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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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어?”
동지마트를 지금처럼 유지해서 다른 대형 할인 마트에 넘어가길 바라는 기존 세력과 동지마트를 살리려고 새롭게 가세한 신규 세력의 첫 번째 매치.
손님들에게는 무관심한 직원들이었지만, 그들도 동지마트에서 일어난 첫 번째 매치에는 심대한 관심을 가졌다.
“글쎄. 누가 이겼다고 꼭 집어 말하기는 좀 애매해. 50.1 : 49.9로 뉴파(신규세력)의 미약한 우세?”
“응? 크게 한 번 붙은 거 아니야? 아까 회의실로 가는 모습은 전쟁을 앞둔 것처럼 심각한 표정이었는데.”
“그래서 나도 대판 싸우겠구나 기대했는데, 그냥 말싸움 몇 마디하고 끝나던걸? 그나마 유도했다는 직원 덕분에 기세 싸움에서는 이긴 것 같더라. 그러면 뭐하나. 총무팀하고 어긋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말을 동동 굴릴 사람들은 뉴파인걸.”
“그래? 역시 어쩔 수 없나? 새로 부임한 TF팀 팀장이 꽤 젊다며? 젊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동지마트에서 잔뼈가 굵은 올드파(기존세력)의 뿌리가 너무 깊긴 하지.”
“그래도 회장님 셋째 아들이 지원해줘서 뭔가 기대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실망이네.”
“뭐? 너 올드파 아녔어?”
“딱히 올드파는 아니지. 그냥 지금처럼 생기없이 직장생활 하는 게 지겨울 뿐. 올드파 주장처럼 빨리 합병되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겠어? 적어도 지금처럼 칙칙하게 살진 않겠지. 뉴파가 뭔가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이러면 기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아쉽다.”
“그러게. 어쨌든 싸움 구경은 다 재미있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서 나도 실망이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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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지? 나랑 고현호 이사랑 동지마트 살리기에 돌입한 거.”
“알지. 그저께 만났을 때 네가 이야기해줬잖아. 그런데?”
“그런데 거기 총무팀 팀장이 매우 비협조적으로 나와. 이기적 대리라고 내가 X나 싫어하는 놈이랑 입사 동기인데, 그놈에게 무슨 사주라도 받았는지 첫날부터 굉장히 시비조야. 그래서 네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아.”
다른 마트와 합병되길 바라는 사람이 많을 정도니, 이 정도면 콩가루 집안이나 다름없다. 마트는 당장 리뉴얼이 필요할 정도로 낡았고, 일하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애사심도 없이 썩었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작도 하기 전부터 가슴이 답답해졌다.
총무팀의 한상질 팀장이 생각보다 아주 악질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동지마트는 뭔가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동지마트를 위한 확실한 희생양이 필요한 시점에 하필이면 내 눈에 띄어 버렸다.
“총무팀이? 어쩌다 그랬어. 다른 곳도 아니고 유통업체 총무팀은 꽤 파워가 있거든. 유통이라는 게 뭐냐? 상품이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전달되는 전 과장을 말하는 거거든. 인간으로 말하면 심장에서 손끝이나 발끝까지 피를 전달하는 과정이라고.”
“경영학 수업도 아니고 핵심만 간단히.”
“까칠하기는. 끝까지 들어. 이게 다 핵심이야. 사람 몸속에서 피가 원활하게 돌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혈관에 막힌 곳이 없어야겠지? 유통도 마찬가지야.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최소 3 ~ 4단계는 거치는데, 그 과정이 원활해야 하거든. 그런데 물건을 넘겨받을 때마다 현금박치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좀 번거롭긴 하겠네.”
“좀이 아니라 많이 번거롭지. 물건을 옮기는 사람은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일 텐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큰돈을 가지고 다니기 힘들잖아. 그렇다고 돈 관리 하는 사람을 따로 옆자리에 앉혀 두고 일일이 돈 계산하게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그렇긴 하지. 사람 하나를 더 쓰면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는 거니까.”
“그래서 유통업에서는 신용거래, 일명 외상이 정말 중요해. 그리고 그런 거래를 총괄하는 곳이 바로 총무팀이야. 일반 회사의 총무팀과는 일의 성격이 약간 다르지. 만약 총무팀에서 심술을 부려 신용거래 결제를 미뤄버리면, 유통망 전체가 꼬여버릴 수도 있어. 사람 몸에 흐르는 피가 멈추면 죽겠지? 총무팀과 틀어지면 그렇게 될 수도 있어. 물론 동지마트가 망하진 않겠지만, 유통라인 한두 개쯤은 그냥 날아갈 수도 있어.”
형진이의 설명을 들으니 한상질 팀장이 왜 그렇게 떵떵거렸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런 머리는 돌아가면서 내 뒤에 누가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할까? 설마 나를 밟으면 자신이 고현호 이사의 신임을 대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면 그건 나와 고현호 이사의 사이를 몰라서 저지른 바보 같은 실수다.
