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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81화 (381/424)

0038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가요? 여사님?”

“음. 아니요.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가요.”

한참을 생각하던 최순애 여사는 잠시 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실 제갈현과의 만남으로 인해, 강현순 후보 측은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첫째, 민국당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민국당 후보의 사퇴를 받아낸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 동지그룹이다. 민국당을 위해 아이두를 내준다면, 우리는 대한당과 척을 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적이 될 관계라면 차라리 강현순 후보와 민국당이 이번 보궐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확실하게 도와주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최순애 여사는 아이두만 쏙 빼먹고 나머지 제안은 거절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이두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고현호 상무는 그것과 상관없이 무조건 강현순 후보를 돕고 싶겠지만, 어쨌거나 오늘 협상은 무조건 내가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둘째, 만약 우리가 아이두를 내주지 않는다면 강현순 선거캠프는 제갈현의 제안을 거절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민국당의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 민국당은 야권통합 실패의 책임을 강현순 후보에게 떠넘길 게 뻔하다. 그리고 그런 식의 책임 공방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분명한 악재로 작용해,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그녀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여사님이 우리 상무님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으실까 걱정했거든요.”

작심한 듯 내뱉은 말이지만 최순애 여사의 표정은 평온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못마땅한 듯 고현호 상무의 표정만 일그러졌다.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냥 다 퍼주고 싶겠지. 사랑하는 약혼녀의 집안이며, 절친한 친구의 집안이며, 어머니같이 고마운 분이 계신 집안이니 오죽할까?

하지만 고현호 상무의 실패는 동지마트의 실패와 같다.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수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후후후. 현호가 마 팀장님을 그토록 칭찬하는 이유를 알 것 같군요. 우리 현호 성격이 여려서 항상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든든한 분이 계셔서 마음이 놓여요.”

“저도 평소에는 냉정한 성격이 아닙니다. 단지, 행여나 정치논리에 휘말려 동지마트가 흔들릴까 그게 걱정돼서 이러는 겁니다. 고현호 상무는 수많은 동지마트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매사 신중해야죠.”

“그래요. 어렵게 결심해서 도왔는데 만약 우리가 선거에서 진다면, 그에 따른 후폭풍이 걱정되겠죠. 알 것 같아요. 동지마트처럼 큰 기업의 수장이니 막대한 책임감도 같이 따르겠죠. 내가 현호를 가족같이 생각해서 이번 일을 너무 편안하게 생각했나 봐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상무님에게 가족같은 분들이 계신다는 건 고마운 일이죠. 그냥 아랫사람의 노파심 정도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사실 아까는 마 팀장님 이야기가 프로파간다처럼 들려 마음이 불편했어요. 하지만 분명 남편의 신념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으니,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려요.”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닙니다. 대한당 김이용 후보 일가의 친일 행적을 우연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춰내면 그만이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건 ‘우연’입니다. 만약 후보님 선거캠프에서 그 사실을 건드린다면 그건, 여사님의 말씀처럼 일종의 프로파간다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후보님과 전혀 연관이 없는 곳에서 그 사실을 건드린다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어떤 곳에서요?”

“제가 찾아봤는데, 과거역사 연구소가 가장 적격이었습니다.”

“과거역사 연구소요? 거기가 뭘 하는 곳이죠?”

“알려지지 않은 친일파를 연구해서 그들의 행적을 공개하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유명(?) 친일파들도 많지만, 사실 조용하고 은밀하게 친일을 한 사람이 훨씬 많다. 심지어 그중에는 자신의 친일 행적을 덮고 오히려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는 인간도 있을 정도였다. 과거역사 연구소는 그런 사람들의 두 얼굴을 밝혀내는 곳이다.

“그런 곳이라면 확실히 우리와 상관없겠네요. 그런데 과거역사 연구소에서 김이용 후보 일가의 행적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긴 있는 건가요?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 같은데.”

“그거야 어렵나요? 그냥 발표하도록 만들면 됩니다.”

“어떻게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웃음만 지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자세한 건 묻지 않겠어요. 하지만 불법적인 일은 아니죠?”

“물론입니다. 모든 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진행됩니다. 그런 문제는 전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과거역사 연구소를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은 문제다. 보통 그런 곳의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자금이다.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으면 좋으련만, 정부 또한 일본과의 외교문제 등의 핑계로 친일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는 잘 지원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니 동지마트와 전혀 연관이 없는 곳을 통해 합법적으로 연구비만 지원하면 된다. 물론 연구비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김이용 후보 이야기를 은근슬쩍 흘릴 예정이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냥 이번 연구성과를 보고 앞으로의 자금지원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말만 살짝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뜻을 전달할 수 있다.

최순애 여사는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보다 훨씬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리고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차갑게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키고, 생각이 정리된 듯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좋아요. 그런 방법이라면 반대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미안해요. 도움을 준다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서.”

“아닙니다. 솔직히 골든타운 프로젝트는 고현호 상무와 제게도 새로운 기회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어려운 결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

[대한당 김이용 후보 일가의 두 얼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위인일까? 독립운동가의 탈을 쓴 인면수심의 친일파일까? 이처럼, 그동안 김이용 후보의 조부인 김두성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극단적이었다. 그런데 과거역사 연구소는 오늘 오전 그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다.

