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대기업.
김 모 씨는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포X마트에서 일한다. 누가 들으면 알아주는 대기업의 계열사에서 일한다며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많이 다르다. 근무환경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차별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차별대우는 역시 임금이다.
포X마트의 정규직 평균 월급이 300만 원을 넘는 데 반해 비정규직 평균 월급은 150만 원도 안 된다. 거기에 세금까지 떼면 실제로 수령하는 금액은 100만 원을 겨우 넘는다. 혼자 산다면 모를까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이 정도 돈이면 먹고 살기도 쉽지 않은 액수다.
그런데 김씨의 월급에서 떼어가는 돈이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를 포X마트에 취직시켜준 대가로 소개비를 받은 것도 모자라 매달 수수료 명목으로 월급의 10%를 강제 징수한다. 그것도 실수령액의 10%가 아니라 실제 월급의 10%라 보통 부담이 되는 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항의할 수도 없다. 그들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한 동료가 마트 인사팀에 찾아가 따졌지만, 돌아온 것은 해고 통지서뿐이었다.
얼마 후 용역업체 직원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인한 한 마디를 던졌다.
‘앞으로도 불만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 불만이 있으면 쉬어야지. 내가 푹 쉬게 해줄게. 너희 말고도 일하고 싶어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
용역 업체나 마트나 모 한통속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무도 지금의 불합리한 현실에 항의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조용히 살면 최소한 목구멍에 풀칠할 수 있는 수입 정도는 얻어갈 수 있으니 그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소설 속의 허구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서 뻔뻔하게 자행되고 있는 갑의 횡포의 단면이다. 피해자만 무려 5만 명이 넘는다. 솔직히 그 많은 인원이 1년 가까이 피해를 보았는데도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비정규직에 대한 수탈이 그만큼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들이 고작 조직폭력 단체와 손을 잡았다는 것도 놀랍다. 설사 일부 간부급 직원만이 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해야 할 경영진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 후략 …]
[대기업과 조직폭력 단체의 밀월. 과연 어디까지일까?]
[L마트 J모 이사 용역 비리 사건 알고도 뒷돈 받고 모른 척]
“음. 이제 하나둘씩 기사가 터지기 시작하네.”
“팀장님. 그냥 아무런 대책도 없이 보고만 있어도 괜찮아요?”
미래씨에게 용역 비리 사건에 대해 미리 말을 해줬는데도, 아직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불안한 듯 발을 동동 굴렸다.
“걱정하지 마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에요. 이럴까 봐 미리 이야기해줬는데 왜 그렇게 불안해해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 될 줄은 몰랐죠, 댓글들 안 보셨어요? 지금 장난이 아니에요. 댓글만 그런 게 아니라 본사 여기저기로 항의 전화가 몰려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요. 걱정 안 되세요?”
“걱정은요. 전 반갑기만 해요.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어야 반전의 효과도 커지기 마련이죠.”
“휴... 전 모르겠어요. 이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팀장님이 정말 대단해 보일 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메디컬 로맨스 소설의 여자 주인공 별명이 빅라바인데. 팀장님에게 더 어울리는 별명 같아요.”
“네? 빅라바? 지금 나보고 간땡이 크다는 거예요? 와. 미래씨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솔직하다.”
“호호.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에이. 그 정도는 제게 칭찬이죠. 전 원래 그런 말 듣는 거 좋아해요. 간땡이가 부었다. 사악하다. 치사하다. 미쳤구나. 잔머리 좋다. 또라이 같다. 왠지 칭찬처럼 들리더라고요. 후후.”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윤권이가 황당한 듯 나를 바라봤다.
“어머나. 문득 하고 싶은 말이 생겼는데 입으로 옮기지는 못할 것 같아요.”
“진짜 또라이 같다고요?”
“호호호. 노코멘트 할게요.”
“하하하. 저도 더 이상 캐묻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번 일은 저보다 훨씬 능력 좋은 다른 분께서 맡아서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실 겁니다. 그러니 아이디어 공모와 신입 팀원 모집 건에만 집중하도록 합시다. 직원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아이디어 공모는 반응이 폭발적이에요. 그런데 팀원 모집은 지지부진한 상태예요.”
“팀원 모집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려봅시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쓸만한 게 있습니까?”
“대부분은 좀 뻔해요. 전기를 아끼자. 물을 아끼자. 냉난방을 개선하자. 이런 식의 비용절감 방안이 많았어요. 물론 개중에는 실천만 제대로 하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도 있었어요.”
“그런 건 직원들의 자율적인 실천이 중요하잖아요. 제외하세요. 지금 동지마트 직원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느니 곰이 재주 넘는 걸 기대하는 게 낫죠. 다른 아이디어는 없어요?”
“송파점 무료 주차 정책을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지금은 2만 원 이상 2시간 무료거든요. 그런데 5만 원 이상 4시간 무료로 바꾸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관심이 가는 이야기였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세요.”
