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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96화 (196/424)

0019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순간 고평호 이사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따지고 보면 고평호 이사는 동지마트를 팔려고 했던 사람이다. 동지마트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었다면 그곳을 팔려고 나설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은 고진성 부회장과 고정호 전무다.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다. 회장님은 동지마트를 살려보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아들놈 하나는 거길 팔아먹으려고 다른 마트와 작당 모의를 했다. 그리고 동생인지 아들인지 모를 또 다른 누군가는 그곳을 비자금 조성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이 정도 상황이면 아무리 천재적 경영자가 있다고 해도 경영정상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동안 동지마트가 고전하게 된 원인은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쪽에선 동지마트를 팔려고 경영을 악화시켰고, 다른 한쪽은 비자금 조성을 위해 재무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두 가지만 해결하면 동지마트는 충분히 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경영상태를 정상화하고 재무 상태를 건전하게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모 대학교 농구 감독은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작전타임을 불러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를 내렸다.

‘우린 지금 오펜스와 디펜스가 안 되고 있어. 그러니까 오펜스와 디펜스만 잘하면 돼.’

실제로 중계방송에까지 잡혔던 유명한 이야기다. 공격과 수비가 안 되니 공격과 수비만 잘하면 된다. 그런 건 초등학교 꼬마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경영이야 어떻게든 쇄신을 하면 가능하다고 해도, 한번 무너져버린 재무상태를 다시 정상적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걸려도 아주 더러운 곳에 걸렸다. 동지마트가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지리산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우. 그럼 신석주 대리님은 누가 개입되었는지는 모르시는 거죠?”

“네. 저는 물론이고 한상질 팀장도 정확히 누가 개입되었는지는 모를 겁니다. 윗선에서 보낸 대리인이 모든 연락을 도맡아 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신석주 대리님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뭡니까? 설마 비자금을 만드는데 동지마트가 이용되고 있다. 뭐 이런 정보를 넘겨주는 걸로 본인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비자금 조성 내역이 들어 있는 일부 장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기록해두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뒷돈을 빼돌리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돈의 규모가 너무 커서 뒤늦게 비자금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용은 상세하지 않습니다. 제가 주도한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실력 있는 회계 전문가라면 자금을 추적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될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 장부를 넘겨주세요.”

“제 노트북 안 비밀 폴더에 따로 보관해뒀습니다.”

“그럼 신석주 대리님은 우선 왼쪽에 서 있는 보안 요원과 함께 압수물품 보관소에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비자금을 파악하는 게 가장 우선이니까요. 저는 그동안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겠습니다. 우선 이현승 주임 좀 들여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신석주 대리가 나가고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이현승 주임이 들어왔다.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긴장할 것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명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그래도 2년 가까이 같이 일했던 동료라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보면 이 주임 인생을 망칠뻔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죄책감 같은 건 전혀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범죄자거든요. 이미 신석주 대리가 이야기해준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형사고발이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신석주 대리님이야 한상질 팀장이 자신의 라인으로 끌어들이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주임이라고 해도 이제 겨우 2년 차라….”

“괜찮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런 게 모이면 나중에 중요한 정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현승 주임은 많이 긴장되어 보였다. 아직 2년 차면 신입이나 다를 바 없다. 나의 협박성 멘트 때문이든 어쨌든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가 주로 맡은 파트는 농수산물 쪽입니다. 혹시 가공되지 않은 농산물의 경우 부가가치세가 없습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마케팅부에서만 일한 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아니요. 몰랐습니다.”

“배추면 배추, 무면 무. 이런 가공하지 않은 농산물은 부가가치세가 붙지 않습니다. 거기다 계산서를 발행할 때도 전자기기에 입력하지 않고 수기로 작성합니다. 그러니 자기 입맛에 따라 거래 내역을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뻥튀기도 쉽고 삥땅 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총무팀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까?”

“네. 그런데 이게 또 총무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당연히 물류팀도 같이 공모해야죠.”

“물류팀은 물량을 속이고, 총무팀은 모르는 척 결제를 해주는 그런 공모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총무팀과 물류팀은 한 식구처럼 친하게 지냅니다.”

이놈의 동지마트는 대체 안 썩은 곳이 있기는 할까?

윗놈들은 비자금을 조성하며 뒷돈을 챙기고, 아랫놈들은 농산물 거래 물량을 속여서 뒷돈이나 챙기고. 그런 상황에서 동지마트가 잘 돌아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한상질 팀장과 친하게 지내던 팀장이 또 있습니까?”

“네. 인사팀장과도 매우 절친한 관계입니다. 총무팀장, 물류팀장, 인사팀장. 이렇게 셋이서 잘 어울리는 건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흠. 인사팀장은 왜 총무팀장과 친하게 지낼까요? 물류팀은 서로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있으니 이해가 간다지만요.”

“그게….”

“혹시 아는 거라도 있습니까?”

“실은 그냥 저도 풍문으로만 들어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확실치 않더라고 괜찮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말씀해보세요.”

“그러니까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우리 동지마트에서 일하는 직원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입니다. 그런데 채용되는 비정규직 중 절반 이상이 특정 용역업체에서 소개해주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럼 뭡니까? 인사팀장과 총무팀장이 용역업체와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이를테면 용역 브로커 역할을 한 셈이죠.”

