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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91화 (391/424)

0039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회의실 안은 금세 눈폭풍이라도 휘몰아칠 것처럼 차갑게 얼었다. 고대성 회장의 발언에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고현호 상무의 얼굴빛도 그리 좋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지금의 발언이 오히려 자신에게 나쁘면 나빴지 절대 좋지 않으리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 추측은 자존심이 상한 듯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평호 상무만 봐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고대성 회장은 공개된 장소에서 매를 드는 것보다 더 혹독한 방법으로 그의 둘째 아들에게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고평호 상무에게는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었다.

“아버지!”

꼬박꼬박 회장님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아버지로 바뀌었다. 그만큼 고평호 상무의 평점심이 흐트러졌음을 의미했다.

“어허. 누가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부르라고 했더냐?”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래.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무리 그래도 후계자를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건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 어째서?”

“현호가 아니 고현호 상무가 그룹을 위해서 일한 지가 얼마나 됐습니까? 동지랜드부터 계산한다고 해도 길어야 삼 년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건 고작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호가 미국에서 편하게 공부하고 있을 때, 그때부터 동지그룹 발전을 위해 헌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노력 덕분에 동지 중공업이 1위 자리에 올랐고요. 그런데 아주 잠깐 안주했다고 후계자 자격이 없다니요. 그럼 지금껏 최선을 다한 저의 노력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까?”

고평호 상무는 정말 억울했다. 10여 년 동안 불철주야 노력해왔는데, 고작 1년 반짝한 막내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미치도록 억울했다. 평정심은 완전히 깨졌고 얼굴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대놓고 드러냈다.

”안주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안주라는 것도 결국은 회장님의 표현입니다. 전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개구리가 점프 직전 잠시 웅크리는 걸 보고 안주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저 또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말이 좋아 새로운 도약이지. 보여준 게 없지 않으냐. 동지 중공업을 빼면 너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야?”

“지금의 동지 중공업을 키운 게 바로 접니다. 그걸로 부족합니까?”

“암. 부족하지. 부족하고말고. 그렇게 동지 중공업이 자랑스러우면 같이 살면 되겠네.”

“네?”

“같이 살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동지 중공업을 키운 것에 만족한다면 네 깜냥이 거기까지라는 의미다. 다른 말로 절대 그룹을 운영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래서 내가 지금 네게 제안을 하는 거다. 네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동지 중공업을 물려주마. 이 정도면 만족스럽겠지?”

“전혀요. 대체 뭐가 만족이란 말입니까? 제가 동지 중공업을 키운 건 동지 중공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 그룹과 회장님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물러나라니요. 절대 그렇게 못 합니다.”

고대성 회장의 도발에 분노한 고평호 상무의 눈빛은 넓은 회의실을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그러나 아들의 그런 반항적인 눈빛에도 고대성 회장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듯 옅은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한편 곁에서 아버지와 형의 대립을 지켜보던 고현호 상무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지금 고대성 회장이 어떤 마음으로 고평호 상무를 도발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지금 그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다. 그리고 담담히 지켜볼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벼랑 위를 다시 기어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

처절하게 기어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즐거워할 사람이 고대성 회장이었다. 오르다 안 되겠다 싶어, 형제들끼리 서로 물어뜯으려 해도 그는 웃으면서 지켜볼 사람이다. 고현호 상무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언제나 냉혹하고 잔인한 그런 심성에 소름이 끼칠 때가 많았다.

“절대 그렇게 못 한다? 그럼 어쩔 셈인 거냐? 혹시 내게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설마요? 제가 어찌 대 동지그룹 회장님에게 반항을 하겠습니까? 그저 기회를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고 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모습이 회장님 눈에는 안 보이십니까?”

“기회를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고 빌고 있다? 하하하. 지금 네 모습이 그런 모습이란 말이지. 좋다. 그럼 기회를 주도록 하지. 억울하지 않게 기간도 넉넉하게 주마. 반년! 반년이면 충분하겠지? 반년 안에 내게 가능성을 보여라. 아니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성장원동력을 보여라.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같은 프로젝트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골든타운 같은 작지만 알찬 블루오션이라도 개척해 보이거라. 그럼 네게 진짜 기회를 주도록 하마.”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곳에 참석한 모든 이사님들이 증인이 되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고대성 회장은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골든타운 이야기를 꺼내며 고평호 상무를 자극하는 일을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잠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은 고평호 상무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두 부자의 대결을 지켜보던 현상태 이사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

“차장님.”

“어, 왜?”

“혹시 현상태 이사 아세요?”

고현호 상무와의 대화를 곱씹던 나는 고민 끝에 동지그룹 최고의 소문통(?)이라고 자찬하는 조기훈 차장부터 찾아갔다. 자화자찬의 경향이 조금 있지만, 지금껏 옮긴 소문 대부분은 신빙성이 높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가끔 소문에 너무 빠져 음모론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당연히 알지. 그런데 그 양반은 왜?”

“그냥 일반적으로 알려진 현상태 이사 말고요.”

“갑자기 찾아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일반적으로 알려진 현상태 이사 말고라니?”

“혹시 들어본 적 없으세요? 고평호 상무가 가장 골치 아파했던 정적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

“쉿!”

