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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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술가에 도착하자 뚝배기를 들고 바닥까지 삭삭 긁어먹고 있는 최종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자식이. 시켜놓고 있으라니까 다 혼자서 그걸 다 먹어?”
“어. 왔어. 이거 진짜 맛있네.”
“뭐? 이거 진짜 맛있네? 헐. 그게 전화를 받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온 사람에게 할 말이야?”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최대한 빨리 달려왔는데, 포만감에 배를 쓰다듬으며 천연덕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맞는 모습을 보니 괜히 심술이 났다.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해야지 어떡해? 사장님이 국수사리까지 넣어주셨는데 이게 진짜 대박인 것 같아.”
“뭐? 국수사리? 사장님이 국수사리를 넣어주셨다고? 왜?”
“내가 마음에 드셨다는데?”
“와. 미치겠다. 내가 해달라고 하면 다섯 번 졸라야 한 번 해줄까 말깐데 그걸 해줬다고? 그걸 넌 혼자 다 먹어버리고?”
“어쩔 수 없었어. 형이 올 때까지 기다렸으면 국수가 다 퍼졌을 거 아니야? 맛없게 퍼진 국수를 둘이 나눠 먹는 것보다 면발이 살아 있을 때 나 혼자 맛있게 먹는 게 낫지.”
“너 이 자식. 못 보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람이 왜 이렇게 뻔뻔해졌어?”
괜히 오버하며 구박을 했지만 걱정했던 모습이 아니라 마음이 놓였다. 최종현의 표정은 생각과 달리 뭔가 후련한 듯 편안해 보였다.
“뻔뻔해진 게 아니라 마음이 편해져서 그래. 형은 운이 좋은 줄 알아. 된장 김치찌개 덕분에 내 고민이 완전히 해결됐거든.”
“그래? 안 좋은 일이 있긴 있었던 거야?”
“있었지. 그런데 이젠 아니야. 형이 왔으니까.”
“그게 뭔 말이야? 나보고 오라고 해놓고, 왔으니까 이젠 아니라니.”
“형이 오기 전까지 그냥 가버릴까 계속 고민했거든. 된장 김치찌개를 다 먹을 때까지 안 왔으면 그냥 가려고 했고. 그런데 다 먹기 전에 왔잖아. 그러니 고민 끝. 후후후.”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좀 알아듣게 설명해줄래?”
“나도 그러고 싶은데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서.”
“그래? 그럼 자리 옮길까? 어차피 먹고 싶었던 된장 김치찌개는 너 혼자 다 먹었잖아. 성격 더러운 사장님이 하루에 두 번이나 된장 김치찌개를 끓여줄 일도 없으니 그만 나가자. 어디로 갈까?”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나 괜찮아.”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에, 이곳에 오기 전 윤권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최종현의 맑은 눈을 보며 순간 들었던 의심을 지웠다.
“그냥 차로 갈까? 조용히 대화만 하려면 거기가 최고지.”
“그것도 나쁘진 않고. 아니지. 오히려 술집이나 카페보다 낫겠다. 차 어디 세워놨어? 그리로 가자.”
***
“미쳤군. 돌았어. 돌았어. 방금 한 이야기 정말 확실한 거지?”
차로 옮겨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이야기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확실한 건 아니라고. 그냥 내 추측일 뿐이야.”
“그렇지만 이석근 팀장이 네게 했던 말은 사실인 거잖아. 과장하거나 축소한 건 아니지?”
“그럼. 내가 기억하는 한은 전부 옮겼어.”
“휴우. 종현아.”
“응?”
“그냥 모른 척 있지 그랬어? 만일에라도 현상태 이사가 눈치챘으면 어쩌려고. 회장님마저 목표로 삼는 놈들인데 네 목숨 따위 신경 쓸 것 같아? 내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몰라. 그것도 아니잖아.”
고현호 상무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내게 더 중요한 사람은 고대성 회장이 아니라 최종현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목숨만 구하라면 난 고민도 없이 최종현을 선택한다.
“나도 처음엔 그랬지. 무섭기도 하고, 이석근 팀장이랑 친해서 배신하는 기분도 들었어.”
“그런데?”
“자꾸 눈앞에 형이 아른거려서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고. 직접 당사자가 형이 아닌 건 알지만, 모른 척이 안 되더라.”
“너. 혹시 내가 널 도와준 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솔직히 돈을 그냥 준 것도 아니고 빌려준 건데, 이럴 필요까지 없잖아.”
“내가 편하고 싶어서 이런 거야.”
“하아··· 답답한 놈. 한 가지만 먼저 물어보자. 지금 이 이야기,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적은 없지?”
“응.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누구하고 상의해? 당연히 없지.”
“그건 잘했다. 앞으로도 하지 마. 그리고 오늘 나와 이야기한 것도 그냥 잊어.”
“어떻게 하려고?”
“넌 알 필요 없어. 지금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게. 너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원래 하던 일만 열심히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기야 하지만···.”
