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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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은 공인 회계사 10인 이상을 직원으로 하여 회계에 대한 감사·감정·증명·계산·정리·입안 또는 법인설립 등에 관한 회계 및 세무 등의 직무를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요 업무는 1. 회계감사(법정감사, 임의감사), 2. 세무업무(법인세와 소득세의 세무조정 등 세금과 관련된 각종 업무), 3. 경영자문업무(경영분석 및 진단, 국제무역·투자 및 해외 진출에 수반되는 세무 등 자문업무, M&A 등)가 있다.
오영 회계법인은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드는 그럭저럭 괜찮은 회계법인이었다. 하지만 몇몇 임원들이 내부자거래로 부당이익을 취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곤혹을 치렀다. 그 사건 때문에 동수도 금감원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로또에 당첨된 사실을 밝히면서 쉽게 의심을 지울 수 있었다.
일명 오영 스캔들이 일어난 이후 오영 회계법인은 예전의 위세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2,000여 명의 회계사 및 변호사를 보유하고 3,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고작 100명이 겨우 넘는 직원을 보유한 평범함 회계법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뼈아팠던 것은 100대 대기업 중 세 곳이나 보유하고 있었던 거래처를 라이벌 회사에 모두 빼앗겼다는 사실이었다. 그 덕분에 6위였던 라이벌 회사의 회계법인 랭킹은 단숨에 3위까지 올라가 버렸다.
회사가 크게 흔들렸지만, 형진이 입장에서는 지금의 위기가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다고 바로 공인 회계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인 회계사 수습가능기관(공기업, 회계법인)에서 2년간 수습기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자격증이 나온다.
형진은 26살에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졸업과 동시에 오영 회계법인에 취직해 28살까지 수습기간을 보냈다. 지금 나이가 31살이니 진짜 공인 회계사가 된 지는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의 위기가 그에게는 기회로 찾아왔다.
오영 회계법인의 명성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명성 있는 회계사나 변호사 대부분은 다른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났다. 회사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막대한 연봉을 감당하려면 경영자문업무와 같이 거기에 어울리는 일거리를 줘야 하는데, 떨어진 명성만큼이나 일거리도 큰 폭으로 줄어버렸다.
결국, 오영 회계법인의 이사진들은 고액 연봉자를 포기하고 가능성 높은 파릇파릇한 신진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하기로 결심했다. 동수 친구 형진 또한 잠재력 높은 신진으로 분류되어, 같은 나잇대의 다른 회계사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실무 경험을 하며 무럭무럭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팀장님. 급히 보고 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친구 녀석에게 전화가 왔는데, 동지마트 회계감사를 맡아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동지마트? 처음 들어 보는 곳이군. 거기가 어디지?”
동지마트는 전국에 고작 10개 밖에 매장이 없는 허울 좋은 대형 할인 마트이다. 형진이 속한 팀의 팀장이 모른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동지그룹 계열사입니다.”
“뭐? 그럼 고민할 게 뭐 있어? 당연히 한다고 해야지. 다른 곳도 아니고 동지그룹 일이야. 우리 오영 회계법인이 잘 나갈 때도 재계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과는 거래한 적이 없다고.”
“한 시간 안에 들어오라고 해서 말입니다. 지금 하는 일도 있고.”
“그게 뭐가 문제야. 지금 어디 맡고 있지? 아마 XX실업 세무 업무를 담당한 걸로 아는데 맞아?”
“네. 맞습니다.”
“그럼 거기 일은 편이현에게 넘기고 당장 동지마트로 넘어가.”
“그런데 한가지 유의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야 말해봐.”
“그게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동지그룹은 그룹 오너의 세 아들이 후계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지마트는 그중 셋째가 맡고 있고요. 괜히 동지마트에 도움을 줬다가 다른 두 아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형진이 너 은근히 순진하구나. 그게 지금 우리 오영에게 문제가 될 것 같아? 지금 우리 회사는 직원들만 수천 명을 거느리던 예전 회계법인이 아니야. 그때야 우리가 동지마트 일을 맡는 것만으로도 후계다툼에 끼어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냥 널리고 널린 회계법인 중 하나이니, 그쪽에선 신경도 안 쓸걸? 그리고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때야? 오히려 후계다툼에 끼어들 수만 있다면 끼고 싶다. 그렇게 모험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 오영은 당분간 밑바닥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그럼 제가 맡고 있는 업무는 편이현 선배에게 맡기고 저는 지금 바로 동지마트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래. 아! 아니지, 아니야. 지금 동지그룹 셋째 아들 만나러 간다면서?”
“네. 그렇습니만?”
“같이 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벌 2세를 만나는 일이야. 아무리 그래도 공인 회계사 자격증에 잉크 자국도 안 마른 너를 혼자 보낼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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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네.”
“이사님. 지금 오영 회계법인에서 명석훈 팀장과 차형진씨가 이사님과 약속이 되어있다며 방문했습니다.”
“제 손님 맞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총무팀 처리방안과 당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데, 비서가 스피커폰으로 형진이의 도착을 알렸다. 그런데 혼자 온 게 아니라 팀장과 함께 왔다고 한다.
회계사의 진급제도는 로펌과 비슷하다. STEP, INCHARGE, MANAGER, PARTNER. 이렇게 4단계를 거친다. 형진이 회사에서 팀장이면 매니저 단계라고 보면 된다. 1시간 만에 오라며 무리한 부탁을 했는데도 팀장까지 대동했다는 것은 오영에서 우리 동지마트에 뭔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서 오세요. 저는 동지마트를 책임지고 있는 고현호 이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만나뵈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영 회계법인의 명석훈 팀장입니다. 이쪽은 우리 회사 직원인 차형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차.형.진 이라고 합니다.”
