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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21화 (321/424)

0032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오랜만에 듣는 준호의 호들갑이다. 애써 무시하고 싶지만 이 녀석이 호들갑을 떨 때마다 꽤 골치 아픈 일이 생긴 터라 괜스레 걱정부터 앞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은 사무실을 쓰는 게 아니었다. 우리 팀과 김수현 팀장의 팀. 원래는 이렇게 두 팀으로 나눠서 사무실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조기훈 차장의 강력한 반대로 한 지붕 두 가족이 됐다.

조기훈 차장의 주장은 하는 일은 달라도 서로 원활한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혼자 있기 심심해서가 분명했다.

“왜 또 대체 무슨 일인데?”

이것도 여전히 익숙한 조기훈 차장의 반문이다. 그룹 본사에서 동지마트로 사무실은 바뀌었지만 오늘 아침의 소동은 마치 데자뷔를 보는 것처럼 익숙했다.

“대··· 대박 마트가 글쎄. 대박 마트가 글쎄요.”

“아이고 그놈의 자식. 더듬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 안 해?”

짜증 섞인 조기훈 차장의 구박에 추미래의 눈이 샐쭉하게 변했다. 요즘 회사 생활하는 재미 중 하나가 준호와 추미래의 몰래 연애를 지켜보는 거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아무도 모르게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 사무실을 쓰는 사람 중에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기와 사랑은 숨기기 힘들다는 말처럼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금방 티가 났다. 두 사람만 모르고 있을 뿐. 이렇게 모른 척 조용히 지켜보다 보면 지금처럼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된다.

자기 애인 구박한다고 샐쭉해지는 추미래의 모습은 솔직히 귀엽고 한편으론 부럽다. 나도 가끔은 시연이와 사내 연애를 하고 싶은데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니까요. 조금 전에 엘마트가 대박마트 인수를 발표했어요.”

“뭐? 그게 사실이야?”

“네. 저도 오는 길에 휴게실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쏜살같이 달려왔다니까요.”

젠장! 준호가 호들갑을 떨 때부터 알아봤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우리가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확실한 게 아닐 수 있으니까 일단 인터넷부터 확인해봐.”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왜? 김 팀장. 사실 아니래?”

“아니요. 지금 검색어 순위에 엘마트와 대박마트 이름이 상위권에 오르고 있어요. 보나 마나 인수 소식이겠죠.”

“어휴··· 진짜 망할 가야그룹이다. 어떻게 우리가 좀 잘 돼 가는 꼴을 못 보냐. 안 그래?”

“지금까지는 우리보다 순위가 앞선다는 사실로 자위하며 살았는데 이젠 정말 대형 할인 마트 업계에서 꼴찌잖아요. 자존심 강한 가야 그룹에서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겠죠. 지난번에 보세요. 우리한테 밀렸다고 노블레스 짐 책임자들 전부 모가지 날아갔잖아요.”

“치졸한 가야그룹 놈들. 아무리 그래도 하필이면···. 아니다. 팔 곳이 엘마트 밖에 없었지. 이렇게 되면 업계 2위는 당분간 안녕인 건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런데 꼭 업계 순위가 중요한 건 아니죠. 매출이 우리보다 앞선다고 순이익이 꼭 우리보다 앞서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DJ마트만 제대로 정착하면 결국은 뒤집힐 순위에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하게 먹어요.”

“그래. 깔끔하게 2위에 오른 다음에 손을 놓고 싶었는데 그게 좀 아쉽네.”

“그건 그러네요. 그런데 그것도 그냥 우리 뒤에 들어올 팀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자고요. 내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2위에 오를 테고, 그럼 보너스라도 좀 받지 않겠어요? 대신 수고해주는 셈인데 그 정도 선물은 줘야죠.”

“그런데 마 팀장아. 중국어 공부는 잘 되고 있어? 난 머리가 굳었는지 죽겠다, 죽겠어.”

이미 우리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그래서 조기훈 차장부터 막내인 추미래까지 다들 열심히 중국어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는 중이다.

“저요? 저야 뭐···. 하하하.”

“너도 잘 안 되지? 마 팀장도 서른이 넘었으니 이젠 젊은 게 아니라니까.”

