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선택받은 자 (1)
“후우…….”
한 남자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우진.
비록 정돈 안 된 지저분한 머리를 하고 있지만 나름 화려한 경력의 사나이였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본 직업은 백수.
모태솔로에 저렴한 월세의 낡아빠진 집안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고졸 알바생.
사고로 인해 그에게 남은 가족은 없고, 남겨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공부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었지만, 당장 심각하게 쪼들리는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연애나 학자금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전도 없이 알바와 공사장을 전전하며 연명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드디어!”
좁은 방 안에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접속기.
우진이 기기를 황홀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누군가는 되도 않는 형편으로 사치를 부린다며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에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학생일 적만 해도 광적으로 게임에 푹 빠져 있었던 그는 가상현실 게임이 출시되고도 언제나 모자라는 지갑 사정에 플레이해 볼 수 없다는 게 평생의 한이었다.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을 한번 해 보겠다는 일념하에 돈을 꾸역꾸역 모아 기기를 샀을 때조차, 그의 몇 없는 바람은 산산조각 났다.
그 이유는 바로 가상현실 게임에 맞지 않는 자신의 체질.
출시된 대부분의 가상현실 게임은 뇌파와 기기를 직접 연결해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만큼, 크지는 않아도 분명히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체질에 따라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캐릭터를 움직일 수 없는 오류부터 정말 심각한 경우엔 쇼크가 올 수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진은 아주 심한 비적합자에 특이체질까지 가지고 있어, 가상현실과 관련된 것이라면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정말 힘겹게 돈을 모아 장만했던 접속기임에도, 게임을 할 수 없다는 사실.
환불을 받기는 했어도 당시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시도도 못 했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영원히 가상현실 게임하고는 연이 없을 줄만 알았던 그의 상황도 작년을 기점으로 뒤바뀌었다.
바로 가상현실 게임 ‘워로드’의 존재.
불과 일 년 전에 나타난 워로드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압도적인 게임성과 완벽한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이전까지는 점유율을 비등비등하게 나눠 가지던 모든 가상현실 게임의 유저들을 모조리 흡수했다. 그렇게 다른 게임들을 모조리 서비스 종료시키며, 시장을 독점 체제로 만들어 버린 워로드는 아직까지도 승승장구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게 가상현실 게임은 손도 못 대는 우진과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최고의 안정성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놀라운 게임성과는 별개로 꾸준히 위험성이 제기되어 왔던 여러 가상현실 게임들과 다르게, 워로드는 그 어떠한 부작용이나 오류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수의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지금조차도, 전 세계에서 단 한 사람의 부작용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게임사에서 ‘절대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이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특이체질을 지니고 있는 우진마저도 호기심에 받아 본 사전 안정성 테스트에 안전 수치로 통과했다.
그가 태어나고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빠듯한 생활비 탓에 출시한 지 일 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돈을 마련해서 구매하긴 했지만, 그동안 꿈만 꿔 왔던 가상현실 게임, 그것도 현존 최고의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에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비록 학생 때 즐겼던 컴퓨터 게임처럼 정신없이 푹 빠져 살지는 못하겠지만, 고된 하루를 달랠 취미로는 이보다 더 나은 게 있을 수 없었다.
“빨리… 빨리 시작.”
설치는 이미 모두 끝나 있었다.
우진은 재빨리 접속기에 다가가 기기를 작동시켰다.
편한 자세로 안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식이 서서히 멀어졌고, 우진은 상쾌한 기분 속에서 눈을 감았다.
* * *
[워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인증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User ID: KR8784638]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됐어!”
우진이 주먹을 움켜쥐며 쾌재를 불렀다.
분명 방 안에서 눈을 감았다가 떠 보니, 주변이 탁 트인 풀숲과 마주했다.
시원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치며 지나갔고, 우진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아직 로그인을 하기 전에 잠시 머무를 대기 공간에 불과했음에도, 여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가상현실 내부의 감각은 정말 색달랐다.
이런 걸 남들은 수년 전부터 실컷 즐겨 왔다니, 인생의 절반은 손해 본 듯한 기분이었다.
[월드로 진입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플레이 되십시오.]
후욱!
풀숲의 광경이 시야 뒤로 미끄러지듯 사라졌고, 검은 공간이 그를 감쌌다.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붕 떠 있는 듯한 기분.
우진은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찬찬히 기다렸다.
곧 펼쳐질 게임 속 광경을 상상하자 흥분을 감출 길이 없었다.
