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3-마트는 워낙 막강해서 이미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 있는 곳이 엘마트와 포에버마트다. 그래 봐야 정말 말 그대로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 고민을 해봐도 두 곳 모두 마땅한 공략법이 없었다. 매출은 여전히 증가세였고,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모기업이 탄탄하게 버티고 있어 외부적으로 뭔가를 시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꼭 외부에서 틈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자명고라는 신기(神器)로 침입이 불가능했던 낙랑국은 남자에 눈이 먼 딸의 배신으로 무너졌고, 그리스군의 파상공세를 10년 동안이나 지켜냈던 트로이는 순간의 방심으로 들인 목마 때문에 멸망했다.
굳이 옛 신화를 찾지 않더라도 지금껏 멸망한 대제국을 보면 외부의 강력한 침입보다는 내부의 부패나 권력다툼으로 자멸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강력했던 몽골 제국이나 로마 그리고 고구려도 내부의 문제가 곪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명했던 제국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외부의 침략보다는 내부적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외부적 침략보다는 내부적으로 공략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오히려 서로 단합해서 외부의 적을 향해 대응하기 때문에, 정면승부는 어쩔 수 없이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내부의 빈틈만 잘 찾아낸다면 손 안 대고 코를 풀 풀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동안 너무나도 비효율적 방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는지도 모른다.
“팀장님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팀원들에게도 좀 나눠주세요. 다들 서라씨가 나눠주는 자료를 보고 고심을 해봐요. 방법이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겠지만, 일단을 머리를 맞대어 봐야죠.”
“알겠습니다.”
“음···. 생각보다 자료가 방대하네요. 이걸 전부 서라씨가 조사한 겁니까?”
서라씨가 건넨 자료에는 두 회사 이사진의 약력에 대해 굉장히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정도 정보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새삼 그녀에 감탄했다.
“아니죠.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어요. 물론 시간만 주어진다면 못 조사할 것도 없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그러면요?”
“그룹 비서실에 요청했어요. 고현호 이사님의 요청으로 엘마트와 포에버마트 이사진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알려달라 이렇게요.”
“그렇게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물론 제 마음대로 하면 안 되죠. 고 이사님이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하셨거든요. 그게 아니라도 회장님께서···. 아니다. 본사에서는 회장님을 스페셜 원이라고 부른다면서요? 스페셜 원께서 직접 팀장님 꼬리 붙은 ‘대우’라는 글자를 떼어주신 후 우리 TF팀에 대해 다들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일하기 정말 편해요. 꼭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기분인데 나쁘지 않아요. 호호호.”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룹 본사 팀장 임명도 회장님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없다. 최소 핵심 부장급, 보통은 이사급 정도되어야 회장님도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신다. 그런데 고작 계열사, 그것도 등급으로 따지면 최악의 F등급으로 분류되던 동지마트의 팀장의 승진에 관여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두 아들인 고정호 전무와 고평호 상무에게 당분간은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뿐만 아니라 그룹의 부서들도 까불지 말고 동지마트에 협조하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었다. 실제로 협조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는다고 해도 회장님이 손수 인사발령을 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간 큰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하하. 회장님 끗발이 좋긴 좋군요.”
“그런데 팀장님 우리가 이 자료를 보며 뭘 찾아내야 하는 건가요?”
서라씨가 자료를 나눠주자 그걸 훑어보던 미래씨가 내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네?”
“확실하게 뭘 찾아야 할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저도 그냥 막연하거든요. 이미 알고 있다시피 우리는 엘마트나 포에버마트 둘 중 한 곳을 공략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너무 외부에서 두들기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 내부를 공략해볼까 합니다.”
“내부라면 어떤···.”
“약점을 찾아서 그걸로 내부를 흔들어 볼 생각입니다.”
“팀장님. 그건 좀 너무 비겁하지 않습니까? 남자라면 정면 승부죠.”
“그게 왜 비겁해요? 축구나 농구 아니면 격투기 같은 스포츠를 보면 다양한 전술이 존재합니다. 크게 보면 공격지향적 전술과 수비지향적 전술로 나눌 수 있죠. 그런데 수비지향적으로 하면 비겁해요? 스포츠는 힘겨루기가 아니죠. 서로가 가진 힘이 다른데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보고 우리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하자라고 하면 그게 정정당당한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정말 실망인데요.”
보통은 얌전하게 회의를 지켜보던 윤권이가 초를 친다. 망할 녀석. 하여간 생각하는 게 단순하다.
