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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69화 (269/424)

0026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헤드헌팅요? 거기서 왜 저를···.”

헤드헌팅 회사가 왜 나에게 관심을 가질까 의아해 하다가, 그제야 다른 회사에서 나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는 시민은행 박 차장의 말이 떠올랐다.

“헤드헌팅 회사니까 당연히 선배님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죠. 선배님이 아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 계통에서 선배님은 꽤 대어로 꼽히고 있습니다.”

“내가 대어라고요? 본사도 아니고 계열사 팀장에게 너무 과분한 평가군요. 더군다나 SKY를 나온 것도 아니고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지도 않았는데요.”

겸손한 척하는 말과 달리 마음속으로는 자신감과 여유가 넘쳤다. 내가 해낸 성과는 SKY의 수재들도 해외파도 해내기 힘든 일이다. 우리 동지그룹에서 최고의 인재라고 평가받는 인간들도 실패한 일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꼼수(?) 하나로 이뤄냈다.

그리고 이제는 시민은행의 박 차장이 했던 말처럼 정말로 헤드헌팅 회사에서까지 연락이 왔다. 방금 그녀가 언급했듯 대어로까지 평가받으면서 말이다.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유쾌한 일이었다.

“어머나. 저도 선배님 후배인데,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시다니요. 억울해요.”

“말투가 별로 안 억울해 하는 것 같은데요?”

“호호호. 이쪽 바닥에서 일하다 보니 학벌이 전부인 것 같으면서도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중요한 건 결국 능력이죠. 선배님처럼요. 더군다나 지금 모교에서 경영대학원도 다니고 계시잖아요. 내년에 대학원 졸업하면 MBA 과정을 이수한 어엿한 경영학 전문가가 되시니 선배님의 가치는 더욱 올라가겠죠.”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유 중 하나가 경영대학원이다. 작년에 교수님이 장학금까지 준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등록을 했고, 퇴근 후 수업을 듣고 집에 들오면 거의 12시가 된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에 회사에서 주는 지원금까지 받아먹는 처지라 땡땡이도 못 친다. 같은 건물에 있으니 시연이를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최고경영자코스와 달리 커리큘럼이 빡빡한 바람에 쉬는 시간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다.

“제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고, 저에 대해 많이 알아보셨나 보군요.”

“그럼요. 사실 선배님 정도의 대어는 저 같은 과장급이 아니라 이사급에서 나서셔야 해요. 그런데 제가 선배님 후배라서 다행히 기회가 왔어요.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저에 대해서요?”

“물론이죠. 아마 선배님 여자친구보다 많이 아는 부분도 있을 걸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셨는데 이거 어떡하죠. 제가 지금 이직할 생각은 없는데.”

“저도 솔직히 선배님이 한 번에 승낙하실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현호 이사님과 굉장히 밀착된 관계이니 웬만한 조건은 눈에도 안 들어오시겠죠.”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나 고현호 이사와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걸 보니 확실히 나에 대해 허투루 공부한 것 아닌 모양이었다.

“고현호 이사님과 밀착된 관계를 보니 스카우트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고, 그래서 이사급 대신에 과장급을 붙여준 건 아니죠?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호호호. 맞아요. 제가 아무리 같은 대학 후배라고 해도 제가 담당하기에는 너무 거물이 되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지금 당장 선배님을 이직시키기 위해 연락을 드린 게 아니에요. 지금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배님과 친분을 쌓는 정도의 목적이죠. 그리고 꼭 이직을 안 하셔도 상관없어요. 만약 선배님이 고현호 이사를 도와 동지그룹 후계자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새로운 인재들이 많이 필요하실 거잖아요. 아무래도 물갈이는 필요하니까요. 그때 친분이 있는 우리 회사를 이용해주신다면 그것만 해도 제게는 큰 이득이에요.”

“꽤 설득력 있는 말이군요.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나면 모른척하면 그만이니 말이죠.”

“그건 아니죠. 사실 지금 현재 동지그룹 후계자 구도를 본다면 고현호 이사가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요. 원래는 아주 희박했는데 그래도 가능성을 높여준 사람이 바로 선배님이라는 게 헤드헌팅 쪽 사람들의 평가죠.”

“저를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하다니 놀랍네요.”

“말씀드렸잖아요. 선배님은 이미 대어라고. 고현호 이사님이 후계자 경쟁에서 선전하면 선전할수록 선배님의 가치는 높아져요. 그건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나도 상관없어요. 이미 능력은 충분히 증명한 셈이니까요.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 측에서도 이미 선배님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임시 이사회까지 열었다고 하더군요.”

역시 비밀은 없나 보다. 정말 은밀하고 조용하게 열린 임시 이사회를 아무리 정보공유가 빠른 헤드헌팅회사라고는 해도 과장급 인사가 알 정도면 웬만한 대기업도 다 알고 있다는 의미다.

“꼭 저를 경계해서 열린 임시 이사회는 아니었죠.”

“누가 봐도 최종 목적은 선배님을 찍어내는 것이었어요.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니,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두 사람은 선배님을 중용하지 않을 거예요. 그때 가서 선배님을 스카우트하는 것도 제 전략 중 하나예요.”

“이것 참. 전략이라면서 너무 공개하는 것 아닙니까?”

“저랑 친한 경영학과 사람 중에는 선배님과 같은 A 섹션도 몇 명 있어요. 그중에 한 분이 그랬어요. 선배님 앞에서 잔머리 굴리려다가 망신당하기 십상이니 그냥 원하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라고요.”

