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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이단심판관-13화 (13/227)

13화 신성모독자 (5)

스릉!

트래구울을 마주한 에일이 부드럽게 검을 뽑았다.

흉측한 거체를 지닌 트래구울이 그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자 주변에 있던 몬스터, 좀비들은 놈에게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놈은 기이할 정도로 기다란 팔을 위로 쭉 뻗었고, 강하게 아래로 내려쳤다.

콰아앙!

대지를 뒤흔들며 땅에 구덩이가 파였고, 에일은 겨우 자리에서 벗어나 옆으로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는 손에 쥐어져 있던 아이템을 내려다보았다.

투명한 병에 담겨 각각 다른 색깔을 뽐내고 있는 네 가지의 포션.

에일이 듀벨에서 들렀던 상점에서 전 재산을 털어 구매한 도핑 포션이었다.

일시적으로 사용자의 능력치를 향상시켜 주는 도핑 포션은 보통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후에 대규모 전쟁이나 레이드 혹은 던전 공략을 할 때나 쓰지, 돈도 얼마 없는 육성 초반부터 사용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일은 뿔토끼에게서 운 좋게 ‘붉은 마력의 눈동자’ 아이템을 얻은 뒤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이곳 사냥터에서 좀비들을 상대로 레벨을 어느 정도 올린 다음 곧바로 보스인 트래구울을 상대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공격력이 일시적으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방어력이 일시적으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속도가 일시적으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최대 체력이 일시적으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찰랑이는 액체를 연달아 입안에 털어 넣자 에일의 능력치가 올랐다.

고작 이 네 병의 포션에 초반 자금을 전부 털어 넣기는 했지만, 눈앞의 보스 몬스터만 잡아낸다면 전혀 아까울 게 아니었다.

혼자서 높은 레벨의 보스에게 도전하는 게 부담이 가기는 해도, 놈이 내뿜는 위압과 공포 효과는 자연스럽게 그의 패시브로 해제되었고,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후웅!

트래구울의 팔이 다시 한 번 뻗어졌고, 에일은 그를 잽싸게 움직여 피해 냈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신중하게 반응하고 움직여야 했다.

체력이 낮은 클래스가 아님에도 트래구울의 괴랄한 스펙이라면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게임 오버로 이어질 수 있었다.

거기에 온몸을 감싸고 있는 저 단단한 갑피를 공략해야 놈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었는데, 저걸 해체하는 작업이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날뛰는 녀석의 한 부위에만 집중적으로 데미지를 누적시켜야 부분 파괴가 가능한 수준이었고, 갑피가 깨지기 전까지는 아무리 마법 같은 걸 때려박아 넣어도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에일은 그중 가장 취약한 부분을 알고 있었고, 육중한 트래구울의 공격을 피하며 빙 돌아섰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녀석의 머리 쪽으로 힘껏 던졌다.

콰아아앙!

신성 폭발 수정이 하얀빛을 내뿜으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고, 트래구울의 목 뒤편에서 터져 기우뚱거리게 만들었다.

‘역시 하나로는 부족하네.’

에일은 곧바로 두 번째 수정을 잡아 쥐었고, 다시 한 번 폭발을 일으켰다.

하나하나 수정이 폭발할 때마다 묵직한 데미지가 트래구울의 목 뒤 부위에 들어갔다.

지금 폭발로 손상되고 있는 갑피는 원래 받아야 할 데미지보다 더 크게 손상되고 있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에일이 이단심판관의 대표 스킬 ‘성화’를 대신해 두 번째로 선택한 패시브 ‘증오의 칼날’ 때문이었다.

이단을 상대로 한 ‘모든 데미지’가 25퍼센트 증가해서 붙게 되었고, 그건 소모성 아이템인 폭발 수정의 데미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수정에 언데드를 상대로 한 신성 속성이 담겨 있어 데미지가 뻥튀기된 것도 더욱 강력해진 효과를 내는 요인이었다.

콰앙!

마침내 세 번째 폭발이 일어나자, 목 뒤쪽에 위치한 갑피가 완전히 깨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에일도 여러 차례 피하고 있던 트래구울의 공격에 한 번 휘말리고 말았다.

