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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22화 (422/424)

00422  외전 01 – 결혼 대작전  =========================================================================

“네? 아니요. 힘들 것 같아요. 네. 죄송해요. 당분간 스케줄이 꽉 차서 시간을 낼 수 없어요. 네. 다음에 다시 연락 주세요. 네. 들어가세요.”

“누군데 그렇게 안절부절이야?”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윤시연을 보며 마동수가 물었다.

“우동빈씨요.”

“우동빈? 내가 아는 그 우동빈?”

“네.”

“우동빈이랑 아는 사이였어?”

“네.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었어요.”

“아. 그랬어? 미안해. 시연이 네가 하는 프로그램은 다 듣고 싶은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서운한 기색이 없었지만 마동수는 알아서 먼저 사과했다.

윤시연이 맡은 프로그램은 총 3개. 매일매일 나가는 2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는 TV 프로그램이 두 개다. 라디오와 TV 방송 1개는 일과 시간과 겹치고 나머지 하나는 야근이 자주 있는 수요일 프로그램이라 방송을 보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아니에요. 일주일에 게스트로 나오는 사람이 너덧 명은 되는 데 동수씨가 그걸 어떻게 다 알아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미안하지. 마음 같아서는 네가 하는 방송은 다 보고 싶거든. 그런데 우동빈 그 친구가 왜 전화를 했어?”

“아···. 그러니까 왜 전화했냐면은요···. 같이 밥 먹자고 하던데요.”

밥을 같이 먹자는 연락은 계속 왔었다. 그러나 그동안은 연락이 와도 모른 척했지만 오늘은 마동수 앞에서 일부러 전화를 받았다.

능청스럽게 연기를 해내는 윤시연. 마동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발끈했다.

“뭐? 밥? 갑자기 무슨 밥?”

“모르겠어요. 전에부터 계속 연락이 왔어요.”

“거절했는데도 계속 연락이 왔단 말이야?”

“네. 방금도 봤잖아요. 스케줄 있어서 바쁘다. 안 만난다. 계속 거절을 하는데도 나중에 한가해지면 보자고 자꾸 연락이 와요. 그런데 좋다고 고백한 것도 아니고 겨우 밥 한번 먹자는 데 이러지 마라,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해서 거절만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계속 연락이 와? 그 정도면 충분히 돌려서 거절한 거잖아. 바보도 아니고 그걸 못 알아듣고 자꾸 연락을 한단 말이야?”

예전의 마동수였다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주변에서 ‘윤시연도 변할 수 있다.’, ‘잘생긴 연예인들이 대시하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꾸 들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요. 또 연락 오면 어쩌죠?”

윤시연은 아나운서가 직업이며 방송일을 한다. 그리고 방송일에서 게스트, 특히 우동빈 같은 초특급 게스트는 시청률이나 청취율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우동빈이 갑이라면 윤시연은 을이다.

방송은 그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방송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니 노골적으로 수작을 부리지 않는 한 을은 갑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마동수였다. 그래서 ‘또 연락 오면 부담스럽다고 정확하게 표현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마동수가 나서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윤시연도 이제 어른이니 믿고 맡겨두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시연이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솔직히 말하면 차라리 시원하게 고백을 했으면 좋겠어요.”

“뭐?”

“그럼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별것 아닌 것처럼 밥만 먹자고 하니 계속 거절하는 것도 찜찜하고, 좀 그래요. 이게 직장 생활인가 싶기도 하고요.”

“혼자라면 화내고 얼굴 안 보면 그만인데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함부로 화도 못 내겠지?”

“네. 맞아요. 게다가 우동빈씨 기획사가 우리나라 3대 기획사 중 하나라서 더더욱 대하기 어려워요. 자칫 저 때문에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보이콧이라도 한다면 큰일이잖아요.”

“그게 바로 을의 입장이라는 거야. 직접 겪어보니까 어때?”

“휴우···.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굉장히 마음이 불편해요. 동수씨는 이런 일 많이 겪어 봤을 것 아니에요. 좋은 방법 없어요?”

“인생 선배로의 입장과 약혼자로서의 입장이 있어. 둘 중 어떤 걸 듣고 싶어?”

“둘 다요.”

“먼저 인생 선배로서 말을 하자면. 만나. 만나서 밥만 먹고 헤어져.”

“그게 끝이에요?”

