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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51화 (351/424)

0035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온천에 들러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었다. 그 와중에도 정지영 과장은 남녀 혼탕이 없느냐며 한바탕 장난을 쳤다. 여긴 그런 곳이 없다고 하자, 일본 변태가 탐낸 명품 가슴을 자랑할 기회가 날아가 아쉽다며 나와 윤권이를 당황케 했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으로 인해 찜찜했던 마음을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었다. 본인이 저렇게 쿨하게 행동하니 우리도 그녀에게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완전히 내려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글인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 멋진 여자였다. 이런 생각 보통은 안 하는데 정말 괜찮은 친구가 있다면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괜찮은 녀석들은 전부 임자가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싱글인 친구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정수는 소심해서 안 어울릴 것 같고 재형이는 너무 바람둥이라서, 괜히 잘못 소개해줬다가 원망만 들을 것 같았다.

편안하게 온천욕을 즐긴 우리는 료칸 정식 요리로 휴식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1인분에 30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하루쯤은 이런 사치를 부려도 괜찮다 싶을 만큼 환상적인 맛이었다.

그렇게 짧지만 나름대로 알찬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음날부터 또다시 열심히 일을 시작했다.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 그 자식이 괘씸해서 어떻게든 그 콧대를 눌러버리고 싶은 마음에 정말 발에 땀이 나도록, 정말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이틀 만에 제일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이 전해졌다.

「to. 미스터 마.

보내주신 사진은 잘 받았어요. 역시 예상대로 두 개의 구두 모두 시연씨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더군요. 구두를 골라준 내 마음이 다 뿌듯했어요. 자랑삼아 뉴욕에서 잡지사에 다니는 내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그녀도 사진을 보며 극찬을 하더군요.

지미 추 구두를 그렇게 완벽하게 소화하는 동양인은 처음 봤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꼭 자신의 잡지에 싣고 싶다고 제게 부탁을 했어요. 그렇지만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거절했고, 그래도 자꾸 조르는 친구에게 미스터 마의 이메일 주소만 알려줬어요. 전화번호도 아니고 이메일이니까 그 정도는 괜찮겠죠?

오랫동안 지켜본 바로 그 친구는 절대 속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요. 솔직하거든요. 제게 이메일 주소까지 부탁할 정도면, 아마 곧 미스터 마에게 연락이 갈 거예요. 그러니까 다짜고짜 모델 제의를 하는 이상한 메일이 와도 놀라진 마세요.」

혹시나 해서 조세핀 스톤 이사가 골라준 구두 두 켤레를 특송으로 시연이에게 보냈다. 급한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그녀와 계속 연결고리를 이어놓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렇게 계속 친분을 쌓아놓는 게 내게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절대 아니다.

사정 설명을 들은 시연이는 곧장 구두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옷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줬다. 아마추어 솜씨가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진 속의 시연이는 완벽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아름다웠다.

내가 조세핀 스톤 이사에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 속 대사인 ‘네가 처음으로 지미 추의 구두에 발을 집어넣는 순간 너는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야.’를 인용한 이유는 그녀가 좋아할 것 같아 한 말이지 내가 그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여성의 섹시함의 완성은 누가 뭐래도 구두’라는 말에도 딱히 공감하지 않았다. 하이힐이 아니라 낮은 단화를 신은 시연이도 아름다웠고, 개인적으로는 여자의 다리보다는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에 더 집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시연이가 보내준 사진을 보며 나는 여자들이 왜 하이힐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섹시함의 완성을 왜 구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신은 구두는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운 종아리를 더욱 환상적인 라인으로 만들어줬고, 그건 내가 좋아하는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곡선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당장 지금 일을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날아가 구두를 신은 시연이의 다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었다.

어디까지나 시연이를 사랑하는 내 개인적인 사심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조세핀 스톤 이사의 반응을 보니 아름다움은 그 하나만으로도 만국 공통어였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패션 잡지사 친구의 반응은 정말 뜻밖이었다.

자세한 언급은 없었지만 뉴욕은 패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의 잡지사라면 왠지 평범할 것 같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조세핀 스톤은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라는 세계적인 회사의 이사다. 그런 그녀가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언급한 곳이 절대 평범한 곳일 리는 없었다.

직접적인 제안이 온 것은 아니지만,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곳에서의 갑작스러운 관심에 나는 꽤 당황했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시연이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편지 내용은 그런 속 편한 고민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런 즐거운 소식만 전하고 ‘굿 나잇’ 인사를 하고 싶지만, 사실 제가 이렇게 이메일을 쓴 건 아쉬운 한 가지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예요.

조금 전 우리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다나카 아크로바틱 사이의 제휴 계약이 마무리되었어요. 이제 정말 크나큰 변수가 없는 한 D&Y 피트니스 센터와 같이 일하는 일이 없게 되었어요. 아직 여유가 조금 있을 줄 알았는데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이 통 큰 양보를 했어요.

