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왜 그래 조세핀.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있어?]
같이 점심을 먹다 말고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웃음 짓는 그녀를 보며 친구인 데이지 오하라가 호기심을 보였다.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했지? 일본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다고.]
[재미난 일? 아······! 네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애인을 뒀다는 동양인 남자? 혹시 그 남자를 말하는 거야? 미스터 마라고 했던가?]
[그래. 그 미스터 마가 방금 이메일을 보내 왔거든.]
[뭐? 그럼 그 남자도 결국 너의 미모에 넘어간 거야? 역시 남자들은 별 수 없구나. 네 마음에 쏙 들 정도면 보통 미인인 아닐 텐데, 그런데도 넘어가는 걸 보면 말이야.]
데이지 오하라는 친구인 조세핀 스톤의 미모에 빠져 낭패를 본 수많은 남자들을 봐왔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희생양(?)에게 미리 조의를 표했다.
[아니야. 내가 이야기했잖아. 정말, 정말 예쁜 여자친구였다고. 그래서 그런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
[그럼 이메일은 왜 보낸 거래?]
[감사의 선물.]
[감사의 선물? 감사할 게 뭐 있다고? 그건 그냥 핑계고 네게 관심을 보이는 거 아니야?]
[아니야. 사실 내가 미스터 마를 좀 이용해 먹었거든. 그것 때문인 것 같아.]
[이용을 해먹어? 어떻게?]
[그 남자가 속한 회사가 내가 계약해야 할 다나카 아크로바틱이라는 회사와 라이벌이었어. 그래서 다나카 아크로바틱 관계자가 보는 앞에서 그 남자에게 과하게 관심을 보였지. 마치 당장에라도 파트너를 바꿀 것처럼. 다나카 아크로바틱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세를 낮출 수밖에.]
[아하. 그걸 그 남자가 눈치챘구나. 그런데 왜 선물을 줘? 화를 내야 하는 거 아니야?]
데이지 오하라는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의아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수 잘 배웠데. 내 덕분에 세상 넓은 걸 깨닫게 되었다나?]
[뭐? 한 수 잘 배워? 호호호. 그 남자 되게 웃긴다. 멍청한 건지, 배포가 큰 건지. 그래서 선물은 뭘 보냈는데?]
[미스터 마 여자친구가 소설 작가야. 나도 개인적으로 알아봤는데 윤시연 작가라고 한국에서는 꽤 유명한가 봐. 그래서 기회가 되면 그녀가 쓴 책을 영문으로 읽고 싶다고 넌지시 이야기했지.]
[인사치레로? 아니지. 네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여자였다고 했으니 진심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조세핀 스토은 예쁜 여자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특이한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데이지 오하라였다.
[응. 당연히 진심이었지. 그렇지만 기대는 안 했어. 데이지 너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한국어로 쓰인 책을 나 하나를 위해 영어로 번역한다는 게 쉬운 일인지. 그건 누구보다 네가 잘 알 거 아니야?]
[당연히 어렵지. 그런데 그걸 번역해서 네게 선물이라면서 보낸 거야? 너는 이용만 했는데? 혹시 그 남자 바보야? 아니면 정말 네게 사심이 있거나···.]
[호호호.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사심 없어. 그건 내가 봐서 알아. 나를 보고도 별 동요가 없길래 처음엔 게이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선물로 보낸 책 내용이 바로 그 남자와 여자 친구 두 사람 사이의 사랑 이야기야.]
[와······! 예쁜 여자 친구가 있어도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게 남잔데, 신기하네. 그 말을 들으니까 왠지 그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왠지 믿음이 가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 남자는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 쪽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어. 그러니 아쉽지만 같이 일하긴 어렵워.]
[그런데도 네게 책을 보냈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인 거야?]
[지금은 적이지만 나중엔 친구가 될 수도 있잖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나와 친분을 유지하려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꽤 재미있고 쓸만한 남자다 싶어 웃은 거야.]
마동수의 의도가 확실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네. 여자에게 당했다고 억하심정을 가지는 게 아니라, 젠틀하고 위트있게 선물까지 보내는 걸 보면 센스있는 남자는 분명해 보여. 그런데 조세핀. 그 남자가 보냈다는 소설, 나도 읽어볼 수 있어?]
마동수에게 말했던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바로 데이지 오하라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출판사를 다니는 게 아니라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친구였다.
그런 그녀이기에 책 이야기가 나오자 귀가 솔깃해졌다.
[정말? 혹시··· 나 때문에 억지로 읽는 거라면 안 그래도 괜찮아. 반드시 출판을 해주겠다고 약속한 건 아니니까.]
[아니야. 출판사 사장으로서 촉이 왔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상품성이 있어 보이거든. 사실 로맨스 소설,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야. 중요한 건 마케팅이라고 생각해. 조세핀 네가 반할 정도로 예쁜 작가가 쓴 책. 게다가 동양인이니까 신비감으로 어필할 수도 있어. 잘 메이킹 하면 최소한 괜찮은 이슈 메이커는 될 것 같은데? 큰 성공을 장담하진 못해도 손해는 안 볼 것 같아.]
[그렇지?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럼 지금 바로 보낼 테니까 너도 한 번 읽어봐. 그리고 정말 상품성이 있어 보이면 두 사람을 미국으로 초대하자.]
[초대까지? 음··· 왠지 사심이 있어 보이는데? 설마 예쁜 여자 작가님을 직접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호호호. 겸사겸사야.]
