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34화 (234/424)

0023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송재윤 부장이 황급히 빠져나가자 미래씨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불렀다.

“팀장님.”

“우리 미래씨가 또 궁금한 게 생겼나 보군요. 이번엔 뭔가요?”

아직은 배울 게 많은 미래씨다. 그래서 회사 업무차 어딘가로 갈 때는 웬만하면 그녀를 데리고 다닌다. 나는 미래씨에게서 꽤 괜찮은 가능성을 봤고, 어떻게 다듬느냐에 따라 누구보다 훌륭한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만큼 성실하고 총명했다. 매사에 열성적이니 무엇이든 가르치는 재미가 있는 그녀였다.

“지금 생활용품 시장은 사실상 오즈생활환경과 동지 바이오가 양분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동지 바이오가 많이 따라왔다고 해도 오즈생활환경은 여전히 우리나라 생활용품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고요.”

“그렇죠.”

“100억 원이라는 금액이 절대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오즈생활환경의 규모를 보면 무리하게 할인율을 적용할 만큼 큰 금액도 아닌 것 같거든요. 할인을 많이 해줬다가 괜히 3-마트나 엘마트와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 같고요. 차라리 아쉬운 게 많은 예경과 거래하는 게 우리에게도 훨씬 이득이지 않을까요? 그들이라면 오즈생활환경보다 할인율도 많이 적용해줄 것 같거든요. 지금 예경에게 100억 원은 큰돈이잖아요.”

벌써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기특하다. 아쉬울 게 많은 곳과 거래하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어떻게 보면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 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맞아요. 원래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낫겠죠. 그런데 문제는 예경이 2위 업체가 아니라 3위 업체라는 점입니다. 1위와 2위가 경쟁하고 있을 때라면 2위로부터 더 나은 조건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위와 3위라면 다릅니다. 특히 오즈생활환경과 예경처럼 시장점유율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죠. 사람들이 기억하는 제품부터가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잘 이해가 안 가요. 팀장님.”

“자신있게 순수해요. 이 말을 들으면 뭐가 생각나죠?”

“혹시 생리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미래씨는 내 질문에 대답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내 또래의 직장인 여성들은 생리라는 말을 꽤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런 단어가 민망한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그녀를 성희롱하려고 생리대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그게 어디 제품이죠.”

“오즈 제품이죠. 굉장히 유명하잖아요.”

“소프트는요?”

“그건 동지 바이오 제품이에요. 요즘 들어 순수만큼 각광받고 있어요. 저도 사용해보고 괜찮아서 친구들한테 추천했을 정도로 만족스러워요.”

내가 편안한 얼굴로 신변잡기 이야기하듯 말하자 처음엔 얼굴을 붉히던 미래씨도 편안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예경에서 나오는 생리대 이름은 기억하는 게 있어요?”

“예경이요? 음···. 글쎄요. 예경이라···.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아! 홀릭나이트!”

“확실히 순수나 바이오보다 생각이 안 나죠?”

“네. 그런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오즈생활환경과 예경의 차이예요. 인지도의 차이. 지금 우리는 오즈생활환경과 1, 2위를 다투고 있는 동지 바이오와의 거래를 중단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1위 업체와 거래마저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동지마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원하는 제품이 없어서 불편할 것 같아요. 생활용품들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사람들의 취향을 많이 타거든요. 생리대도 따지고 보면 다들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자기가 사용하는 제품 아니면 잘 사용 안 하려고 해요. 급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 샴푸나 치약 그리고 섬유유연제 같은 경우도 확실히 자기 취향이 있는 것 같아요.”

