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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01화 (301/424)

0030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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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훈은 은평구 응암동에서 15년째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였다.

10여 년 동안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서 모은 돈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약간 큰 규모의 슈퍼를 차릴 수 있었다. 거의 구멍가게밖에 없던 당시에 그래도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슈퍼는 꽤 인기가 많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장가를 갔고, 아들딸을 낳아 내년에 큰아들이 중학생이 될 정도로 키웠다.

남편밖에 모르는 착한 아내 그리고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들딸까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던 그에게 요즘 고민이 생겼다. 가족들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스트레스만 커져 갔다.

“휴···. 망할 놈의 3-마트.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어떻게 다른 사람 슈퍼랑 100m도 안 떨어진 곳에 프리데이 슈퍼를 만들 수 있어?”

그의 요즘 고민은 다름 아닌 대기업을 등에 없은 SSM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형할인마트가 생기고, 주변에 편의점이 여럿 세워지면서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3-마트 프리데이라는 슈퍼까지 근처에 들어선다고 한다.

대형할인마트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이 변했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네 장사까지 욕심내는 대기업의 치사한 행태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있던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다고 하니 아직 몇 달 정도의 여유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그에게 기회가 아니라, 목을 감고 점점 졸라오는 올가미나 다름없었다. 프리데이 지날 때마다 철거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는 꼴을 지켜보자니 숨이 턱턱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 요즘 무슨 고민 있어요?”

“고민은 무슨.”

유동훈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아내가 물었다. 그러나 가장의 책임감 때문인지 약한 모습은 감추고 싶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고민있는 사람처럼.”

“내가?”

“그래요. 당신이요. 제가 당신 얼굴 하루 이틀 본 게 아니잖아요. 거의 15년이 됐어요. 그러니 무슨 일인지 말해봐요.”

성실하고 밝은 남편이 항상 고마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소 짓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별일 아니겠지 모른척 하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그의 수심이 너무 깊어 보여 어쩔 수 없이 말을 걸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러지 말고 말해봐요. 무슨 고민인지 모르지만, 저는 당신 아내예요. 설마 바람피는 건 아니죠?”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침부터 밤까지 슈퍼에서 일한다고 맨날 같이 붙어 있는데 바람피울 시간이 있어?”

“있으면 바람이라도 피우게요?”

“이 사람이 점점. 당신 나 몰라? 내가 바람은 무슨···.”

“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말해봐요. 당신이 바람피운 일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어요. 고민이 있으면 같이 나눠야 가족이죠. 안 그래요?”

유동훈은 물끄러미 아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예전 곱던 처녀 시절의 아내는 이제 없었다. 아이들 둘 건사하랴, 슈퍼 일 도우랴 얼굴이 주름이 많이 늘었다. 그런데도 그의 눈에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언제나 잘나고 싶은 게 남자 마음이다. 한편으로 고민이 있으면 함께 나누는 게 가족이다.

아내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유동훈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결심을 한 듯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당신도 대충 눈치는 챘을 거야. 요즘 벌이가 예전만 못해. 알지?”

“네. 알죠. 대형할인마트다 편읜점이다 그런 곳들이 자꾸 생기니 매상이 줄어들 수밖에요. 그래도 당신이 성실해서 단골이 아직 많이 있잖아요.”

“그래.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었지. 그런데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나 봐. 저 초원초밥 건너편에 있던 낡은 건물 헐리고 있는 거 알지?”

“지나가다 저도 봤어요. 그거 헐고 새로 짓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런데 아직 뭐가 들어올지 정하지는 않았다고 하던데···.”

“그게 동네 상권 침해 문제가 자꾸 불거지니까 쉬쉬하는 모양인데, 사실 3-마트 프리데이가 들어온다고 하더라.”

“네에? 프리데이가요? 말도 안 돼! 근처에 3-마트도 있는데 왜 프리데이를 왜요?”

이곳에서 15분 거리에 3-마트 은평점이 있다. 참고로 그곳은 우리나라 대형할인마트 중에서 매출 순위 3위 밖으로 밀려나 본 적이 없는, 3-마트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는 효자 매장이었다. 그 중요성 때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 엘마트 본사도 그곳에 있을 정도였다.

유동훈이 운영하는 슈퍼도 3-마트 은평점이 들어섰을 때 꽤 큰 타격을 입었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 덕분에 중형도 소형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인 그의 마트는 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었다. 근처에 3-마트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곳도 아니고 왜 하필 프리데이가 근처에 들어서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말이야. 이러다가 나중에 애들 코 묻은 돈까지 가로채려고 문방구나 분식점 장사도 하는 건 아닌지 몰라. 아니지. 분식점은 벌써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 더러운 놈들 같으니라고.”

“그래서 그렇게 고민이 많은 거예요?”

“응. 이제 몇 달 후면 프리데이가 들어올 텐데, 솔직히 자신감이 안 생겨. 가격 경쟁만 된다고 해도 어떻게 해볼 텐데, 가격부터 상대가 안 되잖아. 거긴 3-마트 유통망을 이용해 제품들을 싸게 공급할 거라고. 그런데 우린 그것보다 훨씬 비싸게 주고 물건을 받아와야 하잖아. 아무리 단골이라도 물건값이 너무 차이가 나면 결국 싼 곳으로 가게 되어 있어. 그걸 가지고 의리없다고 할 수는 없잖아. 나라도 물건 값이 싼 곳으로 가겠다.”

