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사도 (2)
[형벌 선고], [이단 지정].
에일이 이번에 새로 얻은 두 개의 액티브 스킬이다.
두 가지 모두 사도 전용 스킬로 상대를 직접 공격하는 류의 스킬은 아니었지만, 스킬창 설명을 읽어 보자 단순한 공격 스킬보다 오히려 훨씬 유용한 것들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당장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는 싶긴 했지만, 나중에 실전에서 제대로 써 보며 알아가면 됐고, 우선은 전리품부터 챙겨야 했다.
힘겹게 트래구울을 잡아 놓고서 너무 오래 방치해 두고 있었다.
-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력이 담긴 시체 덩어리(상급) x 14]
[통곡의 단검(희귀)]
[십자 펜던트(일반)]
[카사노의 밀봉된 편지(퀘스트)]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빛 스킬북]
[52실링 98크론]
주르륵 떠오른 아이템 항목들.
원래 팀원들끼리 잘 합의해 가며 분배해야 하는 양의 전리품이었지만, 혼자서 해치워 버린 에일은 혼자서 독차지할 수 있었다.
‘이거 너무 잘 나온 거 아냐……?’
예상을 뛰어넘는 보상에 에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단순히 나온 돈의 양도 상당한 데다가 희귀 등급의 무기까지 나타나 줬다.
희귀, 혹은 레어 등급을 남발하는 보통의 게임들과는 달리 워로드에서 희귀 등급이란 정말 희귀한 아이템임을 뜻했다.
평범한 취미 유저들에겐 상급 장비로 풀세트를 맞추는 것도 큰 과제였고, 희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보스를 잡는다고 무조건 스킬북을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번 녀석은 일반 스킬북보다 두 단계나 위인 붉은빛 스킬북이었다.
거기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것.
‘퀘스트 아이템……?’
카사노의 밀봉된 편지.
퀘스트 아이템이란 보통 아무렇게나 받을 수 없는 조건부 퀘스트를 시작하게 해 주는 아이템을 뜻했고, 수락하는 데 조건이 붙는 만큼 굉장히 유용한 퀘스트를 주는 경우가 왕왕 존재했다.
반면에 남들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데다가 퀘스트의 보상까지 좋지 않은 경우, 공간만 차지하는 잡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즉, 단순히 ‘퀘스트 아이템’이란 명칭만으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하지만 지금 얻은 ‘카사노의 밀봉된 편지’는 최소한 에일이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인 걸 보아, 아무데서나 굴러다니는 흔한 아이템은 절대 아니었다.
그동안 트래구울을 잡는다고 퀘스트 아이템을 드랍한다는 정보는 나온 적이 없었으니, 흔해빠진 반복 퀘스트를 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었다.
‘이런 건 거의 대박 아니면 쪽박인데…….’
별도의 등급이 표기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 당장 확인은 불가했고, 설명창에 퀸즈 블론드로 가라는 걸 보아 그쪽으로 향해서 정보를 모아 봐야 할 것 같았다.
퀸즈 블론드라면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지리적으로 용이한 데다 주변에 좋은 사냥터가 많아 유저들이 중간 지점으로 많이들 찾는 도시였다.
현재 에일의 레벨대에서도 찾을 수 있는 사냥터가 두세 곳 있었으니 그리로 향한다고 손해 볼 건 없었다.
‘일단은 이것부터…….’
[통곡의 단검]
- 등급: 희귀
- 종류: 단검
- 제한: 레벨 12 이상
- 물리 공격력 19
- 힘 +2, 민첩 +4
- 특수 효과 ‘저주’: 피격당한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며, 상처를 입힌 상대에게 받는 데미지를 5% 증가시킵니다.
에일은 새로 얻은 장비의 정보를 확인하자 내심 감탄했다.
누가 희귀 등급 아니랄까 봐 굉장히 좋은 스펙을 뽐내고 있었다.
일단 자체 공격력이 높은 것부터 합격이었는데, 거기에 6개의 추가 스탯과 근사한 특수 효과까지 달려 있었다.
물론 표기상으로 공격력 수치가 같더라도 대검이나 장검이 좀 더 강한 효과를 내는 건 당연했지만, 그런 것쯤은 무시해도 될 만큼 스펙 자체가 무시무시했기 때문에 자신이 얻은 게 아까울 정도였다.
단검에 어드밴티지가 달려 있는 도적 클래스도 아닌 데다가, 리치가 너무 짧아서 그의 취향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이만한 옵션의 무기를 쓰지도 않고 내다 팔기는 아까웠다.
‘장검도 새로 하나 구하고… 보조 무장으로 적당히 써먹어야겠어.’
워로드에서는 무기를 아무리 여러 개 들고 다닌다고 한들, 직접 손에 들고 사용하고 있는 주무장 중 하나의 능력치밖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워로드에서 보조 무장이라는 개념은 희박했고, 궁수가 근접 전투에 대비해 단검을 들고 있는 정도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의 전부였다.
물론 그럼에도 무기 두 개를 적절히 써먹을 방법이 있긴 했고, 난이도가 꽤 있는 방식이었지만 에일은 자신 있었다.
그렇게 장비의 확인이 끝나고 일반 장비인 펜던트까지 목에 걸고 나자, 이제 마지막으로 하이라이트를 남겨 두고 있었다.
낡아빠진 모습의 스킬북.
겉으로 보기엔 라트마에게서 얻은 것과 똑같아 보였지만 내용물은 그렇지 않았다.
