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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76화 (176/424)

0017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1995년 영국 컨설팅 회사 디켄지 컨설팅과 함께 슈퍼센터 사업부 프로젝트 착수

1996년 동지유통 내 슈퍼센터 사업부 창설

1996년 11월 15일 동지마트 1호점 고양점 개점

1997년 1월 슈퍼센터 사업부 동지상사로 양수

1999년 국내 최초 시티형 할인점(도심 밀착형 중소형 매장) 성동점 개점

2002년 동지유통, 동지백화점, 동지마트 3사 통합

2007년 동지마트의 경영악화로 동지유통과 동지백화점을 다시 분리

동지마트를 키워보려고 동지유통과 동지백화점을 통합했다가 잘나가던 두 회사까지 거덜 낼 뻔하자 그제야 부리나케 분리시켰다. 그러나 동지유통과 동지백화점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대형 할인 마트 체인점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서울 2곳, 경기 3곳, 인천 1곳, 대전 1곳, 부산 2곳, 광주 1곳.

전국 200여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대형 할인 마트 서열 1위인 3-마트에 비하면 동지마트는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대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현호 이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동지마트를 맡겠다고 한 것일까? 전화통화로는 나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고 생색을 냈지만, 사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해 나는 그냥 핑계일 뿐 다른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가 아무리 나를 신임한다고 해도, 나 하나 때문에 그의 진로를 결정했다고 믿는 건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다. 대권을 꿈꾸던 사람이 고작 대리 한 명 때문에 자신의 진로를 바꾼다? 그러기에는 그의 야망이 너무 컸고, 나는 고 이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그냥 ‘아! 이 사람이 날 꽤 신뢰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주면 된다. 어쨌든 지리산으로 갈 나를 동지마트로 빼준 건 사실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나를 위해 자신의 진로를 바꿨다면? 정말로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와 함께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험한 세상은 그런 순진무구한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험난한 곳이다.

적당히 사람 좋고 적당히 정의롭지만,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독을 품을 줄 아는 사람. 내가 아는 고현호 이사는 그런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나랑 닮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호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Rrrr

나는 답답한 마음에 고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감추고 있는 비장의 한 수가 뭔지 넌지시 떠볼 생각이었다.

- 어 그래. 마 팀장. 퇴원은 했다면서. 퇴원했으면 며칠 푹 쉴 일이지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나?

팀장 대우이긴 해도 어쨌든 팀장이다. 대리에서 순식간에 팀장으로 인생역전. 이런 걸 보면 용 꼬리보다 뱀 대가리다 낫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물론 동지마트가 괜찮은 계열사였으면 그랬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냥 이사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 하하하.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내가 마 팀장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지금쯤이면 동지마트에 대한 대략적인 파악은 끝났을 거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암울한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겠지.

뜨끔.

고현호 이사가 이렇게까지 돌직구를 날릴 줄이야.

“하하하. 좌절감까지는 아니고요.”

- 좌절감이 아니면 절망감인가? 아무튼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니 이 인간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동지마트를 맡겠다고 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을 것 같은데?

“역시 이사님이십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노망나신 것 아니죠?”

- 하하하. 난 이래서 마 팀장이 좋다니까.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너무 고루해.

“말 돌리지 마시고요. 이제 솔직히 말씀해보시죠. 오직 저 때문에 동지마트를 맡게 되었다는 구라는 이제 안 통합니다.”

- 어허. 이 친구 속고만 살았나. 구라 아니야.

“약발 다 됐습니다.”

- 벌써? 그런데 어쩌지. 아직은 말해줄 수가 없어. 솔직히 말을 함세. 마 팀장도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내가 동지마트를 아무 생각 없이 맡았겠나? 뭔가 회생시킬 방안이 있으니 나도 이곳에 기어들어 왔겠지.

역시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도 좀 알려주십시오. 지금은 너무 막연해서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기분입니다.”

- 아직은 곤란해. 자네를 못 믿는 게 아니라 확실해진 게 없어서 그래. 대충 윤곽이 드러나고 일이 확실해지면 그때 알려줄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그때까지 자네가 활약을 좀 해줘야 해.

“아하.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결국 저는 연막이군요.”

-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나. 연막이 아니고 응급처치야. 골든타임 모르나?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시간이야. 응급처치를 잘못하면 환자는 수술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망해버려. 그만큼 중요하지. 자네는 골든타임의 지휘자야. 동지마트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무슨 말을 그렇게 거창하게 하십니까? ‘열심히 잔머리를 굴려서 시간을 벌어라.’ 이렇게 말씀하시면 될 일을. 아 참. 직원 하나 낙하산으로 꽂아도 되겠습니까? 계약직으로 고용하면 되니 큰 부담은 없으실 겁니다.”

- 그래. 그렇게 해.

