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이단심판관-16화 (16/227)

16화 사도 (3)

“이거 어쩌지…….”

바위 뒤에 숨은 에일이 중얼거렸다.

화살을 피해 가며 궁수가 있을 건물로 조금씩 다가가고는 있었다.

하지만 트래구울이 난동을 피우며 처음 건물과는 거리가 꽤나 벌어졌고, 근접 계열인 그에게 지형상 너무 불리했다.

이 거리를 열심히 달려간다 해도 중간중간 날아오는 화살을 계속해서 피하느라, 그의 체력과 집중력이 먼저 떨어져 당할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무사히 도착한다 해도 다른 유저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면, 체력이 간당간당한 에일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히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도주하는 편이 안전한 선택.

하지만 그는 녀석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이것들이 벌써부터 나쁜 짓만 배워 가지고는…….”

에일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멋모르는 저레벨 막피꾼들에게 함부로 PK를 걸었다간 어떻게 되는지 참교육을 시켜 줘야 했다.

그것이 애먼 2차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을 막는 길이기에, 뒤통수를 친 녀석들을 외면하고 떠날 수 없는 이유였다.

물론 그것은 에일의 자기합리화일 뿐.

사실은 대뜸 자신의 어깨에 화살을 박아 넣은 녀석을 곤죽이 될 때까지 패 주고 싶을 뿐이었다.

거기다 이대로 도망을 간다면 힘들게 잡은 보스 몬스터의 부산물을 놈들에게 넘겨야 했다.

에일은 트래구울을 혼자서 잡아내며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상황.

설마 건물에 있는 모두가 동조해서 자신을 공격하지는 않을 테고, 남은 몇몇 정도야 실력 차이로 어떻게든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장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화살이 안 날아오지……?’

에일은 궁수 녀석이 뻔하디 뻔한 시간차 공격을 하려는 줄 알고서, 계속 건물 쪽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기엔 너무 공격을 안 해 왔다.

고작 페이크를 건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시간.

미심쩍게 생각한 에일은 힘껏 정면을 향해 쭉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설마 그 상황에 도망갔을 리는 없고…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군.’

에일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걸렸다.

* * *

“죽어!”

흉흉한 기세의 남자가 단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알리사의 목으로 향하던 그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아주 약간의 몸놀림만으로 가볍게 공격을 피한 알리사는 들고 있던 기다란 스태프로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크허억!”

벌써 머리만 몇 대를 연거푸 맞아 댄 남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물러섰다.

에일에게 화살을 쏘았던 궁수는 보조 무기인 단검을 뽑아 대항했지만, 아무리 애를 쓰며 공격하려 해도 무기가 닿지 않았다.

“젠장 어떻게……!”

굴욕적이었다.

어디가서 게임 못한다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그였는데, 레벨이나 장비도 별반 차이 없는 상대에게 처참히 농락당하고 있었다.

거기에 단지 그뿐이라면 실력 차이를 깔끔히 인정하고 말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상대가 변변찮은 공격기 하나 없는 힐러라는 점이었다.

치유사를 상대로 펼치고 있는 졸전은 그에게 다가오는 정신적인 타격을 배로 만들었다.

아무리 궁수가 근접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아니라지만, 파티에 껴서 서포트나 해야 할 치유사에게 일대일 결투에서 밀리고 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유저들까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와, 이거 진짜냐? 궁수가 치유사한테 얻어맞고 있는 건 난생 처음 보네.”

“영상 하나 찍어서 올리면 돈 좀 될 것 같지 않아?”

“입좀 닥……!”

빠악!

한눈을 판 사이에 알리사의 스태프가 다시 한 번 날아들었고, 궁수는 뒤로 넘어가 우당탕 바닥에 쓰러졌다.

미칠 듯이 몰려드는 굴욕감은 둘째 치고, 꽉 차 있던 체력이 어느새 40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힐러한테 지팡이로 얻어맞아 죽게 생기자, 마음이 급해진 남자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낸 뒤, 허겁지겁 마시려 했다.

물론 뻔히 근접한 상태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상대가 그걸 보고 있을 리 없었다.

강하게 휘둘러진 스태프가 남자의 손을 후려쳤고, 쥐고 있던 포션병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크으윽……. 너, 정체가 뭐야? 아까 그 자식하고 같은 파티냐?”

“아니요. 오늘 처음 봤는데요.”

“그런데 왜 방해질이야! 아이템도 준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유 없는 PK는 좀…….”

“이이익……! 그냥 닥쳐!”

단검을 쥔 남자가 달려들었다.

계속 대화를 하다간 답답함에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아 죽든 살든 결판을 보려 했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 공격도 빈 공간만을 찾아갔다.

휘릭, 빠악!

물 흐르듯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뒤통수를 후려친 알리사의 스태프에 궁수는 관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쿠웅!

