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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26화 (326/424)

0032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말총머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싸움은 분명 그가 유리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였고 화풀이하듯 구타를 이어갔다. 그의 맹공에 윤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드를 올리고 치명상을 피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나중에는 고양이 쥐 가지고 놀 듯 여유까지 부렸다.

그러나 결국 바닥에 먼저 누운 사람은 윤권이 아니라 그였다.

딱 한 방.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이를 악물며 기다렸던 윤권의 회심의 박치기 한 방에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와···! 저걸 역전하네.”

“그러게요. 저것들 다 풀어줘야 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는데 진짜 다행입니다.”

박 경위가 윤권의 끈질긴 근성에 감탄했고, 왕 경사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자. 잡소리 그만하고 최대한 빨리 정리에 들어간다. 조금 있으면 엠블런스와 기자들이 도착할 거야. 물론 경찰차도.”

“벌써요? 상황은 이제 종료됐는데 기자는 언제 부르신 겁니까, 대장?”

“동수가 쫓겨왔을 때 이미 연락했죠.”

계급은 두 단계 낮지만 나이는 박 경위가 광우보다 열 살 많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광우도 그에게는 항상 말을 높인다. 이렇듯 항상 예의 바른 모습에 나이 많은 부하 경찰에게조차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었다.

“아니, 그러다가 윤권이라고 했나? 아무튼 저 친구가 졌으면 어쩌려고 하셨습니까?”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만약 질 수도 있었지 않습니까. 실력이 말총머리가 위라면서요?”

“여기가 홈그라운드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2002년에 괜히 월드컵 4강에 올랐다고 생각하십니까? 홈에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여간 대장 똥배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데 언론에는 뭐라고 하실 생각입니까? 아직 배후가 누군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요.”

“아마 배후를 밝히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저런 놈들을 움직일 정도면 꽤 고귀(?)하신 분들일 텐데 우리가 수사하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분명히 위에서 쉬쉬하라고 압력이 들어올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럴 땐 언론에다가 선수를 쳐버리는 게 낫습니다.”

아무리 광우가 독불장군같은 면이 있다고 해도 경찰인 이상 조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윗선의 압력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며 노련해졌고, 상황에 따라서는 언론을 이용할 줄 아는 유연함도 보였다.

“그럼 뭐라고 언론에 낼 생각입니까?”

“글쎄요. 아직 생각해놓은 건 없는데요.”

“그럼 ‘공권력에 도전하는 폭력조직, 광수대를 기습하다!’ 이건 어때?”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동수가 의견을 냈다.

“저놈들을 깡패들로 몰아가자고? 자기 입으로 깡패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렇다고 마땅히 설명할 방법도 없지 않아? 부자들하고만 거래하는, 폭력까지 동원하는 정보 브로커라고 설명할 거야? 그럼 언론에 소식이 나가자마자 전부 꼬리부터 끊으려 들걸.”

“아···! 그러니까 수사 방향을 잘못 잡은 것처럼 놈들의 방심을 노리자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박 경위님.”

“그런데 동수씨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사실 그가 진짜 묻고 싶은 건 대체 저런 놈들에게 쫓기는 이유였다.

“저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죠.”

“평범한 직장인에게 일어날 일은 아닌데요?”

“음···. 그럼 좀 일을 잘하는 직장인이라고 해두죠. 너무 잘해도 껄끄러워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런!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결국은 우리 대장님과 비슷한 처지군요.”

“광우가 저랑 비슷해요?”

“그럼요. 워낙 능력이 출중해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까지 건드리시거든요. 그러니 죄짓고 사는 높은 분들에게 대장님은 눈엣가시 같아 보일 겁니다.”

“유유상종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벌써 오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몰려오는 차가 많습니다. 얼마나 부른 겁니까, 대장님?”

박 경위는 멀리서부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 행렬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심지어 중계차도 끼어있었다.

“저는 구급차와 경찰만 불렀고, 언론은 저 녀석이 불렀습니다. 야 인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 난 분명 그냥 신문기자 한 명만 보내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무슨 중계차까지 동원이 돼? 대체 뭐라고 했는데?”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했지.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쫓겨 납치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친구를 만나 위기를 모면했다. 친구 말로는 이런 무리들을 상대할 땐 언론에 터트리고 보는 게 좋다고 한다. 도와 달라.’ 이렇게.”

그의 말처럼 동수는 고현호 사장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너무 사실대로 이야기한 게 문제였다. 누구보다 동수를 아끼는 고현호 사장 입장에서, 또 다시 동수가 납치당할뻔한 일은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화가 난 그는 김학수 부장을 비롯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언론은 총동원해 이곳 훈련장으로 출동시켜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중계차를 동원할 정도로 엄청난 언론의 관심이었다.

“짜식! 네가 고현호 사장 측근 이긴 측근인가 보다. 고작 전화 한 통화로 저런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는 걸 보니 말이야.”

“흐흐흐. 내가 좀 신임을 받긴 하지. 부럽지?”

“부럽긴! 넌 일단 훈련장 안 숙소에 들어가 있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저놈들이 노린 건 네가 아니라 우리로 할 테니까.”

“오케이. 그럼 안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방송국 사람들 물러가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아 참! 그리고 안에 구급 상자는 있지?”

“구급 상자는 왜?”