하지만 내가 잔소리하기 전에 서라씨가 나서서 시원하게 한 방 먹였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솔직히 비겁해도 상관없습니다. 불법적인 일만 아니라면요. 우리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지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치사해도 괜찮은 방법이다 싶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그렇다면 고위급 인사 특히 오너의 친족들 중에서 약점을 찾아 그걸로 뭔가를 하려는 계획이신 거네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죠. 하지만 반드시 그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요. 이건 제가 임의대로 수집한 두 회사 이사진들에 대한 자료들이에요. 뉴스나 신문 그리고 증권가 찌라시들을 종합해서 만든 거라 100% 신뢰하기는 어려워요. 제가 눈으로 확인한 사실은 아니니까요. 그냥 참고 정도로 하시면 될 겁니다.”
서라씨의 가장 주특기가 바로 이런 거다. 별거 아닌 소문을 가지고 사실을 유추하는 능력.
예를 모 여자 연예인이 CF 촬영차 외국에 나간 기사를 경제란에서 본 재벌 오너의 해외 순방 기사와 연관 지어 두 사람 사이의 스캔들을 맞춰내는 식이다. 남들은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사소한 기사라도 그녀에게는 언제든 좋은 소스가 되곤 한다.
나는 그녀의 독특한 시선이 마음에 든다. 정보 자체가 유용하든 아니든 내가 볼 수 없는 시각이 있다는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
“그래요? 그럼 이것부터 확인할게요. 엘마트 이사진 중 부회장 조카가 협력업체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 흐음···. 약해요.”
“미성년자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도 그 정도로는 약해요. 그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설마 네가 미성년자 성접대 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 너희 마트를 우리에게 넘기지 않으면 그 사실을 공개해버리겠다. 이럴 생각은 아니죠?”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아들도 아니고 조카입니다. 그리고 설사 아들이라고 해도 목숨이 걸린 것도 아닌 일에 황금알을 낳는 대형 할인 마트를 포기할 리는 없습니다. 또한 성매매 정도로는 큰 이슈가 되기도 어렵습니다. 뭔가 국민들의 엄청난 공분을 사야 하는데 권력자가 되면 개나 소나 다 저지르는 게 섹스스캔들입니다. 욕 좀 얻어먹고 조용히 끝나겠죠.”
“그럼 그것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어요. 대부분이 그런 내용들이거든요. 성매매, 연예인과의 불륜, 대마초 등등. 나쁜 짓이긴 한데 엄청난 이슈가 되기는 모자란 것 같아요.”
총리나 장관 인준을 할 때 보면 위장전입, 탈세, 병역기피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결국은 정식으로 발령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범죄에 관대하다고 해야 하나? 불륜이나 대마초 같은 것도 욕은 좀 먹겠지만 결국은 유야무야 넘어갈 일이다.
“그럼 일단 다들 한 번씩 자료를 검토하고 의견을 나눠보도록 합시다.”
심석규 이사.
조금 전에 나왔던 성접대를 받았다는 인물이다. 능력은 평범하고 욕심이 많지는 않으나 여자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니 성접대를 받았겠지. 이미 서라씨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정도 스캔들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한국은 섹스 스캔들에 관대한 편이다. 남자가 바람을 펴도,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요즘도 꽤 된다.
특히 무능력해서 그런 문제가 터지면 그룹에서도 그냥 버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저런 놈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냥 두는 게 좋다. 우리가 혹시라도 빅 3에 진입해서 서로 경쟁하게 될 때 저런 무능력한 인간이 있어줘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것 말고는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심대용 전무.
심석규의 형이며 엘마트의 사실상 경영자. 평범한 심석규 이사와 달리 상당한 수완가로 알려짐. 포에버마트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전부 심대용 전무의 공이라는 말이 있음. A 여배우를 정부로 두고 있다는 소문.
A 여배우라면 S급과 A급 사이에 있는 꽤 유명배우다. 그런 그녀가 재벌가의 첩이라고 알리면 대중들은 분명 관심을 가질 거다. 그러나 마땅한 증거가 없다. 둘이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두지 않은 이상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부정하면 그만이다.
엘마트를 사실상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흔들면 큰 효과를 거들 수 있다. 그러나 여배우 스캔들 말고는 딱히 약점이 없다. 일에 있어서는 확실히 똑부러지는 사람이었다.
엘마트는 그리 실속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건 포에버마트다.
============================ 작품 후기 ============================
이미 살짝 언급했지만 포에버마트는 형가사에서 나오는 와룡그룹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화이트 데이입니다. 사탕 줄 사람은 있으신가요? ㅎㅎ
제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저는 여전히 싱글.. ㅠㅜ 이러다 평생 독신으로 사는 건 아닌지 살짝 겁이 납니다. ㅠㅜ
솔로들에겐 즐겁고 행복한 일 생기시길...
커플은 잘하세요. 자기 짝지에게.. 있을 때 잘하세요. ㅎㅎㅎ
저는 혼자 외롭게 글이나 써야겠죠. 비축분 좀 만들어서 연참하고 싶은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