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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98화 (198/424)

0019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역시 나 이상으로 행동이 재빠른 녀석이다. 용역 비리에 대한 수사는 광우에게 맡겼으니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수사 결과가 나올 때를 대비해 언론과의 연계와 피해자 보상 문제를 차근차근 준비해놔야 한다. 언론 쪽은 고현호 이사가 전문가를 소개해준다고 했으니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그동안 나는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 두면 된다. 손해를 입은 액수만큼 보상해준다는 원칙만 지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보상금을 어떻게 지급하느냐가 중요하다.

동지마트에서 일하는 직원 구성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매당장 정규직은 100명, 비정규직은 250명 정도 된다. 여기서 용역비리에 관련된 사람은 평균 150여 명. 10개 매장을 합치면 무려 1,500여 명에 이른다.

한 사람당 한 달에 10만 원씩의 돈만 가져갔다고 계산해도 1억 5천만 원이다. 용역업체가 그 돈에서 1억 정도를 총무팀장과 인사팀장에 상납했다고 했으니, 두 사람은 평균 5,000만 원 정도의 가욋돈을 챙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 년이 아니고 한 달에 번 돈이다. 물론 이리저리 상납도 했겠지만, 웬만한 직장인이 1년 동안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가만히 앉아서 벌어갔다는 의미다. 1년만 이 짓을 해도 한 사람당 6억 원이다. 총무팀의 한상질 팀장은 물류팀과 연계해서 농산물 납품 비리까지 저질렀으니 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을 축적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는 성격이 못돼먹어서 이런 놈들이 배불리 사는 꼴을 절대 못 본다.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들을 탈탈 털어버려야 한다. 그게 아니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쉽지 않다.

단순 계산만 해도 한 달 1,500만 원이면, 1년이면 18억 원이다. 안 그래도 비자금 때문에 재무상태가 불안한 동지마트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비자금 당사자를 찾아 어떻게든 돈을 회수한다면 구멍 난 재정을 메꿀 수 있겠지만, 범인이 누군지 감조차 오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일은 자꾸 늘어나는데 믿을만한 사람은 부족한 상황이다. 김수현 대리나 정지영 대리, 하다못해 준호라도 있었으면 좀 나을 텐데 아직 우리 팀은 독자적으로 일을 맡길 사람이 없다.

“추미래씨. 제가 드린 숙제는 잘하고 있나요?”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아직도 혼자 외롭게 책상을 지키고 있는 미래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고민을 해봤는데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호. 그럼 방법이 있긴 있다는 거군요. 뭡니까? 한 번 들어봅시다.”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 동지마트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업무에 대한 의욕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회사에 어서 팔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반수 이상이니 부연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저도 그 점 동감합니다. 그래서요?”

“지금 필요한 인재는 실력이 출중하지만 의욕이 없는 사람보다는, 지금처럼 암울한 동지마트에서 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는 의욕적인 사람이 필요합니다.”

맞는 말이다. 동지마트가 D&Y피트니스 클럽처럼 해외에 진출할 일도 없으니, 예전 우리 팀원처럼 외국어 한두 개 정도는 당연하게 구사할 정도의 엘리트가 필요한 건 아니다.

“미래씨 같은 사람을 말하는가 보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솔직히 고졸이라 지식을 많이 쌓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TF팀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호기심에 찾아보니 특정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각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 만든 임시 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더군요.”

“맞습니다. 원래라면 프로젝트가 끝나는 즉시 자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하는 게 원칙입니다. 혹시 미래씨의 미래가 걱정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미래씨 같은 경우는 적절한 보상과 함께 원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전에 프로젝트에 성공해야겠지만요.”

“아! 제 미래를 걱정해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동지마트는 최종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니 서비스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욕적이고 친절한 사람 대부분은 최소한의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겠죠. 우리 팀에 필요한 사람은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우리 동지마트를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업체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뭔가 일목요연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찾느냐가 문제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뽑죠.”

“직접 공고를 내는 겁니다.”

“공고를요?”

“네. 동지마트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부 공고를 하는 겁니다. ‘동지마트를 한국 최고의 대형 할인 마트로 키울 우수한 인재를 뽑습니다.’와 같은 문구를 곁들여도 좋을 것 같아요.”

“흠. 신청을 할까요?”

“그것도 하나의 테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팀에 의욕이 없는 사람은 필요가 없으니까요. 대부분은 직원은 ‘한국 최고의 대형 할인 마트’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비웃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믿거나 그건 아니더라도 동지마트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 사람들은 신청할 겁니다.”

괜찮은 생각 같았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동지마트라면 통할 방법이다. 확실히 이곳에서 계속 근무한 사람이다 보니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의욕만 있는 게 아니라 머리도 제법 쓸 줄 아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저런 식의 공모로 사람을 뽑으면 분명 어중이 떠중이 같은 사람들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면접을 통해 충분히 떨어뜨릴 수 있다. 이미 D&Y피트니스 클럽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리크루트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 그때의 최소한의 옥석 가리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요. 짧은 시간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군요. 지금 당장 추진하세요.”

“네?”

“왜 그렇게 놀라요?”

“아, 아니요. 이렇게 쉽게 제 의견을 받아주실 줄 몰랐거든요.”

미래씨는 울 듯한 얼굴로 변했다.

“설마 제가 사무실 지킴이로 쓰려고 미래씨를 데려온 것 같아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데려온 겁니다. 그리고 미래씨는 그런 저의 믿음에 멋지게 화답한 겁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면 됩니다. 할 수 있죠?”