고현호 이사와 명석훈 팀장이 서로 인사를 나눴고, 그다음으로 형진이가 소개를 받았다. 형진이는 장희의 오빠라서 그런지 상당히 각 잡힌 모습에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을 소개했다. 그 모습이 꼭 군기가 바짝 든 신병 같아 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차형진씨.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곰같이 생긴 사람은 제가 신임하는 우리 동지마트의 TF팀의 마동수 팀장입니다. 차형진씨와는 서로 친구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팀장님. 마동수 팀장입니다.”
“저도 정말 반갑습니다. 마동수 팀장님. 우리 차형진씨와 대학 동기라고 들었는데, 벌써 팀장이라니 능력이 대단하신가 봅니다. 하하하. 그런 분이 오영 회계법인을 선택해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그냥 운 좋게 이사님의 신임을 받아 호가호위하는 중입니다.”
“하하하. 그런 겸손한 말씀을. 아까 오는 길에 차형진씨에게 마 팀장님에 대해서는 대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엄청난 이슈를 몰고 있는 D&Y피트니스 클럽을 만든 진짜 주인공이라면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러니 이사님이 신임하시는 거겠죠.”
“맞습니다. 실력이 없었으면 제가 신임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하하. 서로 인사가 끝난 것 같으니 자리에 앉으시죠. 오늘 미팅도 마 팀장이 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는 등 간단한 인사를 나눈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번 일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차형진씨에게 제 성격에 대해서도 들으셨을 테니, 쓸데없는 시간낭비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총무팀에 대한 감사, 언제쯤 가능합니까?”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충 설명을 듣긴 했지만, 총무팀을 꼭 날려야 합니까?”
“문제가 되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유통업체에서 자금 회전은 매우 중요한 업무입니다. 그런데 총무팀을 날려버리면 어쩔 수 없는 업무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유통이 원활히 안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책임자만 자르고 나머지 직원들은 데리고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설마 이사님께서 뒤에 계신 데 함부로 행동이야 하겠습니까?”
“꼭 총무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만은 아닙니다. 지금 동지마트 사람들은 타성에 젖어 의욕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동안 동지마트를 살리기 위한 여러 조치가 모두 실패로 끝나자, 패배주의가 만연한 거죠. 그래서 이사님이 부임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자기들끼리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이럴 땐 충격요법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본보기가 필요하죠.”
“그렇군요. 간단한 상황만 파악한 제가 얼마나 알겠습니까? 마 팀장님께서 충분히 고민하셨겠죠. 업무 공백만 막을 수 있다면 회계감사는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업무 공백. 솔직히 좀 마음에 걸리긴 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냥 아무 설명도 없이 총무팀장만 날려버리면, 커피 심부름 때문에 보복인사를 단행한 꼴밖에 되지 않는다.
회계감사를 통해 총무팀장의 비리혐의만 드러나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확률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비리 사실을 눈감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총무팀을 날리는 일은 이제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나 다름 아니었다.
“음. 솔직히 업무 공백은 제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회계감사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이지만 오영에서 업무 공백을 막아 줄 수 있습니까? 베테랑 중에 유통업체 관련 업무에 빠삭한 사람도 있겠죠? 자신 없다면 우린 다른 회계법인을 찾아보겠습니다.”
“마 팀장. 친구를 불러놓고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나?”
“차형진씨가 그걸 가지고 서운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가장 먼저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겠죠.”
아무리 학연, 지연이 나쁘다고 해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려면 친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은 안 그렇다고? 개뿔. 미국 애들이 IVY 리그 대학 같은 명문대에 들어가려고 기울이는 노력은 우리나라 못지 않다.
단지 수준 높은 교육 때문에 명문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쌓을 수 있는 인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인맥 또한 실력인 세상이다.
그렇다고 실력도 없는데 친구에게 계속 일을 맡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문제없습니다. 오영 회계법인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일 중 하나가 경영자문업무입니다. 그중에서도 회계부문 경영컨설팅은 저의 전문분야입니다. 차형진씨도 수습 때부터 제 밑에서 회계부문 경영컨설팅 업무를 계속 해왔습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다른 회계법인을 찾아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명석훈 팀장은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총무팀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숫자 놀음이다. 유명 회계법인에서 일했던 사람이 그 정도 일도 못 해낸다면 그건 정말 무능력한 것이다.
“그럼. 좋습니다. 더 이상 꾸물거릴 필요가 없겠죠. 이사님. 오영 회계법인에게 회계감사 및 회계부문 경영컬설팅을 의뢰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그래. 마 팀장 말처럼 꾸물거릴 필요가 없겠지. 그렇게 해. 명 팀장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마 팀장 업무 스타일이 그렇습니다. 바로 업무 의뢰서 작성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혹시나 싶어 계약서도 준비해왔습니다. 차형진씨.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팀장님.”
회계 상담부터 업무 계약서 작성까지 걸린 시간이 총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현호 이사의 말처럼 정말 번갯불에 콩 볶는 것처럼 후다닥 모든 일을 마무리 지었다. 이제 총무팀에 날벼락을 내리는 일만 남았다.
============================ 작품 후기 ============================
어제는 소백산에 다녀오느라 연재를 못했습니다. 겨울 소백산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좋더군요. 덕분에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산에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독자님들도 기회되시면 한번 도전해보세요.
눈과 함께 마음을 정화시키고 왔으니 글이 좀 더 잘 써지 않을까요? ㅎ 어제 못한 연재는 주말에 보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선추코 3종 세트도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