꼭 그게 아니라도 그의 행동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동지마트를 살려보겠다고 온 사람이 고현호 이사다. 그런데 그런 그의 개혁에 선봉장이 될 사람을 만인 앞에서 밟아 버리면, 그건 고현호 이사와 정면으로 붙겠다고 공언하는 꼴이 된다. 누가 그런 사람을 신임해서 밑에 두고 싶겠는가?
“결국 동지마트의 개혁을 성공하려면 총무팀과 잘 지내거나, 아니면 총무팀을 날려버려야 한다는 소리군. 그런데 여기서 내가 무릎을 꿇으면 개혁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야. 결국, 날려버릴 수밖에 없어. 방법이 있을까?”
“음. 솔직히 어렵진 않아. 총무팀은 돈을 만지는 곳이잖아. 완벽하게 청렴한 사람이 아니고선 털면 다 나오게 되어 있어.”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탈탈 털어버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너희 본사 회계 관련 부서가 있을 것 아냐. 그 부서에 요청해서 내부 회계감사를 해야지.”
“있긴 있지. 재무기획부라고. 흐음. 하지만 벌써부터 본사에 손을 내미는 건 좀 모양이 빠지는데. 회계감사라는 거 말이야. 꼭 본사 재무기획부에서만 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냐. 회계감사의 사전적 의미는 회계담당자가 작성한 회계기록을 제 3자가 검사하는 것을 말하거든. 그러니 제대로 회계감사를 하려면 회계법인 같은 곳을 이용해야지.”
“그래? 그럼 네가 하면 되겠네. 가능해?”
“뭐? 아니 가능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아무리 네가 고현호 이사님의 신임을 받는다고 해도 회계감사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야?”
“뭐가 문제야. 지금 보고 하고 결재받으면 되는 거지. 그럼 너네 회사가 하는 걸로 결정.”
“야!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러면...”
“거. 웬만하면 튕기지 말지? 너네 회계법인 지난번 주식 내부자거래로 많이 힘들어진 거 알거든. 다른 곳도 아니고 동지그룹과 일할 기회야. 게다가 일 잘 처리하면 고현호 이사님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겠지.”
“그, 그럴까?”
“당연한 소리를 하고 그러냐. 나를 돕는 게 곧 고현호 이사를 돕는 일이야. 아니다. 그러지 말고 지금 당장 동지마트로 들어와라. 너희 사무실이 삼성동이니까 그렇게 멀지도 않잖아. 기다릴 게 한 시간 내로 와. 끊는다.”
“야 인마! 갑자기 그런 게 어디있...”
형진이가 깜짝 놀라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나는 듣지도 않고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저렇게 튕기지만 결국은 오게 되어있다. 꼭 고장희와 연관이 없다고 해도, 재계서열 5위인 동지마트와 첫 거래를 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무리 동지마트가 대형 할인 마트 부문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해도, 동지그룹과 인연의 고리를 이을 수 있다면 그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재벌 아들이 전교 꼴찌를 한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다른 회계법인에게 이런 기회를 준다고 하면 최소 텐프로 이상의 룸살롱에서 풀코스로 접대를 받아도 부족할 정도로 대박 건수다. 형진이도 지금쯤이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화를 끊자 윤권이와 미래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들 그렇게 놀란 눈으로 봐요? 아! 회계감사 때문에? 설마 그럼 아까 회의실에서 가볍게 인사 나눈 게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네? 그게 가볍게 인사만 나눈 거예요? 10명 가까운 총무팀 직원들 앞에서 ‘앞으로 우리 팀원에게 커피 심부름시키면 가만있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거잖아요.”
“하하하. 미래씨. 아직 스물한 살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순진하네요. 저는 초딩처럼 말로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적이다 싶으면 다시는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밟아버립니다. 제가 이야기했죠? 알고 보면 저란 인간 굉장히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각오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자신 없으면 지금 행당점으로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꼭 해낼 거예요. 그래서 비정규직 고졸 사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표현을 일부러 무섭게 했지만, 미래씨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요. 저도 기대해볼게요. 그럼. 우선 숙제하나 드리죠. 통화를 들었으면 알겠지만, 저는 윤권이를 데리고 이사님과 총무팀 처리에 대해 논의를 하고 올 겁니다. 그리고 제 친구인 형진이가 오면 구체적인 방안까지 마련하겠죠. 그 시간 동안 미래씨는 우리 팀의 팀원을 보강할 방법을 찾아보세요.”
“제가 팀원을요?”
“네. 저는 미래씨의 잠재력을 믿고 있지만 지금 당장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러니 새로운 팀원을 뽑아야겠죠? 미래씨가 행당점에서 일하면서 괜찮다 싶었던 사람을 추천해도 괜찮고, 아무튼 우리 TF팀에 도움이 될 직원을 뽑는 방안을 마련해보세요. 그게 제가 주는 첫 번째 숙제이자 임무입니다.”
