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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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동지마트 TF팀 마동수 팀장입니다.”
회장님과의 만남에 긴장한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선을 보러 갈 것도 아니면서 몇 번이나 슈트와 넥타이를 입었다 벗기를 반복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곧바로 본사로 출근해 고현호 이사와 함께 회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90도 허리를 숙이며 갓 군대 입대한 신병처럼 큰 소리로 인사했다.
“어서 와. 자리에 앉아.”
사안이 보통 사안이 아니라 그런지 고진성 부회장까지 회장실에 와있었다. 고대성 회장은 묵묵하게 자리에 앉아 있고, 고진성 부회장이 우리를 반겼다.
“그래. 포에버마트 인수 건으로 나를 보자고 했다고?”
“네. 회장님.”
나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야 ‘아빠’라고 불렀는지 몰라도,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아버지를 항상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고현호 이사는 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것이겠지만, 아버지를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을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지금 포에버마트가 많이 위태로운데 인수해도 괜찮겠어?”
“네. 포에버마트 사태는 우연히 일어난 돌발사태가 아닙니다.”
“우연이 아니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 있는 마동수 팀장의 머릿속에서 나온 시나리오대로 움직인, 필연이었습니다.”
“설마 땅콩 스캔들까지 의도했다는 건 아니지?”
“왜 아니겠습니까? 박연하 전무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파악하고 일부러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유도했습니다. 동영상 촬영 그리고 언론 공개 심지어 불매운동까지 전부 처음부터 계획했던 내용들입니다.”
“뭐? 허허허. 이런 미친놈들.”
고현호 이사의 설명에 고대성 회장은 대뜸 ‘미친놈’ 소리가 나왔다.
그래. 솔직히 미친놈들 맞다. 우리가 유도한 땅콩 스캔들 하나가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만약,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건 동지마트뿐만 아니라 동지그룹에게도 어마어마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고대성 회장의 표정이 나쁘진 않았다. 원래 그의 성격이 그렇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무슨 짓을 하든 성과만 내면 그걸로 ‘OK’인 사람이 우리 회장님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들보고 ‘미친놈’이라니···.
“동지마트를 정상화하려면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됐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나 그런 일을 벌인 게야? 다른 걸 다 떠나서 와룡그룹과 적이 되는 일이야. 우리가 재계서열 5위라고 해도 와룡그룹은 우리보다 배 이상 큰 기업이야. 달리 재계서열 2위가 아니라고. 그런 곳이 우릴 적으로 여기고 마음먹고 전쟁을 벌이면 동지그룹 정도는 산산조각 내버릴 수 있다고.”
말투는 까칠해도 표정은 무덤덤해 보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시가 총액으로만 따져도 와룡그룹은 우리 동지그룹보다 2.5배 정도 큰 기업이다. 물론 동지그룹의 경우 타 대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낮고, 보유주식 비율은 높다. 거기다 상장하지 않고 있는 알짜배기 계열사까지 있어 수치상으로만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수십 년간 재계서열 1, 2위를 다투던 와룡그룹의 저력을 벼락부자나 다름없는 동지그룹이 감당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와룡그룹이 우리 동지그룹을 산산조각낼 일은 없다. 그러려면 자신들도 반 토막 날 각오를 해야 하는 데, 부모 죽인 원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식으로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전쟁이 벌어지는 불가능하다.
그걸 아는 고현호 이사는 고대성 회장의 호령에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잘못했으면 동지그룹을 말아 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서 뭐하겠습니까. 그리고 회장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실행한 겁니다. 속으로 좋으면서 티 안 내려고 너무 그렇게 타박하지 마시죠.”
헉!
나는 회장님 눈빛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아버지라서 그런지 고현호 이사의 얼굴은 굉장히 여유가 넘쳐 보였다.
하지만 회장님 앞에서 저런 식으로 막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미친놈이라고 부르는 아버지나, 타박하지 말라고 대드는 아들이나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회장실은 순간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봤고,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에 침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눈알만 뱅글뱅글 굴렸다.
“하하하하하. 진성아. 방금 현호가 하는 이야기 들었어? 속으로 좋으면서 티 안 내려고 너무 그렇게 타박하지 말란다. 용가리 통뼈라도 삶아 먹었나? 내가 알던 현호가 아니야. 저놈이 내게 저럴 수가 없지.”
“회장님 아들이 어디 가겠습니까?”
고대성 회장의 물음에 고진성 부회장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집안은 변태 집안이 분명했다. 말하고 행동이 희한하게 따로 논다. 이 사람들의 대화를 보고 있자니 내가 이상한 건지 저들이 이상한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러게 말이야. 이 녀석이 이렇게 강단있게 변할 줄 내가 어떻게 알았누. 애들 엄마가 하늘에서 날 보면 여린 현호를 망쳐놨다고 원망깨나 듣겠군.”
“회장님께서 원하시던 일 아닙니까?”
