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똑똑똑!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짐을 싸고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누구십니까?)
(꽃배달 왔습니다.)
꽃배달? 찾아올 사람조차 없는 이곳에 갑자기 웬 꽃배달? 나는 황당한 마음에 문을 향해 재차 물었다.
(꽃배달이요? 실례지만 누굴 찾아오신 겁니까?)
(여기 혹시 정지영씨 안 계십니까?)
꽃배달 대상이 내가 아니라 정지영 과장이라는 말에 일단 황당한 마음은 가셨다.
그렇지만 또다시 드는 의문이 있었다. 일본에서 대체 그녀를 누가 안다고 호텔 숙소로 꽃을 보낸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맞긴 한데 대체 누가 정 과장에게 꽃을······)
나는 의아함에 문을 열다가 눈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말문이 닫히고 말았다.
꽃배달이라길래 그냥 꽃다발 정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앞에 놓여 있는 건 꽃다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꽃바구니도 아니었다. 이건 뭐······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그래! 꽃상여. 남자 두 명이 힘겹게 둘러메고 있는 꽃다발(?)은 마치 작은 꽃상여를 보는 것 같이 요상하고 기괴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정지영 과장님은 안 계십니까?)
(옆방에 있습니다. 제가 불러드리죠. 그런데 이게 뭡니까?)
(에···. 그러니까 일단은 꽃바구니라고 할 수 있겠군요.)
(꽃바구니요? 저게요?)
(크기만 클 뿐 꽃바구니는 맞습니다. 보내시는 분이 받는 분에게 가장 어울리는 꽃바구니라면서 특별히 주문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역시 일본은 우리와 많이 다른 가 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꽃바구니를 직원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설명하는 걸 보니 말이다.
선물이라는 게 받는 사람 마음을 생각해야지, 주는 사람 자기 위주로 생각하면 그건 선물이 아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 꽃바구니는 선물이 아니라 테러였다. 만약 내가 여자라면 저런 기괴한 꽃바구니는 절대 받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대단하다고요? 하긴. 어떤 의미냐에 따라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정지영 과장을 불러드리죠.)
내 눈에 이상하다고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내가 볼 땐 이상해 보여도, 중요한 건 정지영 과장의 의사였다. 나는 꽃배달 직원을 세워두고, 그녀의 숙소 문을 두들겼다.
똑똑똑.
“네?”
“나야. 정 과장. 잠깐 나와봐야 할 것 같아.”
“네? 무슨 일이신데요?”
“그게 참···. 말로 설명하기 조금 애매하네. 일단 정 과장이 나와서 직접 판단해.”
철컥!
“그래요? 대체 무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복도 쪽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던 정지영 과장은 나와 별다를 바 없는 황당한 얼굴로 변한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 가지?”
“대체 저게 뭔가요?”
“직원의 설명에 의하자면 저건 꽃바구니라고 해.”
“뭐요? 꽃바구니요? 저게 무슨 꽃바구니에요. 꽃상여라면 모를까?”
내 설명에 그녀가 따지듯이 물었다.
“하하하하하하. 그렇지? 정 과장 생각도 그렇지? 나도 보자마자 꽃상여라고 생각했다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저건 꽃바구니가 맞아.”
“말도 안 돼. 그런데 대체 저는 왜 부르신 거에요? 설마 팀장님에 제게 선물하시려는 건 아니죠?”
“뭐? 내가 정 과장에게 꽃바구니를 왜? 그렇지만 받는 사람이 정 과장인 건 맞아!”
“으엑! 도대체 누가요? 누가 대체 제게 저딴 걸 보냈데요? 저게 선물이 맞긴 한가요? 꼭 나랑 싸우자는 결투장을 보는 기분인데.”
“아··· 나도 황당해서 그걸 안 물어봤네. 잠시만.”
(혹시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누군지 밝히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고객께서 전하라는 편지가 여기 있습니다. 이걸 읽으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직원은 그렇게 설명하면서 내게 작은 편지봉투를 건넸다. 정말 러브레터가 맞는지 오글거리는 핑크색 하트가 박힌 유아틱한 편지봉투였다.
“자! 저 꽃바구니의 주인공이 정 과장에게 보낸 편지래.”
내가 건넨 편지를 받아 펼치던 정지영 과장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일본어네요. 대신 좀 읽어주세요.”
“그럴까? 잠시만. 음··· 친애하는 정 짱!”
“네에?”
“내가 그렇게 부른 게 아니고. 그러니까 일본식 애칭인데. 정 과장도 들어봤을 거 아니야. 이름이나 성 뒤에 ‘짱’이라고 붙이는 거.”
“아···. 들어 봤어요. 난 또. 갑자기 정 짱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잖아요. 호호호. 어쨌든 계속 읽어보세요.”
요즘 와서 뭔가 정지영 과장에게 자꾸 말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밉지 않은 걸 보면 그녀와 나 사이도, 조기훈 차장님과 나 같은 신뢰가 쌓인 모양이었다.
