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방법? 아주 없지는 않지만···.”
“뭐야? 괜찮은 방법이 있어? 뭔데? 말해줘.”
고현호 이사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박호철 이사가 조급하게 재촉했다.
“글쎄. 이게 좋은 방법일지 확신이 서지는 않아서 말이야.”
“일단 무슨 이야긴지 들어나 보자.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줄 알아? 망할 늙은이 같으니라고 나이가 팔십인데 아직도 팔팔해서 자식들을 쥐잡듯이 잡는다니까. 아주 죽을 지경이라고.”
“그런데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네게 도움이 되긴 되는 거야?”
지금 박호철 이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고현호 이사는 그런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돌리며 뜸을 들였다.
따지고 보면 박호철 이사 이상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한 게 고현호 이사였다. 그를 잘 꼬드겨 반드시 포에버마트를 인수해야 할 입장. 그러나 고현호 이사의 얼굴은 남의 집 불구경을 하듯 평온해 보였다.
그게 두 사람의 차이였다.
“당연하지. 물론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내가 막 후계자가 되고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아. 나야 울 아버지 셋째 부인의 막내아들이잖아. 하지만 내가 밀고 있는 넷째 형에게 힘을 실어줄 수는 있지. 그렇지 않아도 후계자에 가장 가까웠던 큰 형이 이번 일로 자리가 위태로워졌잖아. 이럴 때 넷째 형이 활약을 하게 되면 후계자 경쟁이 재편될 수도 있지 않겠어?”
박호철의 넷째 형은 박경태 와룡그룹 회장 두 번째 부인의 장남이다.
첫 번째 부인이 세 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세 명이 서로 똘똘 뭉쳐 나머지 이복형제들을 배척했다. 둘째 부인의 자식과 셋째 부인의 자식이 서로 힘을 합치는 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동안은 박호일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 형제가 워낙 막강한 파워을 발휘해 전혀 틈이 없었지만, 땅콩 스캔들이라는 무시무시한 여파가 후계자 경쟁에 상당히 큰 구멍을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박호철에게도 하나의 기회였다.
“그래? 네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일단 말은 해볼게. 내가 볼 때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포에버마트를 팔아야 해.”
“뭐? 포에버마트를?”
“그래. 지금 와룡그룹 입장에서 포에버마트는 암세포나 마찬가지야. 반드시 도려내야 해.”
“그렇지만 현호야. 포에버마트를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서열 3위로 밀렸다고 해도 2위인 엘마트와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그동안 포에버마트가 벌어다 준 이익 또한 막대했다. 확실하게 자리 잡은 대형할인마트는 같은 그룹 계열사들에게 엄청나게 큰 힘이 된다. 동지그룹이 그동안 계속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동지마트를 유지했던 것도 성공만 하면 그만큼 과실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잠깐 흔들린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업체가 절대 아니었다.
“그래. 나도 알지. 대형할인마트를 보유하고 있는 게 그룹 입장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그건 땅콩 스캔들이 일어나기 전에 이야기야. 지금은 달라.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의 포에버마트는 와룡그룹 입장에서는 암세포나 다름없어. 지금 도려내지 않으면 와룡그룹 전체로 번지고 마는 무시무시한 암세포 말이야. 그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불매운동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 포에버마트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포에버키친에서 일어난 일인데, 망할 놈의 새끼들이 우리 와룡그룹까지 시비를 걸고 있잖아. 왜 아무런 잘못도 없는 다른 계열사까지 피해를 주는지 이해가 안 간다니까.”
‘그래. 그걸 이해 못 하고 있는 게 너희 와룡그룹의 한계지.’
고현호 이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은 없었다.
“박연하 전무의 잘못을 덮으려고 와룡그룹이 움직였으니까. 그게 가장 큰 문제지. 그리고 그 여자가 그룹 부회장의 첫째 딸이니, 대중들 눈에는 그놈이 그놈으로 보일 수밖에. 처음에 ‘죄송합니다.’하고 고개를 숙였으면 괜찮았는데, 자꾸 오리발을 내밀었잖아. 사후 대처가 깔끔하지 못했어.”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당연한 결과라는 거야?”
박호철 이사는 고현호 이사의 말에 발끈했다.
“너희 일가 전체의 잘못이 아니라 네 형님과 조카의 잘못이지. 그 바람에 와룡그룹까지 피해를 본 거고. 대중들의 반응이 합리적이지 못하지만, 어쩌겠어. 지금은 대중들을 진정시키고 봐야 하는데.”
“대중들을 진정시킬 방법이 포에버마트를 매각하는 거다?”
“그전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지. 하지만 그걸로 끝나진 않을 거야. 그렇다면 이번 땅콩 스캔들의 원인이 된 포에버마트를 와룡그룹에서 분리해야 해. 대중들이 처음 분노한 건 포에버마트야. 그 분노가 커져서 와룡그룹에까지 번진 거잖아. 그런데 포에버마트가 더 이상 와룡그룹 소속이 아니라고 가정해봐. 그럼 대중들은 더 이상 와룡그룹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할 명분이 없어져 버려.”
“명분?”