연애를 하다보면 생리대 심부름을 하는 일도 생긴다. 가끔 남자가 모양 빠지게 무슨 생리대 심부름이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녀석도 있지만, 생리통 때문에 아파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슈퍼 한 번 다녀오는 게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처음 생리대 심부름을 할 때의 나는 생리대에 대해 굉장히 무지했었다.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뉘기도 하고 낮과 밤에 사용하는 제품도 달랐다. 심지어 생리 첫날과 끝날 무렵 사용하는 제품도 다르다고 하는데, 내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밤에 사용해야 하는데 낮에 사용하는 제품을 사왔다고 구박받고, 순수를 사오라고 했는데 소프트 라운드를 사왔다고 욕먹으면서 생리대의 복잡한 세상에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여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생리대 제품을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욕탕에 비치된 싸구려 화장품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무신경한 남자들은 절대 이해하기 힘든 게 바로 여자라는 동물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예경이 아닌 오즈생활환경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그겁니다. 어차피 독점권을 주려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아요. 아무리 요즘 동지마트의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동지마트는 대형 할인 마트입니다.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은 모두 판매하는 이를테면 일종의 만물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기껏 동지마트에 왔는데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없다? 그럼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불편함을 느끼겠군요.”

“그렇죠! 그런 데다가 오즈생활환경이나 동지바이오에서 나오는 이름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제품이 아니라 예경에서 나오는 듣도보도 못한 제품들만 잔뜩 진열되어 있다면 소비자들 기분이 어떨까요?”

“음···. 불쾌할 수도 있고, 동지마트는 싸구려 제품을 파는 곳이라는 인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예경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실이 그래요. 품질은 차이가 없어도 인지도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죠. 그래서 제가 오즈생활환경을 선택한 겁니다.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동지 바이오 제품을 찾는 고객들에게 괜찮은 대체재를 제안할 수 있으니까요.”

“아!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정말 소수의 현명한 소비자가 아니고는 제품의 품질보다는 이름값에 돈을 쓴다. 제게 주신 마케팅 책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잊고 있었어요.”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기특해서 몇 가지 책을 선물로 줬었다. 그녀가 그 책들을 제대로 활용만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성장할 수 있는 알짜배기들로만 선택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열심히 공부했던 모양이다.

“맞아요, 맞아.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소비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멍청해요.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 성분분석표 한번 읽지 않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기업에서도 혁신적인 품질개선을 하지 않는 이상 품질보다는 인지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리고 제가 오즈생활환경을 선택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해외 수출에서는 이미 동지 바이오에 밀렸고, 총 매출 또한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솔직히 내수시장도 많이 따라잡혔어요. 조급한 상황이죠. 2차 발주 요청 물량까지 하면 대략 200억에서 250억 원 정도 될 겁니다. 그 돈이 동지 바이오에서 빠져서 오즈생활환경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마음이 조급한 오즈생활환경 입장에서 할인율을 조금 신경 써 주는 걸로 동지바이오와 500억 원 정도의 차이를 벌릴 기회를 놓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역시 그런 의도까지 있었네요. 역시 어려워요. 책만 읽는다고 전부가 아니었어요.”

“책은 이론만 알려줄 뿐입니다. 책만 읽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면 경영학 교수가 최고 경영자가 되었겠죠. 세상의 모든 일은 이론만큼이나 경험이 중요합니다. 제가 볼 때 미래씨는 지금도 잘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죠?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감사해요. 팀장님. 그런데 팀장님.”

“네? 다른 궁금한 게 있어요?”

“혹시 책을 낼 생각은 없으세요?”

“네? 책요? 갑자기 무슨 책을요?”

“마케팅 관련 책이요. 제가 본 팀장님이라면 책을 내도 충분히 인기를 끌 것 같아요.”

갑자기 마케팅 관련 책이라니. 나를 대단하게 보는 건 좋지만 이건 좀 과했다.

“하하하. 제가 그럴 깜냥이나 됩니까? 그런 건 열심히 공부하는 교수님들이 출간하게 놔둡시다.”

“팀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이론만큼 경험이 중요하다고요. 팀장님은 회사 생활을 아주 오래 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웬만큼 경험을 쌓으셨잖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선이 느껴져요. 전에 이사님은 팀장님을 보고 꼼수라고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말 신선한 시각이었거든요. 그리고 일을 할 때  면 항상 몇 가지 상황을 함께 고려해서 진행하시잖아요. 남들은 하나의 경우를 따지기도 어려운데. 그런 내용을 책으로 만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치기어린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눈빛이 꽤 진지했다.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 너무 바빠서.”