아! 정말 가지가지 한다.

이놈의 동지마트는 까도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같은 곳이다. 이젠 진짜 징글징글할 정도다.

“물론 단순히 사람만 소개시켜준 건 아니겠죠?”

“뒷돈도 많이 챙겼다고 들었습니다.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서 용역업체에 소개비조로 주면, 용역업체는 그 금액의 60 ~ 70%를 총무, 인사 팀장에게 상납한다더군요.”

“비정규직 직원들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거기서 또 돈을 떼여간답니까? 어휴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망할 놈들. 그밖에 다른 건 또 없습니까?”

“대부분 사소한 것들입니다. 창고 물품 도난 사고 문제도 있고….”

말 그대로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이현승 주임의 말을 들으면서 동지마트가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었는지 새삼 깨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두 사람은 거의 신입이나 마찬가지라서 큰 건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이 그동안 동지마트에서 일하면서 보고 들었던 것 중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뭐든 진술해달라며 노트를 건넸다.

책상에 앉아 열심히 뭔가를 쓰는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메모지 한 장을 찢어 펜으로 크게 세 글자를 적었다.

[사직서]

이렇게 적은 종이를 다시 접어서 품에 넣고 고현호 이사가 일하고 있는 7층의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서 와. 그래, 지금 상황은 어때?”

“상황이 어떻고 그런 건 지금 제 눈에 안 들어옵니다. 우선 이것부터 받으시지요.”

나는 고현호 이사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아까 집어넣었던 메모지를 품에서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응? 사.직.서? 갑자기 웬 사직서야?”

“동지마트 일 못하겠습니다.”

“왜 그래? 갑자기 그러는 이유가 뭐야? 일단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냐?”

“여긴 사람이 일하는 곳이 아니라 그냥 지옥입니다.”

“뭐?”

“나쁜 짓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라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 저를 놓아주십시오. 이사님.”

“마 팀장. 일단 알아듣게 차근차근 설명해봐.”

솔직히 그만둘 생각은 없다. 그냥 꼬장을 부리는 거다. 가끔은 이렇게 ‘나 엄청 힘들어요.’라고 생색을 내야 윗사람들이 알아주는 법이다. 힘든 것도 PR을 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힘들어도 참고 꾸역꾸역 일하면 소 취급만 받는다.

“혹시 동지마트가 비자금 세탁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 아셨습니까?”

“뭐? 비자금?”

“네. 대충 계산해봐도 최소 백억 원 이상의 비자금이 동지마트를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회계감사가 끝나는 대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설마 비자금 말고 또 있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입니다. 윗선에서 비자금 세탁을 하는데 밑에 놈들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총무팀과 물류팀이 서로 짝짜꿍을 해서 꽤 많은 돈을 해 처먹은 것 같습니다.”

“크흠. 그렇군. 그런데 또 있어?”

“총무팀장과 인사팀장은 용역 업체와 작당해서 브로커 역할까지 했습니다. 직책을 이용해 우리 동지마트 비정규직 직원들의 코 묻은 돈을 강탈해간 셈이죠.”

“직원들은 자기들이 일하는 돈을 강탈해가는데 그냥 당하기만 하고?”

“직원들이 뭘 알겠습니까? 총무팀장과 인사팀장이 손을 잡았으니 직원들은 자기 월급에서 그런 식의 수수료가 떼어가는지도 모르고 있었겠죠. 아니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알면서도 모른척했던가요.”

“그런데 마 팀장은 그런 동지마트에 나를 박아두고 혼자 그만두겠다고?”

“어쩝니까? 저라도 살아야죠.”

“원하는 게 뭐야?”

“뭐가요?”

“원하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꼬장을 부리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해주면 돼? 사표를 내겠다는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는 하지 말고.”

역시 눈치는 빠르다.

“봐주는 것 없이 관련자들을 싹 쓸어버리고 싶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직원들 목에 빨대를 꽂아서 피 빨아먹는 놈들을 사표 받는 걸로 끝내고 싶지 않아요. 괜히 회사 이미지 나빠진다고 쉬쉬할 거면 전 여기서 빠지겠습니다.”

“난 또 뭐라고. 형사고발을 하든 용서를 하든 그건 마 팀장이 알아서 해.”

“위에서 안 좋게 볼 수도 있습니다. 사회면에 동지마트 이름이 나오면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실 걸요? 저도 보십시오.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사회면에 오르내리자 회사에 누를 끼쳤다며 지리산으로 내쫓으려고 했지 않습니까?”

“내가 막아줄게. 하고 싶은 대로 해.”

됐다. 원하는 대답을 들었으니 이제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물론 비자금은 빼고. 그건 아무리 고현호 이사라도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다. 좀 더 심층적으로 논의한 다음 제대로 대책을 마련해야지 아니면 큰일 날 수 있다.

============================ 작품 후기 ============================

러브히나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 활용했습니다. ^^

프리맨님. 비자금에 대한 딜은 있을겁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먹진 않을 겁니다. 돈이 아쉬운 입장이 아닌데 굳이 탈이 날 수 있는 돈을 먹을 필요는 없죠.^^

소렐라님 조언 감사합니다. 등장인물이 전부 매력적일 필요는 없겠죠. 용기내 보겠습니다. ㅎ

2014년에 올리는 마지막 글이네요.

독자 여러분들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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