“네! 물론입니다. 정말이지 팀장님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절 위해서 말고, 팀과 동지마트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럼 공고는 동지마트 내부커뮤니티에 우선 알리고, 포스터가 나오면 각 지점 사무실에 배부하도록 하죠. 그건 계속 미래씨가 맡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참! 팀장님. 혹시 소문 들으셨어요?”

“무슨 소문요?”

“아까 여직원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행당점 지점장이 투신자살했다는 소식과 그 일과 팀장님이 연관되어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사람의 입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소문이 날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소식이 빨리 퍼졌다.

“그 소식을 아는 사람이 우리 팀 셋과 이사님 그리고 경호원들밖에 없는데. 흠. 혹시 미래씨가 소문낸 건 아니죠?”

“팀장님! 전 절대 아니에요.”

나의 농담에 미래씨가 펄쩍 뛰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어쨌든 생각보다 소문이 빨리 퍼졌군요.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총무팀을 초토화해버린 지금 시점에서 그런 괴담은 저에 대한 공포심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그나저나 지점장 자살 소식은 몰라도 거기에 내가 관련되었다는 이야기가 벌써 퍼진 건 정말 의외입니다. 설마 누가 일부러 소문을 퍼트리는 건 아니겠죠?”

“제가 한 번 알아볼까요?”

“미래씨가요? 어떻게요?”

“같이 연수받을 때 친해진 친구가 여기 행당점에서 일해요. 그 친구에게 물어보면 행당점 소문 메이커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예요.”

“소문 메이커요?”

“왜 어딜 가나 그런 사람 있잖아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소문을 퍼다 나르는 사람요. 그런 사람을 우리끼리는 소문 메이커라고 해요.”

“아. 촉새?”

“호호호. 그렇게 부르기도 하죠.”

“그럼 한 번 알아보세요. 소문 메이커에게 물어보면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잠시만요. 바로 전화해볼게요.”

원래라면 소문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고 지나쳤을 텐데 이상하게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미래씨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런 빠릿빠릿한 성격 마음에 든다.

“응. 나야. 미래.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응? 한턱내라고? 호호호. 기집애. 알았어. 나도 여기로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어리둥절해. 그래. 그렇지. 내가 왜 전화를 했냐면, 여기 행당점 소문 메이커가 누군지 좀 알아보려고. 응? 아니 별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사람이랑 미리 친해두면 좋을 것 같아서. 누구? 관리팀에서 일하는 주차안내 도우미? 이름이 뭔데? 민이수씨? 그래. 고마워. 내일 점심때 보자. 그래 내일 봐.”

“관리팀에 가면 소문 메이커라는 민이수씨를 만날 수 있는 겁니까?”

미래씨가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곧바로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차안내 도우미라고 하니 어딘가에서 주차 안내를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관리팀에 전화하면 민이수씨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려줄 겁니다. 제가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아니에요. 그건 제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미래씨는 그냥 우리 팀 직원 뽑는 일에 먼저 신경 써주세요. 어차피 행당점도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야 합니다. 이것 또 미래씨만 혼자 남겨두고 가야겠군요. 그럼 수고 해주세요.”

행당점 관리팀 사무실은 역시나 지하에 있었다. 매장도 둘러볼 겸 7층에서 지하까지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를 이용해 내려갔다. 그런데 소문이 빠르긴 빨랐다.

나를 보는 시선에서 수군거림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흠칫 놀라 고개를 숙인다. 내가 마치 저승사자가 된 느낌이다.

이쯤 되면 소문이 부풀릴 대로 부풀려져, 내가 지점장을 직접 죽인 것처럼 소문이 퍼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

“여기 주차 관리 도우미 중에 민이수씨라고 있습니까?”

관리팀에 도착하자마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내려오는 동안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거슬려서 신경이 좀 예민해져 있었다. 내가 아무리 뻔뻔한 인간이라고 해도 백정 보듯 보는 눈길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 소개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들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네. 있습니다. 민이수씨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내가 행당점 지점장님을 죽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을 그 친구가 퍼트렸다고 해서요. 좀 따지러 왔습니다. 그럼 안 됩니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괜히 심술을 부렸다. 나의 대답에 안 그래도 차갑게 가라앉은 사무실 분위기는 시베리아 벌판처럼 냉랭해졌다.

“하하하. 그 친구가 좀 말이 많긴 하지만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을 겁니다. 항상 친절해서 손님들에게 평이 좋은 직원입니다.”

“그렇다는 건 저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 사람이 민이수씨가 맞다는 말씀이군요.”

“네? 아. 그, 그게….”

“됐습니다. 그냥 어디서 일하는지 그것만 알려주십시오. 제가 직접 이야기할 테니까.”

이왕 백정 보듯 하는 거, 살벌한 인간이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더욱 차갑고 싸가지 없이 행동했다. 동지마트는 지금 강력한 채찍질이 필요한 상황이니 차라리 잘 되었다. 내가 이렇게 차갑게 행동하고, 나중에 고현호 이사가 등장해서 직원들을 감싸면 그의 인기는 금방 치솟을 거다.

“네. 지금 이 시각이면 후문에 있는 1층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 안내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가자 윤권아.”

“알겠습니다. 보스.”

오호! 이 녀석. 이제 눈치도 빨라졌다. 내가 분명 ‘팀장’이라고 하라고 했는데, ‘보스’라고 불렀다. 이건 의도했다는 거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윤권이의 ‘보스’라는 한 마디는 나의 소문에 종지부를 찍는 멋진 선택이었다.

지금 이 사무실을 나가면 과연 나에 대해 어떤 소문이 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200편입니다. 정말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이런 날이 오네요.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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