윤시연의 얼굴에 실망감이 드러났다. 관심을 보이는 남자와 밥을 먹으라니 아무리 마음이 고운 윤시연이라도 해도 마동수에게 생기는 실망감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응. 한 번 그렇게 밥을 먹었으면 다시 먹자고 하긴 어렵지. 특히 빈틈없이 밥만 먹고 간 사람이라면 더더욱.”

“우동빈씨는 그래도 계속 연락할 것 같은데요. 그때도 또 나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 거예요?”

“노골적으로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을의 입장이라면 그래야 하겠지.”

“그건 좀 마음에 안 드는 조언이다. 그럼 약혼자로서의 입장은 뭔데요?”

“절대 만나지 말고 그냥 연락이 와도 계속 바쁘다고 해. 아니면 내가 직접 만나서 내 여자 찝쩍거리지 말라고 경고를 할 수도 있고.”

“진짜요? 헤헤헤. 그래 줄 수 있어요?”

“할 수는 있는데 그럼 일이 더 커지겠지? 자칫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물론 우동빈이 아니라 우동빈 할애비와 싸운다고 해도 이길 자신은 있어. 그런데 시연이 네 일에 내가 그렇게 깊이 관여했으면 좋겠어?”

“아니요. 제 일이니까 제가 알아서 해야죠. 예전에 동수씨가 그랬어요. 동수씨는 내가 비 맞고 있으면 우산을 씌어주지도 같이 비를 맞아주지도 않겠다. 그냥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며 내가 하는 결정이 뭐든 지지해주겠다고요. 저, 그 말에 완전 감동 먹었잖아요.”

“서운한 게 아니라?”

“그럼요. 전 보살핌이 필요한 애가 아니잖아요. 한 명의 성인으로 봐주는 것 같아 얼마나 기뻤다고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고. 그래서 우동빈은 어떻게 할지 결정했어?”

“아니요. 좀 더 고민해볼게요.”

‘고민해보다니. 뭘 더?’ 이게 솔직한 그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멋있는 척, 어른인 척해야 하는 마동수는 가식적으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시연이 너라면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거야.”

***

“이사님. 지난번에 알아봐 달라고 하신 겁니다. 내용은 전부 파일에 들어있습니다.”

“이게 뭔데?”

회의를 끝내고 돌아오자 성윤권이 작은 USB메모리를 마동수에게 건넸다.

“이사님이 며칠 전 우동빈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아는 라인을 가동해 조사한 자료입니다. 혹시 필요 없어졌습니까?”

“아··· 그거! 아니야. 아니야. 필요한 거였어. 고마워. 수고했어.”

“아닙니다. 수고는 제가 아니라 선배가 한 건데요. 그 선배가 자료 조사에 있어 꼼꼼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니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잘 볼게.”

마동수는 얼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USB메모리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곳에서는 출생, 학력, 배우 경력, 가족 관계, 친구 관계, 여자 관계, 경제 사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된 폴더가 담겨 있었다. 용량도 우동빈의 거의 모든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엄청났다.

“어휴. 내가 찌질하게 이런 짓까지 하더니. 이걸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걸 보면 난 정말 찌질한 놈이 되는 건데. 에잇! 몰라. 까짓것.”

잠시 고민을 하던 마동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가장 궁금했던 여자 관계 폴더부터 클릭했다.

***

「우동빈. 윤시연 아나운서에게 사랑 고백

천만 배우 우동빈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시연 아나운서를 여러 번 언급하며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에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윤시연 아나운서를 선택했다. 그리고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은 윤시연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교양 방송, 제일 좋아하는 라디오는 윤시연 아나운서의 종이 비행기, 제일 좋아하는 책은 ‘그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라고 말하며 그녀에 대한 관심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본 기자는 ‘윤시연 아나운서를 사랑하느냐’고 물었고, 우동빈은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윤시연 아나운서도 같은 마음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녀가 근무하는 아나운서실에 문의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사실이라면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윤시연 아나운서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녀가 약혼자를 버리고 우동빈을 택한 건지 아니면 두 남자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지라수 일보 -」

- 헐. 이게 뭐야? 사실이면 대박 (찬성 30,382 반대 309)

- 뭐야? 윤시연 아나. 약혼자에게 보내는 형식의 여행 수필도 쓴 걸로 아는데, 설마 양다리? (찬성 29,093 반대 290)

- 천사가 아니라 희대의 여우였다. (찬성 25,098 반대 503)

- 말도 안 된다. 우리 동빈 오빠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여우를! (찬성 24,645 반대 50,987)

