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윤시연? 그게 누구지?”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동지마트 광고에 나오는 여자 모델입니다.”
“아! 그 애가 윤시연이야? 정말 예쁘던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신인 탤런트인가? 기회가 되면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은데 말이야.”
동지마트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은 고정호 전무도 꽤 눈여겨보던 여자였다. 짙고 반듯한 아미, 깊은 눈매, 오뚝한 콧날, 붉게 빛나는 입술. 이런 식상한 표현 말고는 달리 묘사하기 어려울 만큼 누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미녀였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그녀가 언급되자 강하게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입맛을 다셨다.
고정호 전무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여자 문제였다. 요즘 들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꽤나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었다. 연예인들은 물론 화류계 여성이나 여대생, 심지어 유부녀까지 예쁜 여자라면 일단은 건드리고 볼 만큼 사고뭉치였다. 다행이라면 그래도 천지 분간은 할 줄 아는지 미성년자는 건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요즘은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버릇이 완전히 고쳐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꽤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 단지 화류계 여성이 대부분이라 더 이상 그의 여성편력을 문제 삼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화류계 여성이 재미가 없어지면 연예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사실 말이 연예인이지 스폰서 개념의 금전관계가 오가는 사이이기 때문에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건 화류계 여성과 다를 바 없었다.
연예인 중에서도 고정호 전무가 특히 좋아하는 부류가 바로 신인급 배우다. 아직은 세상의 때를 덜 타 꽤 순진한 구석이 많다. 스폰서 관계를 많이 해본 여배우들은 화류계 여성보다 더 영악하게 굴 때가 많아 데리고 노는 재미가 없었다.
신인 여배우들은 순진한 면도 있지만, 성공에 목말라 있어 서비스(?)도 좋다. 그런데 최근 들어 괜찮은 신인급 여배우가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는 찰나에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시연이었다.
“윤시연은 안 됩니다. 전무님.”
고정호 전무의 여성편력을 잘 알고 있는 측근이 화들짝 놀라 그를 말렸다.
“뭐? 왜? 걔 아랫도리에는 금테라도 둘렀데?”
“윤 스포츠센터 윤승태 사장의 무남독녀입니다. 윤승태 사장의 성정이야 전무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관심을 끄는 게 상책입니다.”
“쯧. 그랬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윤승태 사장이 스포츠센터와 컨트리클럽을 운영하면서 쌓아온 정관계 인맥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동지그룹도 한 수 접어줘야 할 만큼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나마도 동지그룹은 대부분 로비를 통해 쌓아 놓은 인맥이 대부분인 반면 윤승태 사장은 순수하게 함께 땀을 흘리면서 쌓아온 인맥이기 때문에 결속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아무리 여자가 좋아도 그런 윤 스포츠센터와 척을 질 수는 없다. 윤 스포츠센터에 앞서 아버지인 고대성 회장이 무서워서라도 그럴 수는 없다.
예전에 여자 문제로 큰 사고를 쳤을 때 고대성 회장이 그 일을 수습해주며, 앞으로 한 번만 더 문제가 생길 여자를 건드리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경고를 했었다. 그가 아는 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고정호 전무는 불같이 화를 내는 고대성 회장의 얼굴을 상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네. 나중에 괜찮은 신인 여배우가 나오면 제가 따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요즘 애들이 영 내 눈에 안 차지만, 기다려보면 언젠가 괜찮은 애들이 또 나오겠지. 그런데 윤 스포츠센터의 무남독녀면 돈이 아쉬운 것도 아닐 텐데 갑자기 동지마트 광고에는 왜 출연한 거야?”
“그게 바로 제가 드리려고 했던 이야기입니다. 사실 윤시연이 마동수 팀장의 약혼녀입니다.”
“뭐야? 그게 정말이야? 능력이 좋은 것 같더니만 집안도 좋았어?”
“그건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집안의 장남입니다.”
“평범? 약혼까지 했다면 집안에서도 허락을 해줬다는 건데 윤승태 사장이 평범한 집안 자식을 예비 사위로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그 집 사위만 되면 윤 스포츠센터를 얻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걸 노리는 괜찮은 집안 자식들도 많았을 텐데.”
윤 스포츠센터가 가지고 있는 재력과 인맥은 대한민국의 난다 긴다 하는 집안이 전부 군침을 흘릴 만큼 매력적이었다. 시연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중매를 넣을 만큼 적극적으로 나오는 집안도 있었다. 그것도 그냥 그런 집안이 아니라 굉장히 명망 있는 집안이라 천하의 윤승태 사장도 굉장히 예의를 갖춰 조심스럽게 거절할 정도였다.
“글쎄요. 윤승태 사장이 원체 소탈한 사람으로 알려져서 사위를 고를 때도 집안보다는 인물 됨됨이를 먼저 봤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D&Y 피트니스 센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두 사람이 굉장히 친밀해졌다고 하니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흥! 사람 됨됨이는 무슨. 솔직히 윤승태 사장 집안이 뭐 볼 게 있나?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아 성공한 졸부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근본이 없는 집안이니 사위도 아무나 들이지.”