“허 참! 이젠 아주 상전이네. 네네. 분부대로 합지요. 지난 25일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25일? 그게 언제였지?”
“25일이면···. 아! 월드 베리어스 클럽하고 미팅이 있던 날인데요. 그럼 혹시 그날 세미나룸에 있던 남자 중 한 명일까요?”
“그런가? 역시 사람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그날은 분명 다들 멀쩡해 보였거든.”
“그러게요. 절대 꽃상여 따위를 보낼 사람은 없어 보였는데. 제 발표가 정말 좋긴 좋았나 봐요. 이렇게 꽃을 보내는 남자가 다 있고.”
“저 꽃바구니 꼬라지를 봐라. 그래도 꽃이라고 좋냐?”
“쳇! 안 좋아요. 꽃도 꽃 나름이지. 꽃을 받아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제가 잠시 미쳤나 봐요.”
“그렇지? 그럼 계속 읽을 게. 내가 당신의 가슴을··· 뭐야. 이게. 잠시만···.”
계속해서 편지를 해석해 주려는 데 내용이 뭔가 좀 이상했다. 갑자기 ‘당신 가슴을 만지다.’는 구절이 나오는 순간 나는 급히 말을 멈추고 일단 눈으로 글을 읽어내렸다.
「내가 당신의 가슴을 만지는 순간 저는 놀랍게도 강렬한 전류를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당신의 가슴을 만지는 순간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많이 당황했습니다. 이런 낯선 감정이 처음이라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제 그곳을 잡았을 때, 저는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제 운명의 여자라는 사실을. 제가 그날 당신 앞에서 눈물을 흘린 건 겁이 나서가 아닙니다. 이제야 사랑을 찾았는데, 당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이 되어서 눈물을 흘렸던 겁니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두 번째 문장을 읽은 순간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은 한 마디로 ‘미친놈!’이었다.
이제야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키사라기 에이지 바로 그 미친놈이었다. 그날 정지영 과장에게 급소를 잡혀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녀석이 갑자기 사랑 타령이라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창피해서라도 도저히 이럴 수 없었다.
그런 개굴욕을 당하면서 사랑을 느끼다니, 그놈은 정말 변태 플러스 또라이 플러스 미친놈이 분명했다.
「당신에게 축하받을 일이 생겼습니다. 혹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다나카 아크로바틱이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드디어 제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조금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당신을 위해 통 크게 양보했습니다. 저는 지금 조세핀 스톤 그 여자와 조건을 가지고 밀고 당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혹시 제휴 계약 소식에 당신은 실망할지도 모르겠군요.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당신이 왜 하필 D&Y 피트니스 클럽 직원일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카풀렛 가와 몬타규 가처럼 우리도 서로 원수나 다름없는 사이 아닙니까? 저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로미오처럼 바보가 되기 싫습니다. 한국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지요. 저는 그 말에 100% 공감합니다. 저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이 아니라 현실에서 당신과의 사랑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 마음만 받아준다면 저는 언제든지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제휴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남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 만큼 그렇게 나약한 남자가 아닙니다.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그리고 그 정표로 저와 하룻밤만 보내주세요. 그럼 저는 당신을 위해 기꺼이 월드 베리어스 클럽을 포기하겠습니다.」
콰직!
마지막 문장을 읽은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편지지를 구기고 말았다.
사랑 고백? 개뿔. 이리저리 말을 돌려 말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나랑 자자. 그럼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너 줄게.’
정말 치졸하기 그지없는,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야비하고 비겁한 제안이었다.
“어머, 팀장님.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편지지를 그렇게 구겨버리세요?”
돌발적인 나의 행동에 정지영 과장이 눈이 동그랗게 변해 물었다.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데 그렇게 편지지를 구기세요?”
“사실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이었어.”
“네? 키··· 키사라기 에이지면 그때 그 변태요? 그 변태가 제게 저따위 꽃상여 같은 꽃바구니를 보낸 거예요? 맙소사. 그 자식은 정말 변태도 보통 변태가 아닌 모양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꽃바구니는 돌려보내자.”
“네. 저도 그렇고 싶네요. 그런데 팀장님!”
“어? 왜··· 왜?”
“편지에 무슨 글이 담긴 거예요? 무슨 내용이길래 팀장님이 그렇게 화를 내신 거예요?”
“무슨 내용이긴. 그냥 평범한 사랑고백이야.”
“팀장님.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아니면 제가 사전 찾아보고 뜻을 찾을 거예요.”
“정 과장. 꼭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
“아니에요. 저는 꼭 알고 싶어요. 그 변태 새끼가 제게 뭐라고 했는지.”
‘정 과장 네가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주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계약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그녀에게 도저히 말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정지영 과장의 눈빛이 너무 단호했다.
문득 우리에겐 그렇게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사실은 속으로 혼자 끙끙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녀도 여자였고, 벌건 대낮에 그렇게 성추행을 당하는 게 유쾌할 리 없었다.
괜찮으리라 지레짐작하고 넘어가 버렸던 내가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