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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78화 (378/424)

00378  소제목 추후 결정  =========================================================================

“뻔뻔하다고?”

“그럼요. 이번 보궐 선거에서 제일 난처한 곳이 민국당입니다. 서울과 OO시에서 고전하고 있는 게 타격이 크죠. 특히 서울은 지지율 1위가 대한당 후보입니다. 그런데 민국당의 박동호 후보는 1위를 위협하기는커녕 2위인 강현순 변호사님과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죠. 시기가 문제지 야권 통합은 정해진 수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렇다면 민국당이 아이두 유치를 원하는 지역은 OO시겠군.”

“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데 상무님. 정말 형수님 어머님의 부탁을 들어드릴 생각입니까? 이건 그냥 예비 장모와 사위 사이에 오가는 정겨운 부탁이 아닙니다. 정치적 사안이 개입된 겁니다. 누군가의 편을 든다는 건 누군가와는 적이 된다는 의미죠. 잘못하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알지. 잘 알아. 그런데 그 부탁 들어드리고 싶어. 어떻게 안 될까?”

어느 정도 예감은 했다.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면 회의를 중단하고 나를 호출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거 알지?”

“네. 장희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내게 어머니가 되어주신 분이야. 그분이 내게 처음으로 부탁을 하셨어. 웬만하면 들어드리고 싶어. 부탁해. 마 팀장.”

“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제가 고민할 시간은 좀 주세요.”

***

고현호 상무의 이야기에 따르면 강현순 변호사 집안과의 인연은 꽤 길었다. 강효령의 오빠이자 그 집 맏이인 강준원과 초등학생부터 친구였다고 하니 알고 지낸 것만 햇수로 30년이 넘어간다.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잘해준 게 아니라, 평소에도 병약했던 고현호 상무의 어머니를 대신해 30년 내내 그를 친아들 이상으로 살갑게 보살펴 준 사람이 최순애 여사라고 한다. 같은 어머니 배에서 나왔지만 위의 두 형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것도 어쩌면 그녀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들은 내가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상무님.”

“아니야. 그런데 정말 고민이 많았나봐? 얼굴이 정말 초췌해 보여.”

“그렇죠? 누구 덕분에 정말 징글징글하게 고민만 했습니다.”

이틀 동안 출근도 안 하고 고민만 하다가 왔다. 덕분에 생각은 정리할 수 있었지만 꼴이 거의 상거지에 가깝게 변했다.

“밥은 먹었고? 안 먹었으면 밥부터 먹자.”

젠장! 밥은 먹었냐니.

내가 이래서 고현호 상무를 미워할 수가 없다. 보통 사람같으면 마음이 급해서 본론부터 들으려 할텐데 그는 이렇게 사람을 먼저 챙긴다.

“됐습니다. 일단 보고부터 드리겠습니다.”

“정말 괜찮겠어?”

“네. 괜찮습니다. 정 걱정되시면 보고 끝나고 특등급 한우로 부탁드릴게요.”

“당연하지. 마 팀장이 원하면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줄 게.”

“그건 보고 끝나고 이야기하시죠. 제가 그제 말씀드렸죠. 정치에서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건 누군가와는 적이 되는 거라고.”

“그랬지. 물론 나도 인정하는 말이고.”

“강현순 후보를 돕는다는 건, 곧 민국당과 손을 잡는다는 의미고 다른 말로는 집권여당인 대한당과는 척을 지겠다는 의미입니다. 각오는 되신거죠?”

고현호 상무가 그걸 모르겠느냐만은 나는 우리의 선택으로 발생할 여파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물론.”

“사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야권통합은 대세가 될 겁니다. 민국당이 이런 식으로 거래 카드로 내밀 일이 아니죠.”

“하지만 그걸 거래로 내밀었다는 건, 욕을 먹더라도 끝까지 야권통합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협박이잖아.”

“맞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심보가 깔려있죠. 그러니 도울거면 그들이 죽지 않도록 제대로 도와야 합니다. 어차피 정치판에 끼어들기로 각오했다면 어설프게 한 발만 걸치는 것보단 전부를 거는 게 낫습니다. 대한당에서 한 발만 걸쳤다고 이해해주진 않을 테니까요.”

“어차피 미움받을 거 완전히 올인을 하자?”

“네. 물론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대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도 찾아보면 방법은 많습니다.”

“아이두를 설립하는 것 말고도?”

“아이두는 분명 괜찮은 파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두에 대한 중장기 플랜을 발표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은 논란만 가중시킬 겁니다.”

약속은 약속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기업이 고객과의 약속을 어기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더군다나 원인이 정치적 이유라면 역풍의 위험도 크다. 그걸 절대 그냥 지켜볼 대한당이 아니다.

“그렇지. 그래서 마 팀장에게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 거야.”

“억지로 짜낸다면 아이두 하나 정도는 OO시에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사해본 바로, 무소속으로 나온 박도식은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조카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도 살아남았는데 아이두 하나를 유치한다고 쉽게 무너질 리가 없습니다. 그곳 기득권 세력과 박도식은 일종의 카르텔처럼 단단한 유대감을 자랑한다고 하더군요.”

“카르텔? 어쩐지 그런 큰 스캔들을 터트려 놓고도 선거에 나온다고 했더니, 믿을 구석이 있었던 거로군.”

“정치판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이두로 표심을 유혹하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본 방법이 있는데 좀 황당하게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 팀장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

“진짜 황당하실 텐데. 저··· 그게 말입니다, 상무님.”

“그래. 괜찮아. 어서 이야기해.”

“그래서 말인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사업을 시작하자고? 크음···.”

