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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4화 (14/227)

14화 사도

“미… 미친.”

“말도 안 돼…….”

유저들이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트래구울을 피해 건물 위에 숨어 있던 그들은 에일이 필드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잡아 버리는 모습을 보고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난데없는 폭발 아이템은 둘째 치더라도. 트래구울을 공략하면서 보인 움직임과 반응 속도는 평범한 유저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그 거센 보스 몬스터의 몸부림에도 끄떡없이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균형 감각도 그렇고, 고수들의 하이라이트 영상으로나 보던 움직임을 직접 보게 되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더군다나 남자는 방어구 대부분이 기본 초보자 세트에, 장비가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스펙보다 훨씬 강했다.

에일이 빛의 교단 소속이기 때문에 루에게 은총을 받는 사실을 알 수가 없는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예상도 제대로 못 하고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런 녀석이 왜 이런 곳에…….”

“잠깐… 그런데 아이템도 안 챙기고 가만히 멈춰 서서 저기서 뭐 하는 거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남자가 손가락으로 에일을 가리켰다.

신나서 소리라도 치거나 냉큼 아이템을 챙겨야 할 상황에 에일은 정말 정면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 *

[‘빛의 심판자, 루’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해당 신앙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사도 전용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광기 스탯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지금 에일의 눈앞에 떠 있는 문구였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상태창들에 어리둥절할 법도 하지만, 놀랍게도 에일은 이와 관련된 개념들을 이해했고,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사도란 무엇이며.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그리고 ‘루’의 요청을 듣는 대신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건 무엇인지.

유저들이 워로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 기본적인 조작법이나 스킬을 사용하는 감각 등을 시스템에서 자연스럽게 체화시켜 주듯이, 사도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모두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어느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린 에일은 먼저 얻었던 칭호를 적용시키고서 스테이터스창을 열어 보았다.

<유저 정보>

이름: 에일

칭호: 신성징벌자

세력: 빛의 교단

레벨: 13

직업: 이단심판관

주요 능력치

힘: 47(+12) 민첩: 33(+10) 체력: 40(+10) 마력: 20(+10) 신앙심: 12.2(+10) 광기: 11(+10)

패시브

[광적인 순교자(기초)], [증오의 칼날(기초)]

액티브

[형벌 선고(사도)], [이단 지정(사도)]

‘신성징벌자’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10, 이단 상대 데미지 +3%

신앙: 정의와 빛, 광기의 여신

직책: 루의 사도

여신의 총애: 51.86%

공헌도: 205 (누적205)

“허…….”

에일이 작게 감탄하며 눈을 비비적거렸다.

얼핏 보기엔 그저 레벨대에 비해 준수할 뿐, 특출할 건 없는 내용물의 스테이터스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본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장 낮은 입문 사제에 불과했던 그의 교단 내 직책은 어느새 ‘사도’가 되어 있었고, 광기 스탯 역시 밝은색으로 활성화되어 있었다.

직업별로 주어지는 5번째 전용 스탯과 달리, 6번째에 위치한 광기는 각각의 사도에게만 주어지는 전용 스탯이었다.

여신의 총애 수치에 따른 보너스와는 또 별개로 모든 전투 관련 능력치를 강화시켜 주는 강력한 보너스를 줬는데, 이단들을 해치우면 해치울수록 서서히 상승하는 스탯이었다.

본래 지금 시점에 얻을 수 있는 스탯이 아니었지만, 루의 선택을 직접 받은 에일의 경우는 완전히 예외였다.

‘사도라…….’

가만히 멈춰선 에일이 멍하니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봤다.

최대 스킬 수 한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도 전용 스킬에, 꾸준히 올리기만 한다면 모든 능력치를 증가시켜 주는 사도 전용 스탯까지.

그야말로 사기적인 혜택들이었고, 만약 이런 것들이 특별한 소수의 유저들을 위해서만 주어지는 시스템이라면 빼도 박도 못하게 게임 밸런스의 붕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몇몇 유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모든 유저를 위해 준비된 2차 컨텐츠였다.

