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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82화 (382/424)

0038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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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는 엄청난 이슈를 불러왔다.

선거가 있기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대한당이 민국당을 압도했다. 보궐선거가 열리는 13개 지역 중 대한당이 10곳에서 앞섰고, 민국당이 앞선 건 고작 1곳이었다. 나머지 2곳이 무소속임을 감안하면 1/10도 안 되는 초라한 성적이었고 때문에 당대표였던 조일봉의 사퇴론까지 대두되었다.

그런데 민국당 서울시장 후보인 박동호가 사퇴하고 야권통합을 이뤄내면서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결과는 대한당 3, 민국당 7, 무소속 3. 특히 무소속 중 2곳은 야권통합으로 후보가 단일화된 지역이기 때문에 사실상 압도적인 성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정도의 대승은 조용히 뒷공작을 펼친 동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동안의 선거에서도 야권통합은 있었다. 그리고 야권통합의 효과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토록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친 건 이번 보궐 선거가 처음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친일논쟁이었다. 처음 논쟁이 있었을 때 대한당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김이용 후보를 내쳤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장이라는 상징성을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울시장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대한당은 어떻게든 김이용 후보 일가를 미화하려고 애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김두성 전 회장(김이용 후보의 조부)의 친일행적에 대한 증언들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대한당이 뒤늦게 김이용 후보를 내치려고 했지만, 상황은 이미 여야대결에서 친일 대(對) 반일 구도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친일 이미지까지 뒤집어쓴 대한당이 보궐선거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히려 3자리라도 차지한 게 기적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였다.

대한당이 이번 보궐선거의 패자라면, 최고의 수혜자는 역시 강현순 후보였다. 서울시장 후보에서 반일의 기둥, 야권의 기대주, 대권의 다크호스로 단숨에 발돋움한 것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차기 대권에 도전한다고 해도 충분히 해볼 만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보궐선거에서 민국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작으나마(?) 힘을 보탰던 골든타운도 꽤 괜찮은 수혜자가 되었다.

***

이대근씨는 올해로 딱 80세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왔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고민이 많다. 가끔은 답답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연고가 서울인 그에게 돌아갈 고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면부지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시골로 내려가 사는 건 너무 외로울 것 같아 싫었다.

전원주택이 많은 곳에서 살아볼까 생각도 했다. 어차피 남는 게 돈인데 근사한 저택을 짓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이내 접고 말았다. 괜찮다 싶은 전원주택 마을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이대근씨보다 최소 10살 이상 젊었다. 게다가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 걸 꺼리는 분위기도 있었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도 위치가 문제였다. 아무리 외져도 일하는 사람이야 숙식을 제공하며 부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보다 아플 확률이 훨씬 높은 나이에, 근처에 변변한 병원 하나 없는 곳에서 사는 건 부담이었다.

전원주택에서 살면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어려웠다.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는커녕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해도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은 나가야 하니, 도시에서 너무 먼 곳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도 경로당 말고는 마땅한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나이와 상관없이 즐겁게 살아보려 해도 마땅한 공간이 없고, 주책없다며 손가락질할 주변 시선이 신경 쓰였다.

사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자식들이 있지만 다들 바쁘다며 얼굴도 보기 힘들고, 손자들도 머리가 컸다고 자기들끼리 놀기 바빴다. 돈은 많지만 뭔지 모르게 외롭고 공허한 삶, 그게 요즘 이대근씨의 모습이었다.

- 미선씨. 미선씨. 문 좀 열어봐요.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 싫어요. 대호씨. 전 더 이상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 돌아가줘요.

- 그럴 순 없어요. 미선씨가 전부 오해하는 겁니다. 해인이는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예요. 믿어주세요. 정말 오해라고요.

- 해인씨 때문이 아니에요. 그냥 제 마음이 변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이러지 마세요.

- 거짓말하지 말아요. 당신 나 아직 사랑하잖아. 내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리잖아.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고. 그러니까 마음이 변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날 보낼 생각하지 마요.

- 우··· 웃기자 마요. 누가 떨린다고 그래요. 내 심장은 당신을 향해 뛰지 않아요.

- 그럼 문을 열고 증명해봐요. 두 눈으로 날 똑바로 보고, 당신 심장이 날 향해 뛰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런 미련없이 돌아갈게요.

“어휴. 저놈의 사랑 타령. 임자. 저게 재미있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온 이대근씨. 그런데 다녀왔다는 인사를 해도 그의 부인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TV에 빠져있자 심술이 났다.

“재미있으니까 보죠.”

“허구한 날 사랑 타령만 하는데 그게 재미있다고?”

“사랑 타령을 하니까 재미있는 거죠. 이 세상에 사랑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디 있다고.”

“뻔하니까 그러잖아. 뻔하니까.”

“이 양반이 잘 놀다 와서 왜 이러실까?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지 괜히 시비 걸지 마요. 정 심심하면 서재에 가서 당신 좋아하는 고상한 책이나 보시구려.”

“크흠. 내가 언제 시비는 걸었다고.”

부인인 오순이씨가 더는 대꾸를 하지 않고 TV를 보자, 이대근씨도 은근슬쩍 소파에 앉았다.

“임자. 이 드라마 제목이 뭐랬지?”

“알아서 뭐하게요? 사랑 타령하는 뻔한 이야긴데?”