미스터 마가 판을 뒤집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죠?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것보다 제가 직접 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연락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저도 정말 아쉬워요. 하지만 언젠가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위로가 이어졌지만 더 이상 이메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전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은, 엉뚱하게도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게만 큰 이득을 안겨준 셈이 되었다.

이제 계약까지 마무리되었으니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을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짜증이 치밀었다. 하여간 여러 가지로 재수 없는 자식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더 이상은 미련이었다. 나 혼자도 아니고 팀원까지 이끌고 기약 없는 싸움을 벌이기엔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다. 지난번이 실낱같았다면 지금은 전무한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여러분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안 좋은 소식이요?”

“그래. 조금 전 조세핀 스톤 이사로부터 이메일이 하나 왔는데,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다나카 아크로바틱 사이의 계약이 마무리되었다고 해.”

“네? 벌써요? 아직 좀 더 여유있는 게 아니었어요?”

“키사라기 에이지 그 자식이 월드 베리어스 클럽 측에 통 큰 양보를 했다나 봐.”

“그럼 우리의 등장이 결국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게만 이득을 안겨준 꼴이 된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어쩐지···. 조세핀 스톤 이사가 팀장님에게 살갑게 군 이유를 이제 알 것 같군요. 그게 전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한 거예요.”

“그럴 수도 있고.”

“알고 계셨어요?”

내가 조세핀 스톤 이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그녀의 정확한 속마음을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만 보면 정지영 과장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물론 그녀가 보여준 시연이에 대한 호감이 꽤 진실되게 보였지만 그렇다고 조세핀 스톤 이사가 보여준 반응이 꽤 뜬금없었던 건 사실이다.

“이상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조세핀 스톤 그 여자. 협상하러 온 사람답지 않게 하루 종일 너무 관광에만 열중하더군. 마치 일이 아니라 관광이 목적인 사람처럼 보였어. 다나카 아크로바틱에서 파견됐다는 아사코는 마치 하녀처럼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열중했고. 누가 봐도 두 회사 사이에 ‘밀당’이 오고 가는 모습이었어.”

“그런 와중에 우리가 미팅을 위해 일본까지 찾아왔으니 다나카 아크로바틱 측에서는 꽤 당황했겠군요. 조세핀 스톤 이사는 그걸 또 이용한 거고요? 대단하네, 그 여자. 그런데도 팀장님은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신 거예요?”

“어쩔 수 없었어. 장단을 맞춰주는 수밖에는···. 우린 면담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잖아. 그렇게라도 틈을 찾아내야 공략이든 뭐든 할 수 있는 거니까.”

당시 가장 답답했던 건 우리였다. 그러니 썩은 동아줄인 줄 알면서도 일단은 잡아야 했다.

“아우. 약올라. 팀장님이 우연인 척 접근할 걸 정말 교묘하게 이용한 거네요. 일부러 팀장님께 살갑게 대해 아사코라는 여자를 자극하고 그 소식을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근육 바보에게까지 들어가게 만든 거잖아요. 아우아우아우. 나쁜 년. 그럼 내가 그 꼴을 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조세핀 스톤 이사 때문인 거잖아요!”

근육 바보란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을 말하는 거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렇다고 조세핀 스톤 이사가 성추행을 의도한 건 아니잖아. 그건 어디까지나 근육 바보 그놈이 나쁜 거지.”

“됐거든요. 벌써 넘어갔어. 그러니 제 앞에서 조세핀 스톤 그 여자 편을 드는 거지. 진짜 팀장님에게 실망이에요. 난 그래도 팀장님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미안해. 결과론적으로는 내가 그 여자에게 이용당한 거야. 이번에 제대로 한 수 배웠다고 치자. 확실히 세계 무대로 나와보니 상대가 만만찮네. 그지?”

할 말은 많았지만 내가 조세핀 이사에게 도움을 준 건 사실이었다.

“칫···!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제가 더는 구박을 못 하잖아요. 그러기에 처음부터 예감이 안 좋다고 했잖아요. 분명히 샤론 스톤 뺨치는 요부일 가능성이 있다고···. 아니다. 인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 뭐해. 사실 저조차도 깜빡 넘어갔는걸요. 세상에 그런 여자들만 있으면 앞으로 국제 파트를 맡기 무서울 것 같아요.”

“배웠으면 우리가 써먹으면 돼. 앞으로 잘 부탁해. 지영 스톤 과장님.”

“뭐에요? 호호호. 제가 사실 샤론 스톤 필적할 정도로 섹시한 건 사실이니, 인정! 그런데 우린 이제 어떡해요? 계속 일본에 있을 건가요?”

“아니. 그만 한국에 돌아가야지. 더 있어 봐야 미련이야. 차라리 한국에 돌아가서 김수현 팀장을 돕는 게 더 나을 거야.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자.”

“에휴···. 아쉽네요. 이렇게 돌아가기는 싫었는데.”

나와 우리 팀원들은 그렇게 낙담하면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마 키사라기 에이지 그 또라이가 나를 한 번 더 자극하지만 않았다면, 이번 일은 완전히 우리의 패배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 작품 후기 ============================

또라이 키사라기 에이지의 재등장..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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