“하하하. 후배들에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평가가 박하네요. 그래도 오소연 과장님의 노력은 충분히 알 것 같군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뭐가요?”

“다른 회사들이 선배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선배님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어떤 조건을 내세웠는지.”

“궁금하죠.”

“그럼 시간 좀 내주세요. 스카우트에 응하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들어만 보세요. 저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선배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소크라테스가 그랬잖아요. ‘너 자신을 알라.’라고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요.”

솔직히 궁금하다. 나를 높이 평가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이런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연봉은 얼말지, 직급은 어떻게 될지,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야 하는 건지 전부 궁금했다.

헤드헌팅 회사 같은 경우는 고객들과의 상담이 주 업무다. 그래서 진급이 빠른 편이다. 특히나 한국처럼 직급에 꽤 목매다는 사회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걸 고려한다고 해도 01학번이 과장을 달았다는 건 꽤 유능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확실히 설득에 힘이 있었다.

“음···”

“아니면 두 분이 데이트하실 때 시간을 내주시는 건 어때요?”

“네?”

“뭘 그렇게 놀라세요. 호호호. 이미 선배님과 윤시연 작가의 러브스토리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가 됐는데요. 심지어 선배님의 능력이 아니라 윤시연 작가의 후광에 관심을 가지고 스카우트를 제안한 기업도 있었어요. 물론 제가 전부 커트했지만요. 우리 네트워크 브래인의 판단으로는 선배님이 윤시연 작가의 덕을 보는 게 아니라, 윤시연 작가가 선배님 덕분에 많이 유명해졌다고 보거든요. 그 정도 안목도 없으면서 선배님을 욕심 내는 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군요.”

“네. 그런 기업을 커트하고 제대로 된 회사에 인재를 보내는 것도 저희가 할 일이에요. 참! 그리고 제가 두 분 데이트하실 때 시간을 내달라고 한 건 윤시연 작가도 경영학과 후배라서 그래요. 요즘 학생들이 제일 많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 중 하나가 헤드헌팅 회사거든요. 제가 선배님과 대화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 해도 윤 작가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딱히 거절할 핑계가 없었다. 그리고 시연이 앞에서 ‘이제 나는 헤드헌팅 업계에서도 주목하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어머! 아니에요. 윤시연 작가님을 본다는 건 제게도 영광인 걸요. 솔직히 그런 사심도 담겨져 있어요. 그리고 제 입으로 이런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제가 좀 유능해요. 정보 수집도 빠르고요. 저 같은 사람하고 친해지는 것도 선배님에게는 꽤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럽시다. 내일 시연이와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 되시면 같이 보시죠.”

“정말요? 감사해요. 선배님.”

“하하하. 고작 얼굴 한 번 보는 걸로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좋죠. 요즘 헤드헌팅 쪽에서 가장 핫하신 분과 미팅을 하는 건데요. 그런 의미에서 내일 식사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그건 됐습니다. 그냥 제가 사는 걸로 하겠습니다. 헤드헌터를 만났다가 알려지면 괜히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거든요. 우리는 내일 그냥 선후배로 만나는 겁니다. 업무관계가 아니라.”

“네. 알겠어요. 내일 뵐게요.”

아무리 회장님이 나를 팀장으로 직접 임명해주셨다고 해도 스카우트 제의 같은 건 조심해야 한다. 아마 시연이와 함께가 아니라 단둘이 만나자고 했으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거절했을 거다.

의도했든 아니든 오소연은 확실히 유능한 헤드헌터다.

***

“자! 모두 모여보세요.”

“···”

오소연과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후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다들 내 입만 바라보는 모습이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 같았다. 그나마 믿을만한 신당봉 대리는 신규 지점을 오픈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있다.

“이사님 재가를 받았습니다. 이제 실행에 옮기면 됩니다.”

“와···! 그럼 이제 첩보작전이 시작되는 건가요?”

“첩보작전? 끙···. 그래요. 뭐, 첩보작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겠죠.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번 일에 성공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우리 팀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이런 걸 당근으로 제시하기 싫지만, 성공하면 서라씨와 미래씨는 정규직 직원이 되겠죠. 보너스도 많이 받을 겁니다. 그리고 동지그룹의 초엘리트들도 실패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어낸 유능한 직원이라는 명예도 얻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거절하지 않는다면 제 밑에 두고 계속 데리고 다닐 겁니다.”

“제일 마지막이 가장 마음에 드네요.”

“저도요. 팀장님. 저도 팀장님과 평생 일하고 싶어요.”

“하하하. 평생은 힘들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팀장이 되어 제게 독립해서 부하 직원을 이끌 날이 오겠죠.”

“그날이 올까요?”

“옵니다. 오게 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일을 정말 최선을 다해 성공시켜야 합니다.”

============================ 작품 후기 ============================

아.. 여자 캐릭터가 개성없이 비슷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ㅠㅜ

요즘 여자를 못만나봐서 그런가 감이 안 오네요. ㅎㅎ 갑자기 슬퍼집니다. ㅠㅜ

4월 5일 합천 마라톤 대회를 나갑니다. 이번에는 하프. 꾸준히 운동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 하프는 만만치가 않네요. 힘들어요. ㅠㅜ 기록에 상관없이 완주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여기다 알리는 이유는 이렇게 해놔야 망신 안 당하려고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마라톤이 끝나면 철인 3종에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장가갈 생각은 안 하고 자꾸 엉뚱한 일만 벌인다고. 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선추코 부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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