈다.

비록 한 번에 처분은 못했지만 유저들에게서 빼앗은 장비들의 수가 제법 많아 꽤 돈이 되었고, 여기서 처분하지 못한 물건들은 뒷골목 쪽에 가서 마저 해결할 생각이었다.

우선 바깥으로 나간 에일은 도시 내의 감정소로 향했고, 라트마의 석실에서 얻은 골동품들의 감정을 의뢰했다.

대부분의 아이템들은 인벤토리 내에서 플레이어가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거의 다 알 수 있었지만, 열람할 수 없는 아이템들도 존재했다.

굉장히 만들어진 지 오래됐거나, 마법의 힘으로 감추어져 있는 것 혹은 단순히 일반인의 눈으로는 단번에 알아볼 수 없는 종류의 물건일 경우.

그런 물건들은 획득과는 별개로 감정 절차가 필요해, 감정소에 들러 약간의 값을 지불하고 정체를 파악해야 했다.

“에… 아쉽게도 크게 뛰어난 물건은 없군요. 물론 여기 있는 고서는 어느 정도 값을 치러 드릴 수 있는 물건입니다.”

물건을 살핀 감정사가 기다리고 있던 에일에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책장에 꽂혀 있던 고서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쓸모없는 잡동사니들이었고, 물건 하나당 들어가는 감정 비용을 생각하면 약간의 손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거나 후회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원래 이런 골동품들의 특성상 언제 대박이 터질지 모르는 만큼, 이 조그만 손해가 무서워 아이템의 감정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유 금액 - 1골드 43실링 88크론]

‘돈은 어느 정도 모였고… 쓸 만한 장비가 있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보유 금액을 확인한 에일은 자신이 구매할 장비들의 견적을 맞춰 가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아직 세 가지 기초 스킬도 다 배우지 못한 시점인데도 돈은 어느새 1골드를 넘어섰고, 그의 기준에서 만족할 만한 장비도 나름대로 노려볼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자 에일은 감정소의 바로 옆에 위치한 경매장부터 매물이 없는지 확인할 겸 향했다.

모든 도시의 중심부 쪽에 필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아이템 거래소’는 워로드 내에 등록된 모든 물품들이 연동되어 있어 언제나 유저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퀸즈 블론드답게 수많은 사람이 득실거렸고, 각자 시스템을 이용해 물건을 구경하거나 치열하게 입찰을 하고, 직거래를 위해 사람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퀸즈 블론드’의 아이템 거래소에 진입하셨습니다.]

- 거래소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 현재 퀸즈 블론드 도시는 ‘나이트메어’ 길드의 관할에 있습니다.

- 일반 수수료 10%와 길드 세율 5%가 부과됩니다.

거래소의 범위 안에 들어선 에일의 눈앞에도 어김없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워로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거래소’, 혹은 ‘경매장’이라는 유저들이 부르는 명칭만 듣고서 보따리를 펴고 장사를 하거나 팻말을 들며 입찰을 하는 광경을 상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워로드의 거래소는 해당 도시뿐 아니라 워로드 내 모든 지역에서 등록된 아이템들이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거래가 이루어졌으니,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가 없었다.

때문에 수수료를 피하기 위한 직거래를 제외하고서, 아이템 거래소 내의 모든 거래는 각자의 앞에 떠오르는 전용 시스템 화면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게 눈앞에 주르륵 늘어선 시세 정보와 아이템 목록을 확인한 에일은 본격적으로 물건을 뒤지기 전에 먼저 영지 세율을 살펴봤다.

‘세율은… 정석대로 15%군.’

거래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에는 수수료가 붙었고, 판매자가 받을 금액에서 일정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그중 거래액의 10%를 징수하는 ‘일반 수수료’ 항목은 어느 영지를 가나 같은 비율로 매겨졌다.

이러한 수수료 정책은 게임 내 골드 가치에 인플레이션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방책 중 하나로 그만한 액수를 게임사에서 회수해, 시중에 풀리는 골드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유저들에게서 골드를 회수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레벨업을 하고 점점 더 많은 골드를 몬스터에게서 수급하는 MMORPG의 특성상 화폐가 기존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로 ‘길드 세율’이라는 것도 존재했다.

도시, 성, 마을, 요새, 관문 등등.

종류에 상관없이 거점을 차지한 길드들이 어마어마한 재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이유로, 해당 영지의 아이템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길드에서 가져가는 것이었다.

아무리 최대 한 자릿수의 비율이라도 워로드의 유저 숫자를 생각해 보면 엄청난 수치였다.

영지 내에서 등록된 아이템의 거래에 한정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긴 했어도, 그만한 유저들이 쉴 새 없이 아이템을 등록하여 팔아치우는 양을 생각하면 액수의 일정 부분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때문에 아무리 외진 곳의 조그만 거점 하나라도, 그것을 보유한 길드와 가지고 있지 않는 길드 사이에는 막대한 규모의 자금 격차가 있었고, 영지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혈투가 벌어졌다.