“이게 굉장히 인기 있는 드라마라고 했지 않아? 뻔해도 우리 손자들이랑 이야기하려면 참고 봐야지.”

“하여간 핑계는. ‘내 약혼녀는 여우’라고 내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구먼.”

“아. 맞다, 맞아. ‘내 약혼녀는 여우’라고 했지. 그런데 저긴 어디야?”

부인 옆에서 조용히 드라마를 보던 그는, 남자 주인공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간 여자 주인공이 다니는 새로운 직장에 관심을 보였다.

“드라마에서도 자세한 설명은 안 나와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종의 실버타운이라고 하던걸요?”

“실버타운? 우리나라에 저렇게 좋은 실버타운이 어디 있다고?”

모르고 보면 유명 호텔에서 운영하는 리조트라고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최고급으로 꾸며진 편의시설들. 그런데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 대부분 노인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젊은 사람도 이용객이 아니라 그곳 직원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저런 곳을 몰랐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들었다.

“아직 만들어지진 않았대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만들고는 있고?”

“그야 저도 모르죠. 자세히 안 알아봐서.”

“혹시 저거 사기는 아니겠지?”

“설마요? 동지그룹에서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사기는 아니겠죠.”

“그래? 동지그룹이라고? 확실한 거지?”

“저도 들은 이야기라 확실한 건 아니죠.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시구려.”

“내가 알아보면 가서 살 생각은 있고?”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저렇게 좋은 곳이라면 못 갈 것도 없죠. 시설도 좋지. 작은 음악당과 영화관도 있어서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지. 의료진하고 시설도 최고로 갖출 예정이라고 하던 걸요.”

“알았어. 내가 지금 당장 알아볼게. 여보세요. 응. 그래 둘째냐. 그래. 그래. 나랑 네 엄마야 항상 잘 있지. 혹시 말이야. 너도 ‘내 약혼녀는 여우’라는 드라마 봐? 아니 그건 아니고. 거기서 나오는 실버타운이 있거든. 거기 좀 알아봐봐. 아니, 그건 아니고. 당장 살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알아나 보려고 그러는 거지. 그래. 그러니까 네가 먼저 꼼꼼히 알아보란 말이야.”

***

“팀장님. 큰일 났어요.”

“왜? 무슨 일인데?”

고현호 상무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추미래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골든타운 2차 모집 언제부터 하느냐고 자꾸 문의가 들어와서 업무를 볼 수가 없어요.”

“아. 진짜. 난 정말 큰일 난 줄 알았잖아. 미래씨. 준호하고 사귀는 건 좋은데 사소한 일에 호들갑 떠는 건 제발 배우지 말라고. 간 떨어질 뻔했잖아.”

“호호호. 놀라셨으면 죄송해요. 그렇지만 문의 전화가 장난 아닌 걸요.”

“에이.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예전에 DJ마트 프로젝트를 할 때 기억 안 나? 완전히 전화가 폭주했었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라요. 막무가내인 분들이 너무 많다고요.”

“막무가내? 어떤 식으로?”

“‘내가 누군지 아느냐? 검찰청에 있는 누구누구가 내 아들이다.’ 막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분들은 흔하고요. 다들 부자라서 그런지 가끔은 계약금으로 두 배를 내놓을 테니 무조건 받아달라고 우기는 분도 계세요. 나이 많으신 분들이라 단호하게 끊어낼 수도 없고, 어떡하죠?”

OO시와 MOU 계약만 체결하고 아직 첫 삽도 뜨지 않은 상황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차 회원을 모집했다. 1차 회원 등록 시 몇 가지 혜택을 내걸긴 했지만 계약금을 10억 원으로 책정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모집 인원의 반만 채워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반나절 만에 마감. 인기 드라마의 PPL 위력은 역시 막강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상류층을 위한 제대로 된 실버타운이 없다는 점과 동지그룹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신뢰성도 골든타운의 흥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2차 회원 모집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고 하니, 행여나 지난번에 일어난 아이두 사태가 반복되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진상 좀 부리더라도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 절대 만만한 사람들 아니야. 그러니까 괜히 트집잡힐 일은 만들지 마. 계약금으로 나가는 10억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알겠어요. 그런데 전화응대를 하기엔 사람이 너무 부족해요. 지난번 DJ 마트 프로젝트 때처럼 고객상담센터를 활용한 것처럼 전화 상담 전담반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예전 DJ마트 프로젝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 때, 동지마트 고객상담센터 직원들을 활용해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한 적이 있었다. 추미래는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내게 건의를 한 것이다.

“전담반을 만들어야 할 정도야?”

“그럼요. 꼭 상류층이 아니라도 문의 전화가 와요. 그리고 평범한 형편인 분들은, 당신들을 위한 실버타운은 만들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를 주시고. 또 어떤 분들은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비싸냐며 항의전화를 하는 분도 계세요.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화를 내시는 분도 있고요.”

“어휴. 그런 전화까지 온단 말이지? 알았어. 그럼 그 일은 미래씨가 알아서 진행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 작품 후기 ============================

승승장구하는 고현호 상무.

게다가 예비 장인은 유력한 대권후보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동지家의 둘째 고평호의 선택은?

아직 감이 안 잡히는 분들을 위해,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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