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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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전화를 끊은 윤승태 사장은 곧장 막냇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나서 직접 이야기할까 했지만, 미우나 고우나 자식처럼 키운 동생이라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 예. 형님.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 에이. 무슨 일이 있어야 꼭 전화를 드리나요. 그냥 이번 주에 시간 되시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그러려고 했어요. 얼굴 본지도 좀 된 것 같고.
“얼굴 본지가 뭐가 오래돼. 지지난 주에도 봤잖아.”
- 그 정도면 오래된 거죠. 형님. 일주일에 한 번은 봐야 하는데. 하하하.
동생은 윤승룡은 집에서는 과묵한 편이지만 윤승태 사장 앞에서는 그래도 막내티가 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의 저런 애교 아닌 애교가 가족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그래서 좀 더 첫째 동생보다 둘째가 좀 더 애틋했다.
윤승태 사장은 살가운 동생의 말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네 녀석 볼 일 없다.”
- 네?
“앞으로 네 녀석과 밥 먹을 일 없다고.”
- 혀··· 형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체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해. 너랑 밥 안 먹는다고. 아니지 너랑 이제 얼굴 볼 일 없어. 내일 당장 호적에서 네 이름 빼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 형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뭐 실수한 거라도 있습니까. 서운한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좀 신경이 둔해서 제대로 챙기질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됐어.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 지금 어디십니까?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일단 제 얼굴 보고 말씀하시죠.
“어허. 됐다니까. 더는 너랑 할 말 없으니까 전화 끊자고.”
막내는 마흔이 넘어서도 아직 마음이 여려 냉정한 말에 그의 울먹이려는 듯 목소리가 뗠리는 게 느껴졌다. 윤승태 사장은 계속 막내와 통화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얼른 전화를 끊었다.
물론 진짜로 동생과 인연을 끊을 생각은 없었다. 막내 제수씨가 동수에게 한 행동은 분명히 주제넘은 짓이다. 그러나 윤승태 사장이 그녀를 불러서 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집안 꼴이 정말 우습게 돌아가게 된다. 결국, 이번 사태를 바로 잡을 사람은 동생밖에 없다.
단지 그의 재산에 욕심을 낸 거라면 이런 치사한 방법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윤승태 사장 그도 사람이었다. 그동안 제수씨가 아내에게 얼마나 서운하게 굴었는지 곁에서 여러 번 지켜봤었다. 참고 있었던 그 감정의 찌꺼기까지 이번에 한꺼번에 폭발했다.
그래서 홧김에 호적을 파버린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
“여보. 이 시간에 어딜 가세요?”
오늘 동수를 만나고 온 임자령은 기분이 좋았다. 재산포기각서를 내밀면서 혹시라도 그가 반발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고모님을 설득해 데리고 나간 것도 비슷한 연령의 그녀보다는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있어야 쉽게 반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소심한 남자였는지 동수는 의외로 순순히 재산포기각서에 사인했다. 어떻게 보면 아들인 도현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 있는 그가 쉽게 물러나자, 윤 스포츠센터가 그녀의 것이 된 것처럼 행복해졌다.
기쁜 마음에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전화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 나 지금 형님 좀 만나고 올 게. 아무래도 뭔 일이 있는 것 같아.”
“형님요? 어떤 형님요?”
“형님이 누구긴 누구야. 큰 형이지. 내가 언제 작은 형보고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 봤어.”
“갑자기 큰 아주버님은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몰라. 내가 뭔가 실수한 것 같아. 뭔지 몰라도 많이 서운하셨는지 갑자기 나보고 호적 파서 나가라고 하시잖아.”
“네··· 네? 호··· 호적을요? 갑자기 호적은 왜요?”
예상치 못한 남편의 말에 임자령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걸 모르니 지금 나가는 거 아니겠어. 나도 형님이 이렇게 화내시는 건 처음이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네. 그런데 혹··· 시 말이야. 당신 뭐 좀 알고 있는 거 있어?”
“네에? 제··· 제가 어떻게 그걸 알아요. 모··· 몰라요. 저··· 전혀 몰라요.”
“아니면 아니지 왜 그렇게 정색이야. 뭐야? 정말 왜 형님이 그러시는지 아는 거야?”
“아··· 아니에요. 제가 무··· 뭘 안다고요. 진짜 몰라요.”
“이 봐, 당신! 똑바로 이야기 안 해? 알아 몰라?”
난생처음 들어보는 남편의 강압적인 말투에 임자령은 흠칫 떨었다.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시연이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고, 동수도 그러겠다고 했다. 잠깐 봤지만, 절대 빈말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큰 아주버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하필이면 동수를 만났던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 그게 모··· 몰라요. 진짜요.”
“임자령! 너 똑바로 이야기 안 해! 다른 사람이 다니고 큰 형님이 나와 인연을 끊자고 하셨어. 이게 보통 일이라고 생각해.”
“저··· 정말 몰라요. 아주버님에 역정 내시는 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 만약 말이야. 형님이 화나신 게 혹시라도 당신 때문이면 그땐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가만히 있지 않으면요?”
