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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70화 (370/424)

0037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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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옹기 이사가 나를 초대한 곳은 한옥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음식점이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도착해 식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그냥 평범한 음식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절하게 들려오는 가야금 산조 소리는 차치하더라도 여기저기서 들리는 여자들의 웃음소리는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요정’이라는 걸 알게 해줬다. 지금은 한정식집으로 변한 삼청각이 한때 유명한 요정이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안내를 받으며 길게 뻗은 정원수 사잇길을 지나면서 촌놈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문득 어젯밤 고현호 상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교촌? 당연히 알지. 꽤 유명한 곳이야.’

‘오. 상무님이 아실 정도면 꽤 맛집인가 보죠?’

‘맛집? 하하하. 뭐. 틀린 말도 아니지. 맛볼 수 있는 게 꼭 음식만이 아니라는 게 다른 점이지.’

‘음식만이 아니라고요? 그럼 뭐가 또 유명한데요?’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가보면 알 거야. 박옹기 이사라고 했나?’

‘네.’

‘고작 계열사 이사가 거길 하루 만에 예약했다 이거지? 그것참. 다른 백이 있는 건가? 어쨌든 거기로 마 팀장을 초대했다는 건 그만큼 마 팀장을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야.’

‘높이 평가요? 아닐 걸요? 분명히 제가 만만했을 겁니다. 제가 친형님처럼 생각한다고 했는데도 우찬 형님을 함부로 대하는 걸 보면요.’

친형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 한 건, 내게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내 앞에서 우찬 형님을 무시한다는 건 나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탐욕에 눈이 어두운 박옹기 이사는 모르는 듯했다.

나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우찬 형님을 닦달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생길 정도로 잘해줬어야 했다.

‘이야. 우리 마 팀장 화가 많이 났나 보네?’

‘당연하죠. 제 성격 알지 않습니까?’

‘암. 알지. 잘 알고말고. 욱하면 세계 전쟁도 불사할 인간이 바로 마 팀장이지. 그 양반 정말 사람 잘못 봤어. 쯧쯧쯧. 그런데 갑자기 서운해지려고 하네.’

‘뭐가요?’

‘백 차장 그 친구가 친형님 같은 사람이면 난 뭐야?’

‘상무님이요? 상무님이야 그냥 상무님이죠.’

‘뭐야? 내가 마 팀장에게 얼마나 잘하는데 난 왜 그냥 상무야. 억울해. 나도 친형님 같은 사람 해줘.’

‘헐. 억울하시면 상무님도 제 목숨을 구해주시던가요.’

‘그건 너무 하잖아. 나도 마 팀장 목숨을 구해주고 싶다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위험한 상태에 빠트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친동생 만들어서 대체 얼마나 부려 먹으시려고요. 사양할게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백우찬 차장 그 친구를 내 동생으로 만드는 수밖에. 내 동생의 동생은 내 동생이니까 마 팀장도 내 동생이 되겠지. 안 그래?’

‘요즘 안 바쁘세요? 되게 한가하신가 봅니다?’

‘안 바쁘긴. 내일도 바쁘잖아. 어떤 분께서 바쁘신 미래 건설 사장님과 약속을 잡으라고 하셔서 말이야.’

‘그게 꼭 저 좋자는 일인가요? 이번 공사 건을 잘 이용하면 미래 그룹을 상무님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그만 투덜거리시고 내일 뵙죠.’

‘어이구. 아주 상전이 따로 없다니까. 알았어. 교촌으로 8시까지 가면 되는 거지?’

‘네. 그럼 내일 뵐게요.’

아무나 예약할 수 없는 곳이라더니, 확실히 그럴만하다고 느껴지는 곳이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도시의 화려한 분위기와 동떨어진, 이렇게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무릉도원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치 창경궁을 축소해놓은 듯 멋진 이곳에 아쉬운 한 가지라면 취객들과 여자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였다.

“어서 오세요. 마 팀장님. 와줘서 감사합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박웅기 이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 때문에 우찬 형님은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 박웅기 이사가 우찬 형님을 빼고 단둘이 보자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덕분에 어렵지 않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박 이사님. 이렇게 좋은 곳으로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국제적으로 큰일을 하시는 분인데 이정도 대접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국제적이라니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긴 일반 한정식 식당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군요.”

“아··· 그래요? 마 팀장님은 이런 곳이 처음인가 봅니다? 허허. 그것참. 마 팀장님이라면 당연히 와보셨을 줄 알았는데. 놀라지 마세요. 여기가 바로 요정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마치 굉장한 비밀을 말하듯 속삭이는 박웅기 이사. 그러면서도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마치 ‘나는 이런 대단한 곳을 다닐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 요정이요? 여기가요?”

“그렇습니다. 한때는 삼청각, 선운각, 대원각이 우리나라의 3대 요정으로 불리는 시절이 있었지만, 거긴 전부 없어진 지 오래죠. 지금은 이곳 교촌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허허허.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당연히 마음에 들다 마다요. 그럼 말로마 듣던 기생도 나옵니까?”