“넌, 나 닮기 싫다면서?”
“안 닮았습니다. 제가 회장님처럼 독불장군이라 자신감이 넘치는 게 아닙니다. 제 사람 덕분에, 제 사람들을 믿을 수 있어서 자신감이 생긴 겁니다.”
“네 옆에 있는 저 녀석을 말하는 거냐?”
“마 팀장도 제가 믿는 사람 중 한 명이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기 다른 그들이 모여 합심해서 만들어 내는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큰지 회장님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저는 그들 덕분에 누구보다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후후후. 녀석 하고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는 거냐?”
불호령이라도 떨어질 줄 알았는데, 고대성 회장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부자 사이에 독설이 오고 가는 게 뭐가 그렇게 좋은지, 확실히 변태(?)의 피가 흐르는 집안다웠다.
“포에버마트를 인수 안을 승인해주시면 됩니다.”
“벌써 와룡그룹에서 포에버마트를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단 말이냐?”
“네. 회장님.”
“하하하하하하하. 그래 잘했다. 큰소리칠만하네. 좋아. 포에버마트 인수 건은 현호 네게 전적으로 네게 맡기도록 하지. 그거면 돼?”
“네. 회장님. 그거면 충분합니다.”
포에버마트 인수 건을 고현호 이사에게 맡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고, 그래서 고현호 이사 입장에서는 충분하다고 말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전적으로’라는 단어다. 별거 아닌 말 같지만, 고현호 이사에게 포에버마트 인수와 관련해 모든 권한을 준다는 의미이다.
지금부터 고현호 이사는 인수 업무에 필요한 인원은 물론이거니와 인수금액까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된다. 수천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인수금액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뿐더러 필요하다면 임원급을 제외하고 동지그룹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누구라도 차출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 측 사람들을 뽑아서 동지마트 창고에 처박아 둘 수도 있다. 포에버마트와 관련된 일에 한해서는 무소불위나 마찬가지이니 고대성 회장이 정말 막대한 권한을 고현호 이사에게 넘긴 것이다.
“그밖에 또 원하는 게 있어? 마 팀장이라고 했나?”
“네. 회장님. 마동수입니다.”
“그래. 자네가 이야기해 봐. 혹시 내게 원하는 게 있어?”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전부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내게 그런 깡이 있을 리가 없다. 고대성 회장은 내게 가까이하고 싶지도 멀리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다.
“없습니다. 팀장으로 인사발령을 내 주신 것도 제게는 감지덕지한 일입니다.”
“그래? 하는 수 없지.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현호 너는 뭐 없어?”
“김칫국부터 마시기 싫습니다. 그렇다고 포상을 거절할 생각도 없습니다. 단지 정당한 포상은 포에버마트의 이름이 동지마트로 바뀌는 그 날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나도 보고 싶구나. 포에버마트가 동지마트로 바뀌는 날을. 그리고 마 팀장.”
“네. 회장님.”
“조용조용히 이야기해. 나 아직 귀 안 먹었어. 여기도 군대고 아니고, 그런 건 진성이 저 녀석 앞에서나 해. 진성이랑 같은 부대 나왔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조용히 말하라고 했지만, 도저히 조용히 말할 수가 없었다. 갓 임관한 소위가 육군참모총장도 합참의장도 아닌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앞에 있는 상황이다. 긴장 풀고 편하게 조용히 말하라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녀석 참. 조용히 이야기 하래두. 넌 언제 윤 스포츠센터로 옮길 거야?”
“네?”
이건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윤 스포츠센터 윤승태 사장 예비 사위라면서? 거기 딸은 하나밖에 없는데 결국은 마 팀장이 거길 경영해야 하지 않겠어? 능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잖아.”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회장님.”
“아니 왜? 윤승태 사장이 회사 안 물려준데?”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고현호 이사를 도와 동지그룹에 뼈를 묻을 생각입니다.”
“이 녀석도 제정신은 아니네. 아니 왜? 거기 재산이 한두 푼도 아닌데.”
“남자가 찌질하게 처가 덕을 보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잘라 버려야죠.”
내가 말하고도 깜짝 놀랐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당연히 처가 덕을 보고 살거라는 고대성 회장의 말에 솔직히 좀 욱했다.
“뭐? 그래서 현호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데 계속 돕겠다?”
“외람되지만, 저는 고현호 이사가 회장님의 후계자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처가 덕 보며 산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윤 스포츠센터를 경영하는 것보다, 차기 동지그룹 총수의 측근이 돼서 세계를 호령하고 싶은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허허허. 이 물건은 완전히 대놓고 꼴통이구먼. 차기 총수가 될 걸 확신한다? 하긴 포에버마트만 인수하게 되면 사실상 출발선이 같아지는 셈이니, 무모한 도전이라고 하기는 어렵겠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래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 작품 후기 ============================
인수과정은 줄여서 빨리빨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번 에피도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읽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추코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