다만 여태껏 사도가 된 유저를 한 명도 찾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시기의 문제.

지금 그가 부여받은 사도 시스템은 한참 뒤에나 얻을 수 있는 극후반 컨텐츠였다.

지금이야 워로드 내의 월드에서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적었지만, 500레벨대의 몬스터는 이전까지의 녀석들과 차원이 달랐다.

몬스터의 체력, 공격력, 속도, 더 들어가서는 패턴의 난이도까지.

전 단계에 비해 모든 면에서 스펙이 급격하게 올라갔고, 그동안의 유저들에겐 파티를 이루고도 잡몹 하나를 잡는 것도 굉장히 버거울 정도였다.

이와 같은 난이도의 급격한 상승은 똑같은 사냥과 스펙업만이 끊임없이 반복되다간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개발사에서 새로운 변수를 추가하는 요소를 넣어 둔 것이다.

물론 몬스터들이 강해지는 만큼, 유저들의 스펙도 한 단계 증가하는 시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에일이 얻은 사도 시스템이었다.

5번째에 위치한 직업 전용 스탯이 스킬의 효율성을 올려 주는 역할을 했다면, 사도가 되면서 얻는 사도 전용 스탯은 플레이어의 모든 능력치를 향상시켜 줬다.

500레벨부터는 경험치 요구량도 급증해 레벨업 속도가 전과 다르게 엄청나게 느려지기 때문에, 단순 레벨업으로 얻는 스탯 정도는 충분하지 않았고, 새롭게 스펙을 올릴 만한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물론 신앙을 가지지 않는 일반 유저들도 사도가 아닌 각성이라는 대체 시스템이 있었고, 레벨만 충분히 높인다면 아무 걱정 없이 얻을 수 있는 시스템 체계였다.

‘문제는 그걸 내가 벌써 받아 버렸다는 거지.’

에일의 레벨은 불과 13.

500레벨에 다다랐을 때 받아야 할 사도 시스템을 무려 487레벨이나 앞서 받아 버린 그였다.

6번째 스탯을 올리는 공통 조건 중 하나가 사냥 대상이 비슷한 레벨대의 몬스터여야만 한다는 걸 생각하면, 저레벨대의 에일은 나중에 남들이 고난도 몬스터를 잡아 가며 겨우겨우 올려야 할 스탯을 비교도 안 되게 손쉽게 올릴 수 있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500레벨부터 추가 스탯을 올리기 시작하는 남들에 비해, 에일은 훨씬 이른 시점부터 차근차근 올려 나갈 수 있으니, 그들과 비교도 안 될 수치를 쌓아 갈 수 있었다.

그때, 집중하던 에일의 눈앞에 루의 시스템 메시지가 번쩍 떠올랐다.

[‘빛의 심판자, 루’가 의기양양하게 당신을 바라봅니다.]

‘역시… 지켜보고 있었나.’

본래 워로드에 존재하는 일곱의 신격은 선두 플레이어의 레벨이 500레벨이 넘기 전까지는 반쯤 잠들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500레벨을 넘어 누군가가 첫 번째로 사도에 임명이 된 이후로 신격들이 모두 깨어나 세상의 주도권을 위해 싸운다는 게 바로 원래 정해진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들 중 유일하게 예정을 깨고 잠에서 일어난 신격, 빛의 여신인 루가 나타나자 상황은 바뀌었다.

분명 루는 깨어난 뒤 얻은 그녀의 힘을 한데 모아 자신을 사도로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했다.

그녀의 표현으로는 ‘신앙’.

아마 이쪽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영향력을 뜻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힘을 교단의 세력을 불린다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에일을 사도로 임명하는 데 올인했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가장 먼저 깨어난 신격으로서 얻은 이점을 모두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루의 행동.

