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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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조세핀 스톤 이사님.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연이에게 2,000불 정도 하는 고가의 구두를 선물했다고 해서, 그리고 어제 분위기가 썩 괜찮았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세핀 스톤 이사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약속 시각보다 5분 일찍 우리가 마련해둔 세미나룸에 나타났다.
[아니에요. 지난번에는 미안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을 어겨서.]
[전혀 개의치 마십시오. 스톤 이사남의 건강이 우선이죠. 쾌차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미스터 마. 저는 좀 서운하네요.]
[네? 이런···. 죄송합니다. 혹시 서운하신 점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바로 고치겠습니다.]
[어제 분명 딱딱하게 스톤 말고 조세핀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을 텐데요.]
누가 보면 연인 사이의 대화처럼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어제 분위기를 몰랐던 정지영 과장의 눈이 도끼눈처럼 변했다. 심지어 영어를 못하는 추미래마저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살갑다 못해 색기가 넘치는 목소리였다.
“뭐예요? 지금 분위기?”
“쓸데없는 상상하지 말고, 면담에 집중해.”
나는 옆구리를 찌르며 귓속말로 조용히 물어보는 정지영 과장에게 짧게 대답하고, 조세핀 스톤 이사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분명히 기억합니다. 하지만 공식 석상이라서요.]
[여자친구의 선물을 사기 위해 지미추를 방문한 사람답지 않게 고리타분한 구석이 있네요. 그럼 좀 실망스러운데···.]
[그렇다면 실망을 드릴 수야 없죠. 조세핀 이사님.]
[호호호. 진작 그랬어야죠. 아 참! 여자친구 이름이 윤시연이라고 했죠?]
[네. 맞습니다. 한번 말씀드렸는데 그걸 기억하시는군요. 한국 이름이라 외우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워낙 대단한 미녀의 이름인데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죠.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는데, 미스터 마의 말처럼 상당히 유명한 작가더군요. 게다가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정말 신기할 정도로 시연이에게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혹시 성향이 여자 쪽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시연이가 귀여운 걸 보면 사족을 못 쓰듯, 조세핀 스톤 이사도 예쁜 것에 집착하는 그런 성격처럼 보였다.
[모델이라기보다는 그냥 광고에 몇 번 출연한 정도입니다. 그것도 직업적인 건 아니고 제가 하는 일 때문에 잠시 도움을 준 겁니다.]
[그래요? 그래서 시연씨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없었던 거군요. 전문적으로 모델을 했어도 충분히 성공했을 텐데 아쉽네요. 하지만 본인이 다른 일을 원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미스터 마.]
[네. 이사님.]
[혹시 시연씨가 쓴 책, 영어로 번역된 건 없나요?]
[영어로요? 아니요. 처음부터 국내용으로만 출판된 책입니다.]
[그래요? 그거 아쉽네요. 시연씨가 쓴 책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여행 책도 그렇고. 두 번째 책은 미스터 마와 시연씨의 사랑 이야기라면서요?]
그것참.
면담에는 관심 없고 여전히 시연이 이야기만 하는 조세핀 스톤 이사의 행동을 좋아해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의 비위를 거스를 필요는 없기에, 질문에 최대한 성실히 대답하는 중이었다.
[맞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아내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거의 밤을 새워가며 알아봤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영문으로 출판할 생각은 없나요? 제가 꼭 읽고 싶어서 그래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 책을 읽으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1년은, 참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잖아요.]
순간 번역사를 구해 책을 번역해준다고 말할까 고민이 될 만큼, 그녀의 얼굴은 누가 봐도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알아는 보겠습니다. 하지만 시장성이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그런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게 전부였다.
[그건 제가 도울 수 있어요. 저와 정말 친한 친구가 뉴욕에서 나름 괜찮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한국에서 변역한 책을 제 친구가 출판할 수도 있고 아니면 판권을 사 와서 우리가 번역하는 방법도 있어요.]
나는 그냥 예의상 한 말인데 조세핀 스톤 이사는 생각 이상으로 집요했다. 이러다가 정말 시연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그···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시연이에게 의사를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래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조세핀 이사님이 구두를 선물해주셨다고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정말 좋아하더군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본에 와서 신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라고 하시지 그랬어요. 한국이랑 일본은 가깝잖아요. 저도 실제로 구두 신은 모습이 궁금했는데.]
[지금, 방송국에서 인턴 생활 중입니다. 그래서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상황이죠.]
[그랬군요. 정말 아쉽네요. 아니었으면 직접 얼굴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요. 혹시 시연씨는 영어를 잘하나요?]
[영어요? 그럼요. 저보다 훨씬 잘합니다. 제 여자친구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입니다. 하하하.]
엄청난 재력가인 시연이 집안이, 그녀의 교육에 소홀할 리가 없다. 게다가 명석하기까지 시연이다 보니 할 줄 아는 외국어만 무려 두 개다. 여기서 할 줄 안다는 건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외국어를 말한다. 그렇게 영어와 프랑스어는 원어민 수준이고, 그 밖에도 일본어와 스페인어도 꽤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녀의 외국어 구사 능력은 아나운서 시험에서도 큰 플러스 요인이었다.
지금은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훨씬 일찍 시작한 나보다 잘할 것 같아서 차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지 못하고 있다.
[미스터 마보다 잘한다면 대단한 실력이겠네요. 그럼 시연씨가 자신의 책을 직접 번역해도 되겠네요. 감성적인 글은 역시 본인이 표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니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왜 시연이의 영어 실력을 물어보나 싶었는데 결국 책 이야기로 돌아갔다.
