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마 팀장. 이 자식! 대체 뭐하는 짓이야? 내가 분명 예의를 지키라고 했잖아. 여기가 애들 장난하는 놀이터인 줄 알아?”
“죄송합니다. 차장님. 저쪽에서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협상하면서 서로 의견 조율하는 건 당연한 과정이야. 그 과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어린애가 하는 짓이나 다름없다고. 계속 저쪽에서 양보 없이 자기 의견을 주장하면 협상을 그만두면 되잖아. 폭탄 맞고 있는 포에버마트 잘못 인수했다가 불매운동이 우리에게 넘어오면, 너나 나나 끝장인데 굳이 아쉬운 소리 할 게 뭐 있어? 그냥 서로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다고 이해하면 되잖아.”
이게 쇼라는 걸 모르는 우리 쪽 사람도, 포에버마트 매각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와룡그룹 사람들도, 협상을 그만두면 된다는 조기훈 차장의 말에 흠칫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해본 거죠. 가격만 맞는다면 인수해서 한 번 키워보는 것도 도전해볼 만한 일이잖아요.”
“그런 놈이 예의도 안 지키고 결례만 범하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 망할 녀석아. 당장 여기서 나가!”
“차··· 차장님. 아무리 그래도 마동수 팀장을 나가라고 하는 건 좀···.”
예상치 못한 말에 정지영 과장이 깜짝 놀라 조기훈 차장을 말리려고 나섰다.
“어쨌든 협상은 해야할 것 아니야. 그런데 저쪽에서 마 팀장이랑은 협상하지 않겠다고 하잖아. 그럼 쫓아내야지. 어쩌겠어. 마 팀장. 뭘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어.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 얼른 나가!”
짜고 벌이는 쇼라는 걸 몰랐으면 서운함을 느꼈을지도 모를 만큼 상당히 차가운 말이었다.
“차장님!”
“이 자식이 이제 내 말까지 거역할 셈이야? 얼른 나가!”
“네···. 알겠습니다.”
나는 실망한 척 고개를 숙이며 협상장 출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과를 들으려고 항의를 했던 와룡그룹 측은, 갑작스러운 나의 퇴장에 굉장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누가 그냥 나가래. 얼른 사과드리고 나가.”
“휴···. 알겠습니다. 와룡그룹 관계자 여러분.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말씀처럼 제가 협상장을 나가겠으니, 불쾌하셨다면 화를 풀고 협상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고 협상장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
“흠흠···. 제 부하직원이 결례를 범해 정말 죄송합니다. 마음 상하셨다면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동수가 나가자 조기훈은 와룡그룹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와룡그룹 사람들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데 꼭 퇴장시키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신경쓰지 마십시오. 예의를 안 지키는 사람은 협상장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협상이라는 게 뭡니까? 서로 적당한 선을 찾기 위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 아닙니까? 그럼 당연히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마 팀장은 그게 없었습니다. 이번 협상의 실무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어휴. 아닙니다. 언론에서 다들 ‘땅콩 스캔들’이라고 조롱하는 바람에 저희가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못난 모습 보여드려 저희도 죄송합니다. 일단 협상 계속 하시는 게 어떨까요?”
“분위기가 이런데 협상을 계속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음이 불편하시다면 다음 날로 다시 정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마동수 팀장 말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사실 저희는 한시가 급한 입장입니다. 그러니 다시 협상을 시작하시죠.”
예의 바른 조기훈의 말에, 여러모로 당황해 있던 와룡그룹 대표가 자신들의 다급한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마동수의 진상(?) 짓에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럴까요? 그런데 가격부터 답보상태라 저도 마음이 참 답답합니다. 생각하는 금액 격차가 너무 커요. 일단 서로 조금씩 양보가 필요할 것 같은데···.”
“흠···.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조기훈은 협상장에 들어설 때부터 최대 3조 3천억 원을 생각하고 나왔다. 상대가 자신들의 마지노선을 알려줬는데, 그 이상의 금액을 지급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와룡그룹은 지금 시가인 3조 7천억 원을 불렀고, 동지그룹은 거기에 맞춰 2조 9천억 원을 불렀다. 서로 양보하다 보면 결국 처음 생각했던 3조 3천억 원에 도달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 ~ 2천억 원 정도는 쉽게 깎으며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협상이 생각 외로 길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와룡그룹 수뇌부의 생각이 달라졌는지 아니면 와룡그룹 협상 대표가 지나친 공명심으로 욕심을 부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마동수가 벌인 한바탕 쇼 이후 한발 물러서는 느낌이었다.
“생각이 같으시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그럼 통 크게 2천억 원씩 양보하는 건 어떨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3조 1천억 원, 와룡그룹은 3조 5천억 원에서 다시 협상을 시작하시죠.”
