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팀장님. 구파발 지나서 있는 훈련장은 전부 예비군 훈련장 아니었나요?”
“그렇지. 나도 대학생 때 여기서 훈련받았잖아. 마포랑 서대문 지역 대학은 56사단에서 담당할걸?”
“그런데 어떻게 광우 형님은 이쪽에서 훈련하시는 겁니까?”
“광우가 조용한 훈련장을 원했고, 그래서 정부에서 남는 예비군 훈련장을 개조해서 녀석에게 넘겼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광우가 나이에 비해 계급이 굉장히 높지만 그래 봐야 일개 경찰이다. 그런 그에게 정부가 훈련장을 내줬다는 게, 윤권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들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광우가 정부 요원 훈련 교관도 겸임하나 봐. 국정원 현장 요원도 가르친다고 그러더라.”
“광우 형님 실력이면 당연히 그러고도 남겠지만···. 그런데 그런 이야길 팀장님에게 막 해도 되는 겁니까?”
“괜찮으니까 하는 거 아니겠어? 비밀스러운 임무는 아니잖아. 지금 우리가 가는 곳도 공식적으론 서울지방경찰청 직할 훈련장이야. 어이. 성윤권. 내 말 듣고 있어?”
“···”
“갑자기 뭐해?”
이야기는 듣지 않고 딴짓을 하는 윤권을 보며, 동수가 그를 불렀다. 그러나 윤권은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만 연속적으로 훑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꼬리가 붙은 것 같습니다.”
“뭐? 꼬리가?”
“팀장님. 그냥 모른 척 계십시오.”
누군가 따라붙었다는 말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려던 동수를 윤권이 제지했다.
“진짜 누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거야?”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동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담담한 척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예전 주폭 삼인방에게 납치당했던 기억이 그의 가슴을 억눌렀다.
“그건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상하게 여겼던 건 홍제동에서부터입니다. 혹시나 하고 주시했는데 지금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쫓아오고 있습니다. 자동차 세 대가 번갈아 가며 선두를 바꿔가며 따라와서 저도 눈치를 늦게 챘습니다. 하는 짓을 보니 꽤 용의주도한 녀석들이에요.”
“이제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잘 됐습니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노련한 동수였지만, 이런 위급 상황에서는 민간인일 뿐이었다. 그걸 아는 윤권은 우선 동수의 마음부터 진정시켰다.
“차라리 잘 됐다고?”
“미행하는 솜씨를 보면 보통 놈들은 아닙니다. 모닝이라 도망도 못 갔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이면 광우 형님을 만나러 가는 날 이런 일이 생긴 건 천운이죠. 팀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광우 형님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 열 명이 달라붙어도 못 이기는 괴물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아··· 그렇지. 광우가 있었지. 이것 참.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그런데 윤권아. 광우가 있는 훈련장까지 가려면 아직 10분은 더 가야 하는데 괜찮을까?”
“괜찮을 겁니다. 팀장님은 안전벨트만 꽉 메고 계십시오.”
“실장님. 저 자식들 눈치챈 것 같은데요?”
“그렇지? 슬금슬금 속도를 내는 걸 보니 도망갈 준비를 하는 가 보네.”
“어쩌죠? 경찰에 신고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음···. 좀 더 한적한 곳으로 가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저놈들 세워.”
“네. 알겠습니다.”
끼기긱~! 부우우응!
말총머리를 한 남자의 지시에 운전자는 기다렸다는 듯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탄 자동차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뒤따르던 두 대의 자동차 또한 곧장 앞에 차를 뒤따랐다.
200미터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던 두 차 간의 거리가 순식간에 100미터 안으로 좁혀졌자. 윤권이 안간힘을 내며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았지만 1000cc도 안 되는 모닝이 2000cc가 세단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유··· 윤권아, 따라잡히겠다.”
뒤따라오던 차가 맹렬한 속도로 따라붙자 동수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 다 왔습니다. 저기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되는 거죠?”
“나도 몰라. 여긴 처음이니까. 그냥 내비가 시키는 대로 가면 돼.”
치지직~!
“2호차. 2km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몬다. 내비게이션 상으로 빈 공터다. 오버.”
- 알았다. 오버.
부우응!!
말총머리 남자의 지시에 뒤따르던 2번째 자동차가 앞으로 튀어나가며 노란색 모닝 왼편에 바짝 붙었다. 금방이라도 튕겨내 버릴 것 같은 맹렬한 기세였다. 그리고 삼거리에 도착하기 직전 자신의 육중한 몸체로 동수가 타고 있는 차 왼편을 밀어붙였다.
콰광~!! 끼기긱!
강력한 충격에 모닝이 왼쪽 문짝이 깊게 찌그러지며 자동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크윽···. 이 미친놈들. 백주대낮에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난생처음 겪어보는 차량 추격전에 충격을 받은 동수가 소리쳤다. 그렇지만 처음과 같은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라, 이미 침착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납치됐던 트라우마에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지만, 원체 정신력이 강한 동수였다. 그리고 곧 만나게 될 광우에 대한 믿음이 그의 더욱 편안하게 만들었다.
“괜찮으십니까, 팀장님?”
“안 괜찮아. 씨이···. 아까운 내 차 다 찌그러졌잖아.”
“네에? 하하하. 그러기에 팀장님에게 모닝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게다가 노란색이라니요. 진짜 우리 두 사람이 타기엔 너무 작고 귀엽다고요.”
걱정스레 묻던 윤권은 농담까지 하는 동수를 보며 마음을 놓았다.
“그래. 바꾼다. 바꿔. 마음 같아서는 억수로 좋은 차로 바꾸고 싶은데 우리 사장님 차가 국산 중형이라 고민이네.”