“그게 아니라요. 저는 작년부터 중국어 공부를 해서, 이제 웬만큼 대화도 되거든요.”

그때는 중국어가 필요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팀원들의 모진 구박에 그냥 뭐라도 하자 싶어 생각 없이 다녔던 학원인데 중국 진출을 앞둔 지금 내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벌써 대화가 된다고? 치사한 자식!”

“그러게 미리미리 공부하지 그러셨어요. 흐흐. 아··· 맞다. 그리고 차장님. 저는 일이 있어 지금 퇴근합니다.”

“뭐? 벌써?”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먼저 퇴근한다고요.”

“그랬었나?”

“아, 진짜! 차장님 나이가 몇 갠 데 벌써 그렇게 깜빡깜빡하세요?”

“뭐 인마? 너도 내 나이 돼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사람 구박하지 말고 얼른 퇴근이나 해.”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다들 고생해요. 먼저 퇴근합니다.”

***

치지직~!

“목표가 둥지를 떠났다.”

동지마트 본사가 있는 송파점 주차장 근처에 세워져 있던 흰색 밴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들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 소식을 전했다.

그의 눈은 날카로운 빛을 띠며 조금 전 주차장 입구에서 나오고 있는 노란색 모닝 승용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치지직~!

- 오케이. 출발 인원은?

“남자 둘.”

- 다른 한 명은 항상 같이 다니는 그 덩치?

“그래. 대학교 때까지 유도를 했다는 그 덩치.”

- 둘이 대체 무슨 사이길래 매번 그렇게 붙어 다니는 거야?

“나도 모르지. 진짜 보디가드일 수도 있고.”

- 일개 팀장이 보디가드는 개뿔. 혹시 알아? 정말 붙어먹는 사이일지. 클클”

“미친. 목표 약혼녀를 보고 그 소리가 나오냐?”

- 그건 그렇지? 마음 같아서는 목표는 내버려두고 그 자식 약혼녀를 손봐주고 싶은데.

“닥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의뢰인이 분명히 그랬어. 절대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러니 목표에만 집중해.”

- 워, 워. 왜 갑자기 짜증이야. 알았어. 집중한다고. 나는 뭐, 상상도 못 하나. 솔직히 죽이게 예쁜 건 사실이잖아.

“조사해봐서 알잖아. 어떤 집안 여식인지. 잘못 건드리면 우린 골로 간다고. 죽으려면 혼자 죽어. 나는 아직 할 게 많아.”

- 그냥 상상이라니까. 미치지 않은 이상 차기 서울경찰청장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양반 조카를 건드릴 일이 있겠어?

“쯧쯧쯧.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겨우 그 정도 생각밖에 못 해?”

- 뭐라고? 이 자식이! 내가 뭘 지나친 건데?

“진짜 무서운 건 여자 집안이라고. 작은아버지야 겨우 지방경찰청장 후보로 물망에 오른 거고 여자 아버지는 경찰청장이나 검찰총장도 움직일 수 있어. 그러니 꿈도 꾸지 마.”

- 젠장! 어쩐지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니.

“그런데 괜찮겠어? 목표도 해병대 출신이니 아주 바보는 아닐 테고, 같이 다니는 덩치는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야.”

- 그래 봤자 아마추어야. 넌 머리 전문가고, 난 몸 전문가. 잊었어?

“그래 알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이번 고객은 꽤 큰돈을 걸었단 말이야. 그러니 절대 실패하면 안 돼.”

- 고작 두 명 상대하는데 차를 세 대나 동원했어. 실패하고 싶어도 못해···. 오케이. 노란색 모닝 발견. 목표 확인. 작전에 들어간다. 통신 끝. 수고.

“수고”

통신을 마치고 무전기를 글로브 박스에 집어넣은 남자는, 흰색 밴을 몰고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

“팀장님. 오늘은 누굴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내가 이야기 안 했어? 광우 만나러 가.”

“으액···. 누굴 만나러 간다고요?”

“광우. 광우 몰라? 최광우.”

“저··· 전에 만났던 그 경찰관 형님요?”

