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장경철 지점장은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나의 구세주인 고현호 이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네? 이, 이사님께서요? 이사님께서 왜 갑자기 이런 일을 지시하신 건지...”
“이런 이런. 제가 사장이나 대표라는 호칭을 싫어해서 그냥 ‘이사’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정말 저를 동지마트의 이사로 생각하셨나 봅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요? 그럼 동지마트의 책임자가 저라는 사실도 아시겠군요.”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동지마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위해 여기 있는 마동수 팀장에게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내게 지시를 했다고? 당연히 그런 적 없다. 하지만 고현호 이사는 지금 상황이 어떤지 눈치 빠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사님. 그런 건 동지마트 지점장들에게 부탁했어도 될 일인데요. 그렇게도 우리가 못 미더워 도둑고양이처럼 부하 직원을 몰래 잠입시킨 겁니까?”
“어허. 말씀이 과하시군요. 몰래 잠입이라니요? 지점장님은 잘 모르시나 본데 우리 마동수 팀장은 불과 몇 달 전에 회.장.님.으로부터 직접 표창장을 받은 직원입니다. 만약 제가 몰래 잠입을 시키려고 했다면 이런 유명 인사가 아닌 얼굴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이용했겠죠.”
고현호 이사는 유난히 회장님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대기업 총수 중에 카리스마로만 따지면 대한민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우리 회장님이다. 그리고 장경철 지점장처럼 40 ~ 50대 직원들에게 회장님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보면 된다.
“회장님이요?”
“그렇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엄청난 금일봉까지 받았고, 그 돈의 상당수를 다시 기부해서 꽤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지점장님께서 그룹 일에 무관심하셨나 보군요.”
“아, 아닙니다. 저만큼 그룹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그럼 잘 아시겠군요. 회장님에게 직.접. 표창장까지 받은 유능한 직원을 동지마트롤 끌어들이기 위해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말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경영상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동지마트에 새로운 힘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어렵게 데려왔는데 도둑고양이 취급을 하신 겁니까?”
우와! 재수 없다. 고현호 이사의 저 교묘한 화술.
유능한 직원? 게다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납치사건에 휘말려 지리산으로 쫓겨날 뻔한 나를 저린 식으로 포장할 줄이야. 정말이지 사기꾼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시연이가 갑자기 내게 소곤거렸다.
“동수씨.”
“응? 왜 그래. 시연아.”
“인제 보니 고현호 이사님과 동수씨는 참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뭐? 나와 고 이사님이? 생긴 것부터가 완전 다른데, 뭐가 닮았다는 거야.”
“저 화법요. 동수씨 화법이 꼭 저렇거든요.”
“뭐? 내가 저렇게 재수 없다고?”
“네? 하나도 안 재수 없어요. 동수씨의 그런 모습 얼마나 멋진데요.”
시연아. 그건 네가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래. 저건 멋있는 게 아니야. 그나저나 내 화법이 저렇게 재수 없다고 하니 좀 충격이긴 하다.
나와 시연이가 별 의미 없는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고현호 이사와 장경철 지점장의 대화도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황달중 주임은 제가 있는 행당점의 직원입니다. 제 직속의 직원이 타의에 의해 감금조치 되는 거 저는 인정 못 합니다.”
지점장은 황달중 주임의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졌다. 그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오히려 의심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감금이 아니라 격리입니다. 감금은, 황달중 주임이라고 했나요? 그 사람이 우리 마동수 팀장에게 하려고 한 행동이죠. 우리는 그가 왜 갑자기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지시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머물게 하고 있는 것이고요.”
“여긴 행당점의 책임자는 바로 저입니다. 아무리 이사님이 동지마트의 책임자라고 해도 저의 동의 없이 직원을 격리하는 것은 월권행위입니다.”
헐. 지점장이 미친 건가? 차라리 침착하게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나은데 그는 막장에 가까운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막가자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이곳은 20여 명의 경호원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여기서 떼를 써봐야 ‘도둑이 제 발 저린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하하하. 생각보다 말이 안 통하는 분이었군요. 지점장님. 잠깐만 이리로 와보세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뭘 그렇게 겁을 먹고 그러십니까? 하하하. 설마 제가 때리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겁니다. 그냥 조용히 전해드릴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러니 겁먹지 말고 이리 가까이 오세요. 굳이 이곳에 있는 사람이 전부 알아도 상관이 없다면 거기서 들으셔도 괜찮습니다.”
겁을 먹었던 장경철 지점장은 그제야 주저주저하면서도 고현호 이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고현호 이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귓속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경철 지점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남진우 대리.”
고현호 이사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 곁에서 대기하고 있는 경호 책임자를 불렀다.
