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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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원이 남편에게 둘째 동서가 동수를 만나 상속포기각서를 쓰게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리 사람 좋은 그녀라도 불쾌했던 건 사실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남편이 도현이에게 윤 스포츠센터를 물려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것부터가 이해 불가였다. 가업도 아니고 윤승태 사장이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일으킨 곳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도현이에게는 손톱만큼의 권리도 없다.
분명 뒤에서 동서를 충동질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씨받이를 들이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과 왠지 동일인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사람이 뒤에서 충동질하니 스스로는 영악하다고 믿고 있지만, 의외로 순진한 동서는 당연히 혹했을 거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아무리 지금 삶이 부유해도 더욱 부유해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 원래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그렇다.
그런 마음이 생기자 금세 둘째 동서가 안쓰러워졌다. 어떻게 보면 떡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었다.
최소한 남편인 윤승태 사장의 성격을 안다면 그런 욕심 자체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를 잘못 골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수라니.
동수는 채은성 사장이 시연이에게 안 좋은 소리를 했다고 출판사를 망하게 만들어버린, 정말 독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노하원은 그 과정을 옆에서 그대로 지켜봤기 때문에 동수가 화가 나면 얼마나 주도면밀하고 집요해지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남편으로부터 동수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일이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그릇된 선택을 한 동서가 치를 고생이 대충 상상이 되었다. 그런 모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동수가 아니었다. 동서는 자신이 영악하다고 착각에 빠져있지만, 동수 정도는 되어야 진짜 영악하다고 할 수 있다.
영악하다고 해도 노하원은 그런 그가 믿음직스러웠다. 자신이 받은 모욕은 상황에 따라 참을 줄 알지만, 시연이가 받은 모욕은 열 배, 스무 배로 갚고야 마는 집요함이 좋았다. 그 정도는 되어야 딸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이미 주폭 삼인방이나 출판사 처리 건에서 알 수 있었다.
이번 일도 그렇다. 둘째 동서의 행동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 참기 힘든 모욕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동수는 생각보다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동서의 약간의 방종을 방관하고 있던 남편에게 살짝 경종을 울린 게 전부였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동안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동서와 그녀 사이에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남편 사업도 날로 번창하고 집안의 불안요소도 제거하고. 예전부터 꿈꿔왔던 책 만드는 일도 동수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녀에게 동수는 복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노하원은 지금 둘째 서방님인 윤승룡과 약속을 잡았다. 동서의 부탁대로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서다. 동서는 이미 충분히 반성했고, 괜히 동수 때문에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연락했다.
“형수님.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온 윤승룡의 얼굴도 동서와 다를 바 없이 초췌했다.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연락을 드렸는데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수님이 부르셨는지 만사 제쳐놓고 나와야죠.”
“호호호.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고맙고요.”
“그런데 형수님.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동서가 저를 찾아왔어요.”
“집사람이요? 대체 무슨 일로요.”
윤승룡은 아내가 형수님을 찾아갔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를 찾아와서 서방님을 말려달라고 하더군요.”
“크윽···. 이 사람이 정말. 죄송합니다. 형수님. 그렇게 큰 실례를 해놓고 무슨 낯짝으로 형수님을 찾아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서방님은 정말 동서랑 갈라설 건가요?”
“네. 이미 충분히 고민을 많이 해봤습니다. 더 큰 사고를 치기 전에 갈라서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동서가 다른 남자가 생긴 건가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집사람이 가끔 생각 없이 행동할 때가 있어서 그렇지 어디 한눈팔고 그럴 사람입니까. 그건 형수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호호호. 갈라설 생각이라면서 지금 동서 편드는 건가요?”
노하원은 아내를 감싸는 윤승룡의 모습을 보며 나직이 웃음을 터트렸다.
“펴··· 편드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십 년 넘게 살 맞대고 살아온 제 집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왜 갈라서려고 해요. 서방님 보니까 여전히 동서를 아끼는 것 같은데.”
“아끼기는 누··· 누가 아낀다고요. 전 지금 그 사람 꼴도 보기 싫습니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애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아직 철이 안 들고 여기저기 민폐나 끼치는 거 정말이지 이젠 지칩니다.”