바로 일왕에 바치는 충성서약이 적힌 혈서가 바로 그것이다. ···중략···

한편 김이용 후보 측은 충성서약서에 정확한 주어가 빠져있다면서, 해당 서약서에서 언급한 ‘왕’은 일왕이 아니라 조선의 왕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번 충성서약서 내용을 날조해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사람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김이용 후보와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강현순 후보는, 선거가 흑색선전으로 변질되는 걸 경계하며, 중요한 건 현재라며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김이용 후보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면 문제 될 것 없다고 짧은 논평을 남겼다.]

- 확실한 것도 아닌데 지켜봅시다. 서약서에서 등장한 왕이 진짜 조선 왕이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ㄴ 서약서 서명에 남긴 이름이 김두성의 일본식 이름이라는데, 조선 왕에게 바치는 혈서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ㄴ 김이용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 그런데 강현순 후보는 뭐임? 문제될 게 없다니 완전 웃긴 놈이네. 깨끗한척하더니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었어.

ㄴ 이분 뭘 모르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현순 후보는 저런 말을 할 자격이 됨. 강현순 후보 증조부가 강대근 선생님이심. 조부는 강정훈 장군이고. 조상의 후광을 보기 싫다고 그 사실을 밝히지도 않았음.

ㄴ 진짜 강대근 선생님이 증조부임?

ㄴ 언론에다가 떠들지 않아서, 아는 사람은 다 알던 사실.

ㄴ 으악. 강현순 후보가 강대근 선생님의 증손자라니. 난 몰랐어. 이번 선거 무조건 강현순 후보한테 투표한다. 독립 운동가의 자손이 잘되는 거 좀 보자.

ㄴ 뭐야. 아버지 연합에서는 강현순 후보 보고 빨갱이라더니, 강정훈 장군 손자였어? ㅋㅋㅋㅋㅋㅋㅋ

***

- 2011년 보궐선거 투표가 마감되었습니다. 먼저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지역이죠. 서울시 출구조사 결과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대한당 김이용 후보 28.1%, 무소속 강현순 후보 68.9%로, 강현순 후보가 40%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로 앞섰다는 소식입니다. 표준오차가 ±2.5인 것을 고려해도 뒤집을 수 없는 차이입니다. 이 소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한동안 떠들썩했던 친일 행적 논쟁으로 인해,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40% 이상의 차이가 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995년 6월 27일 첫 서울시장 선거 이후 1위와 2위의 표차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난 건 처음입니다. 그만큼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 강현순 후보의 경우 이미 차기 대권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출구조사 결과가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 지금 야권에는 뚜렷한 대권 후보가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이토록 압도적인 선거 결과가 나왔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특히 그동안 선거 경험이 없음을 들어 강현순 후보가 대권에 나서는 건 ‘시기상조다.’라는 주장하는 세력들에게 일침을 가했어요. 한 번도 선거 경험이 없는 강현순 후보가 이토록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으니 말이죠.

- 크흠. 정정 말씀드립니다. 지금 발표는 출구조사 결과로 아직 개표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방금 오강우 논설위원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표현은 ‘승리가 예상된다.’로 정정하겠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OO시 결과입니다. 민국당 조이봉 후보 51.3%, 무소속 박도식 후보 47.1%로, 조이봉 후보가···.

“와. OO시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지원을 해줬는데도 별 차이가 없네요.”

“그러게 고작 4%밖에 차이가 안 날줄이야. 오차범위가 ±2.5라면 뒤집힐 수도 있겠어.”

“어휴. 그런 불안한 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보궐선거 당일 나와 고현호 상무는 일찌감치 강현순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와 방송국별로 총 6개의 TV를 설치해놓고 선거결과를 실시간으로 시청 중이었다.

김이용 후보의 친일논쟁은 김학수 부장과 내가 치밀한 계획하에 만들어낸 작품이었고, 덕분에 투표 전부터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를 보였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다.

다행히 서울시장 선거는 예상대로 결과가 나올 것 같아 마음이 놓였지만, OO시 현황은 우리를 다시금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버릇을 들여야지. 그래야 충격이 덜 한 거야.”

“말이 씨가 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어요? 그러니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지켜보자고요.”

“어쨌든 OO시가 대단한 건 사실이잖아. 우리가 지원을 안 해 줬으면 조카 성추행범이 국회의원이 됐다는 거잖아. 으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역시 정치판은 어렵네요. 아이두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골든타운까지 지원해줬는데도 박빙이라니. 솔직히 전 조이봉 후보가 최소 10% 이상은 앞설 줄 알았거든요.”

“그러게 말이야. 그러니까 오늘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자. 경영은 100원을 집어넣으면 1,000원이 되든 10원이 되든 어쨌거나 돈이 나오는데, 정치는 돈은 사라지고 대신 똥이 나올 수도 있어서 싫어. 차라리 로또를 사겠어.”

고현호 상무와 나는 그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나 주고 받으며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루할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개표가 진행됐지만 그 몇 시간이 우리에겐 손에 땀을 쥐어야 할 정도 긴장된 시간이었다.

- 현재 시각 오후 11시 30분. 개표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개표율은 95% 넘었습니다. 총 13개 지역 중 12개 지역에서 당선자가 확정되었습니다. 서울시 무소속 강현순 후보 당선 확정, XX시 민국당 XXX 후보 당선 확정. ···중략···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지역도 당선자가 나왔습니다. 가장 박빙이었던 OO시. 민국당 조이봉 후보 당선 확정.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해하실까봐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 정치적 성향은 중립에 가깝습니다. 소설 속 정치 이야기는 현실의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단지 기득권 세력과 신흥 세력간의 대결을 보여주기 위해 가상적인 여야대결 구도를 만든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특정 정당을 가리키는 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물론 보수 진보 상관없이 친일파는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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