“송파점의 경우 바로 건너편에 가락시장이 있어요. 농수산물 도매시장, 청과물 도매시장, 채소시장, 건어물 종합상가 등 다양한 물품들을 팔고 있죠. 서울에 있는 시장 중 가장 큰 규모예요. 하지만 그 규모에 비해 주차장이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인근 도롯가나 골목길은 항상 불법 주차된 차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그건 우리 동지마트도 마찬가지예요.”
“동지마트 주차장에 가락시장 이용자들이 자동차를 주차한다?”
“네. 그래서 송파점은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2만 원 이상 영수증이 있으면 2시간 무료를 인정해주는 방식을 채택했어요.”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군요. 가락시장 이용자들도 무료주차를 이용하려면 우리 마트에 들러 2만 원 이상 물품을 사야 하니 일석이조가 될 수도 있네요.”
가락시장 이용객들을 우리 동지마트로 끌어들일 수 있는 괜찮은 유인정책이었다.
“그런데 개선안을 올린 사람은 나쁘지 않지만 좋은 정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했어요.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부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가락시장과 동지마트에 들러서 쇼핑하는데 2시간은 주부에게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거죠. 그럴 바에는 주차시간을 늘려 가락시장과 동지마트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제야 개선책의 의도가 뭔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상생의 길이라…. 그렇다면 단순히 영수증 금액과 주차시간이 끝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맞아요. 역시 팀장님이세요. 바로 옆에 대규모 농수산물 시장이 있는데 동지마트가 그걸 이겨보겠다고 농수산물 코너를 강화하는 건 바보짓이래요. 차라리 포기할 건 포기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낫다는 거죠. 그래서 설명하기를 농수산물 코너는 그냥 최소한의 구색만 맞춰놓고 다른 코너를 강화하는 게 동지마트 송파점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해요.”
“다른 코너? 어떤 코너를 예를 들던가요?”
“농수산물 시장을 보완할 수 있는 물품요.”
“그럼. 축산물?”
“맞아요.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것은 축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마트 송파점은 다른 지점과 차별화를 해야 한다. 개선안을 낸 사람도 그렇게 설명했어요.”
차별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내가 동지마트를 살리기 위해 고민했던 고민거리가 상당부문 해결되는 걸 느꼈다.
어차피 10개밖에 없는 지점이다. 그게 단점이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장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지점이 많다는 건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매장 자체를 천편일률적으로 꾸밀 수밖에 없다. 그게 효율적인가. 하지만 동지마트는 그런 점에서는 자유롭다. 고작 10개 지점을 가지고 관리가 어렵다고 하면 그건 무능력한 거다.
그렇다면 동지마트가 다른 대형 할인 마트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정답이 차별화에 있다. 다른 대형 할인 마트와의 차별화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고 같은 지점끼리도 차별화해야 한다.
송파점은 농산물 코너를 과감하게 축소하고 축산물 시장을 강화한다. 행당점은 의류 같은 패션 코너가 강점인 3-마트와 경쟁하고 있으니, 의류 코너를 축소하고 비교우위가 될 수 있는 다른 분야를 강화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다른 지점들도 분명 약점과 강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향상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아직은 아이디어뿐이지만 분명 가능성은 보였다.
“나쁘지 않군요. 아니지. 괜찮아요. 확실히 괜찮은 개선안이네요. 누가 올린 건가요? 지원자가 제출한 개선안인가요? 아니면 아이디어만 제출한 건가요?”
“지원자의 아이디어에요.”
“그렇습니까?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개선안도 굉장히 깔끔한 게 왠지 기대되는데요.”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동지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는 조항은 전혀 문제가 없는 거죠?”
“물론입니다. 지원자의 자격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지원자가 주차 도우미를 하던 휴학생이라서요. 정확하게 따지면 아르바이트생이거든요. 물론 동지마트에서 근무하고 있지만요.”
조심스레 묻는 미래씨의 말에, 나는 그제야 지원자가 누군지 눈치챌 수 있었다.
“혹시 지원자 이름이 박서라씨입니까?”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우연히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제출한 지원서와 개선안 지금 볼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제일 인상적인 내용이라 서류 제일 위에 올려뒀어요. 음... 여기 있네요. 그것 말고도 몇 가지 아이디어가 더 있어서 좀 양이 많아요.”
미래씨는 자신의 책상에서 꽤 두툼한 서류를 가져와 내게 건넸다.
“저는 이것부터 읽어볼 테니, 미래씨는 괜찮은 개선안들을 추려서 간략하게 정리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팀장님.”
============================ 작품 후기 ============================
동지마트를 살리기 위한 방안.
요즘 이걸 생각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물론 100% 현실을 반영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허무맹랑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오늘 나온건 첫번째 방안입니다. 아주 황당무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몇 가지 방안을 더 제시할 건데, 그 내용들이 설득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