“뭔가 좀 막막하긴 하지만,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안 되면 저한테 몇 번 깨지고 다시 하면 되는 겁니다.”
“네?”
“못하면 깨져야죠. 계속 칭찬만 받을 생각이었습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깰 땐 깨더라도 왜 깨져야 하는지는 알려 드릴게요. 그러니 깨지는 거 무서워 말고 열심히 노력해보세요. 제가 미래씨를 선택한 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고현호 이사의 방은 그리 말지 않은 곳에 있었다. 동지마트 책임자의 사무실은 원래 여기보다 한 층 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취임하면서 8층에 있는 사무실은 고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버리고, 7층의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했다. 역시 마음가짐이 된 사람이다.
“어서 와. 사무실은 마음에 들어?”
“네. 마음에 듭니다. 이사님께서 정말 많이 신경 쓰셨더군요. 그런데 이곳에 오니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사님 방은 이렇게 좁고 소박한데, 우리 사무실만 너무 좋은 것 같아서요.”
“에이. 혼자 쓰는 방이 넓어서 뭐에 쓰려고. 그게 다 낭비야. 나는 업무를 볼 수 있는 책상과 소수의 사람들과 환담을 나눌 수 있는 소파 몇 개면 충분해. 하지만 TF팀은 다르지. 앞으로 우리 동지마트를 이끌어가야 할 핵심부서인데, 당연히 신경을 써야지.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내가 TF팀에 힘을 실어주는구나, 온몸으로 느끼지.”
“기대에 보답하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겠군요. 그래서 첫날부터 일거리를 가져왔습니다.”
“벌써? 하하하. 역시 마 팀장은 부지런해. 출근 이틀 전에 행당점을 초토화시키더니 이번에는 또 어딜 날려버리려고?”
“총무팀입니다.”
“뭐? 난 그냥 농담처럼 한 말인데, 정말 한 건 한 거야? 출근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잖아.”
“가만히 있는데 시비를 걸어오더군요. 오늘 아침에 출근했더니 우리 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는 미래씨가 커피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
나는 고현호 이사에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얼굴로 설명을 듣던 그는, 동미마트 직원들의 상당수가 다른 마트와 합병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심각한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군. 그렇다면 아예 애사심 자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네?”
“애사심은커녕 회사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도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하려면 일단 매를 들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정말 두들겨 팰 수도 없지 않습니까?”
“본보기가 필요하다? 마침 총무팀이 시비를 걸어줬으니, 명분도 마련되었고 말이야.”
“솔직히 말씀드려 명분은 부족합니다. 여직원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고 총무팀을 날려버리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그럼 다른 괜찮은 명분이 있고?”
“만들어야죠.”
“어떻게?”
“그래서 이사님을 찾아온 겁니다. 총무팀이니 돈으로 명분을 만들어야죠.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돈을 만지는 바닥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커피 심부름으로 총무팀을 날려버리면 욕만 먹겠지만, 회계감사에서 드러난 비리로 날려버리면 아무도 비난하지 못할 겁니다.”
“회계감사라. 괜찮은 방법이군. 비리가 드러나면 명분도 마련하면서, 다른 직원들에게는 확실한 본보기가 되겠군. 자네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그런데 회계감사는 어떻게 하려고? 설마 본사 기획재정부를 불러들일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오영 회계법인에 제 친구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맡겨보려고요. 친구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일적으로도 정말 믿을만한 친구입니다.”
“오영 회계법인? 혹시 차형진?”
“네? 이사님이 그 녀석을 어떻게 아십니까?”
“장희랑 나랑은 거의 비밀이 없거든. 그렇지 않아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잘 됐어. 조만간 여기로 한 번 오라고 해.”
“그렇지 않아도 오라고 했습니다. 아까 출발하라고 했으니 늦어도 30분 안에 도착할 겁니다.”
“뭐? 벌써? 마 팀장 이 친구 이거 일 처리 속도는 언제나 나를 놀래키는군. 하하하.”
============================ 작품 후기 ============================
Ken12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끈한 임팩트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나옵니다. ^^
고현호 이사가 뒤에 있는 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지마트 사람들은 이미 타성에 젖어서 의욕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동안 동지그룹에서 동지마트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회장 아들이 부임해와도 그러려니 하며 여전히 의욕없이 지내고 있는 겁니다. 매우 심각한 상태죠.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위는 높지 않아도 요즘 남겨주시는 댓글들에서는 애정이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순위는 높아도 댓글때문에 마음 고생많았거든요. ㅠㅜ 인기는 떨어졌지만 제 글을 좋아 해주시는 분들만 남은 것 같아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14년 멋지게 마무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