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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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를 납치했다가 갑자기 일어난 자동차 사고 때문에 부리나케 도망간 삼인방. 머리가 좋은 놈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방 잡힐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행방이 묘연했었다. 집 근처 등 그들이 자주 움직이는 활동반경 위주로 잠복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잡힐 것을 두려워해 완전히 잠수를 탔다고 판단한 수사팀은 전국 각지에 수배령을 내리고 장기전에 대비했다. 납치인지 납치미수인지 약간 애매한 사건. 평상시였다면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체포활동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차기 서울지방경찰청장 자리에 하마평이 무성한 서초경찰서장의 예비조카 사위이자 젊은 경찰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는 광역수사대장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건 관할서인 마포경찰서는 그야말로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웬만한 연쇄살인 사건도 이번 사건보다는 관심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범인을 찾고 있는데도 별다른 진척이 없자 마포경찰서 강력반은 안달이 났다. 직속상관인 경찰서장이 닦달하고, 빨리 해결하라는 압력도 여기저기서 상당히 들어왔다. 그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강력반 반장은 며칠째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Rrrr
“네. 마포 경찰서 강력 1팀 팀장 정일도 경위입니다.”
강력 1팀의 정일도 경위 또한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며칠째 경찰서에서 대기 중이었다. 광역수사대장인 최광우가 그의 경찰대학 직속 선배였고, 언젠가 광역수사대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
- 수고하십니다. 여기 은평경찰서 교통과입니다. 김XX 경사입니다.
“아, 네. 김 경사님.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정일도 경위는 자신의 계급보다 낫은 김 경사라는 사람의 전화에도 말을 낮추지 않았다.
‘계급이 높다고 계급 낮은 경찰 선배님들에게 반말 찍찍하는 새끼들. 어디 걸리기만 해봐라. 경찰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내가 몸소 체험하게 해줄게. 꼬우면 나보다 먼저 진급하던가.’
그의 선배인 최광우 경정이 후배들 졸업식 때 찾아와 남긴 말이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성격이 얼마나 지랄 맞은 지 잘 알고 있는 후배들은 최 경정의 말을 감히 어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이번에 마포 경찰서에 발생한 납치사건 용의자를 체포한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네? 뭐라고요? 아니 어떻게요?”
- 아! 저희가 마포 경찰서를 무시하고 따로 수사팀을 꾸린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음주 단속을 하다가 만취 상태의 운전자와 승강이를 벌이다가 어쩔 수 없이 체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있던 동승자 두 사람도 행패를 부려서 같이 체포했습니다. 인사불성 상태라 정확한 인적사항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수배 전단에 올라온 얼굴과 많이 닮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허 참. 확실합니까?”
-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니 거의 확실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그리로 가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슨 일이야?”
정일도 경위가 전화를 끊자 강력반을 닦달하러 온 수사과장이 물었다.
“납치 사건 삼인방 세 놈이 잡혔답니다.”
“뭐야? 어떻게? 누가?”
“그게. 은평구 교통과에서 음주단속 과정에서 체포했다고 합니다. 행패를 부려 체포했는데 잡고 보니 그놈들이라고 합니다.”
“허허. 완전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꼴이군. 우린 닭 쫓던 개 신세고. 쯧쯧. 이걸 서장님에게 어떻게 보고하나? 어쨌든 잡았다니 한시름 놓을 순 있겠군. 얼른 가서 확인하고 와. 그리고 납치를 사주한 것으로 보이는 채은성 그 작자는 반드시 우리가 잡아야 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
***
한때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으로 괜찮은 삶을 살았던 채은성. 그러나 마동수라는 남자와 엮이면서 평탄했던 그의 삶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꼭 마동수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물론 막연하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거지 납치를 해서 해코지하겠다고 구체적 계획을 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제는 그놈의 술이었다. 마동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미 술에 잔뜩 취해있었고, 그래서 평상시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말도 안 될 계획을 세우고 말았다.
술에서 깨자 금방 후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인제 와서 발뺌할 수도 없었다.
제발 모든 일이 무사히 마치길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 마동수에 대한 기사가 사회면 1면을 장식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마 모 씨. 납치 도중 일어난 교통사고 덕분에 기적적인 생존.’