“시간은 제가 낼 수도 있어요. 요즘 제가 팀장님이 해주신 말씀들을 항상 메모해두거든요. 일명 ‘마동수 어록’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모아둔 분량만 해도 책 반 권 분량은 채울 수 있을 걸요. 그리고 사실 혹시나 싶어 일반인에게도 메모를 보여줬는데 정말 재미있다고 했어요.”

“헉! 미래씨. 그건 좀···. 그리고 메모를 일반인에게 보여줘 봐야 뭘 알겠어요. 진짜 경영인들이 보면 허접한 내용뿐일 텐데.”

“아니에요. 서강대학교 경영학과에서 1등 먹는 친군데요. 학생이긴 해도 꽤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설마 그 친구라는 게 시연이를 말하는 건 아니죠?”

“왜 아니겠어요. 팀장님이 전에 소개해주면서 동갑이라고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서로 번호 교환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 친해져 버렸어요. 호호호. 시연이는 항상 팀장님이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했었거든요. 채팅으로나 아니면 가끔 퇴근하고 만나서 팀장님 이야기를 해주면 되게 좋아했어요. 그러다 ‘마동수 어록’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보여달라고 조르더라고요. 제겐 중요한 기록이라 아무나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시연이는 아무나가 아니잖아요. 팀장님도 싫어하실 것 같지 않아서 보여줬는데, 시연이가 호들갑까지 떨면서 재미있게 읽더라고요.”

“시연이가 재미있다고 했습니까?”

읽은 사람이 시연이라고 하니 내 마음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항상 시연이에게 잘난 남자이고 싶은 사람이니까.

“네. 정말, 정말 재미있데요. 시연이 말을 빌리자면 고리타분한 교수님들의 수업과 달리 정말 재미있는데 머리에는 쏙쏙 들어온다고 극찬을 하던데요. 그러면서 나만 괜찮다면 팀장님 어록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보자고 그랬어요.”

“책으로 내자고 한 사람이 시연이었다고요?”

책을 내자는 시연이의 반응이 좀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럼요. 저 혼자였다면 책 낼 생각을 어떻게 했겠어요. 시연이가 그러더라고요. 별생각 없이 쓴 글을 팀장님이 책으로 만들어 주셔서 깜짝 놀랐었다고. 자기도 책을 내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해보니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시연이 어머님이 출판사를 하신다면서요?”

“허허. 이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겠군요.”

“그럴 수는 없죠. 출간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저는 그냥 팀장님 말씀을 모아서 기록만 했을 뿐이니 책을 내려면 제가 아니라 팀장님 이름으로 나가야죠. 그리고 제가 팀장님 뜻을 오해하고 잘못 정리한 것도 있더라고요. 그것도 시연이가 지적해줘서 알았어요. 자기가 아는 팀장님이라면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닐 거라고요. 진짜 시연이보면 팀장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눈에 보일 정도예요. 아! 그리고 혹시 책을 내실 생각이시면 제가 정리한 메모를 드릴게요. 팀장님이 정리해서 출판해보세요. 저는 팀장님의 책이 나오는데, 큰 일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혹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미래씨를 가르친 내용을 그녀가 기록했다면 그건 미래씨의 책이 될까? 아니면 내 책이 될까? 논어는 공자의 말을 기록한 책이지만, 공자가 쓴 책이 아니라 공자의 제자가 만든 책이다. 뭔가 좀 애매하긴 하다.

어쨌든 생각지도 못했는데 책이라니, 여유가 있으면 한번 해보고 싶어지긴 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한번 생각해보죠.”

“그럼 제가 팀장님 말씀을 계속 기록해두는 건 괜찮은 건가요?”

“하하하. 그렇게 말하니 좀 민망하네요. 그건 미래씨 마음대로 하세요. 제 말이 미래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전 그걸로도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꼼수 마케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독자 한 분이 1위 기업보다 3위 기업과 거래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문의를 주셔서 거기에대한 답변을 에피소드에 넣었는데 내용이 좀 길어졌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일 이야기로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