“그래, 명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명분이라는 거 굉장히 중요해. 명분이 있어야 당위성과 설득력이 생기거든. 지금 대중들이 와룡그룹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는 건, 자식의 잘못에 대해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이 있어서야. 그런데 포에버마트가 더 이상 와룡그룹 계열사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와룡그룹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명분이 사라진다?”
“그렇지. 원인이 없어지면 불매운동을 계속 해나가야 할 명분도 없어지는 거야.”
“정말 그럴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포에버마트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 뼈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와룡그룹 전체에 미치는 손해를 언제까지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야.”
“어떤 문제.”
“포에버마트가 아무리 문제가 된다고 해도 그냥 폐업할 수는 없잖아. 누군가에게 팔아서 손해를 최소화 해야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 포에버마트 가치가 한두 푼도 아닌데 그냥 폐업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과연 어떤 그룹이 자칫 폭탄이 될 수 있는 포에버마트를 인수하겠느냐는 거지.”
“흠···. 그것도 그러네. 괜히 잘못 인수했다가 우리처럼 그룹을 상대로 불매운동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골치잖아. 쉽게 덤벼들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그럼 어쩌지. 현호야. 혹시 너희 동지그룹은 어때?”
마음 같아서는 ‘그래! 고맙다. 친구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날름 받아먹었다간 자칫 쓸데없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고현호 이사는 최대한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만들었다.
“뭐? 우리? 에이. 말도 안 돼. 솔직히 위험부담이 너무 커.”
“왜. 그동안 동지그룹에서 대형할인마트 시장에 진출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어. 우리 포에버마트를 인수하면 단숨에 업계 3위가 될 수 있다고. 아니지. 동지마트가 매장은 몇 개 안 되어도 요즘 잘 나간다면서. 잘하면 엘마트를 누르고 2위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겠네.”
“그건 잘 됐을 때 이야기지. 잘못되면 그나마 잘나가고 있는 지금 동지마트까지 말아먹을 수도 있잖아. 동지마트만 말아먹으면 다행이지. 동지그룹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인데, 함부로 뛰어들기 어렵지.”
“야! 그럴 거면 뭐하러 포에버마트를 팔라는 소리를 해. 인수할 기업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그러게 썩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러지 말고 3-마트나 엘마트에 파는 건 어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식으로, 박호철 이사가 오히려 역정을 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삐쳐있는 박호철 이사를 바라보며 은근히 이야기했다.
“그건 곤란해. 3-마트가 포에버마트를 인수하면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다고. 정부에서 합병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엘마트는 안 돼. 엘마트가 우리 포에버마트를 인수하면 규모에서는 3-마트를 넘어설걸? 절대 그 꼴 못 보지. 엘그룹이랑 우리랑 사이가 얼마나 안 좋은데. 차라리 폐업을 하면 했지 엘그룹에게 파는 일은 절대, 절대 없을 거야.”
고현호 이사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 모두 그가 의도한 이뤄지고 있었다. 절대 서두르지 않지만, 결국은 고현호 이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도록 그렇게 박호철 이사를 천천히 유도하는 중이었다.
“그럼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포에버마트를 인수할 기업이 마땅히 없네. 미안하다.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정말 어려워?”
“뭐가?”
“요즘 동지그룹 분위기 좋잖아. 솔직히 현호 너도 대중들에게 이미지 좋지 않아? 그 뭐냐. 비정규직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네가 개인 재산까지 털어서 피해자들 보상해줬잖아. 그 바람에 이미지 좋잖아. 그리고 윤시연인가 뭔가 하는 동지마트 모델은 기부천사라고 불린다면서. 너희 동지마트가 우리 포에버마트를 인수하면 그런 이미지 때문이라도 위험부담이 줄어들 것 같은데. 안 그래?”
“하지만 반대로 어렵게 쌓은 이미지를 포에버마트 때문에 날려먹을 수도 있어. 포에버마트가 한두 푼하는 것도 아니고 위험부담이 너무 커.”
“지금 상황이라면 우리도 제값을 달라고 하기는 어렵지. 주가도 많이 떨어졌고. 내가 이야기해서 인수가를 좀 낮춰 볼게. 어떻게 안 되겠냐?”
처음엔 포에버마트 매각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벌쩍 뛰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아까와는 정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팔지 못해서 애가 닳은 모습.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혼자 결정하기 어려워.”
“친구 좋다는 게 뭐야. 한 번 시도나 해봐 주면 안 돼? 현호야. 부탁 좀 하자.”
“너도 우리 아버지 성격 알잖아. 공과 사가 얼마나 분명한 양반인데. 아들인 내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냥 들어주실 분이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인수가를 낮춰본다고 하잖아. 원래 가치보다 인수가격이 낮아지고, 거기다 동지마트의 좋은 이미지로 포에버마트를 감싼다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부분을 회장님에게 보여드리면, 관심을 가지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흠···. 글쎄다. 인수 가격이 얼마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 게 포에버마트 주가잖아.”
“그건 나도 확실하게 말해줄 순 없어. 하지만 최대한 노력해볼 게. 그러니 너도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생각이라도 해봐. 잘되면 와룡그룹과 동지그룹 둘 다 윈윈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래. 알았어.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은 해볼 게.”
“하하하. 잘 생각했어. 고맙다. 현호야. 내가 이 은혜 정말 잊지 않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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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