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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51화 (251/424)

0025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흐흐흐흐.

나는 오늘부로 팀장이다.

응? 원래 팀장 아니었냐고?

아니지. 정확하게 말해 팀장 대우지 팀장은 아니었다고.

그게 그거 아니냐고?

아니야. 달라. 달라도 많이 달라. 임시라는 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거든. 정식이 아니잖아. 정규직과 계약직 정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도 감이 안 온다고? 쯧쯧쯧.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풀어서 설명할게.

그러니까 난 지금까지 팀장인 듯 팀장 아닌 팀장 같은 위치였어. 어때 느낌이 확 오지? 그래 확 올 거야.

“팀장님! 팀장님! 팀장님!”

“어? 어, 어···. 아. 서라씨. 나 불렀어요.”

“네. 팀장님. 팀장님 된 게 그렇게 좋으세요.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혼자서 계속 히죽히죽하셨어요.”

당연히 좋다. 이번 진급 소식을 듣고 깨달았는데 나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직장인 체질인 것 같다.

지금 내 재산이 200억 원 정도 된다. 나와 절친한 고현호 이사나 나를 못잡아 먹어 안 달인 고정호 전무가 가진 재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어디 가서나 부자라고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된다. 굳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고 있는 돈 가지고 편안하게 살아도 오히려 재산이 늘어날 정도의 재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대체 그놈의 진급이 뭐라고, 그 소식을 듣고 난 후 하루종일 헤벌쭉이었다.

사실 그냥 통상적인 진급이었으면 이렇게 좋아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로열패밀리도 아니면서 입사 5년 만에 본사 과장급으로 진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과장보다 많은 게 사장이고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게 부장이며 이사들이지만, 재계 서열 10위 정도 되는 대기업을 그런 구멍가게 수준의 회사와 비교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대기업에서 5년 만에 과장을 다는 건 동지그룹이 아니라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인사명령권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고대성 회장님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열사 팀장 따위의 진급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몰라도, 사실 심심해서 그냥 장난을 쳤을 가능성도 있지만, 회장님이 직접 진급을 명했다는 건 이제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도 나를 함부로 자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난데없는 성은(?)에 감동 받아 무조건적으로 회장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진급 소식에 가장 기뻤던 건 시연이에게 ‘봤지! 나 이렇게 잘난 남자야.’라고 자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꼭 이런 식으로 자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나를 항상 대단하게 보지만, 어쩌면 자꾸 그렇게 대단하게 봐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그랬어요? 에이. 팀장 대우나 팀장이나 그게 그건데 내가 그거 가지고 좋아할 사람인가. 그냥 어떻게 하면 우리 TF팀이 동지마트에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느라···. 큼큼.”

“아하! 그러시구나. 진급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약혼녀에게 전화해서 그 사실을 알렸지만 별로 관심은 없으셨던 걸로?”

“무··· 뭐? 그··· 그걸 어떻게 서라씨가 알아요?”

‘응? 뭐지? 진짜 어떻게 알았지?

설마 시연이가 내 말을 못 믿어서 서라씨에게 확인전화라도 했나? 아니지 그럴 시연이가 아니다.

“시연씨가 자기 팬카페 게시판에다가 아주 대문짝만하게 자랑을 해놨더라고요. 우리 동수씨가 오늘 진급했다고요. 큭큭큭.”

“뭐?”

“놀라긴 뭘 그렇게 놀라세요. 둘이 똑같지 뭐. 진급했다고 쪼르르 약혼녀에게 전화하는 팀장님이나, 그 소식이 무슨 뉴스 특보라도 되는 것처럼 팬카페에 자랑하는 시연씨나. 역시 천생연분은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아니 시연이는 왜 그런 걸 자기 팬 카페에 올렸지.”

“왜요? 싫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거긴 엄연히 시연이 팬카페잖아요. 그런 소식을 알려도 되나 싶어서요.”

“뭐 어때요? 어차피 시연씨가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인데. 그리고 거기서 활동하는 팬들은 시연씨가 팀장님 팔불출인 거 다 알잖아요. 솔직히 ‘그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도 결국은 팀장님에 대한 시연씨의 마음을 표현한 책이잖아요. 오죽하면 팬카페에서 시연씨 별명이 ‘동빠’ 또는 ‘동빠순’이라고 불리겠어요.”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서라씨는 아주 신이 난 듯 보였다.

나도 시연이 팬카페 회원이긴 하지만 그곳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뭐랄까? 그곳은 시연이와 팬들 사이의 사적인 공간이라는 느낌? 그래서 게시물들을 읽고 있으면 내가 그녀를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때부터 잘 찾지 않았다.