“그게 동서 매력이잖아요. 통통 튀고 애교도 많잖아요. 어머님께서 동서를 얼마나 좋아하시는 데요.”
“그거야. 도··· 도현이 때문에 그런 거지 그 사람이 잘해서 그런가요.”
“그건 서방님이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세요. 저는 성격이 좀 조용해서 애교 같은 거 많이 없어요. 그렇다고 남자보다 더 호탕한 첫째 동서가 애교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어머님 소원이 딸 같은 며느리를 들이는 거였는데, 막내 동서가 들오면서 소원 풀었다고 좋아하셨어요. 물론 아들 낳은 며느리가 더 예뻐 보일 수도 있지만, 꼭 그게 다가 아니에요. 동서가 어른들에게는 정말 잘하거든요.”
임자령 성격이 그랬다. 항상 어른들에게 먼저 다가가 살갑게 대하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집안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다정하게 구는 막내며느리에게 정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윤승룡은 그동안 단지 집사람이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예뻐한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그럼요. 같이 목욕탕도 아니고 쇼핑도 자주 가고. 전 솔직히 아직도 어머님이랑 목욕탕 가는 게 낯선데 동서는 안 그런가 봐요. 그래서 저도 동서에게 여러 가지로 고마워요. 동서랑 갈라서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서운해하실지 생각해봤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큰형님과 형수님에게 실수를 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나 큰 형님은 제가 아버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분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하는 거 저는 절대 용납 못합니다.”
“안 그러겠데요.”
“사람 성격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 동서 이해해요.”
“그건 형수님이 마음이 고우셔서 그런 겁니다.”
“당사자인 제가 괜찮다는 데도요?”
“아··· 아니. 그러니까 형수님. 형수님 뿐만 아니라 형님에게도 잘못을 한 거라···. 그리고 마 서방 볼 낯도 없고.”
사실이 그렇다. 따지고 보면 임자령이 실례한 사람은 윤승태 사장과 노하원 그리고 동수였다. 그러니 당사자가 괜찮다고 한다면 윤승룡도 뭐라고 하긴 어려웠다.
“우리 남편이 제 말이면 끔뻑 죽는 거 알고 계시죠?”
“물론이죠. 형수님. 항상 무뚝뚝하기만 하던 형님이 형수님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렇죠? 그러니 우리 남편은 제가 이야기할게요. 동서한테 서운한 거 제가 말하면 금방 잊어버릴 거예요. 그리고 누구 남았죠? 아! 우리 마 서방. 음···. 우리 마 서방은. 그냥 서방님 병원 피부 관리 이용권만 줘도 서운한 거 금방 풀어버릴 걸요?”
“네?”
“그런 면에서는 많이 쿨하거든요. 우리 마 서방이. 안 그래도 전에 저 보고 자기가 노안이라 시연이랑 있으면 아무도 연인으로 안 본다고 투덜거렸거든요. 제가 봐도 요즘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피부가 좀 푸석푸석해요. 서방님 피부과는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주는 곳이니 우리 마 서방 좀 젊게 해주실 수 있잖아요.”
“할 수 있죠. 그럼요. 1년··· 아니지 평생 무료 이용권이라도 줄 수 있습니다.”
“호호호. 그럼 됐네요. 제가 동서랑 이야기해서 오늘 저녁에 집으로 들어가라고 할게요. 그럼 서방님은 못 이기는 척 받아주세요.”
“아니. 그··· 그러니까 형수님. 제가 마 서방에게 이용권을 준다는 게 집사람을 용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가 대학생 때 우리 그이랑 연애하면서 서방님을 봐왔거든요. 서방님이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였으니까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제가 아는 서방님은 절대 동서나 아이들 없이 못 사실 분이에요. 형님은 잘 달랠 테니까 제 말대로 하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윤승태 사장이 동생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다. 그냥 역정을 낸 거지 절대 동생과 인연을 끊기 위해서 그런 한 건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형수님!”
노하원은 민망한 모습을 하고 있는 윤승룡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서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가 불렀다.
“네?”
“감사합니다. 형수님.”
“별말씀을요.”
***
Rrrr
“네. 마동수입니다.”