한참을 내동댕이쳐진 에일은 겨우 고개를 들어 회복 포션을 꺼내 마셨다.

“크으읍…….”

같은 부위만 계속해서 노리자니, 트래구울의 공격과 요란한 움직임 탓에 쉽지 않았고, 결국 일격까지 허용해 버렸다.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스치기만 했는데 체력이 10퍼센트 이하, 거의 빈사 상태에 빠진 그였다.

재빨리 포션 하나를 비우자 30퍼센트대로 회복되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스와 일대일 대결을 하고 있는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체력을 끝까지 채울 시간 따위는 없었다.

쿠웅!

한 바퀴 굴러 공격을 피한 에일은 한차례 뛰어올라 놈의 팔을 디딤대로 삼아 트래구울의 몸에 매달렸다.

날뛰는 몬스터의 몸 위에서 균형을 잡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에일은 울퉁불퉁한 갑피를 잡아 가며 위로 차근차근 올라갔다.

그러자 금세 갑피가 손상되어 부서져 있는 놈의 목 뒤까지 다다랐고, 에일은 그 안에 폭발 수정을 심어 넣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아래로 조금 내려와 매달린 그는 트래구울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며 손에 바짝 힘을 줬고, 곧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폭발이 트래구울의 목 뒤에서 일어났고, 녀석은 겉을 감싼 갑피의 보호 없이 그대로 받은 강한 충격에 휘청였다.

놈의 몸에 매달려 있던 에일도 출렁여 떨어져 나갈 뻔했지만, 겨우겨우 버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레벨대의 아이템이라 해도, 효율이 안 좋기로 유명한 소모성 아이템 한 방으로는 보스의 숨통을 끊기에는 한참 역부족이었다.

체력이 일부 떨어진 트래구울은 즉시 두 번째 패턴을 보이며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폭발로 인한 상처로부터 진녹색 독기가 뿜어져 나왔고, 에일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는 물론 주위 전체를 가득 채웠다.

[몬스터의 독기에 중독되었습니다!]

- 체력이 일정 시간마다 감소합니다.

‘시작했군.’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체력바가 줄기 시작하자, 에일은 곧바로 검을 바로 쥐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었다.

체력이 일정량 이상 줄어 2페이즈로 넘어간 트래구울은 시체 덩어리나 다름없는 몸속에서 독기를 끊임없이 뿜어대는 패턴을 보여 주는 녀석이었고, 그로 인해 트래구울 레이드를 진척 없이 오래 끌면 근접했든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그대로 공격대 전원의 사망 확정이었다.

뒷목까지 올라간 에일은 양손으로 장검을 역수로 쥐고는 힘껏 내려찍었다.

푸욱! 촤아악!

장검이 살점을 뚫고 들어가자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고, 놈의 체력이 서서히 깎이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더 높은 레벨의 트래구울을 압도하기엔 아직 그의 스펙이 한참 모자랐고 장기전을 피할 수 없었다.

독기로 인해 체력이 서서히 떨어지자 잠시 칼질을 멈추고 남아 있는 다섯 개의 포션 중 세 병을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는 곧장 작업을 재개했고, 에일은 거세게 흔들리는 녀석의 몸 위에서도 안정감 있게 균형을 유지했다.

수정이 끝을 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거들어 주는 역할로 충분했고, 그가 실제로 바란 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화력으로는 가장 난관이었던 트래구울의 갑피를 뚫어 줬으니, 남은 건 자신의 실력에 달린 일이었다.

트래구울과 에일의 체력은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마치 승리와 죽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짜릿한 감각이 등을 타고 흘렀다.

이런 감각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것이었다.

푸욱!

에일은 다시 한 번 장검을 크게 꽂은 뒤, 마지막 남은 포션 병마저 비웠다.

놈의 반응을 보아 거의 다 온 것 같았는데 문제는 자신의 체력도 29퍼센트가 전부라는 것이었다.

‘이거 조금 위험하겠는데.’

이런 승부는 보통 한끝 차로 갈리기 마련이었는데, 에일조차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17, 15, 10, 5.

에일의 체력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트래구울 역시 굉장히 많은 피를 쏟아내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결국 도달한 2퍼센트대의 체력.