사실 질투가 나서 꺼려지는 것도 있다. 시연이는 그냥 팬이라서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지만, 가끔 보면 사심이 느껴지는 글들도 많다. 그런 글들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문제 삼는다면 내가 정말 쪼잔한 인간이 될 것 같아 그냥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도 시연이의 팬카페 소식을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긴 했다. 여전히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아 안심도 됐다.

“그게 무슨 말인데요?”

“동수빠순이. 그래서 동빠 또는 동빠순이라고 불러요. 사실 시연씨가 좀 염장질이 심하긴 하거든요. 호호호.”

“팬들이 싫어하진 않고요?”

“아니요. 전혀요. 다들 또 한마디씩 했죠. ‘우리 동빠순 또 시작했다.’ 뭐 이런 식으로 장난 글을 남기도 하고, 진심으로 축하도 해주고. 아무튼,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어요. 예전에도 나쁘진 않았지만, 요즘 펜카페에서 팀장님 인기도 꽤 높거든요. 그래서 일명 ‘동수 갤러리’를 만들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예요.”

“네? 내가 왜요?”

“에이 아시잖아요! 시연씨 인터뷰 이후에 팀장님 이미지가 완전히 좋아진 거. 기부천사를 기부천사로 만든 장본인이라면서···.”

시연이 인터뷰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등장하는 두 번째 동지마트 CF가 방송을 탔다. 모두 김학수 부장이 의도한 것이었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인터뷰에서 찍었던 웃음을 지으면서도 눈가가 촉촉해졌던 사진과 시연이가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모습이 찍힌 사진 몇 장을 슬라이드처럼 보여주는 게 전부인 광고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짧은 문구가 등장한다.

‘동지마트가 윤시연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내가 그 광고를 처음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왜 김학수 부장이 미디어 마케팅의 국내 일인자로 불리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평범한 광고다. 하지만 그 안에 인간미가 잠뜬 담긴 스토리를 담아서 감동을 배가시켰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봤다고 해도 충분히 괜찮은 장면이지만, 시연이의 인터뷰를 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저 장면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광고였다.

광고에는 ‘동지마트로 오세요.’라는 그 어떤 의미도 담지 않았다. 그러나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지마트를 응원하게 싶게, 동지마트에 가보고 싶게 만들었다.

문제는 시연이의 인터뷰였다. 그녀는 항상 내 의도가 좋게 보여서 한 말이겠지만, 사실과 다르게 나 또한 덩달아 기부천사가 되어버린 거다. 이게 정말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나라는 인간은 그리 좋은 인간이 아니다. 욕심도 많고 이기적인 성향도 있다. 희귀난치병 어린이돕기센터에 3억 원을 기부한 것도 진심으로 아이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될 소지를 막기 위해 생각해낸 꼼수였다. 어린이집에 월 100만 원씩 지원하는 것도 로또에 당첨됐는데 최소한의 기부는 하자는 정말 알량한 최후의 양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연이가 나를 너무 좋게 봐버렸고 그걸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나까지 좋은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연이가 가는 희귀난치병 어린이돕기센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했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기부한 돈 때문에 아이가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며 고마워하는 부모를 만나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절대 순수한 목적이 아니었는데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할 만큼 뻔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난 분명히 좋은 사람이 아닌데 자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인 시연이의 약혼자다 보니까 착한 사람인 척 가식을 떨어야 한다는 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회사 홍보차원도 있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안 할 수도 없었고 이리저리 난감할 때가 많았다.

다행히 항상 시연이가 함께해서 그리 나쁜 건 아니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기도 했다. 그래도 자꾸 주변에서 천사 어쩌고 하는 소리는 정말, 정말, 정말 견디기 힘들다.

“그··· 그만. 알았으니까 그만 해요.”

기부천사 어쩌고하는 소리가 나오는 순간 내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서 서라씨의 말을 멈추게 했다.

“왜요. 기부천사가 어때서요?”

“윽. 서라씨는 내가 어떤 사람인 거 알잖아요.”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내정한?”

“그렇죠. 난 그런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기부천사이기도 한. 큭큭큭.”

“서라씨!”

“어머. 깜짝이야.”

시연이와 미래씨가 친해진 다음, 언젠가부터 서라씨도 같이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팀장의 권위가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물론 가족 같은 팀 분위기는 내가 원하던 모습이다. 내가 좋아하는 조기훈 팀장님의 권위 없는 모습을 나는 항상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기부천사라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Rrrr

“전화받고 두고 봅시다. 네 마동수 팀장입니다.”

- 어. 마 팀장. 나야.

“네. 이사님.”

- 잠깐 내 방으로 좀 와. 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까.

============================ 작품 후기 ============================

2월도 마지막이네요. 요즘 받는 쿠폰 숫자가 점점 줄어드네요. 내용이 좀 재미가 없나요? ㅠㅜ 3월에는 좀 더 분발해서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쿠폰이 있으면 제게도 한 장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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