“제발 좋은 거 한 번만 떠라…….”
에일이 긴장되는 듯 한차례 심호흡을 하고, 그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기초를 제한 첫 번째 스킬, 여기서 좋게 스타트를 끊고 시작하면 이득을 눈덩이처럼 쭉쭉 굴려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자 스킬북은 붉은빛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파아앗!
[역극(희귀)]
- 직업 제한: 근접 계열 클래스
- 순식간에 옆으로 돌아 적의 뒤를 잡습니다.
- 후방 이동 후, 속도가 일시적으로 15% 상승합니다.
‘아자!’
에일이 속으로 환호하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첫 번째로 얻는 스킬은 상급만 되도 대박이라고 하는데 결국 초대박을 내 버렸다.
트래구울을 잡기로 했을 때부터 기대는 했지만 정말 나타날 줄은 몰랐던 희귀 스킬이었기에 기쁨은 더했다.
거기다 역극이라면 그도 여러 차례 들어 봤던 스킬이었다.
순간이동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번에 상대의 뒤로 돌아 들어가 반격할 수 있게 만드는 스킬이니만큼, PVP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찰나긴 해도 뒤를 돌자마자 주어지는 가속 버프는 후속타를 넣기 더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에일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해체용 칼을 꺼내들었다.
이제 시체에서 부수입을 챙길 시간이었다.
일반 몬스터와 달리 이만한 보스 몬스터의 시체를 해체하면 쓸 만한 아이템이 추가로 나올 확률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평소에 몬스터 시체를 해체하지 않는 유저들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일반 몬스터도 알뜰하게 해체하는 에일에게 보스 시체의 처분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기분 좋게 칼을 내려찍으려는 바로 그 순간.
파악!
난데없이 날아온 화살이 에일의 어깨에 꽂혔다.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한차례 휘청인 에일의 체력이 주르륵 줄어들었다.
“이건…….”
웃음기가 서려 있던 에일의 눈이 단번에 날카롭게 변했다.
금지된 폐허는 몬스터라고는 좀비뿐인 단순한 사냥터였고, 화살을 쏠 만한 몬스터 따위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바로 유저.
투사체가 날아온 방향을 보아 유저들이 숨기 위해 모여 있던 폐건물 옥상 쪽에서 날아온 게 확실했고, 굳이 확인하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하하, 이 자식들이 미쳤구나.”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은 에일이 덥석 검을 움켜쥐었다.
* * *
피융!
활시위를 단단히 당긴 궁수의 손에서 화살이 멀리 뻗어져 나갔다.
그렇게 날아간 날선 화살은 보스를 잡아낸 남자에게 박혔다.
“어……?”
“이봐!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자 건물 위에 함께 있던 유저들이 덩달아 당황했고, 화살을 쏜 남자에게 시선이 모였다.
하지만 궁수는 진정하라는 듯 한 손을 올리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기다려 봐.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갑자기 나타난 보스몹 때문에 손해를 봤잖아? 한창 사냥을 해야 할 때에 원래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게 아니었다고.”
“그… 그래서?”
“굳이 거들 필요는 없으니까 입만 닫고 있어. 그러면 저 녀석이 독차지한 몫들을 나눠 줄게. 아직 보스 몬스터 시체도 남아 있으니 해체해서 나누면 되고, 떨어뜨릴 돈과 아이템도 꽤 될걸? 그리고 이 정도 PK는 워로드에서 흔하다고. 가만히 길 가던 유저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우리한테 피해 준 녀석인데.”
마치 PK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남자.
설득하는 중에도 그의 눈은 여전히 에일을 향해 있었고, 바쁘게 움직이는 손은 활시위에 화살을 먹이고 있었다.
곁에 있는 유저들은 솔깃한 제안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몫을 나눠 준다니.
솔직히 말해 필드 보스 몬스터에게서 얻을 아이템이 욕심나지 않을 이는 없었다.
피융!
두 번째 화살이 날아가고 그다음 화살이 날아갈 때쯤 되자,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유저들은 마음을 정했다.
이대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방관이었다.
“다들 잘 생각했어.”
아무런 대답도, 만류도 없자 궁수가 히죽 웃었다.
뒤에 일곱이나 되는 유저가 있음에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 상황에 약간의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자신감 있게 화살을 발사했다.
“에헤이, 잘도 피하네. 확실히 실력은 있는 놈인가.”
이번에도 화살이 빗나가자 궁수가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 초조함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은 엄폐물에 숨거나 바닥을 구르며 피하고는 있지만, 오래갈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한들 궁수의 널널한 안전거리와 지리적 이점, 게다가 상대는 보스전으로 인해 체력까지 대폭 떨어져 있으니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둘만의 전투 상황만 본다면 굉장히 훌륭한 판단이었다.
체력이 적은 근접 클래스를 상대로, 탁트인 시야에 거리까지 벌어져 있어 일방적인 사냥이 가능했으니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하나 있었다.
빠악!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다음 화살을 쏘려던 궁수는 충격에 비틀비틀 물러서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하얀 로브 차림에 지팡이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크으윽… 다 된 밥에 이건 또 무슨……!”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
알리사가 훈계하듯 말했다.
에일이 보스 몬스터 트래구울을 혼자서 완벽하게 잡아낸 이상, 더 이상 민폐라고 볼 수 없었고 당연히 이유 없는 PK는 안 된다고 여긴 그녀였다.
물론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궁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고, 그는 흉흉한 눈빛으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감히 치유사 주제에 설쳐? 너부터 먼저 죽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