- 다 부질없다. 연예인이 누굴 사귀던 그게 뭔 상관. (찬성 23,092 반대 1,023)

- 우리 윤시연 작가가 그럴 리가 없다. 기사를 읽어보면 사실 확인은 전혀 없이 추측성 이야기만 써놨다. 지라수 일보가 미친 듯. (찬성 20,983 반대 15,056)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18,987 반대 609)

***

마동수에게 질투심 유발 작전을 펼치던 윤시연은 갑작스러운 스캔들 기사에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기사가 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우동빈에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줬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그녀의 태도는 냉정했으며 단호했다. 실수라면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 마동수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전화를 받은 게 전부였다. 그러나 통화만 했을 뿐 그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고 차갑게 대했다.

그런데 전화 통화도 받아주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윤시연은 엄청난 비난과 관심에 어디론가 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오해가 더 깊어진다는 걸 방송국에서 일하는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지만 숨지 않고 당당히 나서야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뤄낸 사랑인데,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되었다.

「윤시연 아나. 배우 우동빈과 지라수 일보에 법정 투쟁 경고 그리고 고백

양다리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터넷을 들끓게 했던 윤시연 아나운서가 하루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정확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기자 : 지금 심정은?

윤시연 : 나는 지금 내 약혼녀가 첫사랑이고 지금은 그때보다 사랑이 더 깊어졌다. 대학을 졸업했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그와의 달콤한 결혼을 꿈꾸는 중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떠서 굉장히 당황스럽고 불쾌하다.

기자 : 우동빈에 대한 그 어떤 호감도 없었나?

윤시연 : 내 마음은 동수씨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걸로도 행복이 충만해 다른 감정이 들어올 여유도, 필요도 없다. 만약 동수씨 아니라면 난 그냥 비구니가 되어 절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남자에게 눈 돌릴 생각은 전혀 없다.

기자 : 그래도 우동빈이다. 세계적인 섹시 미남 배우 우동빈.

윤시연 :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눈엔 동수씨가 훨씬 더 섹시하고 멋지다. 미안하지만 우동빈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남자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마른 오징어처럼 보일 뿐이다. 나는 동수씨처럼 듬직한 사람이 좋다.

기자 : 그런데 왜 그런 기사가 났다고 생각하는가?

윤시연 : 그건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동빈이 미쳤거나, 지라시 일보 기자가 미쳤거나.

기자 : 미쳤다? 상당히 과격한 표현이다. 우동빈의 팬이 무섭지 않은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윤시연 : 전혀 안 무섭다. 나는 떳떳해서 무서운 게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데 뭘 무서야 해야 하는가? 우동빈씨와 지라시 일보에 법적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솔직히 내가 걱정되는 건 딱 하나다. 내 약혼자가 이번 일로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을는지, 그것뿐이다.

기자 : 혹시 오해를 받을 행동을 한 건 아닌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윤시연 :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더라. 그리고 굴뚝이 더러우면 먼지가 연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난 우동빈씨에게 그 어떤 여지를 준 적도 없다. 그동안 같이 밥 먹자고 연락이 온 적이 있지만 분명히 거절해왔다. 원한다면 그가 보낸 초코톡 문자와 통화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 중요한 게스트였고 그래서 확실하게 끊어내지 못하고 몇 번 전화를 받은 게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자 : 통화 내용을 저장해뒀단 말인가?

윤시연 :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자꾸 연락이 와 신경이 거슬렸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통화를 할 때마다 녹음을 해뒀다. 통화 내용만 공개해도 오해는 모두 풀리리라 믿는다.

기자 : 지금 공개할 생각은 없나?

윤시연 : 없다. 일단 우동빈씨의 입장 표정을 보고 그때 가서 공개를 결정하겠다.

기자 : 개인적으론 우동빈씨의 입장 표명이 윤시연 아나운서의 마음에 안 들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혹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윤시연 : 동수씨.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해요. 또, 이상한 구설수에 오르게 해서 미안해요. 그래서 말인데요. 동수씨. 저랑 결혼해주지 않을래요? 그럼 이런 오해도 받지 않을 텐데. 제가 잘해줄게요. 나랑 결혼해줘요. 대답은 이따 집에서 해줘요. 사랑해요.」

윤시연은 기자들 앞에서 대담하게 공개 프러포즈를 하고 빨개진 얼굴로 얼른 자리를 피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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