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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97화 (297/424)

0029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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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야? 협상이 잘 안 된 거야?”

협상단이 돌아오자 박호철 이사가 협상 대표인 서유남 부장에게 결과를 물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와룡그룹 수뇌부는 매우 다급한 입장이었다. 해결책으로 제시된 게 문제가 되었던 포에버마트의 매각이다 보니, 협상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조급하게 굴었다.

“오늘은 일단 협상을 중단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왜? 뭔가 내가 모르는 문제라도 생겼어?”

협상은 사랑과 비슷하다. 상대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이듯 더 조급한 사람이 철저한 약자가 된다. 그래서 협상에 있어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포커페이스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마동수의 페이스에 잠깐 말리긴 했지만, 서유남 부장의 오늘 대처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상황이 불리해도 어쨌거나 동지그룹도 포에버마트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협상에 임하는 중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저자세로 나가 스스로 손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땅콩 스캔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에버마트를 판다고 해도 최대한 제값을 받아보자는 게 서유남 부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호철 이사의 조급증을 보니 이번 협상이 꽤 어렵게 진행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문제는 없었습니다. 첫날이니 간단하게 서로의 입장만 나눠봤습니다. 본격적인 협상은 내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봐. 서 부장. 당신이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협상에 임할 때가 아니야. 지금 상황이 어떤 줄 몰라서 그래? 하루하루가 아쉬운 상황이라고.”

“그건 저도 잘 압니다. 이사님.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협상을 진행하면 최소한 천억 원 이상의 손해를 만회할 수 있습니다. 한두 푼도 아이고 최소 천억 원입니다. 그러니 협상을 조금만 차분하게 바라봐 주십시오.”

“그래. 천억 원. 그 돈이 적은 돈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아. 그런데 말이야. 지금 이놈의 스캔들 때문에 와룡그룹 가치가 하루에 천억 원 이상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적자로 인한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우리가 하루에 보는 손해가 수천억 원이야. 그걸 막자고 포에버마트를 팔려고 하는 거잖아. 이해가 안 가? 하루 끌어서 천억 원의 손실을 본다고 해도, 그 하루 때문에 와룡그룹이 보는 손해는 최소 두 배 이상이야. 이 정도 산수는 할 수 있지? 서 부장.”

“저도 그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와룡그룹 주가가 떨어지는 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스캔들만 조용해지면 금방 회복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반면에 동지그룹과 협상을 통해 생기는 천억 원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현금입니다. 같은 금액의 돈이라고 해도 그 가치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걸 생각해주셔야 합니다.”

“쯧. 그래. 서 부장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회사를 생각하는 당신 마음 고맙게 생각해. 그런데 지금 서 부장 행동은 우리 와룡그룹 이사회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짓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서유남 부장은 박호철 이사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회사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이자고 하는 행동이 왜 이사회 결정을 반박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사회에서는 포에버마트를 한시라도 빨리 매각하는 게 와룡그룹을 살리는 일이라고 판단했어. 본사 이사회 임원들이 서 부장보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 생각을 못 한 건 아닐 거 아니야. 털어버릴 건 털어버리고 와룡그룹을 완전히 새롭게 쇄신하자는 의미가 크다고. 그런데 서 부장이 지금 회장님을 비롯해 다른 임원들이 결정한 일을 뒤엎으려고 하고 있잖아. 안 그래?”

고맙다면서 하는 말이 듣고 보니 비꼬는 말이었다.

자기는 회사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수뇌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유남 부장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땅콩 스캔들만 봐도 와룡그룹 박씨 일가가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냥 예전 누군가가 그에게 말한 것처럼 와룡그룹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을 원할 뿐이라는 사실을 깜박했다.

“죄··· 죄송합니다. 이사님. 제가 너무 열정에 넘쳐서 잠시 주제넘은 짓은 했습니다. 짧은 소견에 회사를 위한답시고 하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회사에 큰 손해를 안 길 뻔했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의 뒤늦은 말에 박호철 이사의 마음이 얼마나 누그러질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서유남 부장은 최선을 다시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그래. 이제라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으면 됐어. 아 참! 동지그룹에서는 포에버마트를 얼마에 사겠다고 그랬어?”

“처음 제시한 금액이 2조 9천억 원이었습니다.”

“뭐? 이런 도둑놈 같으니라고. 아무리 그래도 2조 9천억 원은 너무하잖아.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 얼마를 제시했어?”

“지금 가치인 3조 7천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뭐? 쯧쯧. 그러니까 얼토당토않게 2조 9천억으로 맞불을 놓은 거잖아. 그 중간 지점이 3조 3천억 원이니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마지노선과 비슷하네. 그럼 더 이상 고민할 게 뭐가 있어?”

“그런데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 마지노선을 아는 느낌이···. 아···. 아닙니다. 그냥 제가 좀 과민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그냥 이사님 조언대로 될 수 있으면 내일 협상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서유남 부장은 뭔가 협상장에서 느꼈던 찜찜함을 이야기하려다 말았다. 그리고 조금 전,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금세 그 다짐을 잊고 뭔가 하려고 드는 자신의 아둔함을 혼자 책망했다.