믿는다더니 반응이 좀 뜨뜻미지근하다. 선거가 코 앞인데 갑자기 다른 사업이라니, 당연히 이럴 수밖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일이고, 여유가 생긴다면 꼭 실행에 옮기고 싶었던 아이템이었다. 원래는 이번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난 후,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완벽하게 기획서를 만들어 진행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아끼다가 똥 될 바에는 지금 꺼내놓는 게 낫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죠.”

“알지. 설마 상조 사업을 하자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여기서 무덤은 진짜 무덤이 아니라 노인을 상징하는 일종의 메타포라고 보시면 됩니다.”

“노인?”

“네. 노인. 아이두의 근간은 운동입니다. 스포츠를 통해 협동심을 키우고 호연지기를 기르며 거기에 외국어 교육까지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의 종합적인 성장발달을 도모하는 독자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아이두입니다. 그리고 D&Y 피트니스 센터 또한 당연하게도 운동이 가장 기본이죠.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대부분 생활스포츠가 근간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이쪽 분야라는 의미입니다.”

동지랜드나 동지마트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윤 스포츠센터와 손을 잡고 스포츠 분야로 노하우를 쌓아온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운동과 노인을 연계하자는 의미하자? 그런데 마 팀장. 노인들도 윤 스포츠센터나 D&Y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할 수 있지 않아?”

“상무님이 생각하는 노인과 제가 생각하는 노인이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상무님은 단순히 60세 정도 되시는 분을 노인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요즘 세상에 그 정도 나이면 중년에 가깝죠. 물론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건강 관리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상류층의 경우 60세는 절대 노인이 아닙니다. 80세 정도는 되어야죠.”

의학이 발전하면서 노인층은 점점 늘어나는 데 비해 실제로 노인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은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스포츠센터 또한 그곳을 이용하는 노년층은 많아야 70세 정도. 그 이상의 연령층이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는 건 거의 보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운동 방식 역시 달라져서, 젊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별도의 공간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 전체가 노령화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이가 80세 정도가 되면 아직 건강함에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나이에 운동은 무슨’이라는 식의 선입견이 팽배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80세 이상의 상류층? 아이두처럼 처음부터 상류층을 타깃으로 삼겠다는 거로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스포츠센터라도 만들자고?”

부자의 지갑을 여는 건 어렵지만 한 번 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노다지나 다름없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아직까진 좀 이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건 일종의 실버타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실버타운이 아니라 부자를 대상으로 한 아주 럭셔리한 상류층이 즐길 수 있는 실버타운. 일단 가칭으로 골든타운이라고 부르죠.”

“상류층 실버타운이라 골든타운? 작명센스하고는. 어쨌든,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상류층을 상대로 한 실버타운은 한국에도 있어.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곳 대부분은 편안한 노후를 대비한 곳이지, 건강한 노후를 책임지는 곳이 아닙니다. 편안하게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살더라도 활기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실버타운을 말하는 겁니다.”

“편안한 노후가 아니라 건강한 노후라. 오호. 썩 괜찮은 접근 방법이네.”

“혹시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아니. 어떤 영환데?”

“노인들의 성 문제를 다룬 영화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늙은 사람들이 성을 찾으면 망측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의 욕망은 비슷합니다. 노인이 무욕(無欲)할 거라는 건 선입견일 뿐입니다. 자신들이 노인이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버타운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생각한 ‘노인들은 이런 걸 원할 것이다.’라는 추측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지루한 경우가 많죠. 그래서 생각한 게 ‘건강한 노후’입니다.”

“재미있고 활력이 넘치는 프로그램으로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자는 뜻?”

“네. 그뿐만 아니라 시설은 모두 최고급으로 꾸미고, 최고의 의료진도 마련할 생각입니다. 상위 1%의 부유층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안락함을 제공하는 거죠. 아이두에서 확인하셨겠지만 상류층은 남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엽니다.”

내가 겪어본 부자들의 속성이다. 부자의 지갑을 여는 건 어렵지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거액을 내놓는 것도 그들이다.

“그래. 그건 인정. 하지만 고급 이미지의 실버타운과 어떻게 차별화하려고? 사람들 눈에는 거기가 거기처럼 보일 수도 있어.”

“고급 이미지를 저급으로 느낄만큼 차별화를 해야죠. 일단 거주하는 공간은 당연히 호텔급으로 꾸밉니다. 계열사인 동지호텔과 연계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리고 노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게이트볼 같은 운동 말고 훨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말입니다. 예를 들면 척추교정, 근력증대, 스트레칭, 마사지, 치매 예방 프로그램 등이 있겠죠. 그런 것들을 아이두 방식처럼 고급스럽게 제공하는 겁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려고? 그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

“우리에겐 윤 스포츠센터가 있지 않습니까? 윤승태 사장님의 모토가 바로 ‘요람에서 무덤까지’입니다. 전 연령층이 나이에 맞는 운동을 배우며 건강을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평생의 목표인 분이죠. 그래서 유아부터 노인까지 나이에 적합한 운동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 이야길 듣고 지금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겁니다.”

“그래? 좋아. 프로그램까지 준비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말 그대로 ‘타운’이야. 하나의 마을을 조성하는 거라고. 부자들을 위한 공간이니 수지타산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는 기한이야. 3개월 만에 만들 수 있는 규모가 아니잖아.”

이것도 충분히 고민했던 문제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겁니다. 성공이 확실한 아이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골든타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문제는 상무님 말씀처럼 기간이겠죠.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경제적 파급효과입니다. 큰 건물 하나만 있으면 되는 아이두와 하나의 작은 마을을 만들어야 하는 골든타운. 둘 중 어떤 곳이 더 그 지역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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