- 저. 시연이 작은 엄마예요.
지난번 전화 소동 때문인지 시연이 작은어머니는 곧바로 자신이 누군지 밝혔다. 그 모습이 웃겨 ‘쿡쿡’ 웃음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다.
“아! 안녕하세요. 작은 어머님.”
- 혹시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오늘 저녁에요?”
- 아무 때나요. 저기 이상한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과하고 싶어서 그래요. 지난 번 일 때문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전 괜찮은데요.”
- 그래도 만나서 얼굴보고 직접 사과를 해야할 것 같아서요. 형님에게 들으니까 요즘 동지마트에서 일한다면서요. 제가 가락시장역으로 맞춰서 갈게요. 번거롭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좀 내주세요.
“제가 찾아가도 될 텐데요.”
- 아니에요. 저번에도 바쁜 시간 빼앗았는데 또 그럴 수는 없죠. 제가 근처로 갈게요. 그리고 남편이 전해주라는 것도 있고···
“네?”
- 아! 오해하지 마세요. 서류 같은 건 아니고요.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강남에서 꽤 유명한 피부과를 운영해요. 동수씨 나이가 삼십 대 초반이라면서요. 지금부터 피부관리 하지 않으면 피부 금방 상해요. 그래서 병원 VIP 평생 자유이용권을 드리려고요. 커플이 같이 관리를 받을 수 있으니까 시연이랑 같이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요.
시연이 작은어머니는 지난번처럼 상속포기각서 같은 걸로 오해할까 봐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동수씨’란다. 그동안 항상 ‘그쪽’이라는 말만 사용했는데 이제 좀 존중하는 느낌이 난다.
그리고 시연이 작은아버지께서 운영하는 피부과는 나도 잘 안다. 굉장히 유명하고 또한 유능하다고 소문나서 연예인들도 많이 드나든다고 들었다. 그런 곳에서 VIP로 한 달 정도 이용하려면 최소 몇백이다.
물론 돈이 아쉬운 건 아니지만 공짜가 싫진 않다. 안 그래도 시연이보다 많이 늙어보여서 고민이 많았다. 남자가 피부과를 다닌다는 게 좀 민망했다. 게다가 시연이랑 같이 다닐 수 있다면 더 좋다. 내가 먼저 피부과 이야길 꺼내기가 곤란했는데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어쨌든 작은어머님. 제가 오늘 6시쯤 저녁을 먹을 예정인데 그때 뵐까요?”
- 그래요? 아, 다행이다. 고마워요. 동수씨.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윤 사장님에게 냉큼 달려가 일러바쳤을 때는 괜히 남의 집안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일이 잘 풀린 것 같다.
시연이 집은 언제나 화목해서 아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다. 확실히 돈이라는 게 요물이 틀림없다. 어딜 가나 시연이 작은어머니 같은 사람은 꼭 한 명씩 있다.
아니지. 한 명이면 다행이다.
재벌 중에는 서로 돈 욕심을 부리다가 회사를 통째로 말아먹는 경우도 있다. 가만 보면 적은 내부에 있고, 어딜 가나 가족이 문제다. 동지그룹처럼 아들들 능력이 다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더욱 비일비재하다.
능력이 모두 뛰어나도 문제였다. 누구 하나 후계자로 정하기 어려우니 지금 우리 그룹이 벌이고 있는 후계자 경쟁처럼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간의 이해가 충돌하면 상당히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던 동지 마트가 좋은 예다.
응?
가족이 문제?
그래 가족!
“서라씨!”
“네 팀장님.”
“엘마트와 포에버마트 소속 이사 이상의 중역 중 그룹 오너의 친족들도 있겠죠?”
“잠시만요.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친족까지 범위를 넓히면 여러 명이라서 말이죠.”
“아닙니다. 자료 가져와 보세요. 같이 확인해봅시다.”
============================ 작품 후기 ============================
원래는 좀 더 자연스럽게 전개하려고 했는데 뭔가 어설픈 느낌입니다.
어쨌든 시연이 작은엄마 에피는 여기서 끝입니다. 다시 동지마트 이야기로 돌아가야죠. 다음회는 좀 더 깔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