“이제 이사에서 사장이 되셨으니 사장님 차를 바꿔도 되지 않습니까?”
“아! 그러네. 이야. 성윤권. 너 이 녀석 이 와중에 그런 꼼수를 생각해내다니. 많이 컸네.”
“서당개 삼 년 아닙니까. 그나저나 저 녀석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이쪽으로 몰았을까요?”
“그러게. 내비게이션에는 여기가 막다른 길로 나오잖아. 토끼몰이한다고 생각하나 보지. 저 봐! 일부러 거리도 좁히지 않고 있잖아. 개자식들.”
“확실히 보통 놈들은 아닌데 운이 없네요, 저놈들. 하필이면 광우 형님을 만나야 한다니.”
“악! 악! 악!”
때는 12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북한산 자락 작은 훈련장에서 10여 명의 남자들이 민소매 티셔츠만 입고 비 오듯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목소리 봐라. 이래가지고 너희가 대한민국 최고의 광역수사대 대원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리고 그 옆에서 광우가 큰 소리로 그들을 독려했다.
““아닙니다.””
“목소리가 작아. 그러니까 되지도 않은 잡범에게 부상을 당하는 거야.”
“큭···”
“8번 올빼미. 불만 있나?”
“아··· 아닙니다. 불만 없습니다.”
광우의 질문에 8번 올빼미라고 불린 남자가 깜짝 놀라 부정했다. 그러나 불만 가득한 그의 얼굴은 쉽게 감춰지지 않았다.
사실 이번 일은 모두 8번 올빼미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경찰 동기가 소장으로 있는 파출소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난동을 부리던 취객이 휘두르는 칼에 옆구리가 살짝 스친 게 문제였다. 큰 상처도 아니었고 곧장 취객을 제압했지만 그 소식은 곧장 광우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일주일째 북한산 기슭 어딘가에서 이렇게 바닥을 구르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잡범이라는 말은 정말 억울했다. 단순 취객인 줄 알았던 그놈은 폭력전과만 10건이 넘는 인근 조직폭력 조직 행동대장이었다. 그런 조폭을 제압하는데 옆구리가 살짝 스친 건 실수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광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조폭이든 아니든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놈’ 따위에 상처를 입었다는 건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 오늘도 잡범에게 상처 입은 허접한 8번 올빼미는 동료들의 눈총을 받으며 열심히 바닥을 굴러야 했다.
“자! 이것으로 이번 동계훈련을 마무리한다. 모두 수고했다.”
일출을 보며 시작했던 훈련은 태양이 중천을 지낼 때쯤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 하지만 모든 훈련이 끝났다는 광우의 선언에도 누구하나 기뻐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쁘지 않은 게 아니라 기뻐할 힘조차 없어, 바닥에 누워 거친 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은 특별히 내 친구가 쏘기로 했다. 다들 알 거다. 제주도 성폭행 사건과 용역 비리 사건을 의뢰해서 우리를 꽤 고생시켰던 녀석이다. 고마웠다고 한턱내는 거니까 허리띠 풀고 마음껏 먹어도 좋다.”
“진짭니까?”
특히나 먹성이 좋은 왕 경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
“오! 3번 올빼미. 아직 힘이 남아 있었나 보네?”
“다행히 먹을 힘은 남아 있습니다.”
“하하하. 다행이네. 먹을 힘이 없다면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녀석은 조금 있으면 도착하고, 그 녀석이 주문한 밥차는 1시간 정도 있다가 도착한다고 한다. 참고로 내 친구가 꽤 돈을 잘 번다. 그래서 오늘 올 밥차는 동지호텔에서 준비한 최고급 뷔페다. 기대해라.”
““와···!””
“정말입니까, 대장님?”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이던 다른 대원들도 최고급 호텔 뷔페가 온다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나? 일단 나머지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가장 힘이 넘치는 3번 올빼미는 나랑 같이 친구 마중이나 가자.”
“예, 알겠습니다.”
밥차 소식에 힘이 난 대원들은 숙소로 돌아가 식사준비를 시작했고, 광우와 왕 경사는 동수를 맞으러 훈련장 초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장님! 혹시 저기 보이는 저 노란색 모닝이 혹시 친구분이십니까?”
“그래. 저 차 맞아.”
“돈 잘 번다면서요?”
“알뜰해서 그래. 돈은 잘 버는 거 맞으니까 안심하라고.”
“그런데 대장님. 밥차가 되게 빨리 오나 봅니다. 뒤에 다른 차도 따라오는데요?”
광우도 이미 그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모닝에서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열심히 뒤를 가리켰다. 손짓이 조금 다급해 보였다.
“불청객인가 보네. 그것참. 겁대가리는 없는 녀석들이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오는 거지.”
“불청객이요? 그럼 지금 친구분께서 쫓기고 있다는 겁니까? 대체 무슨 일로?”
“나도 모르지. 자세한 건 만나보면 알겠지. 확실한 건 뒤에 있는 녀석들이 나쁜 놈이라는 거야.”
“그리고 더 확실한 건 저놈들은 지금 지옥 길을 스스로 걸어들어오고 있다는 거네요. 다른 애들도 부를까요?”
“아니야. 애들 지금까지 훈련하느라 힘 빠져서 자칫 다칠 수도 있어. 차 세 대면 많아야 12명일 텐데 뭘.”
“헉! 그럼 대장님이 나서시는 겁니까? 오오오오오.”
광우는 말없이 묵묵히 앞서 나갔고, 왕 경사는 이미 사건이 끝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뒤따랐다.
============================ 작품 후기 ============================
긴박하게 추격씬을 쓰고 싶은데 어렵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