마 모 씨라고 되어 있었지만, 신문에서 나온 피해자라는 사람이 마동수인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납치 계획이 실패했다. 그리고 삼인방이 잡히면 자신 또한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왔다.
무작정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어 구걸하다시피 하며 밥을 얻어먹고 다녔다. 하지만 고생 한 번 안 하고 자란 그가 떠돌이 생활을 견딜 리 없었다.
고민 끝에 전처를 찾아갔다. 이미 이혼했지만, 한때는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착한 여자였다. 그녀라면 최소한 따뜻한 밥 한 끼 정도는 챙겨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보.”
이제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만, ‘현주야’ 또는 ‘현주씨’라고 부르기는 왠지 어색했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이현주는 갑자기 나타난 채은성을 보며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내가 정말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데 밥 한 끼 먹을 수 없을까?”
“어휴. 꼭 밥 한 끼만이에요.”
“하하하. 고마워요. 물론이야. 나도 양심이 있어. 정말 밥 한 끼만 먹고 갈게.”
그녀는 경찰이 전남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람까지 피운 남편에 대한 어떤 미련도 없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시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이 고마워서 차마 경찰에 연락하지는 못했다. 너무너무 배고프다는 말에 측은한 마음도 들어, 하는 수 없이 집안에 들여 밥을 챙겨줬다.
후릅후릅 쩝쩝. 후르릅 쩝쩝쩝.
채은성은 이현주가 차려주는 밥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배고픔 때문에 체면이고 뭐고 따질 여력이 없었다.
“끄윽. 잘 먹었다. 고마워, 여보. 잘 먹었어. 그런데 밥을 먹고 나니까 솔솔 잠이 온다. 나 한숨만 잘게.”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처럼 밥을 먹고 난 채은성은 아까보다 더욱 뻔뻔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현주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그녀의 집이 자신의 안방인 것처럼 잠을 청했다.
이현주는 물끄러미 전남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눈빛은 아까와는 달리 단호하게 변해있었다.
“휴. 미안해요. 하지만 밥만 먹고 가겠다는 약속을 어긴 사람은 당신이에요. 이대로 두면 당신은 여기가 당신 집인 것처럼 행동하겠죠. 난 그게 싫어요. 바보처럼 당신만을 바라보고 살던 철부지 여자가 아니에요.”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Rrrr
- 네. 마포경찰서입니다.
“저 이현주라고, 채은성씨 전처되는 사람입니다.”
- 아, 네. 알고 있습니다. 어쩐 일로 전화주셨습니까? 혹시 채은성씨에게 연락이라도 왔습니까?
“아니요. 지금 우리 집에 와있어요. 밥 먹고 자는 중이에요. 많이 피곤해 보였거든요. 아마 한동안은 안 일어날 거예요.”
-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이현주씨. 정말 현명한 선택하셨습니다. 전남편이라고 해도 사람을 납치하도록 사주할 만큼 정말 질 나쁜 사람입니다.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 경찰이 출동할 동안 아파트 입구에서 나와 계세요.
***
나를 납치했던 삼인방과 채은성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이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납치범은 체포되었고 필리핀으로 갈 것도 아니기에 윤권이는 내게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시연이의 닦달과 그동안 들었던 정 때문에 일을 그만두라는 말은 하기 어려웠다.
시연이는 윤 스포츠센터에서 고용하는 걸로 하겠다며 우겼지만 그것만은 들어줄 수 없었다. 자기 약혼자에게 보디가드를 붙이는 부자집 딸. 어떻게 보면 철부지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내가 두 번이나 죽을 뻔했었기에 무작정 그녀를 나무랄 수도 없었다. 이제 겨우 21살인 그녀에게 나의 납치 소식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시연이의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고현호 이사가 동지마트의 책임자가 되었으니 그에게 부탁해서 윤권이를 내 밑으로 꽂아넣을 생각이다. 일명 낙하산이다.
Rrrr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침 고현호 이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이사님. 오랜만에 통화하는 것 같습니다.”
- 하하하. 목소리가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내가 요즘 바빠서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해. 소식은 들었겠지?