하지만 트래구울은 그때까지도 쓰러지지 않았다.

[남은 체력 1%, 죽음이 당신에게 손짓합니다.]

에일의 손에 힘이 슬슬 빠지기 시작했고, 정말 한끝 차이로 대어를 놓치게 생기자 진한 아쉬움이 가슴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에일의 체력 바가 주르륵 차오르더니 힘이 돌아왔다.

‘이… 이건?’

예상 밖의 상황에 에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가만히 놀라고 있을 새는 없었고,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콰악!

그오오오!

마지막 일격이 목 뒤 깊숙이 꽂히자, 트래구울이 몸을 비틀며 절규했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트래구울이 바닥에 넘어졌고, 녀석의 뒷목에 꽂힌 장검을 붙잡아 날아가지 않고 버틴 에일이 그 위에 섰다.

“휴, 아무튼 다음부터는 견적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어.”

잠시 진한 고양감을 느끼던 에일은 이마에 삐질삐질 흘렀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대로 죽었어도 몰랐을 상황에 갑자기 치유 마법이 들어와 체력이 30퍼센트를 넘어섰다.

아무래도 유저들이 모였던 건물 위에서 마주쳤던 치유사가 자신에게 힐을 넣어 준 것 같았다.

별다른 보정 스킬도 없을 지금 시점에, 이만한 거리에서 초점을 맞춘 뒤 원하는 대상에게 정확히 치유 마법을 불어넣기란 상당히 어려울 터인데, 전반적인 레이드의 상황을 읽은 듯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온 힐이었다.

‘이거 고맙다고 인사라도 한 번 해야겠는 걸.’

다소 리스크가 있었던 도전이었지만, 결말이 좋게 끝나 다행이었다.

에일은 꽂혀 있는 장검을 뽑은 뒤, 빈사 상태의 트래구울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파악!

녀석의 목숨이 드디어 끊기자, 두터운 갑피와 그 안에 있던 시체 덩어리들은 형체를 잃고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신성모독자’를 단독으로 처단하였습니다!]

[빛의 교단 공헌도 +145]

[신앙심 스탯 +10]

[광기 스탯 +10]

[여신의 총애 +1.59% (현재 51.86%)]

[더욱 강한 여신의 가호가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전투 관련 능력치, 일부 상승.]

[칭호 ‘신성징벌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장착 시 모든 스탯 +10, 이단 상대 데미지 +3%]

몬스터의 숨통이 정확히 끊기자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무려 레벨 두 개가 한 번에 오르고, 스탯과 공헌도, 총애 수치까지 큰 폭으로 올랐다.

또 굉장히 좋은 칭호까지 얻었는데, 불과 10레벨대의 유저가 얻을 만한 칭호 중에 이와 비교할 만한 게 몇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파격적인 보상들은 모두 이번 상대가 ‘신성모독자’였던 덕이었다.

신성모독자.

빛의 교단에서만 사용되는 이 단어는 존재 자체가 교리를 부정하는 심각한 이단, 혹은 강력한 교단의 적을 가르켜 ‘신성모독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단보다도 한 단계 위인 주적이었고, 주로 사악한 성향의 보스들 중에서도 드물게 나타나는 녀석들이었다.

이렇듯 신성모독자라면 교단의 가장 큰 적인 데다가,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보상도 그에 맞게 훨씬 큰 편인 게 당연했다.

덕분에 각각의 스탯이 10포인트씩이나 오른 데다가, 무엇보다도 여신의 총애 수치는 벌써 52퍼센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총애 수치 관리가 끔찍이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에일은 충실히 쌓아 가고 있었고, 그만큼 전투 관련 스탯이 올라 줬다.

처음엔 얼떨결에 선택되어 속으로 이래도 되나 싶었던 직업이기도 했지만, 의외로 적성에 잘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만족하고 있던 그의 눈앞에 찬란한 빛의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은 현재 사도의 길을 앞두고 있습니다! (100.00%)]

[축하합니다! 당신은 ‘빛의 심판자, 루’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현재 사도화가 진행 중입니다.]

[시스템 리부팅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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