조기훈의 말에 와룡그룹 협상 대표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사실 그의 말은 그냥 말장난이었다. 왜 와룡그룹이 양보해야 할 금액을 동지그룹에서 결정한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그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언제든 협상을 그만둘 수 있다.’는 조기훈 차장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말장난이든 아니든 상대 측에서 한발 양보했는데 그 제안을 거절했다가 협상이 결렬되면 모든 책임은 와룡그룹 협상 대표인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하하. 좋습니다. 현 시가보다 2천억 원이나 가격을 내린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한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기훈 차장님.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자산총액이 17조 원을 돌파했던 포에버마트입니다. 우리 와룡그룹이 가지고 있는 주식 35%이면 약 4조 9천억 원입니다. 잠깐의 이슈 때문에 가격이 내려가서 그렇지 이번 논란만 종식되면 금방 비슷한 가격대로 상승할 겁니다. 4조 9천억 원에서 3조 5천억 원이면, 무려 1조 4천억 원입니다. 원래 가치보다 1조 4천억 원이면 절대 동지그룹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압니다. 포에버마트의 원래 가치가 어땠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지금 양보해주신 3조 5천억 원에 포에버마트를 사고 싶습니다만 저도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먹고 사는 처지라 금액을 제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협상 실무 대표는 조기훈 차장님 아닙니까. 조기훈 차장님이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동지마트 윗분들을 납득하실 겁니다. 설마 그런 신뢰도 없이 협상 대표 자리를 줬을까요?”
“하하하. 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3조 5천억 원으로 합의를 보는 게 어떨까요?”
조기훈 차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자, 와룡그룹 협상 대표는 얼른 합의를 종용했다. 하지만 협상장에는 마동수 팀장뿐만 아니라 김수현 팀장도 차가운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까 마동수 팀장이 한 말. 솔직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포에버마트를 인수하는 건 폭탄을 끌어안는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 포에버마트만을 향했던 불매운동이 와룡그룹 전체로 번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포에버마트라면 3조 5천억 원이 아니라 원래 가격인 4조 9천억 원을 주고라도 살 수만 있다면 부조건 남는 장사였죠. 그런데 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도 밖에서는 와룡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포에버마트를 인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포에버마트가 그렇게 먹음직스러웠다면 다른 대기업들이 줄을 섰겠죠.”
김수현이 타이밍 좋게 치고 들어갔다.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고현호, 조기훈, 마동수, 김수현 이렇게 네 사람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할 말만 반드시 하고 마는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동수가 퇴장한 다음 김수현에게 나쁜 경찰2의 역할을 줬다.
그리고 그녀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 덕분에 협상장의 분위기는 또다시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허. 김수현 팀장은 또 왜 그래?”
“죄송합니다. 차장님. 그렇지만 와룡그룹이 자신의 처지를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동수 팀장도 오죽했으면 아까 그런 말을 했겠어요. 자꾸 왕년에 어쨌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중요한 건 지금 포에버마트가 처한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를 3조 원이나 주고 사주면 됐지, 더 이상의 조건을 요구하는 건 팔 생각이 없다는 뜻이죠.”
“크흠···. 김수현 팀장.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팔 생각이 없었으면 애초에 협상장에 나오지 않았겠죠.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여기 나온 건 아닙니다. 그렇게 확인되지 않은 말씀은 곤란합니다.”
“왜요? 저도 협상장에서 나가야 하나요?”
“김 팀장! 그만해. 동수도 그렇고 오늘 다들 왜 이래. 진정하자고.”
“죄송합니다. 마동수 팀장이 쫓겨나는 바람에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어쩌겠어. 와룡그룹에서 마 팀장이 있으면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러니 성질 좀 죽여.”
“네.”
“하하하.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팀장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줄 몰라서야. 이게 전부 아랫사람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다들 성격이 얼마나 강한지 윗사람 노릇 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 협상은 여기까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 분위기로 계속 했다가는 서로 감정만 상할 것 같군요. 내일 다시 뵙도록 하죠.”
김수현을 달랜 조기훈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방적인 협상 중단 선언이 튀어나왔다. 당황한 와룡그룹 측에서 그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조기훈은 이미 짐을 챙겨 협상장을 나가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정지영 과장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 와룡그룹 측에서는 아무도 오늘 일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
“수고했습니다. 차장님 그리고 김수현 팀장님.”
협상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조기훈 차장과 김수현 팀장에게 얼른 다가가 말을 걸었다. 믿고 나오긴 했지만, 계획처럼 잘 됐는지 궁금한 마음이 컸다.
“네. 주문하신 대로 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마 팀장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어차리 시간을 끌면 끌수록 포에버마트 가치는 계속 떨어질 텐데, 그럼 우리가 유리한 상황이잖아요. 굳이 연극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불매운동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김수현 팀장의 말도 맞다. 시간만 끌면 마음이 다급한 쪽은 와룡그룹 측이다. 그런데 불매운동을 이대로 뒀다가는 우리가 인수해도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만큼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불이야 우리가 냈지만, 한번 불이 번지고 나면 그걸 컨트롤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와룡그룹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거센 불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럴 땐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하는 게 맞다. 그래서 불필요해 보여도 이렇게 무리해가며 쇼를 하고 있다.
“저도 뉴스는 보고 있는데, 상황이 많이 안 좋나요?”
“네. 한시라도 빨리 인수하는 게 최고입니다. 괜히 너무 늦게 인수했다가 불똥이 우리에게 튀면 큰일이거든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그럼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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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협상 과정을 마구잡이로 질질 끌 생각은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 협상 마무리하고 포에버마트 수습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선추코 부탁드려요. 쿠폰도 있으면 하나 주고 가시던가요..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