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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02화 (402/424)

0040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유진서는 이석근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장단을 맞춰 줄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여기서 맞다 아니다 이야기를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결과는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유진서씨.”

“네. 마 팀장님.”

“우리 솔직해집시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내일 이석근 팀장에게 연락을 해보면 모두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처음엔 몰랐다고 해도, 제 이야기를 듣고 난 지금은 의심하는 부분이 있죠? 그래서 이러시는 거죠?”

“조··· 조금은요.”

“그러니까 여기 서명하고, 제 예측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 한 번 확인해봅시다. 그리고··· 윤권아.”

“네. 팀장님. 여기 있습니다.”

나의 부름에 윤권이는 가방에서 통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5억 원입니다. 일단 받으세요.”

“네? 이렇게 큰돈은 왜요?”

“사실이든 아니든 회사에 드리는 위로금입니다. 그동안 유진서씨가 회장님을 위해 고생한 사실도 있고, 사실 따지고 보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 일에 대해 침묵하는 조건도 포함됩니다. 명예퇴직 처리가 되고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금으로 나가는 돈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쓰셔도 됩니다. 비밀번호는 내일 이석근 팀장에게 연락을 하는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거액을 건네는 이유에는 이 여자에 대한 동정심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은 향후 생길 수 있는 분란을 막기 위해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자중하라는 의미다.

“준비성이 정말 철저하시네요. 역시 최근 동지그룹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다워요.”

“칭찬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기에 서명하시면 유진서씨는 앞으로 3일 정도, 밖에서 대기 중인 여성 경호원들과 같이 생활하실 겁니다.”

“경호원을요? 혹시 제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아니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당신을 믿지 못해서 그럽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몰래 이석근 팀장에게 연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저희가 나가고 나서 몸수색도 할 겁니다. 같은 여자끼리라도 불쾌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양해부탁드립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요.”

“휴···. 제게 주시는 5억 원에는 그런 불쾌감을 참는 조건도 들어있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큰 금액을 책정했습니다. 물론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비협조적으로 나올수록 고통스러운 건 유진서씨와 이석근 팀장일테니까요.”

“알았어요. 받아들일게요. 그런데 마 팀장님. 저도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요.”

서명이 끝난 서류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녀가 나를 불렀다.

“뭡니까?”

“만약 팀장님의 오해라면 내일 제게 사과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이번 일이 단순히 헤프닝으로 끝난다면 유진서씨와 이석근 팀장에게 정식으로 사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죄송하지만 지금 드린 위로금 외에 보상도 하겠습니다.”

“보상요? 얼마나요? 한 10억을 달라면 줄 수 있나요?”

“네. 10억을 원하시면 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돈이 많습니다.”

당연히 틀릴 리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정말 내가 틀렸다면 기꺼이 줄 수 있다는 심정으로 질러버렸다. 어떻게 보면 나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바뀌어 버렸으니 못 해줄 것도 없다.

“그렇게 나오시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좋아요. 내일 두고 봐요.”

***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그래요. 좋은 아침이에요. 미나씨.”

이석근이 사무실에 들어오자 비서팀에서 같이 근무하는 조미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런데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보이는 직장 상사의 모습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팀장님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나요? 글쎄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왜요?”

“뭔가 평소보다 표정이 밝은 것 같아서 좋은 일이라도 생기셨나 했죠.”

“음···. 그래요? 다른 날보다 유난히 잠을 잘 자긴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베개가 불편한 것 같다고 했더니 집사람이 베개를 바꿔줬거든요. 그런데 그게 꽤 편해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어요.”

“어머나. 역시 사모님이시네요. 내조의 여왕 다우세요.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시고요. 팀장님은 정말 결혼을 잘하신 것 같아요.”

이석근과 그의 부인은 사랑해서 만난 사이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필요에 의해서 만난 사이에 가깝다. 이석근은 고평호 상무의 친척과 결혼하면서 방계라고 해도 오너 가(家)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그의 부인은 차기 동지그룹 실세의 왼팔을 남편으로 만듦으로써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았다.

사랑이라기보다 기업 합병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알콩달콩한 부부로 연기하고 있었다. 일종의 쇼윈도 부부이나 둘의 연기가 완벽에 가까워 그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조의 여왕 좋아하네. 네가 한번 살아봐라. 숨 막혀서 제대로 살지도 못할 거다.’

이게 진짜 이석근의 속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속마음과 달리 여전히 평온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베개를 바꾼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부 5단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와이프가, 이석근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베개를 바꾼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을 조미나는 알 턱이 없다.

“그럼. 우리 와이프 같은 사람을 어디서 만나? 내가 정말 운이 좋은 편이지.”

“호호호. 역시! 두 분 사이가 너무나도 알콩달콩해서 정말 부러워요.”