“윤권이 녀석 발라줘야지. 오늘 제일 많이 고생한 녀석인데.”

“신경 안 쓰이는 척하더니. 약만 발라주지 말고 보너스도 듬뿍 줘. 저 녀석 아니었으면 넌 지금쯤 어디론가 끌려가서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르잖아.”

“당연하지. 내 목숨값은 비싸니까 보너스도 아주아주 듬뿍 줄 거야. 그럼 고생해라.”

***

“뉴스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시연의 집.

가족끼리 오붓하게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 8시 뉴스를 시청 중이었다

“오늘 낮 XX시 경기도 고양시 효자동에 위치한 경찰 훈련장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는 소식입니다. 자세한 내용, 현장에 나가 있는 이선규 기자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장의 이선규 기자 나오세요.”

“네. 저는 지금 괴한의 침입을 받은 경기도의 경찰 훈련장에 나왔습니다.”

“괴한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들이 왜 경찰을 기습했는지 밝혀졌습니까?”

“정확한 사실관계는 경찰의 조사가 끝나야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중간 발표 내용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이번 경찰 훈련장을 기습한 괴한들은 서울의 한 폭력조직 일당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오늘 이곳에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대원들이 동계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아마 해당 광수대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 중입니다.”

“폭력 조직요? 이선규 기자. 지금 폭력 조직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경찰 발표에 따르면 폭력 조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건 우리나라 공권력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보이는데요. 경찰에서는 지금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까?”

“경찰도 이번 기습공격을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해당 조직 조직원에 대한 일제 검거에 나섰습니다. 뉴스가 나가는 지금 이 시각 일제검거 및 소탕 작전에 돌입했으며, 작전이 끝나는 대로 언론에 소식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이번 기습으로 부상당한 경관은 없습니까?”

“다행히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체포과정에서 범인들이 워낙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그들 조직원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현재 경찰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중상자도 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전해왔습니다.”

기자를 비추던 카메라는 말총머리 일당들이 끌고 온 자동차로 화면을 전환했다. 그리고 그 옆에 문짝이 반파된 노란색 모닝 승용차도 함께 방송을 탔다.

그 장면을 본 시연의 눈이 큼지막하게 변했고, 불안감에 심하게 흔들렸다.

“저··· 저 차!”

“왜 그래, 시연아? 아는 차야?”

“엄마. 저기 나오는 노란색 차. 동수씨 것 같아.”

“뭐? 설마. 우연이겠지. 노란색 모닝이 얼마나 많은데.”

“아니야. 동수씨 차가 확실해! 뒤에 붙어있는 스티커 내가 선물해준 거란 말이야.”

“뭐? 그게 정말이니?”

동수를 너무 좋아해 이젠 뉴스를 보면서도 그를 떠올린다고 어이없어하던 노 여사는, 딸의 표정을 보며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비스듬히 누워서 TV를 보던 윤 사장도 시연의 말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일 아닐 거야, 시연아. 이상한 추측하지 말고 일단 전화부터 해봐.”

울상을 짓는 딸을 달래며 우선 동수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무사한지 확인부터 하도록 했다.

시연은 윤 사장의 말에 휴대전화를 꺼내 단축번호 1번을 꾹 눌렀다.

***

Rrrr

“네. 여보세요.”

- 동수씨! 괜찮아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울먹이는 시연이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 무슨 소리 나뇨. 방금 뉴스 속보에서 동수씨 차가 나왔단 말이에요.

“큼. 그랬어?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시연이가 먼저 알아버렸네.”

뉴스에 내 차가 나왔다는 말에 아차 싶었다. 결과는 좋았지만 갑작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며 나 또한 그런 일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 동수씨! 이런 일이 있으면 제게 제일 먼저 알렸어야죠!

“미안해. 일단 경찰 조사부터 받느라 연락 못 했어. 조사가 방금 끝나서, 나도 전화하려고 했단 말이야.”

시연이의 염려가 담긴 목소리에 난 일단 사과부터 했다. 경찰조사는 아직 없었지만 훈련장에 딸린 숙소에서 쉬다가 광우와 맛있게 밥까지 먹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를 잊어버린 게 아니라 걱정할까 봐 소식을 전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결국은 시연이가 먼저 알아버렸지만 말이다.

- 다친 곳은 없고요? TV 보니까 차 많이 망가졌던데요.

“응. 다행히 없어. 난 괜찮은데 윤권이가 좀 다쳤어.”

- 네? 윤권 오라버니가요? 왜요? 어쩌다가요? 많이 다쳤어요?

“아니야. 많이는 아니고 그냥 타박상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일단 자세한 건 이따 만나서 이야기할게. 조금 이따 출발할 거니까 자지 말고 기다려야 해.”

- 당연하죠! 밤 길이니까 조심 운전해서 오세요.

“그래. 조심조심 빨리 갈게.”

-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보고 싶으니까 조심해서 빨리 간다는 말이야.”

- 그래도 꼭 조심운전은 해야 해요!

“알았어. 근처 도착하면 전화할 게.”

============================ 작품 후기 ============================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시연이가 이 사건을 아는게 중요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연이 아빠인 윤 사장님이 아는 게 중요하죠.

아.. 그런데 이번 사건 누가 사주한 건지 아시죠? 떡밥 던져놓은 좀 돼서 잊어버린 분들도 계시려나 모르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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