“갑자기 왜 그래세요.”

“일단 조용히 해.”

조기훈 차장은 별생각 없이 내뱉은 이야기에 놀란 듯 목소리를 낮추고, 마치 누군가 주변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조심스레 두리번거렸다.

“아. 진짜. 여긴 차장님 사무실이잖아요. 누가 지켜본다고 그러세요?”

조치훈 차장의 사무실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라서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저렇게 호들갑을 떨며 유난스러운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오랜만에 음모론이 발명한 것 같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항상 조심하는 버릇을 들여서 나쁠 것 없어. 그런데 현상태 이사에 대한 소문은 누구에게 들었어? 그거 꽤 쉬쉬하는 소문이라 들어본 사람 별로 없을 텐데.”

“상무님이요.”

“고현호 상무님이? 음···. 하긴. 소문을 들었다면 상무님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지.”

“정말 그런 소문이 돌아요?”

“사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는 거 아니겠어?”

“근거는 있고요?”

조기훈 차장은 확신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야만 했다.

“동지 중공업의 주력이 뭔지 알지?”

“아무래도 조선소 사업 아니겠어요?”

“혹시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월성 조선소라는 곳이 있었어.”

“아··· 들어본 것 같아요. 예전에 신문기사에서도 본 것 같은데 작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조선소라고.”

“그래. 바로 거기야. 기술력 하나만큼은 동지 중공업보다 낫다고 평가받던 곳이었지. 그러니 고평호 상무도 월성 조선소가 탐이 났겠지.”

“그래서요?”

“처음에는 신사적으로 나갔어. 거액을 안기며 조선소를 넘기라고 했지. 그런데 거기 사장이 엔지니어 출신이야. 장인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거액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그러자 화가 난 고평호 상무가 태도를 바꿔서 강압적으로 나갔어. 사람을 보내 협박을 하기도 하고, 동지그룹까지 동원해 자금을 틀어막고. 그런데도 월성 조선소 사장은 자기 회사를 동지 중공업에 안 팔았지. 어떻게 보면 오기였던 것 같아. 죽으면 죽었지 동지 중공업에는 회사를 안 판다. 이런 마음이었겠지.”

대충 눈에 그려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슬픈 이야기이기도 했다.

“결국 회사가 망한 건가요?”

“아니. 사장 인망이 좋았는지 여기저기서 도와주는 사람들 있었어. 그 덕분에 어떻게든 먹고살 정도는 됐나 봐. 월성 조선소는 힘들었지만 안간힘을 다해 버텼고 그러자 기자들도 눈치를 챘어. 여론이 안 좋아지자 동지 중공업도 어쩔 수 없이 월성 조선소를 압박하는 일을 그만뒀어. 그런데 그게 오히려 월성 조선소 사장에게는 불행이었어.”

“그럼 설마?”

“그래. 그 설마가 맞아. 동지 중공업이 월성 조선소에서 손을 떼고 두 달인가 있다가 그곳 사장이 갑자기 사고로 죽은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들이 동지 중공업에다가 월성 조선소를 팔았어.”

“당연히 동지 중공업이 의심받을 상황 아닌가요?”

소름 끼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일단 증거가 없어. 깨끗해. 완벽한 사고였어. 그리고 동지 중공업이 월성 조선소에서 손을 떼고 난 뒤의 일이잖아. 무엇보다 의심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월성 조선소 사장의 아들이, 자기가 먼저 동지 중공업을 찾아가 회사를 넘겼다는 거야. 당사자의 아들이 그래 버렸으니 누구도 의심할 수 없지. 그래서 그 당시엔 여러 가지 설이 많았어. 동지 그룹이 배후다. 우연한 사고일 뿐이다. 그 아들이 돈을 노리고 저지른 살인이다. 등등.”

내가 그 사람의 아들이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면 무서워서라도 먼저 찾아가 회사를 넘겼을 것 같다. 월성 조선소 사장의 가족들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절망감이 느껴져 입맛이 썼다.

“휴우···. 그냥 답답하네요. 설마 그런 일까지 벌였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시기가 너무 절묘하고. 그런데 그런 일이 두 번이나 더 있었단 말인가요?”

“음. 하나는 거의 비슷한 패턴인데, 다른 하나는 평소 앓고 있던 지병으로 죽은 거라 의견이 좀 분분해.”

“그래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그 모든 배후에 동지 중공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고요. 그런데 왜 고평호 상무가 아니라 현상태 이사가 진짜 배후로 의심받는 겁니까?”

“지금껏 고평호 상무가 사업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경쟁자를 만났을 거야. 그러니 미치광이 살인자가 아닌 이상 경쟁자라고 무조건 사람을 죽일 순 없었을 거야.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우연이 하나 발생해. 하필 현상태 이사가 책임자로 있던 프로젝트에서만 문제가 되던 사람이 사고로 죽은 거야. 그것도 세 번씩이나. 어때? 소름 끼치지 않아? 우린 어쩌면 소시오패스를 적으로 두고 있는 건지도 몰라.”

“······”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한기에 팔을 감싸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약간이라도 긴장감이 느껴지시나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ㅠㅜ

이따 자정에 한 편도 올리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어쨌든 노력 해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선추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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