“그런가? 미나씨도 곧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에이. 제가요?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왜? 미나씨가 얼마나 매력적인데. 그리고 동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어딜 가서나 알아주잖아.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혹시 좋아하는 스타일 있으면 내게 말해줘. 찾아보고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줄 테니까.”

“우와! 정말이죠? 저 정말 기대합니다?”

“물론이지. 미나씨를 소개해준다면 좋다고 줄 설 녀석들 많으니 꼭 기대해줘.”

“호호호.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오히려 고맙지.”

잠시 덕담에 가까운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고평호 상무의 도착 시각에 맞춰 새로운 일과 준비를 시작했다.

삐익.

일과 준비를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인터폰에서 호출음이 들렸다.

“네. 고평호 상무님 사무실입니다.”

- 네. 수고하십니다. 여기 경비실입니다. 방금 상무님 엘리베이터 타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동지그룹 본사의 경우 임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가기 시작하면 곧바로 경비실에서 연락이 온다. 그리고 연락을 받은 직원들은 재빨리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해당 임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새로운 일과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잠깐 휴식을 취하던 이석근과 조미나도, 경비실에서 걸려온 인터폰을 받고 재빨리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상무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 그래. 두 사람도 좋은 아침. 오늘 약속은?”

“오늘 점심은 동지 전기 사장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오후 3시 건양 기업 회장과 동지 중공업 기술 관련 문제로 미팅이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 스캐줄은 이렇게 두 개가 전부입니다.”

“그래? 잘했어. 건양 기업 회장과의 미팅을 제대로 하려면 스캐줄이 너무 빡빡한 게 안 좋아. 독사 같은 양반이라 컨디션이 좋을 때 만나야 하거든. 이 팀장은 역시 꼼꼼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잉글리쉬 블랙퍼스트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걸로 올릴까요?”

“그래? 좋지. 오늘은 왠지 부드러운 걸 먹고 싶으니까. 라떼로 부탁해. 그리고 이 팀장.”

“네. 말씀하십시오.”

“안 바쁘면 잠깐 자리에 앉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상무님.”

아침 보고를 마친 조미나가 즉시 홍차를 만들기 위해 방에서 나가자 고평호가 이석근을 불러 앉혔다.

“이 팀장이 나랑 같이 일한 지가 얼마나 됐지?”

“음. 거의 8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 꽤 오래되었군그래. 그동안 참 고생이 많았어.”

“아닙니다. 고생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냥 상무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조금이라니, 내가 그동안 이 팀장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래서 말인데. 이 팀장도 이제 승진을 해야 하지 않겠어?”

“승진을요? 하지만 상무님. 상무님을 곁에서 보좌하려면 팀장 직급으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회장, 부회장, 사장의 비서팀은 실장급 인사가 관리하고 그 밖의 임원 비서팀은 팀장이 모든 걸 총괄한다. 이사의 경우는 팀장 없이 비서 한 명만 배정받는다.

고평호의 직급이 상무이기 때문에 이석근의 그의 비서로 있기 위해서는 팀장으로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훗날 고평호가 차기 회장이 되면 그 이상의 보상을 받으리라 믿고 참고 있었다.

“나도 이 팀장이 나를 계속 보좌해주면 좋지. 그런데 그러기엔 이 팀장의 능력이 너무 아깝잖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무님.”

“아니야. 좋게 봐주는 게 아니라 이 팀장 실력이 좋은 건 사실이잖아. 게다가 우리 쪽에 믿을만한 사람이 너무 없어. 요즘 현호를 보니까 한 가지 본받을 점이 있더군. 가만 보면 말이야, 마동수 그 친구를 참 적재적소에 활용을 잘해. 다양한 용도의 칼로 잘 사용한다고 해야 하나? 그걸 보면서 ‘나도 저런 칼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생각할 때 이 팀장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이 팀장 생각은 어때?”

“과분한 평가지만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이지만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마동수다. 그런 그의 역할을 자신에게 기대한다는 고평호 상무의 말에 이석근은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꼈다.

“과분하지 않아.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 이 팀장이니까. 새로운 비서 팀장이 정해지면 인수인계가 필요할 테고. 대략 보름이면 되려나?”

“그렇지 않아도 제 후임으로 괜찮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친구라면 보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래? 역시 이 팀장은 빈틈이 없어. 좋아. 그럼 간단한 면접을 보고 괜찮으면 이 팀장이 추천하는 사람을 쓰도록 하지. 그럼 이것저것 해서 20일이면 되겠네. 그 날짜에 맞춰 차장으로 승진발령을 낼 테니, 미리 준비하고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상무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석근은 90도 이상으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30대 중반에 동지그룹 본사 차장. 마동수처럼 말도 안 되는 승진 가도를 달리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런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석근의 승진도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그는 문 앞에서 다시 한 번 크게 인사를 하고 상무실을 빠져나왔다.

베개를 바꾸고 난 이후 계속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 작품 후기 ============================

이석근의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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