***
일본의 우익 단체가 중국 대사를 망신주고 중국 국기마저 불태운 사건은, 「일본에서 불고 있는 심상치 않은 반(反)중국 기류」와 비슷한 제목의 헤드라인으로 우리나라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두 나라에 비해 국력이 약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휘유! 우리나라 신문 1면 장식이라···. 이거 생각보다 반응이 더 대단하네? 이러다 정말 전쟁이 나는 건 아니겠지?”
신문을 본 고현호 상무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쟁이 그렇게 쉽게 안 납니다. 중국과 일본은 절대 바보가 아니거든요. 그냥 두 나라 국민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정도로 끝나게 될 겁니다. 사실 이런 갈등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오성홍기(중국 국기)를 불태우는 사진. 이거 진짜 잘 찍혔다. 이걸 중국 사람들이 보면 정말 욱하겠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그러라고 한 달 넘게 준비한 건데.”
고현호 상무에게 승인받고, 준비하는 데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게 이이제이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철저히 숨겨야 했기 때문에 빨리 진행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중국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덕분에 파트너로 선정된 다나카 아크로바틱에 대한 관심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세계 최대, 최고의 대형 할인 마트라는 프리미엄이 가지는 위력이었다.
조세핀 스톤 이사의 빠른 행보에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자칫 정체가 탄로가 나면 그 후폭풍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서두르고 싶어도 서두를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더욱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갔다.
“그럼 이제 중국 국민들이 이 사진을 보고 발끈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아니죠.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되죠. 그럼 너무 민숭맨숭 하잖아요. 적절하게 조미료를 쳐야 음식이 더 맛있는 법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부장님?”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공은 김학수 부장에게 넘어갔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쪽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림이 이렇게 좋으니,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아요. 수고했어요. 마 팀장.”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건 중국인걸요. 솔직히 일본 우익 세력을 자극하는 건, 부장님이 하셔야 할 일에 비하면 어려운 축에도 못 끼죠. 잘 부탁드립니다. 김 부장님.”
“중국이라 제가 직접 할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중국에 있는 그 친구도 꽤 실력 있고 믿을 만합니다.”
중국은 일본과 달리 우리가 직접적으로 나서가 어려운 국가다. 그래서 미국에서 김학수 부장과 같이 미디어 공부를 한 리우페이라는 사람이 이번 일을 대신해 주기로 했다.
괜찮은 대가를 약속한 것도 있지만 리우페이의 일본을 향한 적개심이 꽤 강한 편이라 설득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김 부장.”
“네. 상무님.”
“그 리우페이라는 사람 말이야. 듣기로 일본을 꽤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주체못해 사고를 치는 건 아니겠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국에 있을 때도 일본인 앞에서는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감출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적당한 선을 지켜 줄 겁니다.”
고현호 상무가 꽤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김학수 부장은 큰 걱정이 없는 눈치였다. 누구보다 확실한 그였기 때문에,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만으로도 저절로 확신이 생겼다.
“좋아. 그럼 그건 김 부장에게 완전히 맡기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마 팀장.”
“네. 상무님.”
“조세핀 스톤 이사는 어때? 확실히 친분은 쌓아두고 있는 거야? 어쨌든 간에 그 여자는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의 반대파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설마 죽 쒀서 개 주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고현호 상무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나야 더글라스 에리얼리 회장과 친분이 없지만 고현호 상무는 다르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뿐더러 조세핀 스톤 이사 때문에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D&Y 피트니스 센터 사이의 제휴도 어그러졌으니, 그녀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보고 드릴 게 있었습니다. 며칠 미국에 다녀와야 할 것 같거든요.”
“미국에?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긴데 이번 프로젝트 입안자인 마 팀장이 자리를 비운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조세핀 스톤 이사가 저와 시연이를 미국에 초대했습니다.”
“뭐? 제수씨까지? 뭐 때문에?”
“시연이 소설을 미국에 출판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면서 나는 고현호 상문에게 조세핀 스톤 이사와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동안은 확실한 게 아니라 보고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초대장까지 날아온 상황이니 더 이상 비밀로 할 필요가 없었다.
시연이의 갑작스러운 출판소식에 황당했는지 고현호 상무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정말 희한한 여자네. 중국 시장 진출에 온 힘을 기울여도 모자를 판에 너무 여유가 넘치는 거 아니야? 물론 제수씨 책이 미국에서 출판된다는 건 정말 축하할 일이지만 말이야.”
“직접 출판하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 소개만 해준 거예요. 어쨌든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인데 제가 잊지 않고 부탁을 들어줬다고 꽤 고마워하는 눈치더라고요. 확실히 호감을 얻는 데 성공했으니까, 이참에 미국에 가서 확실하게 도장을 찍으려고요.”
“워워. 너 인마! 제수씨가 있는데 다른 여자랑 도장을 찍겠다고? 사람이 그러면 안 돼!”
“헐···. 상무님도 참! 그 도장 말고요. 확답을 들어놓겠다고요. 만약 다나카 아크로바틱과의 계약이 어그러지면 그다음은 우리랑 같이 일해보자는 확답이요!”
“하하하. 알지. 알아. 좋아. 그런 중요한 일이라면 보내줘야지. 마 팀장아. 꼭 성공해서 돌아와라. 나, 정말 죽 쒀서 개 주기 싫다.”
“네. 상무님. 도장은 못 찍어도 열심히 꼬셔는 보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