자신은 건드릴 수 없는 먹음직스러운 시연이 그와 척을 지고 있는 동수의 약혼녀라고 하자 고정호 전무의 반응이 굉장히 퉁명스러웠다.
“맞습니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기도 합니다. 윤승태 사장의 결정을 보면 윤 스포츠센터의 미래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뭔가 좀 이상하군. 마동수 그놈은 자기 약혼녀를 TV 광고에 출연시킨 거야? 뭔가 공정하지 못한 것 같은데?”
“제가 드리려고 했던 이야기가 바로 그겁니다. 지면 광고와 TV 광고는 물론이고 며칠 전에는 사인회까지 개최했다고 하더군요.”
“사인회?”
“네. 그래도 재능은 있는지 윤시연 작가라고 하면 여행 에세이 쪽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작가라고 합니다. 마동수 팀장은 그런 자신의 약혼녀를 위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동지마트 독서코너를 본인의 사적인 이벤트 공간으로 이용한 겁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동지마트 홍보를 겸한 시연의 사인회는 고정호 전무의 측근 회의에서 사적인 이벤트라고 폄하되고 있었다.
“광고를 찍으면서 돈을 받았을 것 아니야? 자신의 약혼녀를 지면 광고와 TV 광고에 출연 시켜서 금전적 이익을 얻고, 회사의 공적 공간을 사적인 행사에 동원한다? 여기에 살만 잘 붙이면 괜찮은 그림이 하나 나올 것 같은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
“D&Y 피트니스 센터 프로젝트 초기에 우리 동지호텔과 윤 스포츠 간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분율부터 시작해서 직원 인선문제까지 많은 부분에서 서로 생각하는 게 달라서 그런지 협상에 굉장히 난항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협상을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지은 사람이 마동수 팀장입니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될 당시 마동수 팀장과 윤시연 양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습니다.”
“그렇군! 그렇게 되면 마동수가 우리 동지그룹을 온전히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겠어. 두 회사 간의 계약서가 원천 무효가 될 수도 있는 건가?”
D&Y 피트니스 센터는 이미 성공을 거둔 프로젝트다. 여전히 윤 스포츠센터의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그 정도는 동지 그룹의 역량으로 어떻게든 커버가 가능하다. 물론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거치겠지만, 윤 스포츠센터를 퇴출하고 D&Y 피트니스 센터의 이익을 독점하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D&Y 피트니스 센터의 이익은 독점한다?
그것만 가능하게 된다면 계승권 다툼에서 고정호 전무는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D&Y 피트니스 센터 계약 문제로 동수를 완전히 퇴출시키면 최근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 동지마트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원천 무효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윤 스포츠센터로부터 상당한 양보는 얻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뭔가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해. 단지 마동수와 윤시연이 연인 사이였다는 것 만으로 동지 그룹과 윤 스포츠센터 사이의 계약을 문제 삼긴 어려워.”
고정호 전무가 아쉬운 듯 물었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측근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단지 심증만 있었으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실 제가 최근 마동수 팀장에 대해 조사하다가 빼도 박도하지 못할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확실한 증거? 그게 뭔데?”
“마동수 팀장과 윤 스포츠센터간의 금전 거래입니다.”
“뭐? 금전 거래? 그럼 마동수 팀장이 윤 스포츠센터로부터 돈을 받았단 말이야? 설마 고작 몇백 받은 걸로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3억 원입니다.”
“3억? 하하하.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데? 간도 큰 녀석이군. 이 정도면 거의 법정 구속까지 가능한 일 아니야? 업무상 배임이잖아.”
동수는 탁아소 아이디어 건으로 윤 스포츠센터로부터 3억 원의 계약금을 받은 적이 있다.
업무상 배임은 업무상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그들의 논리라면 동수는 업무상 배임이 확실하다.
“네. 맞습니다. 법무팀에 문의를 해보니 단순한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지만, 업무상 배임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벌이 가중됩니다. 그리고 3억 원을 마동수 팀장에게 건넨 윤 스포츠 센터 또한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겁니다.”
“하하하.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군.”
“어떻게 할까요? 이걸 업무상 배임으로 묶어 볼까요?”
“당연한 걸 물어. 지금 당장 시작해. 처음부터 우리가 직접 문제 삼지 말고 일단은 소문만 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쯤 우리가 확보한 증거를 가지고 마동수를 형사고발하고, 윤 스포츠센터를 상대로는 계약 무효 소송을 걸어.”
“알겠습니다. 곧바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래. 차질없이 잘 진행하도록 해. 하하하. 좋아. 좋아.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자고.”
고정호 전무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통쾌하게 웃었다.
============================ 작품 후기 ============================
아이두 탁아소 로열티 계약으로 3억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수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비를 해뒀죠.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