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미스터 마 보세요.
솔직히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깜짝 놀랐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못해 이런 선물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보내주신 글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로맨스 소설이었어요. 그리고 오직 저만을 위한 이 세상 유일의 번역본이라고 생각하며 읽어서 그런지 글을 읽는 내내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번역을 처음 한 사람 맞나요? 아니면 이야기 자체가 워낙 감동적이어서 그럴까요? 어느새 여주인공이 된 저를 발견하고 많이 당황했습니다. 제게는 생소한 일이었거든요.
윤 작가님이 되어 21살의 풋풋한 사랑을 느끼고, 가슴 절절한 짝사랑에 아파하고, 행복한 사랑의 결실에 함께 기쁨의 눈물이 흘렀어요. 그러면서 여자주인공의 마음을 몰라주던 남자가 참 얄미워지더군요. 그가 옆에 있다면 마음껏 꼬집어 주고 싶지만, 그 남자는 지금쯤 제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겠죠.
안 그래요? 미스터 마!
그렇다고 제가 미스터 마를 구박하려고 연락한 건 아닙니다.
사실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요. 일본에서 만났을 때 이야기했죠?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고. 그 친구에게 윤 작가님 글을 보여줬는데, 제가 보는 앞에서 단숨에 다 읽더니 대뜸 자신이 출판하고 싶대요.
이런 건 이메일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낫겠죠? 그래서 뉴욕행 왕복 오픈 티켓 2장을 같이 보내요. 물론 퍼스트 클래스로요. 이 정도면 장난이 아니라는 건 아시겠죠? 제 제안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 뉴욕에서 조세핀이 - 」
“또 읽어? 별다른 내용도 없는데.”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
시연이는 자신의 태블릿으로 조세핀 스톤 이사가 보내준 이메일을 읽고 있었다. 내가 본 것만 해도 10번은 넘으니, 아마 지금까지 100번은 넘게 읽지 않았을까?
“신기해서요.”
“뭐가?”
“인연이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제 책이 미국에서 출판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전 아직도 제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이건 정말 동수씨 덕분이에요.”
“그렇지만 한국처럼 큰 성공을 못 거둘 수도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왠지 실패는 안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이하게 예쁜 것에 집착증을 보인다고 해도, 그런 자신의 단점마저도 전략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여자가 조세핀 스톤 이사였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공과 사가 매우 분명했고 유능한 그녀가 아무런 자신감도 없이 우리 두 사람에게 우리나라 돈으로 5,000만 원 정도 하는 퍼스트 클래스 왕복 오픈 티켓을 제공할 리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계약금이 5,000만 원이 아니라 단지 우리를 초대하는데 그런 거금을 들였다는 건, 그들도 어느 정도 확신을 가졌다는 의미다.
“괜찮아요. 이미 제 책은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잖아요. 미국에 제 책을 출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동수씨와 단둘이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잖아요. 이미 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해요.”
동지마트의 성공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가긴 했지만, 그땐 팀원들도 함께했던 여행이었다. 비록 약혼했다고 해도 결혼도 안 한 커플이, 단체로 가는 여행에서 한방을 쓴다는 건 한국 정서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시연이는 이제 유명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구설수에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준호와 시연이는 추미래와 같은 방을 써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우리 두 사람만의 여행이었다. 물론 일 때문에 초대받아 가는 것이지만 그 외 시간은 오롯하게 우리 둘만의 시간이다.
“그건 나도 그래. 그래도 성공하면 더 좋지 않아?”
“음··· 그건 어떤 걸 성공으로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아요. 제겐 미국에 책을 출판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거든요. 그러니 더 큰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은 그냥 하늘에 맡기고 동수씨와의 여행에 집중할래요. 히힛.”
참······ 질문한 내가 바보같다고 지는 우문현답이었다.
시연이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성공의 의미가 꼭 돈은 아닌데, 너무 그런 쪽의 성공에 집착한 것 같았다.