“네. 들었습니다. 동지마트로 발령받으셨다고요? 축하해드려야 하나요?”
- 하하하. 설마 마 대리까지 끌어들였다고 서운해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이사님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죠.”
- 으흠. 생색 좀 내야겠어. 자네도 눈치챘을 것 같지만, 원래 발령지는 지리산이었어.
“끄응. 역시 그렇군요. 정말 노친네들 너무하는군요. 어디까지나 피해자는 난데, 마치 제가 물의를 일으킨 것처럼 취급하네요.”
- 원래 꼰대들이 그렇잖아. ‘행동거지를 어떻게 했길래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데 나도 정말 속터져 죽을 뻔했다니까.
“그래도 어떻게 꼰대들을 잘 설득했네요. 지리산에서 동지마트로 발령 난 것을 보면요.”
- 이번 납치 사건 때문에 내가 우리 동지그룹 비서실을 가동했잖아. 그것 때문에 마 대리는 완전 내 사람이다 광고한 꼴이 되어버렸지.
이건 나도 몰랐던 일이다. 대충 상황을 들어보니 내가 처음에 왜 지리산으로 발령났는지 알 것 같았다. 벌써부터 고현호 이사에게 견제가 들어온 것이다.
“휴. 제가 납치된 동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 아니야. 덕분에 자네 코를 꿰었으니 나는 만족해. 이제 두 형님은 마 대리를 적으로 생각할 거야.
“하하하.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군요. 그런데 설마 동지마트 발령 건, 저 때문에 결정한 건 아니시죠?”
- 왜 아니겠어? 내가 생색낸다고 했잖아. 내가 동지마트를 맡는 조건으로 자네의 지리산 발령을 취소했어. 그냥 직원이었으면 이런 견제까지는 안 들어왔을 텐데, 윤 스포츠센터의 예비 사위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상황이 좀 더 어려워졌지.
“헐. 그럼 저는 더 이상 일반 직원이 아닌 건가요?”
- 몰랐어? 윤승태 사장님의 예비 사위가 되었다는 건 자네도 반쯤 로얄패밀리가 되었다는 의미야. 자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사님이 동지마트를 맡는 건 너무 했습니다. 회장님도 실패한 일 아닙니까? 혹시 동지마트를 회상할 방안이 있으셔서 맡으신 겁니까?”
- 아니. 없어.
“아니 그럼 저를 버렸어야죠. 마땅히 회생 방법도 없는데 갑자기 왜 그런 모험을 하신 겁니까?”
- 뭐가 걱정이야. 마 대리 자네가 있는데.
“네?”
- 아! 아니지. 이제 마 대리가 아니지. 과장이지, 마 과장. 직급은 과장이지만 사실 팀장 대우야. 동지 마트에 팀이 하나 만들어질 거고 그 팀의 책임자가 자네야.
“그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그러니까 아무런 회상 방도도 없이 오직 저만 믿고 동지마트 책임자로 오신다고 했다는 겁니까?”
- 어허. 뚱딴지라니. 내가 그만큼 마 과장을 믿는다는 의미 아니겠어?
“어휴.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건 전데,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은 이사님 같습니다.”
- 하하하. 자네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 난 자네를 믿어. 동지랜드를 살려냈듯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로 동지마트를 살려낼 거라고 믿어.
“노망이 너무 빨리 오신 것 같군요. 전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 노망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몸조리 잘하고 첫 출근 때 보자고.
고 이사는 나의 출근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행동 같은데, 한편으로는 나를 이렇게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전화를 끊은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노트북을 열어 동지마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 낚는 데는 고현호 이사가 나보다 한 쉬 위인 것 같다.
============================ 작품 후기 ============================
삼인방과 채은성이 잡혔습니다. 좀 허무한가요? ㅠㅜ
어쨌든, 대충 상황정리는 끝났으니 다음회부터는 본격적인 동지마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천리마마트가 생각난다고 하는 독자님들이 계시더군요.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찾아보니 웹툰이네요. 몇 회 읽어봤는데 뭔가 얼토당토않은데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소설을 그렇게 쓸 수는 없죠 ㅎㅎ 전혀 다른 내용일겁니다.