지금 상황에서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야속한 남편의 말에 임자령은 발끈했다. 설사 큰 아주버님의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해도 남편은 당연히 그녀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님과 고모님이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에 더 당당하게 나갔다.
“그건 다녀와서 마저 이야기하자.”
목에 힘을 주고 당당히 남편에게 따졌지만, 그는 차가운 냉소를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이 낯설다 못해 무서워서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혹시나 싶어서 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 아주버님이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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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여보세요.
“저예요. 시연이 작은 엄마.”
- 네. 아직 제게 할 말이 남으신 건가요?
“한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 휴우···. 제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시연이 아버님 재산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고. 이미 각서도 써드렸는데 뭘 더 확인하고 싶으신 겁니까?
“혹시 오늘 저랑 만난 거 시연이에게 이야기했나요?”
재산포기각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한 것이 동수에게는 꽤 불쾌했는지 그녀를 대하는 말투고 곱지는 않았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 모른 척 용건만 이야기했다.
“시연이에게 이야기하지 않기로 고모할머님과 이미 약속했지 않습니까. 저는 어른과 한 약속을 어기진 않습니다. 설마 그걸 확인하려고 제게 전화를 하신 겁니까?”
-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집에 뭔가 일이 좀 생겨서 확인해야 했어요. 아무튼, 그쪽이 아니라면 됐어요. 이만 끊을게요.
임자령은 용건만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큰 아주버님이 화가 난 이유가 그녀 때문이 아닌 것 같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이따 남편이 돌아오면 아까 그녀에게 언성 높인 것에 대해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형님. 다행히 아직 사무실에 계셨군요.”
집에서 나선 윤승룡은 가장 먼저 윤 스포츠센터 본점부터 향했다. 이 시간에는 보통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아, 혹시나 하고 무작정 찾아왔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래도 어떻게 안 옵니까? 형님이 이렇게 화가 나셨는데.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제발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형님을 언짢게 만든 게 뭔지 모르겠지만 제가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네가 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야.”
“그럼요? 아까 와이프 표정이 이상하던데 그럼 혹시 제 안 사람이 관련된 일입니까?”
“혹시 너, 윤 스포츠센터가 탐이 나?”
“네에? 윤 스포츠센터를 왜 제가 탐을 냅니까? 그곳은 형님이 맨주먹으로 일으켜 세운 곳입니다. 당연히 제가 욕심 낼 이유가 없죠.”
“그래? 그런데 왜 도현이가 윤 스포츠센터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무··· 뭐라고요? 도현이가 혹시 제 아들 도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형님! 저는 진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윤 스포츠센터를 형님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 키웠는데요. 그리고 저와 작은 형이 형님에게 어떤 은혜를 입었는데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주신 것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제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윤승태 사장의 추궁에 윤승룡은 펄쩍 뛰며 부정했다.
“그런데 왜 내 귀에 그런 이야기가 들리느냐고.”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런 소리를 한 답니까? 형님에게 부족하지만, 저 강남에서 상당히 잘 나가는 피부과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입니다. 그것도 형님의 도움 없이는 힘들었을 테지만요. 전 이걸로도 충분히 넘칩니다. 이런 제가 윤 스포츠센터를 욕심낼 이유가 없습니다. 뭔가 오해···. 혹시 형님. 그 말을 제 안 사람이 했습니까?”
“제수씨가 동수를 만났다고 하더구나.”
“어제 안 사람이 마 서방에게 최소한의 경조사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제가 전화번호를 알려주긴 했습니다. 주제넘은 것 같지만 그래도 어머니나 고모 생일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전화로 해도 될 이야기를 그 사람이 번거롭게 직접 만나서 했군요.”
“집안 경조사. 결혼할때까지 서로 챙기지 말자고는 했지만, 어머니나 고모 생일 정도는 아는 것도 좋겠지. 그런데 제수씨가 동수에게 재산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더구나.”
“예? 재.산.포.기.각.서.요? 그걸 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안 사람이 한 행동인데. 더군다나 시연이는 출가외인이라며 윤 스포츠센터는 장차 도현이가 물려받을 거라는 말도 했다더구나.”
“혀···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제가 집안 단속을 잘못했습니다. 전 형님 재산에 하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연을 끊자는 말만 하지 말아 주세요.”
윤승태 사장의 설명을 듣던 윤승룡은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고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생각해? 그럼 너랑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아닙니다. 형님. 형님이 그동안 저와 작은 형에게 얼마나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는데, 돈 문제로 이러겠습니까. 역시나 저와 제 처가 처신을 잘못한 게 문제겠죠. 어머니나 고모가 좋아하시고 아내 나이가 어려서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큰 형수님이나 작은 형수님이 저희 때문에 마음고생 심하셨을 거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이가 어리다 철이 안 들어서 그렇다 그렇게 모른 척 넘어갔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됐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용서해주세요. 형님.”
“크흠···.”
“우선 제가 집에 가서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아내와 함께 다시 용서 빌러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참담한 표정으로 사과를 한 윤승룡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윤 스포츠센터에서 빠져나갔다.
============================ 작품 후기 ============================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질 게 아닌데, 이상하게 늘어지네요. ㅠㅜ
빨리 빨리 이번 에피소드 끝내고 동지마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