“네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고마워. 날 이렇게까지 생각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네가 걱정돼서 그래.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잖아. 그냥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 총수를 노리는 일이라고. 깊이 연관되면 연관될수록 너만 위험해. 내 눈 똑바로 봐. 종현이 넌 이제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알겠어? 할 수 있지?”
나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두 손으로 최종현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응···. 할 수 있어. 그런데 정말 형은 괜찮은 거야?”
“당연하지. 날 노리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가 위험할 일은 없어.”
“그럼 다행이고.”
“그래. 그리고 내가 연락할 때까진 앞으로 나랑 연락도 하면 안 돼. 서운해도, 궁금해도 당분간 서로 모른 척하자. 일이 끝나면 내가 먼저 연락할 게.”
“일이 끝나면?”
“몰랐으면 모를까 알았으니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지. 아무튼, 그렇게만 알아둬. 자. 이제 집에 가자. 그리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후 잠을 자는 거야. 그리고 오늘 일은 모두 잊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
최종현을 보내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가기 시작했다.
일단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결론은 단순명료하다.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현상태 이사의 계획을 막아야 한다. 가장 좋은 건 당장 그들의 계획을 까발리는 방법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일단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데 있는 거라곤 최종현의 증언이 전부다. 녹취록은 물론이고 사진이나 문서로도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걸 가지고 괜히 어설프게 까발려봐야 그들이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을 하면 그만이다.
서로 적대적 관계에서 증거 없는 폭로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인신공략에 지나지 않는다. 괜히 위험을 무릅쓴 최종현의 입장만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이처럼 지금 내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는 내부고발자인 최종현의 안위다. 나를 위해 자신을 아끼는 직장 상사의 비밀을 폭로한 건데 보답은 못 할망정 뒤통수를 때릴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위험 함정을 파놓고 그들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다. 문제는 우리 측 사람이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고 상대편만 완벽하게 잡을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달칵.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조수석 문이 열렸다.
“들었지?”
“네”
윤권이었다. 종현이 몰래 전화를 걸어 차 안 상황을 모두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 녀석의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사실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석근 팀장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최종현 대리에게 그런 중요한 사실을 털어놨는지 그게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게. 아마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최종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석근 팀장은 최종현을 많이 신뢰했던 게 분명하다. 물론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지만 나와의 관계를 몰랐던 게 그의 실수였다.
“결국 이석근 팀장은 큰 비밀을 감당할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그건 아닐 수도 있어. 고평호 상무의 최측근까지 된 사람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잖아?
현상태 이사가 그런 것도 알아보지 않고 이석근 팀장에게 손을 내밀진 않았을 거야. 그보다는 여자가 문제였던 것 같아. 한때 사랑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차갑게 버렸던 여자에게 다시 상처를 준다는 게 자신의 죄책감을 건드렸을 거야. 여자가 그에겐 일종의 역린이었던 셈이지. 평소엔 차갑고 냉정해 보이지만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사람. 이석근 팀장이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최근 들어 고현호 상무님의 약진이 그들을 조급하게 만든 모양이군요.”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건 너무 뜬금없어.”
“그런가요?”
“그럼. 이런 극단적인 수단은 최후에 몰렸을 때나 쓰는 거라고. 오십 보 백 보인 경우에 쓰면 안 되지. 실패하면 끝인데. 음. 아니다. 그들이 그런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게끔 만든,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그건 나도 아직 모르겠어.”
“어쨌든 사실 확인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방법이 있어?”
“광우 형님에게 부탁해서 이석근 팀장의 옛 연인이었다는 사람을 취조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뭐? 취조? 그런 건 너무 위험해. 사랑에 빠진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 변수가 너무 많거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 앞에 맹목적으로 변하는 건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굉장히 흔히 있는 일이다.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절대 그런 불확실성에 기댈 수 없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배신당한 사람이 얼마나 차갑고 무섭게 돌변하는지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배신당했다는 걸 깨닫게만 해준다면 수월하게 협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럴듯하긴 하네. 그런데 괜찮은 방법이 있어?”
“방법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자리를 마련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주면 됩니다. 이미 한 번 배신을 당해본 여자라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흔들릴 겁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우리가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어. 회장님까진 몰라도 최소한 고현호 상무와 고진성 부회장님에게는 보고를 드려야 해. 고현호 상무는 괜찮은데 고진성 부회장님은 분명 경찰 개입을 반대하실 거야. 너도 한번 생각해봐라. 차기 총수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제거하려던 비정한 아들. 그런 콩가루 같은 일이 동지그룹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어떨 것 같아?”
“여론이 안 좋아지겠죠?”
“그렇지? 기업은 이미지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패륜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겠어? 그러니까 일단 광우를 비롯한 경찰의 개입은 곤란해.”
============================ 작품 후기 ============================
대기업의 차기 총수를 노리는 세력이 벌이는 일 치고는 참 궁색합니다. ㅠㅜ
이렇게 긴장감 하나 없이 뻔하게 말고 좀 더 긴박하게 쓰면 좋을 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