그로 인해 보유한 거점을 다른 길드로부터 지켜 내느라 오히려 재정이 파산해 버리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워로드에서 영지라는 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모든 이가 욕심낼 만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매겨지는 길드 세율에 관련해서는 길드마다 다르게 설정해 놓을 수 있었지만, 거의 모든 영지는 보편적으로 5%에 맞춰 세율을 설정해 놓았다.

자기들의 거점에서 거래소를 더 이용하도록 길드 세율을 낮춘 길드도 초창기 때는 몇몇 존재했지만, 그들 모두 덕분에 거래량이 줄어든 주변의 거대 길드들에게 가차 없이 짓밟혀 거점 자체를 잃어버리는 결말을 맞았다.

그 탓에 간혹 기준 세율보다 높게 책정하는 길드가 있다면 모를까, 그보다 낮춰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영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좀 비싸긴 하지만 이것만큼 편한 게 없으니…….’

오롯이 수익을 모두 가져가는 직거래에 비해 거래 시 수수료가 15퍼센트나 되는 건 꽤나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직거래로 일일이 거래 대상을 구해 파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데다가, 워로드에서는 귀환석이나 도시 간 텔레포트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아, 멀리 떨어져 있는 유저와 원활히 거래를 진행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우편을 보낼 수야 있긴 했지만 대량의 골드를 첨부했다가는 거래소처럼 수수료가 붙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탓에 거의 모든 유저들이 세율을 감수하고서 대부분의 거래에 거래소를 이용하는 편이었다.

[아이템, ‘그란제브’가 68개 등록되었습니다.]

에일 역시 거래소에 물건을 등록했다.

동굴을 통해 오면서 획득했던 약초, 그란제브.

생산직 유저들에게서 광범위하게 많이 쓰여, 물량도 부족하고 꽤나 값이 나가는 물건이라, 일반 상인들에게 파는 것보단 이렇게 경매장에 올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인기가 많은 아이템이니 팔리지 않는 일은 없었고, 이번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적당한 가격에 팔려 있을 것이다.

‘카테고리 무기, 키워드 장검, 등급은 상급 이상, 제한 레벨 13레벨 이하와 10레벨 이상.’

에일이 바쁘게 손을 놀리며 검색 조건을 설정했다.

그러자 곧 엄청난 수의 아이템 목록이 그의 앞에 주르륵 나열되었다.

[첫걸음 장검(상급)]

[배롤 장검(상급)]

[붉은 장식의 장검(희귀)]

[파바르 장검(상급)]

에일은 워로드의 거래소를 처음 이용하는 유저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화면을 읽어 내려갔다.

그 많은 항목들의 세부 능력치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슥슥 스크롤이 내려가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그도 그럴게 에일은 한창 온라인 게임을 즐길 당시에도 물품 사재기와 경매장 저가 낙찰 경쟁으로 돈을 꽤나 만져 본 사람이었다.

당연히 워로드의 훌륭한 인터페이스 화면에서야 거의 날아다닐 수 있을 만한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이거다!’

쭉쭉 내려가던 에일의 화면이 일순간 멈췄고, 그의 손은 한 아이템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프니르 장검]

- 등급: 상급

- 종류: 장검

- 제한: 레벨 13 이상

- 물리 공격력 15

- 힘 +3, 민첩 +1

[아이템, ‘이프니르 장검’을 구매하였습니다.]

[41실링이 소모되었습니다.]

에일은 판매 유저가 설정해 놓은 즉시구매가를 곧바로 지불하고 아이템을 받아 냈다.

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매하려 한다면 입찰 경쟁도 가능했지만, 아직 8시간이나 남은 마감 시간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거기다 매겨진 가격대도 나름 적당했고, 아이템의 스펙도 상급 장비치고는 눈에 띄게 좋았다.

물론 여기서 더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과 한 단계의 등급 차이임에도 희귀 아이템은 너무 비싸서 손도 못 댈 정도였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지.’

아직 여유 자금도 넉넉하게 있었고,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도 않고 쓸 만한 무기를 얻어 냈다.

에일은 인벤토리에서 새로 얻은 검을 기존에 장착하고 있던 무기와 교체한후 밖으로 꺼내들어 보았다.

얇고 기다란 검신의 장검은 그의 취향에 딱 맞는 무기였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칼집에 꽂아 넣었다.

방어구와 장신구, 무기와 보조 무기까지.

에일의 장비도 이제 꽤나 봐줄 만한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뒤에서 급하게 달려오던 사람이 가만히 서 있던 에일과 크게 부딪혔다.

우당탕 넘어진 둘은 몸이 꼬여 한데 넘어졌고, 에일은 자신 위에 널브러진 여자를 옆으로 밀어냈다.

“갑자기 무슨…….”

“으아, 죄… 죄송합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일어난 여자가 재빨리 사과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뭔가 급한 일이 있는지 곧바로 일어나 쌩하고 그를 지나갔다.

여기서 대부분의 평범한 유저라면 너그러이 그녀를 용서하고 지나가거나, 짜증스러운 얼굴로 툴툴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에일은 달랐다.

워로드가 돌아가는 판을 이미 훤히 알고 있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눈치가 빠른 에일은 거의 본능 수준으로 쌔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재빨리 보유 자금을 확인하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보유 금액 - 71실링 01크론]

“이런 미친 도둑이!”

에일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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