“하하하. 그래. 일 핑계로 우리 둘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인데 밀이야.”
“그렇죠?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편안하게 즐기다 와요.”
“그래. 꼭 그렇게 하자. 조세핀 스톤 이사에게 한 가지 약속을 받아내야 하긴 하는데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
(아사코!)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조세핀 스톤 이사를 수행하던 아사코는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계약 체결 이후 원래 일하던 다나카 아크로바틱의 비서실로 돌아왔다.
(혹시 한국에서 무슨 소식 없었나?)
(한국에서요? 아니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것참 희한하네. 그 정도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아닌가?)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은 실망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고, 아사코는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침묵을 지켰다.
(어떻게 생각해?)
(네?)
(어떻게 생각하냐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아사코는 어떻게 할 것 같아?)
(글쎄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돈만으로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 세상의 미녀는 전부 부자들이 차지했을 겁니다.’
이게 그녀의 속마음이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럼 지금이라도 생각해봐. 다른 남자도 아니고 나같이 잘 난 남자야. 꼭 돈이 아니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남자. 그런 남자가 큰 이득까지 준다고 제안하며 하룻밤을 보내자고 제안했는데 거절할 여자가 있을까?)
(사장님처럼 매력적인 남자의 제안을 거절할 여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가끔은 특이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여자라면 거절할 수도 있겠죠.)
아사코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최대한 돌려 말했다. 하지만 그 말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쯧!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위하는 건데, 그 정도 희생정신도 없는 건가? 그 여자는······)
(아무래도······)
(아무래도?)
(아무래도 사장님의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방법이? 어떻게?)
(사장님은 그 여자의 마음을 얻고 싶은 겁니까? 몸을 얻고 싶은 겁니까?)
(그걸 왜 따로 이야기하지? 몸을 얻으면 마음은 따라오는 것 아닌가? 나와 하룻밤을 보내면 어떤 여자라도 나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고.)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의 말도 안 되는 자신감에 아사코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받아준 자신의 우둔함을 한탄했다.
(하지만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얻어야 하는 여자도 많이 있습니다.)
(젠장!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그런 복잡한 과정이 싫어서 포기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거잖아. 마동수 팀장도 이상해. 직장인이잖아. 직장인이면 직장인답게 회사에 이득이 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지. 그 여자가 싫다고 해도, 회사를 위해 희생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아사코는 안 그래?)
(네?)
(우리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느냐고?)
(물론입니다. 저야 언제든 사장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왜 그런 거야?)
(문화적 차이가 아닐까요?)
(문화적 차이?)
(네. 우리 일본과 한국은 문화가 많이 다릅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업을 위해서 언제든 희생할 준비가 된 우리와 달리 한국인은 상당히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사장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일 겁니다. 오히려 불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요. 아니라면 사장님같은 매력적인 남자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을 겁니다.)
마음에도 없는 마지막 말을 하는 자신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아사코는 자신의 사장을 달랬다.
(한국 여자라서 그렇다? 으흠··· 과연. 그렇군. 정 짱을 일본 여자라고 생각한 내가 멍청했어. 그럼 어쩌지? 어쩔까? 어쩌면 좋을까? 응? 젠장! 아사코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 나를 안 말리고 뭘 했어?)
(죄송합니다.)
‘말렸지만 안 들었지 않습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고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안 되겠어. 그럼 한국 방식으로 다시 해야겠어. 지금부터 아사코에게 한 가지 임무를 내리겠어.)
(말씀하십시오, 사장님)
(정 짱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와. 사는 집, 가족 관계, 금전 상황,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취미 등등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말이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흠···)
(말씀하십시오. 사장님.)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알아와. 한국 여자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할 수 있겠지?)
(·········)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희한한 지시를 많이 내린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오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황당한 마음에 아사코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러워? 다른 사람에게 시킬까?)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사장님.)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