“휴···. 그런데 저기 여보.”

“응?”

“제가 아까 뉴스를 봤는데요. 동지마트가 동네 상권과 상생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대요.”

“뭐? 동지마트가? 웃기시네. 거기도 똑같은 대기업인데 무슨 상생. 잘 이용해 먹다가 나중에 버릴려고 그러는 거지. 아니면 편의점처럼 로열티를 잔뜩 요구하던가. 그런 말에 현혹되지 마! 대기업 놈들은 다 똑같은 것들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거기 사장이 고현호라는 사람이잖아요. 예전에 당신도 그 사람은 괜찮아 보인다고 칭찬했잖아. 그제도 비정규직 직원들 상당수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멋진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처음 아내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일을 추진하는 곳이 동지마트였다. 그곳이라면 왠지 다를 것 같았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 피해자들을 돕고, 처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인건비를 생각하면 비정규직 유지가 훨씬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을 선언한 기업.

그런 동지마트가 동네 상권과 상생을 하겠다고 하면 아주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랬지. 거기서 뭐라고 했는데?”

“DJ마트를 만들겠데요. 그냥 듣기에는 프리마트나 파워프레스랑 비슷해 보이는데, 전혀 달라요. DJ마트 상호를 이용하는데 드는 로열티가 없어요. 그 외에도 금전적으로 돈이 나갈 일은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단, 동지마트와 동지유통에서 공급하는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요. 그리고 계약이 불리하다 싶으면 위약금 없이 언제든 계약 해지를 선언할 수 있대요.”

“그게 말이 돼? 그럼 걔들에게 뭐가 남는데?”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한 번 읽어보세요. 아까 저기 신문에 나와 있었어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계산대 옆에 놓여있던 신문을 유동훈에게 건넸다.

유동훈은 그녀가 주는 신문을 펼쳐 유심히 살폈다. 아내의 말처럼 동지마트는 정말로 동네 상권과 상생할 생각과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DJ마트의 경쟁력이 뭔지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전국의 많은 동네 슈퍼들이 동지마트와 함께 한다면, 그 숫자는 프리데이나 파워프레스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해진다. 그곳 모두에 동지마트와 동지유통이 제품을 공급한다면 그 물량만으로도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대량 생산 및 대량 공급을 통해 다른 두 마트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동네 슈퍼만으로도 규모의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누가 이번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지 모르겠지만, 그 천재성에 유동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DJ마트 상호가 적힌 간판을 공짜로 공급해준다는 세심함에 감동까지 느꼈다. 희망자에 한해서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리모델링도 해준다고 한다. 순간 이거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15년 된 슈퍼라 상황이 된다면 제대로 새단장을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동지마트가 대신 대행해준다고 하니 이 기회를 놓치면 바보나 마찬가지였다.

유동훈은 기사 말미에 적힌 동지마트 DJ마트 사업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Rrrr

- 네. 동지마트 DJ마트 사업팀 추미래입니다.

“아···. 여기는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응암슈퍼입니다. DJ마트 신청자를 모집한다고 들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 잘 생각하셨어요. 사장님. 전화로는 자세한 설명을 하기 힘들어, 전문적으로 상담을 해줄 직원을 파견해 드리고 있습니다. 상담을 듣고 저희와 함께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설명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추미래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굉장히 밝은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지만 목소리부터 신뢰가 갔다. 거기다 전화 상담이 아니라 직접 직원을 파견한다고 한다. 그동안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많았는데, 직접 겪어보니 역시 대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합시다. 언제쯤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 저희도 이번 프로젝트를 가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상담을 할 수 있는 직원들을 따로 교육 중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최대한 빨리···. 잠시만요. 네? 팀장님? 팀장님이 직접 가신다고요? 네. 그렇게 말씀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저희 팀장님이 마침 응암동에 볼일이 있으시다고 직접 가신다고 하십니다. 오늘 시간 되세요?

“그럼요. 슈퍼는 매일 장사를 하니까요.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세요. 그런데 여기를 알려나 모르겠네.”

“응암동에 있는 응암슈퍼라고 하셨죠? 팀장님이 거기 어딘지 아신다고 합니다. 아마 2시간 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번 DJ슈퍼 프로젝터는 모두 팀장님 머리에서 나왔으니까, 직접 설명을 들으시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설명을 듣고 꼭 저희 동지마트와 함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마워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기다리리다.”

전화를 끊은 유동훈은 마음이 설렜다. 왠지 팀장이라는 사람과 만남이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프리데이 원망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원망하는 마음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역시 사람은 간사한 모양이다.

딸랑~~!

마트 입구에 달린 종이 맑게 울리며,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어서오세요.”

유동훈은 언제 고민을 했느냐는 듯 밝고 친절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다.

============================ 작품 후기 ============================

동네 상권과 상생하기 프로젝트.

주인공이 오랜만에 간접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인데 존재감을 잃고 있는 상황? ㅎㅎ

하지만 내일 다시 등장합니다. 너무 우려하지 말아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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