기승전 책도 아니고···.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시연이 의사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네. 꼭 부탁드릴게요. 미스터 마.]
[그런데 조세핀 이사님. 이제 슬슬 오늘 우리가 만난 목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신지요?]
만나서 시연이 이야기만으로 거의 한 시간이 지났다. 우리 팀 사람들이나 월드 베리어스 클럽 관계자들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그럼요. 지금까지 너무 일과 상관없는 이야기만 했죠. 여러분들에게 모두 미안합니다. 그럼 이제 일을 시작하죠. 우선 D&Y 피트니스 센터 측에서 우리를 보자고 한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다나카 아크로바틱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 말씀을 미리 드리는 건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겠다면, 준비해온 내용을 들어는 보겠습니다.]
시연이에 대해 푼수처럼 느껴질 정도의 관심을 보이던 조세핀 스톤 이사. 그러나 그녀는 역시 공과 사가 분명한 미국인이었다. 일 이야기가 들어가자 아까와는 달리 카리스마 넘치는 월드 베리어스 클럽 이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얼음처럼 차가워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오늘 미팅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겁을 먹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기획마케팅부 직원들도 모두 동원해서 철저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그들을 믿고, 오늘의 발표를 위해 정말 죽을 고생을 한 정지영 과장을 믿고 지켜보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일어선 정지영 과장을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는, 자리에 앉아 프로젝트 빔이 비추는 하얀색 화면을 조용히 주시했다.
***
다나카 아크로바틱의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실.
조세핀 스톤 이사를 리츠 칼튼 호텔까지 무사히 수행한 아사코는,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했다.
“그러니까 조세핀 스톤 이사와 D&Y 피트니스 센터에서 나온 남자 사이가 심상치 않았다? 그 작자 이름이 마동수라고 했나? 아무튼, 그 작자가 스톤 이사가 혹할 만큼 잘 생겼나? 아니면 나보다 몸이 더 좋아? 정력이 좋게 생겼어? 그게 아니면 나에게는 전혀 관심을 안 보이던 여자가 왜 갑자기 그 녀석에게 관심을 보인 거지?”
보고의 요지를 잘못 이해한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이 질투심이 가득한 얼굴로 아사코를 닦달했다.
조세핀 스톤 이사는 누가 봐도 매혹적인 여자였고, 그 또한 첫 대면 이후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온몸이 근육으로 가득 찬 데다 전형적인 마초 기질을 가진 그는 조세핀 스톤 이사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해 상당히 자존심 상해했다.
그의 상식으로 근육은 남성성의 상징이며, 그런 남성성의 최고 사슬에 자리한 사람이 바로 키사라기 에이지 자신이었다. 그리고 진정 원한다면 자신의 남성성을 거부할 수 있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사장님. 그냥 첫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자주 만난 사람처럼 굉장히 화기애애했습니다. 사과의 뜻이라며 마동수 그 남자의 여자친구에게 20만 엔이 넘는 고가의 구두를 선물할 정도로요.”
“매력이 있으니까 내게는 도도하게 굴던 조세핀 스톤 이사가 그러는 거 아닌가?”
“정말 관심이 있었다면 그 남자 여자친구에게 고가의 선물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멍청하긴! 그게 다 위장일 수도 있다는 건 생각 안 해 봤나? 원래 그런 식으로 환심을 사는 거야. 그리고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다.’라는 말도 있잖아.”
아사코는 계속 헛다리를 짚고 있는 그녀의 상사가 답답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런 느낌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남녀 사이의 호감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아사코가 조세핀 스톤 이사의 머릿속을 어떻게 알아? 그건 자네가 판단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내가 물어본 거잖아. 마동수라는 그 남자, 스톤 이사가 혹할 만큼 매력적으로 생겼느냐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땠어?”
“아주 매력이 없어 보이는 외모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보다 훨씬 허약해 보였습니다.”
“그래? 그럼 외모에 혹한 게 아닐 수도 있겠군. 나보다 약해 보이는 남자에게, 조세핀 스톤 이사가 관심을 보일 리는 없겠지···. 그나저나 내일 두 사람이 만나기로 했다고? 그래서 아사코보고 내일은 오지 말라고 했고?”
“네. 사장님. 지난번에 아프다고 미룬 면담을 내일 한다고 합니다. 조세핀 스톤 이사에게 그만큼 공의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는 앞에서 경쟁자나 다름없는 D&Y 피트니스 센터 관계자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굴었다는 게 굉장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여자 같습니다.”
“그런 건 상관없어. 그 정도 매력을 가진 여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변덕이니까. 그리고 설사 조세핀 스톤 이사가 마동수 그 녀석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이번 협상의 진짜 주체는 그 여자가 아니라 에저튼의 둘째니까.”
만약 조세핀 스톤 이사가 정말로 마동수에게 관심이 있다면 두 회사 간의 제휴는 언제든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의 얼굴은 아사코가 이해하기 힘들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에저튼이요?”
“그래 에저튼. 아사코는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고 있어. 자세한 것까진 알 필요 없어. 확실한 건 이유가 어쨌든 간에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우리 다나카 아크로바틱 사이의 제휴는 곧 맺어지게 되어 있다는 거야. 이해했어?”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작품 후기 ============================
뭔든 쉬운 게 없는 법. 주인공은 아직 고생을 더 해야 합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등장한 시연이 책의 미국 진출??? 로맨스 소설이 무슨 미국까지 진출하냐. 개연성 없다. 그런 말 듣지 않습니다. 제게 시연이는 진리입니다. ㅎㅎㅎ 시연이 만쉐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