큰 덩치로 꾸부정하게 모닝을 몰던 윤권이는, 광우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래. 네가 사람 못 알아보고 까불다가 개망신당한 그 광우.”

“흑. 갑자기 그분은 왜요?”

“왜는 인마. 친구니까 보는 거지. 녀석이 바빠서 최근에 얼굴을 못 봤어. 훈련인지 뭔지 한다고 바빴다고 하더라고.”

“그 형님도 훈련을 하세요.”

“훈련이야 매일 하지. 전에 얼핏 들었는데, 광우는 모든 생활이 훈련이야.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을 잘 때까지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산다더라.”

밥을 먹을 때도 의자에 앉지 않고 기마 자세로 밥을 먹는 녀석이다. 나도 광우를 보며 처음 느꼈다. 천재가 노력하면 얼마나 괴물이 되는지···.

“역시. 그러니 그런 괴물이 되신 거군요. 그런데도 부족해서 훈련을 따로 하시는 거예요?”

“아니. 밑에 사람들이 범인을 잡다가 부상을 당했대. 그런데 광우 그놈 성격이 지랄 맞아서 자기 새끼 맞고 오는 건 절대 못 참잖아. 훈련 부족이라면서 애들 데리고 합숙 훈련에 들어갔지. 부상 당한 애까지 끌고.”

“으윽···.”

“왜 네가 그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상상만 해도 끔찍하잖아요. 제가 그때 잠깐이지만 광우 형님에게 개인 훈련을 받았거든요.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정말 죽을 뻔했다니까요.”

“그래도 광우 말로는 쓸만하게 변했다고 하던데?”

“제가 놀랄 정도로 실력은 확 늘었죠. 그래도 다시 그때 그 고통을 겪으라면 사양하고 싶어요. 진짜 징글징글했다니까요.”

“하하하. 그걸 무협지에서는 기연이라고 하는 거야. 그런 천운이 쉽게 오는 줄 알아?”

어디 가서 절대 힘들다는 소리는 안 할 것 같았던 윤권이가 저렇게 질린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그냥 웃음만 나왔다.

“저도 아는데 천운은 한 번으로 만족할래요. 그런데 광우 형님을 만나러 왜 구파발로 가세요?”

“구파발이 아니라 구파발 지나서야. 약속 장소가 북한산 근처에 있는 훈련장이거든. 오늘이 훈련 마지막 날이라서 내가 한턱내기로 했어. 그동안 그 팀에 신세 진 게 많아서. 그리고··· ”

“그리고요?”

“반나절이지만 너도 같이 테스트 좀 받고.”

“네에? 으아아악! 티··· 팀장님. 노··· 농담이시죠? 그렇죠?”

내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광우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농담은 아닌데 네가 원한다면 돌아가도 돼.”

“저 혼자서요?”

“그래. 좀 있으면 구파발이잖아. 거기서 지하철 타고 가.”

“휴···.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야 없죠. 명색이 보디가든데, 팀장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따라가야죠.”

“난 정말 괜찮아. 거기서 훈련장까지는 한적한 길인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어?”

“안 됩니다. 그냥 오늘 하루 죽었다 생각하고 고통을 즐기면 됩니다.”

“하하하. 녀석. 누가보면 진짜 지옥이라는 가는 줄 알겠다.”

두 사람이 탄 노란색 모닝은 구파발을 지나 창릉천을 따라 북한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세 대의 검은색 세단이 조용히 따라붙었다.

***

“어. 저 자식들 북한산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요?”

“그래? 오호. 드디어 기회가 생기겠군. 조용히 따라가다가 한적한 곳이 나오면 그대로 에워싸버려. 차가 모닝이라 도망가고 싶어도 못 도망가니까.”

“모닝인데 그냥 밀어버리면 안 되겠죠?”

“안 돼. 의뢰인이 죽이진 말라고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대신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지옥을 보여줘야겠군요.”

“흐흐흐. 지옥? 그거 좋지. 웰컴 투 헬이다. 이 녀석들아.”

============================ 작품 후기 ============================

지옥은 과연 누구에게?

다들 광우 아시죠? 오랜만에 다시 광우 등장. 두둥.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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