하지만 그녀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었고, 에일은 루가 그 대가로 뭘 원하는지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분명 신앙을 모으라고 했었지…….’

에일의 추측으로 보아, 아마 워로드의 신격들은 자신의 신도 혹은 사도들이 활동함으로써 영향력을 얻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는 건 사도로 임명된 에일이 선교든, 이단 사냥이든,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활발히 활동만 해 준다면, 그가 따르는 빛의 신, 루 역시 지속적인 영향력을 수급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루의 목적은 그를 통해 얻은 영향력으로 추후 피할 수 없는 다른 신격들과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주도권을 쥐기 위함이었다.

“혹시 개발사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무효화하면 어떻게 하죠?”

생각을 모두 정리한 에일이 난데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누군가 본다면 이상한 시선을 보내겠지만, 일단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확실한 답변까지 돌아왔다.

[‘빛의 심판자, 루’가 메시지를 전해 옵니다.]

[그녀는 이번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서버 롤백을 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시스템 메시지가 돌아오자, 에일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서버 롤백.

게임 전체를 과거 시점으로 되돌리는 행위.

보통 게임에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결함이나 버그가 발견되었을 때 행하는 극단적인 조치였는데,

플레이어의 레벨과 아이템은 물론이고, 그동안 진행한 퀘스트, 격파한 보스 몬스터, 어렵게 세운 기록, 심지어 게임 내 이루어진 모든 거래에 대한 데이터까지도 정해진 시점 전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이런저런 보상을 줘 가며 유저들을 달래 봤자, 리스크가 워낙 큰지라 쉽게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처럼 신격 하나가 예정보다 일찍 깨어난 수준의 돌발 상황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 만큼, 그런 리스크도 감안하며 되돌릴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게임의 경우’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불가능한 소리였다.

워로드는 더 이상 평범한 게임의 범주를 까마득히 넘어선 지 오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자본이 오가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었고, 억이 넘는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시장을 며칠 전으로 되돌려 버린다면?

단순히 재앙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만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이는 아무리 날고뛰는 워로드의 개발사라 해도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였다.

혹시나 개발사가 사태를 눈치채고 루를 잠재운 뒤, 자신에게도 다시 사도 직위를 빼앗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럴 걱정은 없어졌다.

몇 시간짜리 롤백만 해도 엄청난 리스크를 껴안은 도전일 텐데, 며칠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별 소식 없이 잠잠한 걸 보면 개발사에서 뒤늦게 알아차린다 해도 답이 없었다.

만족스러운 답에 에일은 다음 질문을 던졌다.

“여신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신앙을 모으는 데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행할까요?”

[‘빛의 심판자, 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흐음…….’

루의 대답에 에일은 침음을 흘리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무래도 그가 따르는 여신은 설정 그대로 정의에 따라 움직이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일곱의 신격은 워로드가 게임 속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지만, 처음 설정된 성향과 방향성은 그런 것과 별개로 그대로 간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루가 말하는 정의라는 게 워낙 과격한지라, 제약에 묶여 크게 답답할 상황은 없어 보였지만, 아무 죄 없이 지나가는 유저에게 먼저 PK를 걸거나 하는 짓 같은 건 자제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빛의 심판자, 루’가 마지막 메시지임을 전합니다.]

여신은 더 이상 대답할 수 없는지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무래도 유저에게 텍스트를 보내는 것조차 영향력을 일정량 소모하는 모양이었다.

의문 중 대부분은 사도가 되면서 머릿속에 정보가 들어왔고, 가장 궁금하던 부분이야 질문을 통해 모두 풀렸으니 상관은 없었다.

‘이거… 절이라도 한 번 해야 하나.’

상황을 파악한 에일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전업 플레이어로서 앞선 랭커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장치가 드디어 마련되었다.

1년이나 늦게 시작한 에일도 그들을 추월할 수 있도록… 아니, 오히려 늦게 시작했기에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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