“네. 이사님.”
“장경철 지점장님을 지점장실로 모셔다 드리세요. 요원 두 명이 보호해드렸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저건 보호가 아니라 지점장실에 격리시키고 경호원으로 하여금 감시하라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경철 지점장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여! 이제야 마 팀장과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군. 제수씨도 오랜만입니다.”
“네? 제수씨요?”
“마 팀장이 내게 동생 같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피앙세면 당연히 제수씨 아닌가?”
아! 진짜 이 사기꾼 같은 양반이 이런 식으로 훅 들어올 줄이야. 그의 깜짝 발언에 사무실에 있던 사람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건 단순히 시연이를 제수씨로 불렀다는 의미에서 끝날 게 아니다.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나를 자신의 동생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지리산으로 쫓겨날 뻔한 걸 고현호 이사가 구해줬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그의 사람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밝혀버릴 줄은 몰랐다.
이것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생길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내게 엄청난 힘을 실어줬다는 사실이다. 동지마트 책임자가 동생처럼 아끼는 사람이 실행하는 정책들을 누가 감히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만약 내가 실행하는 정책들이 실패로 끝난다면 그 책임은 모두 고현호 이사가 져야 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행동이다. 물론 나로서는 딱히 달갑지만은 않다.
“안녕하셨어요. 이사님. 오랜만에 뵙네요.”
당황한 나를 두고 시연이가 태연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러게요.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그런데 제수씨는 갈수록 아름다워지는군요. 혹시 동지마트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볼 생각은 없으세요?”
“네? 동지마트 모델을 제가요?”
“안 그래도 새로운 동지마트의 얼굴을 찾고 있었거든요. 제수씨 얼굴을 보니 그동안 왜 그렇게 고민을 했는지 제가 바보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가 도움이 될까요?”
“당연히 도움이 되죠. 그리고 동지랜드에서 이미 모델을 하셨으니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물론 일간지나 지상파 광고에도 내보낼 생각이니 얼굴이 좀 알려지긴 할 겁니다.”
“그런 건 좀 곤란한데. 안 그래도 귀찮게 하는 사람이 많아서요.”
“하하하. 이해합니다. 제수씨 정도의 외모면 누군들 안 혹하겠습니까? 그런데 혹시 그거 아시나요?”
“뭐가요?”
“모델 촬영은 괌이나 푸켓처럼 아름다운 휴양지를 배경으로 할 예정입니다. 제가 이곳에 부임해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일이라 신경도 많이 쓸 예정이고요. 당연히 믿을만한 직원에게 맡겨야겠죠. 지금 동지마트에서 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굳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할게요. 하겠어요.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고요. 그냥 제가 동지마트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하고 싶어서요. 호호호.”
“그럼요. 저는 예전부터 제수씨의 그런 고운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제수씨라는 소리에 잠시 당황한 사이, 고현호 이사와 시연이는 나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동지마트의 새로운 모델 건을 전격 결정해버렸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두 사람의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고현호 이사가 동생같은 사람이라고 선언한 상황인데, 내가 그 자리에서 그의 결정을 반대해버리면 모양새가 매우 우스워진다.
그리고 최근에 느낀 사실이지만, 시연이는 내게만 어려 보일 뿐 굉장히 생각이 깊고 신중한 성격이다. 그런 그녀가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모델 일을 수락했다면 나는 시연이의 의견을 존중할 생각이다.
“저기. 이사님.”
“그래. 마 팀장. 설마 제수씨 모델 건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이사님이 좋게 봐주셔서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데 이제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연이는 이곳 관계자가 아니니 집에 돌려보내겠습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제수씨가 여기 계속 있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 있겠어. 남진우 대리에게 이야기해서 집까지 무사히 모셔다 드리도록 하지.”
“아닙니다. 윤권이 녀석에게 다녀오라고 시키면 됩니다.”
“이번에 새롭게 팀에 합류한 친구를 말하는 모양이군. 저 친군가? 이야! 겉모습만 봐도 듬직하게 생겼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 제수씨. 내일 시간 어떠세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일이라도 계약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동수씨도 나오지 마세요. 일이 먼저잖아요. 급한 일 끝나면 그때 연락 줘요. 기다릴게요.”
시연이는 배웅하려는 나를 마다하고 윤권이와 함께 사무실을 떠났다.
이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할 때다. 이제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는 건 확실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이렇게까지 비열하게 행동하는 곳이 과연 어디인지 지금부터는 그걸 밝혀야 한다.
============================ 작품 후기 ============================
1위를 공고히하고 싶은 3-마트, 1위에 오르고 싶은 엘마트, 1, 2위과 격차를 줄이고 싶은 포에버마트. 범인은 과연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