“그··· 그래 과민반응 맞을 거야. 그쪽에서 우리 마지노선을 어떻게 안다고. 그냥 우리가 생각했던 가격이랑 그쪽이 생각하고 있는 가격이랑 비슷하다는 건 3조 3천억 원이 지금 포에버마트의 적당한 가치라는 걸 뜻하는 걸 거야. 그러니 괜히 쓸데없는 공명심을 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도록 해.”

박유철 이사는 서유남 부장의 지적에 속으로 뜨끔했지만, 태연한 척 표정을 찌푸리며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짓도록 종용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

쾅!

“크윽···. 빌어먹을 새끼들. 자기들이 그동안 내게 처먹은 돈이 얼만데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접할 수 있어.”

봉일구는 술을 단숨에 마시고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얼마 전까지 포에버마트의 인사부장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스캔들이 터지면서 졸지에 주동자로 몰려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포에버마트는 지점이 100개가 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대형할인마트 중의 한 곳이다. 그만큼 근무하는 직원도 많았고, 그 인원을 관리하는 인사부장의 권한도 꽤 막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천호용역이라는 곳에서 그에게 접근을 했다. 자신들이 공급하는 인력을 고용해주면 인당 매달 7만 원의 정도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당장은 큰 돈이 되지 않더라도, 포에버마트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가 1만 명을 넘는다. 그리고 인사부장의 입김이 상당히 강하게 닿는 비정규직의 숫자는 7천 명 가까이 된다.

전부 천호용역을 이용하긴 어렵겠지만, 차차 숫자를 늘려 최종적으로 2천 명만 고용해도 한 달에 1억 4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셈이다. 일 년이면 15억 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다. 딱 참고 일 년만 돈을 받아도 팔자를 펼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혼자 그 돈을 전부 먹을 생각은 없었다.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인사부장의 권한이 막강하다고 해도, 그래 봐야 월급쟁이다. 혼자 그 떡을 다 먹으면 체한다는 생각에 봉일구는 포에버마트의 몇몇 중역들에게 용역 비리에 대한 대가로 상당한 많은 돈을 상납했다.

그들 또한 그리 청렴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는 돈을 마다할 사람이 아니었다. 돈을 받을 때는 입이 찢어지라 좋아해 놓고 용역비리가 문제가 되자 그에게 돌아온 건 차가운 외면뿐이었다.

그 사건으로 그동안 불법적으로 축적했던 재산은 대부분 회수되고, 직장마저 그만둬야 했다. 운이 좋게도 구속 기소가 된 건 아니지만, 조만간 재판을 받아야 하고 최악의 경우 징역형을 살아야 할지도 모를 처지가 됐다.

자신은 그렇게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같이 돈을 먹고 어떤 보호도 해주려고 하지 않았던 배신자들은 여전히 포에버마트에서 중역 행사를 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최근 땅콩 스캔들이 터져 포에버마트가 상당히 시끄럽긴 해도, 그들이라면 그 고난을 잘 견뎌내고 계속 자리를 지키며 희희낙락 즐겁게 살아갈 게 분명했다.

봉일구는 그게 억울했다. 자신은 완전 거지가 돼서 가족들까지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같이 작당모의를 했던 다른 이들은 여전히 잘 산다는 게 화딱지 나게 분했다. 그리고 등신같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등신같이 혼자만 모든 책임져야 했던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 처음엔 그랬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나중에 반드시 보상하겠다고. 그 말에 다 같이 죽는 것보다 모든 걸 뒤집어쓰고 혼자 감당하는 게 훗날을 생각하면 더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선택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제야 후회를 하고 공모자가 있음을 밝혔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검찰이나 경찰은 그의 말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심지어 괜히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며 욕만 먹고, 오히려 계속 헛소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당했다. 그 모습에 자신이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다는 걸 깨달았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이성이 점점 흐려지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살아 있어 봐야 오히려 가족에게 짐만 될 뿐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참에 목숨을 놓아버린다면 더 이상 가족을 괴롭게 만드는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지만 혼자 갈 수는 없었다. 같이 죽지는 못해도 자기들만 그렇게 여전히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기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협박까지 받아 증거로 제출도 못 했던 장부를 찾아, 다섯 부로 복사했다. 그리고 유언장도 만들었다. 유언장을 원본과 복사본에 첨부했다. 원본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언론사에, 사본은 검찰과 청와대 그리고 그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언론사에 배송했다.

낮술에 얼큰히 취했어도 우편물은 모두 제대로 보냈다. 우체국에서 나온 봉일구는 근처 마트에서 번개탄과 소주 한 병을 구입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고, 소주를 한 번에 다 마신 후 번개탄에 불을 피웠다.

유언장에는 자신이 자살할 곳을 알려뒀다. 빠르면 내일 쯤 발견 되리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가족에게 미안했지만,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술을 마셔서 그런지 많이 졸렸다.

그런데 ‘이렇게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와장창’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는 우악스러운 손을 말리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망할 놈의 새끼들. 우리 집이랑 무슨 원수를 졌나. 죽으려면 곱게 다른 곳에 가서 죽지, 왜 남의 집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지랄이야. 네가 벌써 세 번째다. 제발 나 좀 살려 주라. 집값 내려간다. 망할 놈아!”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런데 그게 꿈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게 술 때문인지 아니면 가스를 마셔서 그런지 그냥 머리가 몽롱한 채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때마침 터지는 2차 용역 비리 파동.

주인공의 행운은 어디까지. 태풍 속 고요일 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기 전에 선추코를 해주시면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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