“어… 아직도 로딩 중인가?”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우진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시동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기존 게임들과는 달리, 워로드는 접속에 필요한 로딩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사람으로선 체감하기도 힘들 만큼 적은 시간이라고 들었는데, 어딘가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새까만 공간 속에 방치된 지 5분이 넘게 지나자, 우진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아직까지 로딩 중일 리가 없잖아!’
우진이 시커먼 공간 속에서 발버둥 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설정이나 메뉴창을 조작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작동되어야 하는 최후의 수단인 긴급 로그아웃도 먹히지 않았다.
난생 처음 느껴 보는 극도의 위기감에 뒷목에 아찔한 감각이 번뜩 흘렀다.
“꺼내 줘! 사람 살려! 여기서 꺼내 줘요!”
우진이 온 힘을 다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모니터링하는 운영자가 봐 주길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에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애초에 워로드는 모든 것을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게임이라는 문구를 내세웠고, 게임 내부를 모니터링하는 운영자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조금만 있으면 구하러 와 줄 거야…….’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우진이었지만, 애써 현실을 외면했다.
본인이 처한 것이 목숨조차 위태로운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직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초조하게 머리를 쥐어뜯던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끅… 흐윽……. 이따위 걸 시작하는 게 아니었어.”
상황을 부정하던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게임사에 대한 분노도 치밀어 올랐다.
“개 같은 자식들! 사전 검사에서 안전하다고 몇 번이나 나왔는데!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분통이 터지는 듯 우진은 텅 비어 있는 공간에 팔을 휙휙 저었다.
“으으… 제기랄…….”
그다음은 두려움이 다가왔다.
새까만 공간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무섭지도 않았던 공포영화에서 낄낄 웃으면서 넘겼던 장면들조차 그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감당하기 힘든 공포가 몰려왔다.
미칠 듯한 고요와 정적이 오히려 우진의 머릿속을 어지러뜨렸고, 당장에라도 정신병이 걸릴 듯한 환경이 그를 압박해 왔다.
‘나갈 수 있는 건 맞아? 나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집에 함께 동거하는 이도 없고, 며칠 연락이 끊겼다고 집까지 달려와 줄 지인도 없다.
기껏해야 편의점 점장 정도가 메시지로 욕을 퍼붓는 게 전부겠지.
서서히 현실을 체념하기 시작한 우진은 애쓰던 힘을 빼고 공간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저 이대로 가상현실 속에 갇혀 육체가 굶어 죽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30분, 1시간, 그리고 2시간째.
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어둠 속, 공포에 떨고 있는 우진에게는 이곳에 갇혀 며칠이 지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구명줄이 끊어진 채 우주에 내던져지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우진은 끊임없이 심장이 쿵쾅대는 것을 부여잡으며 최대한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두 손을 한데 모았다.
“제발…….”
그는 눈을 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우진은 어렸을 적 친구 따라 손 잡고 교회에 한 번 가 본 것 말고는, 여태 기도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사람이란 절박해지면 어디에든 간에 기대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 다른 모든 신님들!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누구시든 이곳에서 꺼내만 주신다면 평생을 믿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정말로 살고 싶습니다. 진짜로… 정말루요!”
점점 목이 메여 오는 탓에 우진은 뒤로 갈수록 발음까지 뭉개지며 꺽꺽댔다.
하나부터 열까지 불만 많던 삶이지만 막상 죽음이 다가오자,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 작은 손짓마저도 간절함이 뚝뚝 묻어났다.
화아악!
바로 그 순간, 우진의 눈앞에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밝고 강렬한 빛이었지만, 그렇다고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똑바로 앞을 응시할 수 있었고, 그저 무기력했던 우진의 온몸에 힘을 불어넣을 뿐이었다.
그리고 찬란한 빛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이… 이건…….”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비현실적인 이목구비와 새하얀 피부, 길게 늘어뜨린 금발.
몸을 감싼 빛나는 은빛 갑옷과 길게 늘어진 장검은 그녀의 정의롭고 강인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절로 압도되는 모습에 우진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동안, 여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 … … … … 었다.”
영문 모를 말.
심하게 지직거리는 말소리 탓에 중간중간 음성이 끊겨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의 여신은 우진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녀의 마지막 말만큼은 확실히 귓가에 들어왔다.
“고맙구나.”
투욱.
여신의 손가락이 우진의 이마에 닿자, 새하얀 빛이 그를 감쌌다.
우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각 속에서 버둥거리며 헤엄쳤고, 어느 순간 무언가가 그를 확 끌어냈다.
치이익!
접속기의 문이 열렸고, 우진의 허리가 반사적으로 튕겨졌다.
“으헉……!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내쉬던 우진은 잠시 주위를 멍하니 둘러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좁지만 아늑한 자신의 집이었다.
“사…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