나는 기회가 이때다 싶어 그동안 고민했던 윤권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허무하리만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래도 낙하산인데 왜 필요한지 안 물어보십니까?”

- 누구면 뭐 어때? 지금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설마 마 팀장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람을 취직시키겠어? 어떤 용도이든 자네에게 필요한 사람일 거라고 믿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레부터 출근하겠습니다.”

- 좀 더 쉬지그래?

“병원에서 많이 쉬었습니다.”

이미 쉴 만큼은 충분히 쉬었다. 너무 많이 쉬워서 엉덩이에 종기가 날 지경이다. 꼭 그게 아니라도 나는 지금 엄청나게 어려운 숙제를 앞두고 있는 입장이다. 마음 편히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상황이다.

- 그래. 마 팀장이 준비되었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모레 보자고.

“네. 그럼 들어가십시오.”

고 이사와의 통화를 마치고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아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동지마트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방구석에 앉아 자료나 뒤적이는 걸로는 해결책이 찾아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현장을 찾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동지마트를 방문해 본 적이 없었다. 집 근처에 없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마트를 이용했고,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동지마트가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자료를 뒤적이며 방안을 찾아낸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시연아! 놀러 가자.”

나는 옆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시연이를 불렀다. 나는 여전히 혈기왕성했고 그녀는 한창 성에 대해 눈을 뜨고 있었다. 퇴원하자마자 미친 듯이 서로의 몸을 탐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리 가져도 또 가지고 싶을 만큼 시연이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젊고 건강했다. 아침부터 집에 돌아갈 시간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섹스를 하며 보내는데도,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그녀를 끊을 수 없었다.

그건 시연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잃을 뻔했다는 충격이 섹스에 더욱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지금 당장 내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폭탄발언까지 하는 바람에, 그걸 달래느라 진땀깨나 흘렸다.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서로를 탐닉하게 되자,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 있긴 싫지만, 눈만 마주치면 스파크가 튀기니 서로를 위해서 공부나 일을 할 때는 다른 방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네. 동수씨. 불렀어요?”

나의 부름에 시연이는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달려왔다.

“응. 우리 마트 가자.”

“마트요? 우리 어제 3-마트 다녀왔잖아요. 뭐 잊고 안 산 거 있어요?”

“아니. 일하러 가려고. 혹시 동지마트 가본 적 있어?”

“아뇨. 솔직히 동수씨가 발령 났다는 소리를 듣고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미안해요.”

“네가 왜 미안해? 나도 몰랐어. 그러니 미안해할 것 없어. 어쨌든 명색이 내가 가서 일할 곳인데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혹시 아직 공부할 게 남았으...”

“아뇨, 아뇨. 공부 다 했어요. 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히히.”

시연이는 남으라고 할까 봐 겁이 났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대답부터 했다.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나의 아랫도리가 버릇없이 또다시 쳐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이 먼저였다.

“그럼 출동할까? 우린 마트에 놀러 온 신혼부부 콘셉트야. 잘할 수 있지?”

“그럼요. 맡겨주세요. 그런데 동수씨. 그럼 우린 인제부터 언더커버 보스 이런 걸 하는 건가요?”

“음. 내가 보스가 아니니 언더커버 팀장 정도로 해두자고. 하하하.”

“와. 갑자기 신이 나요. 스파이 이런 거 제 어릴 적 꿈이었는데. 믿고 맡겨주세요. 꼭 성공해서 동수씨에게 도움이 될게요.”

“어라. 시연아. 직원으로 잠입하는 게 아니라 손님으로 가는 거야. 그러니 그렇게 기합을 넣을 필요 없어.”

“아차. 그렇죠? 헤헤. 언더커버 팀장이라고 해서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봐요.”

“그래. 편안하게. 흥분 가라앉히고, 지금부터 우리는 신혼부부야 알았지?”

“네. 그거야말로 제가 제일 자신 있는 분야죠. 제가 꿈꿔왔던 모습이니까요. 그런데 선글라스는 안 챙겨도 될까요? 머플러는 요?”

“시연아. 릴렉스. 선글라스나 머플러는 필요없으니까 그냥 몸만 가자.”

시연이가 정말 내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동지마트가 있는 행당동을 향해 출발했다.

============================ 작품 후기 ============================

2010년을 끝으로 롯데마트에 인수된 GS마트를 참조했습니다.

드디어 로또가 전부는 아니야 e북이 출간되었습니다. 전체관람가로 수정하느라 바뀐 부분이 조금 있지만 큰 틀이 변한 건 아닙니다. 1권은 무료이니 주변에 현대 판타지 좋아하는 분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

현재는 리디북스에서 서비스 중이며 조만간 네이버를 통해서도 e북 공급 예정입니다.

독자님들의 많은 성원 덕분에 책까지 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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