건물에서 떨어져 내려 바닥으로 추락한 궁수는 그대로 즉사했고, 페널티와 함께 강제 로그아웃되었다.

“이건 무슨…….”

그들이 싸우고 있는 사이, 건물에 바짝 접근했던 에일이 남자의 시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날아오던 화살이 멎었길래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자신에게 화살을 쏘던 궁수가 시체가 되어 코앞에서 떨어져 내릴 줄은 몰랐다.

“설마 유저들이 그렇게 양심적일 리가 없는데…….”

위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진 에일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지체하지 않고 유저들 모인 건물 위로 찾아갔다

낡은 건물의 옥상엔 쭈뼛거리고 있는 여섯 명의 유저,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왠지 묘한 분위기에 어색함이 느껴지는 공기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먼저 알리사에게 다가가 상황을 물은 에일은 자세한 상황을 전해 듣고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설마 입으로 만류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나서 PK범을 죽여 놓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거기다 다른 직업도 아닌 힐러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정리할 거라고는, 이곳에 있었던 이들조차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씩 이런 상성을 씹어먹는 사건들이 터지고는 했는데, 그건 보통 유리한 이점을 가졌던 상대가 엄청난 초보이거나, 눈앞의 여자가 정말 뛰어난 플레이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전자일지 후자일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 그러면 그때 치유 스킬을 넣어 주신 분도 알리사 님이었나요? 감사합니다. 정말 위험했는데 덕분에 잡을 수 있었네요.”

“아니에요, 저는 마지막에 와서 힐 한 번 한 게 전부인데요. 멀리서 봤는데도 에일 님이 솔로 레이드 하시는 모습 정말 대단했어요.”

알리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단순히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감명을 받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때, 어색하게 자리 옆에 서 있던 다른 유저들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럼 저희는 마저 사냥하러 가 보겠습니다. 처음에 비매너라고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막피꾼한테 당하지 않고 멀쩡하셔서 다행이네요.”

“그러게나 말이야.”

피해자인 에일이 알리사에게서 모든 사실을 들었음에도 다른 유저들은 방관하려고 했던 건 입을 싹 닫고, 뻔뻔한 얼굴로 나왔다.

직접 PK를 거든 건 아니니 괜찮다는 건가?

저 중 몇 명은 아까부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손도 움찔거리는 걸 보아, 강하게 따지고 들면 아예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상대는 무려 6명.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유저가 그만한 숫자였으니, 에일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지금같이 한창 성장해 나가야 할 초반 단계에는 쓸데없는 마찰은 피하는 게 좋다.

저 녀석들 뒤로 생각 외의 인맥이나 길드가 있을지도 모르고, 제대로 앙심을 품으면 암살자들을 고용할 수도 있었다.

이제 레벨 15에 접어든 그들에게 자금 여유는 없겠지만, 암살 의뢰를 위해 현질까지 하는 경우는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쳐났다.

현실 자본과 워로드 게임 머니의 교환엔 진입장벽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현질은 전업이나 일반 게이머 할 것 없이 흔한 일상이었으니까.

그런 요소가 워로드의 시장이 이만큼 덩치를 불릴 수 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뭐 굳이 마찰을 빚어서 좋을 건 없으니… 이대로 좋게좋게 넘어가는 게…….’

에일이 한발 물러서려는 찰나, 그의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빛의 심판자, 루’가 무뢰배들에게 강한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돌발 퀘스트를 부여받았습니다!]

[여섯 명의 유저 모두를 죽이십시오(0/6)]

[성공 시 보상: 교단 공헌도 +300, 신앙심 스탯 +2.2]

치잉!

유저들의 머리 위에 섬뜩한 이단의 낙인이 찍혔다.

감히 자신의 사도인 에일을 상대로 시비를 건 게 여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사고를 치고 나서의 태도도 거기에 가산점을 줬을 것 같았고.

“…어쩔 수 없지.”

피식 웃은 에일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알리사 님, 혹시 지금 회복 가능할까요?”

“아… 네, 네. 물론이죠.”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태프를 들어 에일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 주었다.

그것도 하나는 즉발성 치유 마법으로 체력이 단번에 차올랐고, 나머지 덜 채워진 부분은 곧바로 걸린 지속성 치유 마법으로 천천히 체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는데 이중으로 치유를 걸어 준 데다가,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뒤로 슬금슬금 빠지는 걸을 보아, 초보자 레벨대의 유저답지 않게 눈치가 꽤나 빠르게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뭐… 뭐야?”

“지금 해보자는 거야?”

당황한 유저들이 무기를 우르르 꺼내들었다.

하지만 에일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 가볍게 무기를 쥐며 답했다.

“아무래도… 우리 여신님께서 사이다를 좋아하시는 모양이야.”

[이단과 마주했습니다!]

[패시브, ‘증오의 칼날’이 발동됩니다!]

[이단을 상대로 한 모든 데미지가 25% 증가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