“물론이죠.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고 했습니다. 기다리시죠.”

내가 몇 번 맞장구를 쳐주자 신이 난 듯 당장에라도 기생들을 불러 앉힐 기세였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겁니다. 여자는 됐습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혹시 돈 걱정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제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원한다면 밤 시중도 들어주는 게 이곳 애들입니다. 흐흐흐.”

“봐주십시오. 제 약혼녀가 알면 절 죽이려 들지도 모릅니다. 이사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질투심이 대단하거든요.”

다른 여자를 끼고 술을? 시연이를 두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차차. 마 팀장님 약혼녀가 누군지 제가 깜박했습니다. 이거 실례를 했군요. 그런 대단한 미녀를 두고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겠지요? 그럼 식사만 하시죠. 여기 음식이 아주 맛있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어떤 집안 아가씬데요. 하하하. 그래도 밋밋하게 그냥 식사만 할 수는 없으니 악기 하는 애들이라도 부르겠습니다. 풍류는 있어야죠. 그 정도는 괜찮으시죠?”

“이사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죠.”

잠시 후 식사와 함께 각각 가야금, 대금, 해금을 든 세 명의 여자들이 들어왔다.

그녀들은 저고리를 입지 않아 어깨가 드러나는 조금 야한 느낌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어색한 표정을 보니 시연이 또래의 국악과 여대생처럼 보였다.

발정 난 인간 같으니라고. 딸뻘밖에 되지 않는 그녀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는 꼴이, 여자가 필요 없다는데도 굳이 국악 연주자들을 부르겠다는 이유를 짐작게 했다.

“음식이 입에 맞으십니까?”

“네. 맛있네요.”

“그렇죠? 그래서 중요한 손님을 모실 땐 항상 이곳으로 모신답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를 이런 곳으로 데려왔다는 건 뭔가 제게 할 말이 있다는 뜻이겠죠?”

“아닙니다. 할 말은요···. 평소에 꼭 뵙고 싶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부담 가지지 마시지요.”

“그래요? 그럼 식사가 끝났으니 그냥 여기서 파해도 되겠습니까?”

“네? 아··· 그러니까 그게···.”

황당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개자식 그 정도 배짱도 없으면서 우찬 형님을 들들 볶아?

“하하하. 농담입니다. 그런데 박 이사님. 서로 바쁜 사람들 아닙니까?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허허허. 역시 마 팀장님답게 시원시원하시군요. 맞습니다. 사실 마 팀장님과 비즈니스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오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비즈니스라···. 그거 좋죠. 마침 저도 좋은 건수가 하나 생겼는데 잘 됐군요.”

“좋은 건수요? 어떤?”

“이사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D&Y 피트니스 센터가 이번에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제휴 계약을 맺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대단한 성과라고 언론에서도 보통 난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그걸 이뤄낸 당사자가 다름 아닌 마 팀장님 아니십니까? 마 팀장님 같은 부하 직원을 둔 고현호 상무님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 차장이 마 팀장님 능력에 반의반이라도 닮았으면 제가 이렇게 고민을 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사람이 너무 융통성이 없어요. 일을 찾아서 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는 성공하기 힘들 텐데. 쯧쯧쯧.”

“우찬 형님이 그렇습니까?”

“네. 답답한 면이 좀 있습니다. 마 팀장님이 친형님처럼 아끼는 사람이라고 해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사람이 여러 가지로 좀 부족해요. 지켜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올 정도죠. 대체 마 팀장님처럼 대단한 분이 왜 그런 친구를 친형님처럼 생각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실 가까이해봐야 도움이 안 될 사람이거든요.”

내가 살짝 관심을 가져주자 이젠 노골적으로 우찬 형님에 대한 험담을 시작했다. 좀 더 듣고 있으려고 했지만 꼭 나를 욕하는 기분이 들어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네?”

“죽을 뻔한 제 목숨을 구해주셨죠. 우찬 형님이 말씀드리지 않았나 봅니다. 이해는 합니다. 워낙 겸손한 양반이라서. 우찬 형님이 아니었다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제휴가 어디 가당키나 했겠습니까? 지금쯤 땅속에 묻혀 흙이 되어가고 있었겠죠.”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네. 그러니 가까이해봐야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제가 평생 두고두고 은혜를 갚아야 할 분입니다. 박 이사님이 저를 존중하신다면 앞으로 우찬 형님도 준중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무슨 말인지 아셨습니까?”

“그··· 그럼요. 마 팀장님. 그래서 아쉬운 면이 있어도 제가 직접 가르치면서 곁에 두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하하하.”

참 뻔뻔한 인간이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런 인간이라면 그런 양심의 가책 따위는 가질 필요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쓸데없이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ㅠㅜ

다음편에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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